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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2/20 23:54:18
Name 그래요
Subject [일반] 그 날 홍대입구역에서(1)
실제 80 허구 20 이 가미된 짤막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2014년도 이 맘때쯤 있었던 일인데
여전히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고 위로를 받아도
아쉬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네요.
그 아쉬움을 글로 나타내고
PGR 분들 말씀도 들으면 좀 더 사그라들지 않을까 싶어서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이트인 PGR21에 글을 써 봅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저에겐 유일하게 있었던 일인지라 많이 힘들더군요.
편의상 반말체를 쓰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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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강남역 8번 출구에서 보았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기대하지 않고 나와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친구가 보여줬던 그 사람의 셀카 사진들.
역시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첫 번째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가장 잘 나온 첫 번째 사진에서만 그럭저럭 괜찮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 이후에 보여준 사진 속 모습은 안경을 끼고 있는 평범한 여자였다.
친구는 자신의 직장 동료의 아는 사람인데
직접 만나보면 괜찮을 거라며 소개팅을 적극 권했다.
첫 번째 사진만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구직활동 때문에 연애를 꽤 오래 쉬고 있던 터였던지라 해보겠다고 했다.

7시 강남역 8번 출구에서 보기로 했다.
5분 정도 늦을 것 같은데 정말 죄송하다고 카톡이 왔다.
시간 관념이 철저하고 상대를 배려 많이 하시는 분인가 보다.
5분이면 그렇게 늦는 것도 아닌데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강남역에서 데이트를 많이 해봤던 터라
소개팅이든 여친과의 데이트든 나만의 코스들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소개팅이니까 가성비 좋은 파스타 P집이면 된다.

파스타 좋아하시냐고 묻고, 곧장 그 집으로 갔다.
가는 내내 짤막짤막한 대화를 하는데 그 사람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약간의 두께가 있는 여자의 목소리를 좋아해서
언제나 이상형을 장진영 씨(돌아가셨을 때 무척 안타까웠다)를 꼽았었다.
차분한 외모에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에다
내가 좋아하는 톤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점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첫 눈에 반한 건 아니지만
처음 느낌이 오고, 이후 그 느낌이 호감이 되고 내 온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P집에서 맛있는 파스타와 피자라고 얘기하고는 동의를 얻어 주문을 했다.
서로 일에 대한 얘기를 시작으로
퇴근 후에 하는 일, 주말에 하는 일, 특이한 취미, 대학교 때의 생활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까.
대화가 중간중간 끊어지긴 했어도 서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약품 연구원인 그 사람은 특이한 이름의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너무 특이해서 한 번만 들었어도 기억이 잘 되었다.

커피까지 마시고 각자 헤어지고 난 뒤,
나는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서
무척 마음에 든다고
소개팅 나와서 이렇게 좋은 느낌이 들기는 처음이라고
소개팅 연결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잘 되면 한 턱 쏘라는 친구의 말에 그러겠노라고 했다.

이후 두 번 더 만났고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지
사귀자는 나의 말에 응해주었다.

우리는 목소리가 좋은 커플이었다.
서로 얘기를 할 때마다 서로의 목소리를 칭찬했다.

그 사람 덕분에 내 기분은 하루종일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사귀기로 한 며칠 뒤,
2주 동안 그 사람이 유럽으로 해외출장을 가게 되면서
무척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간간이 소식을 주고 받으며
하루바삐 돌아와서 만날 수 있기만을 기다렸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첫번째 만남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가끔 가는 홍대 클럽에 같이 가자고 했다.
힙합 클럽 같은 곳이 아니라 라이브 카페 같은 곳으로
인디밴드들이 공연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물론, 나도 인디밴드 공연을 좋아하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공연보기로 한 날, 오전까지 연락되던 사람이
점심 이후로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카톡의 1 숫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오후 5시쯤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쁘니까 연락 못한 거겠지.
하지만 홍대입구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우리집에서 홍대입구역까지는 1시간 넘게 걸리는데.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귀기 전 가끔 카톡이나 전화 반응이 늦을 때가 있었는데,
사실 이 사람이 나 이외 혹시 다른 사람도 만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예전 동호회 모임에서 계속 좋다고 연락을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은근하게 매력이 있는 타입이었으니까.

사귄 후에도 여전히 같아서
원래 다른 사람 연락에 그런가보다 하려 했지만
약간의 의심은 남아있었다.
물어보면 상대방이 의심받는 것에 대해 당연히
기분 상할까봐 얘기를 꺼내진 못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게 좋고 매력적으로 느껴서
당연히 직장에서나 취미 혹은 친목으로 참여하는 모임들에서
그 사람에게 들이댈 남자가 당연히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친구가 그 사람들에게 지금 남자친구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테고.

나는 그 사람의 모든 걸 믿었어야 했는데 믿지 못했다.
지금 연애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지난 연애에서의 아픔 때문에 완전히 믿지 못했다.

연락이 안 되니 이 의심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나올 거라고 믿고 있는 마음에
가고 있는 도중에 연락이 오겠지 하고 밖으로 나왔다.
연구실 일에 몰두하고 일이 늦어지면
휴대전화 확인을 늦게 할 수도 있으니까.

홍대입구역에서 8시에 보기로 했었다.
난 6시 반에 출발했다.
가는 동안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연락 오겠지, 오겠지 했다.
노래를 듣는데 가사는 잘 안 들리고 소리만 들렸다.

홍대입구역에 도착할 때까지
카톡 1은 사라지지 않았고, 전화도 오지 않았다.
8시까지는 20분 남았으니까
기다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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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러너
16/02/21 08:45
수정 아이콘
다음글 기다리겠습니다
바람이라
16/02/21 09:58
수정 아이콘
그녀는 사정이 있었을듯...
장수풍뎅이
16/02/21 16:56
수정 아이콘
와닿네요 정말..느낌이 호감이..그리고 애정
16/02/21 17:34
수정 아이콘
빨리 다음글 써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ㅠㅠ
스웨트
16/02/21 17:39
수정 아이콘
아.. 진짜 빨리 다음글 써주세요ㅠ 궁금합니다
기네스북
16/02/22 11:23
수정 아이콘
이렇게 마무리하면 제 7시40분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책임지실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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