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는, 게임을 하면 무조건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가다를 하든, 공략을 보든, 치트를 쓰든간에, 어쨌든 게임은 깨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는 클리어한 게임들 투성이였다. 딱히 게임의 스토리를 신경쓰지도 않았고, 오로지 게임을 공략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언어패치도 딱히 개의치 않았다. 영어도 문자고, 일본어도 문자고, 중국어도 문자니까. 딱히 이것들을 이해하지 못해도 게임을 완성하는데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메뉴에서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등이 무엇인지만 알아도 클리어 할수있는 게임이 대부분이였다. 그걸 이해하는건 스토리에 있어서 중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시간과 약간의 노가다를 거치면 결국 알게 되도록 만든게 게임 디자인 아닌가.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딱히 나의 게임에 대한 흥미를 줄도록 하지 않았다. 일단 뭐, 깨면 되는거 아니겠나.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때부턴가, 도중에 그만두는 게임들이 많아졌다. 스토리가 별로라서, 시스템이 생소해서, 캐릭터가 구려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고, 언어패치가 나오지 않아서 하기 힘들다는 이유는 거짓말일 정도로 다양한 언어를 해야만 하는 문화권에서 살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고 돈도 많아져서 게임을 구매할 여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분명 그때에 비해 게임을 할수 있는 장벽은 줄어들었는데, 정작 끝을 보는 게임이 드물어졌다.
스마트폰이 도입된 이래, 우리는 정보의 홍수시대에 거함은 물론, 소셜 네트워킹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딜 가나 “제발 연락좀 하고 지내자” 는 말을 듣는게 다반사다. 그만큼 연락하고 지내기 편한 세상이다. 물론 그런 말 하는 사람들 치고 먼저 연락하는 사람을 본건 100중 한명 될까 말까 하지만... 어쨌든 “연락” 이란 단어가 예전만큼 무거운 단어가 아닌건 확실하다. 편지 한통을 만리너머로 보내어 애틋한 마음을 몇달 간격으로 주고받는 시대가 더이상 아니며, 심지어 타국으로의 전화 한통도 국제전화 카드 긁어가며 비싼 요금을 피해서 걸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연락의 폭이 넓어지며, 나는 점차 연락의 상대조차도 범람하는 상황에 놓였다. 눈앞에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사람들이 보이는데도, 전화 너머의 누군가와 더 친하게 지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전화 너머의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였다. 이민사회에 지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앞에 있는 사람들보단 머나먼 곳의 누군가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었고, 새로운 인연을 쌓아가는 것에 보수적으로 변해갔다. 과거에 만났던 친구들이 가장 좋았더라고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고,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며 계산적으로 변해가며 새로운 주변사람을 믿지 않게 된 것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분명 좋은 사람들은 존재하고,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수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게임들을 마무리하지 않게 된것도, 연락하는 것을 피곤해하기 시작한 것도, 내 시간과 에너지로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많은 선택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이, 내 현실적인 주관만으로 판단해서 나왔다는것은 덤이다.
동네에서 이 친구 몇명 아니면 놀 사람이 없던 때가 가장 그리웠던 것도, 조금은 어울리지 않아도 모여서 싸우며 투닥거리며 놀았던 그때가 좋았던 것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출발하게된 생각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그걸 깨닫고 어느새부터, 떠나간 사람들에게 더이상 자잘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민사회에서 지내기에, 떠나는 사람들만 많았던 나에게는 매우 부자연스럽고 힘든 결정이기도 했다. 물론 명절이나 생일때 안부정도는 하겠지만, 이 사람들이 진정 소중한 인연이라면, 굳이 엄청난 열심으로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다시 만날 때에는 다시 친하게 지낼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랬을까.
며칠전, 10년간 친하게 만나며 지냈던 고등학교 동창과 저녁을 먹었다. 내가 아마 1년쯤 뒤에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항상 보내기만 했는데, 내가 떠나야 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가 한마디를 해줬다:
“그때도 2년간 각자 연락없이 바빴다가 다시 만나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잖아. 다시 만나면 그대로 친하겠지. 기회되면 돌아와라. 넌 여기가 어울려.”
참 좋은 친구를 둔것 같아 다행이다. 가까이 지내는 남은 기간동안 더욱 잘해줘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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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격하게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선택 혹은 정보로 인해 선택을 안하는 문제도 있지만, 어떤 행위의 편의성 문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경우에는 쉽게 깔고 간단하게 (심지어 자동으로..) 진행하는 만큼 애정 및 몰입도가 떨어져서 엔딩까지 가지 못하게 되고, 연락의 문제도 카톡이든 좋아요든 편하게 연락을 하다보니 진정성도 떨어지고 관계도 가벼워지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