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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1/07 14:08:50
Name 선비욜롱
Subject [일반] 촉한 최후의 명장 강유의 주요 군사적 활약.
1. 234년: 사마의로부터 촉한군의 후퇴를 성사하다.

["양의(楊儀) 등이 군을 정돈하고 출발하자 백성들이 선왕(宣王)에게 급히 고했고 선왕이 이를 추격했다. 강유는 양의에게 명하여 군기를 반대로 하고 북을 울리도록 하여 선왕에게로 향하는 것처럼 하자, 선왕은 이내 물러나 감히 핍박하지 못했다. 이에 양의는 진형을 짠 채 물러나고 계곡으로 들어간 뒤 발상(發喪)했다." -『촉서』 「제갈량전」 주석 『한진춘추』]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해서 유명해진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도망가게 하였다"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한진춘추』의 기록인데 내용상 볼 수 있듯이 추격해오던 사마의를 후퇴시킨 것은 순간적인 강유의 기지로 봐도 무방하고 이전까지 제갈량 직속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 강유의 행적에서 거의 처음으로 독자적인 군공을 세운 케이스입니다. 사마의가 무슨 듣보졸장도 아니고 위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기도 하는 인물인데 속여넘기는데 성공한 것을 보면 강유의 임기응변이 상당하다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후 쌓는 커리어에서 볼 수 있듯이 강유는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을지언정 전술적인 "꾀"로 국한한다면 상당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나관중 양반도 이걸 원전에 가깝게 강유의 꾀로 각색할 법한데 그걸 스승에게 넘겨줘서 쩝.

2. 244년: 낙곡대전에서 위군의 후방을 공략하다.

["옛날 자오의 역에서, 병사가 수백 리를 행군하여 긴 비를 만나, 교각이 파괴되고, 뒤의 군량은 썩어, 전군이 핍절했다. 강유가 깊숙히 쳐들어오니, 치중을 기다리지 못하고 병사들이 굶어 군을 상규로 물렸다." -『위서』 「왕기전」에 기재된 주석中]

미번역된 기록이라 그리 알려지지 않은 부분인데 왕평이 위군을 지연시키고 비의군이 위군의 후방을 공략하면서 비의와 더불어 군사를 이끌어 조상군의 후방을 공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간혹 왕평 혼자만의 공으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왕평의 역할은 모루로써 위군을 지연시키는데 국한되어 있고, 망치로서 위군의 후방을 공략해서 붕괴시킨 것은 비의를 비롯한 강유의 활약으로 적지 않은 군공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강유가 당시 부현에서 비의와 함께 주둔하고 있었고, 위와의 교전을 여러번 벌인 실전 지휘관으로 장완의 상용급습계책의 주축인 양주침공의 적임자로 강유가 낙점된 상태입니다. 대놓고 강유를 왕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강유가 단곡에 출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왕기전」의 주석은 그 가능성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기록입니다.

다만 이런 비의, 강유와 왕평의 활약에 불구하고 위군의 주력은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이때의 경험이 강유가 후일 한중방어책을 바꾸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됩니다.

3. 254년: 서질을 참살하고 수많은 성을 함락시키다.

[강유와 장억이 적도에 이르자 이간은 성안의 백성을 이끌고 군대를 맞이했다. 군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 위나라 장수 '서질(徐質)'과 싸우다가 장억은 전쟁터에서 죽었지만 그가 죽이거나 상처를 입힌 적은 배가 넘었다. -『촉서』 「장억전」]

[이듬해(=254년), 독중외군사(督中外軍事)가 더해졌다. 다시 농서(隴西)로 출병하자 수적도장(守狄道長)(→농서군 적도현의 守(임시의 뜻) 현장縣長)(※) 이간(李簡)이 성(城)을 들어 항복하였다. 진군하여 양무(襄武)를 포위하고는 위장(魏將) 서질(徐質)과 교봉(交鋒,교전)하여 (적군의) 수급을 베고 적을 격파하니 위군(魏軍)이 패퇴(敗退)하였다. (강)유가 승세를 타 항복시킨 곳이 많았고 하관(河關), 적도(狄道), 임조(臨洮) 세 현(縣)의 백성들을 뽑아 (데리고) 돌아왔다. -『촉서』 「강유전」]

강유의 최초이자 최후의 전성기를 상징한다 할 수 있는 3년의 장기 켐페인의 4차 북벌의 첫번째 관문은 토촉호군 서질이었습니다. 적도 현장 이간의 밀서를 신뢰해서 북진한 강유는 이간이 단박에 투항한 덕분에 적도를 전초기지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성공적으로 기습해서 그런지 강유가 양무마저 포위하는 상황에서 곽회와 진태의 동향이 기록되지 않은 채로 오직 서질만이 강유의 북벌을 저항했습니다.

강유는 서질을 성공적으로 패퇴시키고 아예 참살하는 대승을 거두는데 이전까지 247-248년의 1차 북벌이나 249년의 2차 북벌, 253년의 3차 북벌에서 곽회, 진태, 등애, 우송에게 차례대로 전략적으로 농락당한 굴욕을 떨쳐낸 승리입니다. 서질군마저 박살나자 강유는 승세를 틈타 하관, 적도, 임조의 백성을 촉한으로 옮기고 1년간 병사를 쉬게해서 차후의 북벌을 준비합니다.

4. 255년: 조수전투에서 왕경군을 박살내다.

[그 뒤 (연희) 18년(=255년), 다시 거기장군(車騎將軍) 하후패(夏侯霸) 등과 함께 적도(狄道)로 출병하여 위(魏)의 옹주자사(雍州刺史) 왕경(王經)을 조서(洮西)에서 대파하니 (왕)경의 군사들 중 죽은 이가 수만 명에 달했다. (왕)경이 퇴각해 적도성(狄道城)을 보전하니 (강)유가 이를 포위하였다. 위(魏)의 정서장군(征西將軍) 진태(陳泰)가 진병(進兵)하여 포위를 풀자 (강)유는 물러나 종제(鍾題)(※)로 가서 주둔하였다. -『촉서』 「강유전」]

["왕경의 정예병사는 서쪽에서 실패하여 참사를 당했고, 적들의 사기는 더욱 왕성합니다. 승기를 탄 병사는 감당할 수 없고, 장군은 오합지졸로 방금 전쟁에서 진 군사들의 뒤를 잇고 있으며, 장수와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졌으며, 농우는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은 `독사가 손을 물면 장사는 손을 자른다` 고 했고, 《손자병법》에서는 `군대가 공격하지 않는 적이 있으면, 지키지 않는 곳이 있다` 고 했습니다. 대체로 작은 손실로써 큰 것을 보존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지금 농우의 재난은 독사에게 물린 것보다 심하고, 적도 땅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강유의 군대는 그의 예봉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요충지를 차지하고 안전하게 보존하면서 적의 쇠함을 디란 연후에 진군하여 구조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것이 승리를 얻는 방법입니다." -『위서』 「진태전」中 조수전투 이후 등애의 의견]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는 아니고,

강유의 경력상 최고의 승리 뿐만이 아니라 전술적 단계에서 촉한이 위를 상대로 거둔 승리중 가장 큰 규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비견될 수 있는 승리는 제갈량이 사마의를 상대로 거둔 노성 전투를 꼽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수급이 3천명임을 고려하면 수만을 참살한 조수 전투의 군공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왕경과 사마의 간의 지휘관으로써의 질을 고려해야하는 노릇이지만요.

강유의 조수전투의 승리가 상당히 경이로운게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제갈각의 동흥제 전투의 대승의 경우에는 오 입장에서 매우 유리한 지형에서 전개된데다가 위군이 공격측에 오군이 방어측에 그것도 승리를 거둔 결정적 요인이 불리한 지형에서 퇴로가 끊기자 위군이 혼돈에 빠지면서 붕괴하고 제갈각이 손쉬운 승리르 거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조수전투는 원정 나간 상태인데다가, 병력차도 거의 동일하고, 강유가 왕경을 공격하는 입장임에 불구하고 이런 대승을 거뒀습니다. 게다가 진태의 언급을 보면 강유는 "가볍게 무장된 병사"를 인솔하고 있던 반면 등애는 분명히 왕경군을 "정예 병사"로 평가합니다. 이를 보면 무장상태에서도 왕경이 강유에 우위를 점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살에 가까운 교전비를 보이는 것을 고려할 경우 전술적 재능에 국한한다면 후반기 톱급에 촉한 역사상 톱급이라 볼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강유의 북벌을 살펴보면 부족한 자원과 전략적 열세를 한판의 대승으로 타개하려는 의도가 역력한데 실제로 조수전투에서 의 순수한 전술적 승리로 등애마저 농서일대를 포기하자고 건의할만큼의 전략적 승리를 거둘 뻔했다는 점에서 강유의 괴력을 옅볼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강유의 불운이라면 평범한 전략적 식견과 이를 가볍게 뛰어넘는 인재들이 곽회, 등애, 진태를 비롯해서 위측에 여럿이 있었다는 점이겠지만요. 실제로 강유의 약점을 꿰뚫어본 진태의 급습에 강유는 군사를 물립니다. 1년 이후 다시 북벌을 재개하는데 그때 펼쳐진게 256년의 단곡전투...

5. 263년: 현란한 기동전으로 제갈서를 농락하다.

[4년 가을, 조서를 내려 각 군대가 촉나라를 정벌하도록 명령했고, 대장군 사마문왕이 모든 지휘를 하고, 등애로 하여금 강유와 전선에서 대치하도록 하였고, 옹주자사 제갈서에게 강유의 퇴로를 끊어 강유가 돌아갈 길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등애는 천수태수 왕기 등을 파견하여 직접 강유의 진영을 공격하게 했으며, 농서태수 견홍 등을 보내 강유 군대의 앞에서 싸우도록 하고, 금성태수 양흔 등에게 감송으로 가도록 했다.

강유는 종회의 군대가 이미 한중에 진입하였다는 것을 듣고 물러나 돌아갔다.

양흔 등은 강천구까지 추격하여 큰 싸움을 하였다. 강유가 패하여 달아났는데, 옹주가 벌써 길을 막고 교두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공함곡으로부터 북쪽 길로 들어가서 옹주 후방을 공격하려고 했다.

제갈서는 이 소식을 듣고 퇴각하여 30리를 돌아갔다. 강유가 북쪽 길로부터 30여리 진입하였는데, 제갈서의 군대가 퇴각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곧 돌아서 교두를 통과했다. 제갈서는 급히 강유의 퇴로를 차단했지만 하루 차이로 미치지 못했다.
-『위서』 「등애전」]

255년의 조수전투 이후로 256년의 단곡의 패배, 257년의 5차 북벌 실패, 262년의 후화전투 패배로 인해 사실상 퇴물화했다고 볼 수 있는 강유지만 촉한 최후의 명장답게 전술적 기지만큼은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을 263년에 연출합니다.

이래저래 불운, 우연, 팀킬이 겹치면서 종회가 한중으로 손쉽게 입성하고 강유는 답중에서 고립된 채로 위군의 집중포화를 받고 퇴로마저도 제갈서에게 막혀서 촉한 최고의 주력이 조기에 섬멸당할 수 있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강유군마저 섬멸당할 시에는 제아무리 촉이 험준하다한들 제대로 병력을 막을 지휘관은 물론 병력마저 부족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타파한 것은 강유의 기지입니다.

「등애전」에서 나와있듯이 강유는 30리를 북진해서 옹주의 후방을 공격하려는 양 태세를 취했고 이에 낚인 제갈서도 30리를 북진해서 강유를 따라갑니다. 이에 강유는 곧장 달려나가 제갈서가 지키던 교두를 통과해서 포위를 벗어나고 요화, 장익, 동궐과 함께 검각을 사수해서 13만에 달하는 종회군을 막아내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짜맞춰지던 종회의 계획을 막간의 기지로 어그러트린 격인데 등애의 음평돌파로 인해 무의미해졌으니 상당히 안타까운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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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16/01/07 14:31
수정 아이콘
강유도 수십년간 대장군으로 촉한의 방위를 책임진걸로 아는데 연의의 분량 편집의 희생양인듯 하네요. 그런데 마지막 검각 사수 부분은 오리지널 장판파 말고 콩익덕의 장판파와 양상이 비슷한 느낌이...?
선비욜롱
16/01/07 14:39
수정 아이콘
나관중의 경우에는 전체 분량의 1/10을 제갈량 사후에 전담했던만큼 나름대로 제갈량 사후의 강유의 북벌, 고평릉 사변, 촉정벌, 육항과 양호의 우정, 오정벌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들은 다수 그려넣었습니다. 다만 제갈량 시대로부터 거의 50년이 진행되었던 시절을 겨우 전체 시나리오의 1/10에 구겨넣었으니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대단하죠.

사실 등애의 음평돌파가 실패했다면 종회의 대군은 검각에 막혀서 보급곤란으로 후퇴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 과정에서 종회군을 일부분이라도 섬멸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강유는 말그대로 촉한의 영웅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죠. 문제는 등애가 음평돌파를 성공하고 애초에 성도를 공격해 강유가 검각을 버리도록 종용하려던게 아예 유선의 항복으로 잭팟이 되었으니;;
에버그린
16/01/07 14:48
수정 아이콘
연의의 허전함을 메꿔줄 작품으로 삼국전투기가...
선비욜롱
16/01/07 14:51
수정 아이콘
솔직히 제갈량 사후 이전에는 까에 가까운 작품이었는데 (뜬금없는 장료 주인공 공인도 그렇고, 휙휙넘긴 제갈량의 북벌도 그렇고;) 제갈량 사후를 상당히 충실히 옮겨놓는게 마음에 들긴하더군요. 처음부터 그랬음 더 좋았으리란 생각이 들기도;

특히 강유의 마지막이 마음에 들더군요.
지금뭐하고있니
16/01/07 19:22
수정 아이콘
강유의 마지막은 조조, 유비의 최후와 함께 삼전의 하이라이트라 할만 하죠
신의와배신
16/01/07 14:48
수정 아이콘
마막 만 아니었더라도
선비욜롱
16/01/07 14:51
수정 아이콘
농담이 아니라 레알입니다. 마막만 버텼다면 등애는 굳이 강유성에서가 아니더라도 제갈첨을 싸우다가 객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안스브저그
16/01/07 16:53
수정 아이콘
마막이 아니엇더라도 촉한의 국운 자체가 다했죠. 마막이 없더라도 마막같은 누군가가 그곳에 있엇을 겁니다.
선비욜롱
16/01/07 21:42
수정 아이콘
국운을 다했다기에는 위나라도 아슬아슬하게 촉한을 점령한 바죠.
도깽이
16/01/07 14:51
수정 아이콘
등애가 유선공격했을때 방어할 수단이 아에 없었나요? 버틸려면 버틸수는 있는 수준이었나요?
kartagra
16/01/07 14:54
수정 아이콘
위에 마막만 아니어도 댓글이 그래서 달린거에요.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버렸거든요.
선비욜롱
16/01/07 14:56
수정 아이콘
사실 애매한 부분이긴 한데 등애가 돌파하느라 입었을 피해나 제갈첨의 대패에 불구하고 성도에 남았던 전력이 불분명하기에 뭐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고려해야하는 부분은 영안으로부터 달려오는 염우의 구원군이나 오의 정봉의 구원군이 있긴한데 실제로 등애가 성도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유는 검각으로부터 물리고 종회가 검각을 넘어 달려오던 참이라 결과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분기는 마막의 맥없는 항복과 제갈첨의 안타까운 패배에 있다고 봅니다.
공유는흥한다
16/01/07 16:06
수정 아이콘
최훈의 삼국전투기만를 날려먹은것만 부각되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준수한 편인가요???
선비욜롱
16/01/07 21:58
수정 아이콘
제갈량 사후 이전은 좀 작가 본연의 빠심 등등으로 여러 문제점이 산재한 듯싶은데 제갈랸 사후는 특별히 빠심있는 인물이 없었는지 생각보다 쭉쭉 잘나가고 정사도 잘 고증한 편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훈의 인물에 대한 분석이 만화적 각색이 들어갈 때가 많기 때문에 맹신하기에는 좀 그런 편이죠.
저 신경쓰여요
16/01/07 17:42
수정 아이콘
하여튼 마막 일가들은 도움이 안 되네요. 이스포츠에는 마막장, 촉한에는 그냥 마막...ㅜㅜ
류지나
16/01/07 18:10
수정 아이콘
뜬금없이 가정에서 등산을 해버린 마속도...
틀림과 다름
16/01/07 22:45
수정 아이콘
강유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인물이죠
제갈량의 수제자이면서 제갈량이 갖추지 못한 무력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그런가 강유를 주인공으로 한 대체역사소설을 재미있게 보고 있답니다
http://novel.munpia.com/40928
문피아에서 연재중이에요
(유료작품인데요, 무료작품 몇편을 보고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시면 유료를 선택하는것도 가히 나쁘지만은 아닐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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