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12/24 03:47:39
Name The xian
Subject [일반] 잠 못 이루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
작년.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의 런칭을 전후해 엄청난 크런치(야근 및 철야 등을 일컫는 말) 모드였던 때. 나는 런칭을 전후해 한 번씩, 한 달 걸러 두 번 실신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일 년 전 이맘때. 나는 - 이젠 '전 회사'가 되어 버린 - 다니던 회사의 제의에 따라 휴직신청을 했다. 그 동안 내가 담당하던 부분에 참견하지 못해 안달을 냈던 어떤 높으신 양반은 - 심지어 휴직 제의는 회사에서 먼저 했다 - 정당한 휴직신청을 하는데도 앞으로 회사의 미래에 함께 하네 마네 하는 되도 않는 소리로 내 속을 긁었고, 나는 쫓겨나듯 회사 문을 나왔다.

한 달 동안 나는 돈을 못 버는 신세가 되니 고스란히 손해가 되지만, 손해를 보든 말든 그 땐 쉬어야 했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어떻게 봐도 회사 상황에서 내가 크런치 상태에 놓이지 않을 가능성은 없었고, 한 달 걸러 두 번 실신해서 이미 망가진 녀석이 또 크런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먼저 쉬겠다고 해도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분들께서 심지어 나에게 '먼저' 휴직 제의를 해 놓고 저런 푸대접을 하는데. 저 작자들이 내가 죽는다 한들 눈 하나 깜빡하려나 싶었다.


집에는 그 동안 쓰지 못한 휴가를 쓰기로 했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생각의 간극을 좁힐 수 없는 문제 때문도 있다. 그래서일까. 혼자가 익숙한 나에게도 일 년 전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는 정말 지옥 같았다. 거의 10년 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서서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부서져 가기 시작했고, 가족도 내 편이 되어 주지는 못했다. '마션'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처럼 정말 뭐 된 기분이었다. 당연히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회사에 당분간 나가지 않아도 되니 잠을 덜 자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도무지 잘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일 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부터 시작된 나의 연말 분위기는 정말 엉망이었다.

작년의 그 일이 있은 후, 해가 바뀐 뒤 휴직 기간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나를 고깝게 보던 높으신 양반은 결국 내가 나온 당일날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권고사직을 종용했고, 나도 더 이상 그 양반과 엮이기 싫었다. 이해는 한다. 돈이 없는 상황에서는 가족도 웬수가 되는 법인데 남이야 말로 해서 무엇할까. 그래도 그 보기싫은 양반을 부리고 있는 대표님에게는 아무런 악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대표님과 마지막 면담 때에는 원망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말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별 소리 하지 않고 줄 거 다 주고 떠났다.

수면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늘리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큰 틀에서 보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야근을 하고 들어오든 정시 퇴근하든 나는 여전히 한 번에, 그리고 하루에 다섯 시간 반 이상 자 본 적이 거의 없다. 못 자면 어떻게 되느냐. 멍한 상태로 깨고 좀비처럼 걸어다닌다. 당연히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휴일에도 한 시간 정도 어거지로 낮잠을 자야 그만큼만 더 자는 상태고, 그 다섯 시간 반도 한 번에 잘 자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다.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다. 잠이 다시 들려면 정말 미칠 지경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지금 겪고 있는 수면장애 상태는 작년에 비해 별 것 아니라서. 다시 잠들기까지 한 시간 걸리던 게 이젠 10분, 20분으로 줄어서 예전보다 잠들기 한결 수월해졌다는 거. (그런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허 참.-_-)


어느덧, 벌써 다시 일 년이 지나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의 시작을 맞고 있는 지금도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젠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말이지. 일 년 전 그 때에는 괜찮다고 말했었는데, 지금까지도 잠을 못 이루는 나날이 많은 걸 보면 사실 별로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말로는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다고 하면서 돈이 없어서 그랬겠다 했지만 거의 10년 가까운 인연을 내팽개쳐 버린 그 사람들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일년 전 이맘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여전히 한 번에 잘 자기 참 어려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각오는 했지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깊고 오래 남을 것 같다. 얼마 전 그 곳을 나온 사람에게 듣자하니 나를 내치신 분들은 없는 사람들(당연히 나도 포함되겠지) 씹고 뜯으면서 자기위안하고 계신다더라. 나약하다고? 노력이 부족했어? 젠장. 내가 해 준게 얼만데. 좋을 대로 말하라지. 이젠 다 귀찮다. 그냥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잠이나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 The xian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해원맥
15/12/24 04:38
수정 아이콘
잠이라도 푹 주무셨으면 좋겠네요
마티치
15/12/24 05:50
수정 아이콘
잠이라도 푹 주무셨으면 좋겠네요 (2)
그래도 전년도에 건강 안 좋아지셨던거 같아 걱정하던건 조금 나아지신거 같아 다행이네요.
힘내십쇼!
불대가리
15/12/24 07:08
수정 아이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DSP.First
15/12/24 10:10
수정 아이콘
제 개인적으로는 수면욕이 최고인것 같아요.
푹 주무시고, 쉬셨으면 좋겠네요.
리니시아
15/12/24 14:54
수정 아이콘
밀린 잠 푹 주무세요... 힘듬이 느껴집니다..
15/12/24 16:34
수정 아이콘
수면부족이 실신도 일으킨다고 하던데 하루라도 푹 주무시길..
동중산
15/12/24 17:40
수정 아이콘
분야는 다르지만 저도 한동안 수면부족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망가지는 건 금방이더군요.

부디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으시길...
15/12/25 07:54
수정 아이콘
내년에는 잠도 푹 주무실 수 있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395 [일반] 내가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된 이유 [35] The Special One11247 16/02/02 11247 27
63182 [일반] "연락좀 하고 지내자" [4] 스타슈터7197 16/01/19 7197 14
63164 [일반]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용병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58] 원시제9264 16/01/18 9264 0
63083 [일반] (스포주의) 쟁선계를 보면서 [24] 그리움 그 뒤10370 16/01/13 10370 0
62982 [일반] 연애방법론을 알아두어도 사실 결과는 같다 [53] 사신군7523 16/01/08 7523 12
62932 [일반] 윤종신/개리/루이x이현우/달샤벳의 MV와 수지x백현/위너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11] 효연덕후세우실3639 16/01/05 3639 0
62905 [일반]  이색을 통해 보는 고려 말기 성리학자들의 '유화적 불교관' [10] 신불해7633 16/01/04 7633 13
62888 [일반] 서운함을 말할 수 없었던 이유 [4] Eternity7170 16/01/02 7170 26
62735 [일반] 잠 못 이루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 [8] The xian5292 15/12/24 5292 3
62678 [일반] 만남 이벤트 후기 (프롤로그, 1편) [15] 두꺼비6202 15/12/21 6202 4
62555 [일반] 쪼다(Asshole)론 [30] 王天君7813 15/12/15 7813 15
62531 [일반] 비치(Bitch)론 [33] Eternity9254 15/12/13 9254 53
62452 [일반] 쓰레기 스펙남의 유쾌발랄 인생사 -3- [8] [fOr]-FuRy6531 15/12/09 6531 7
62448 [일반]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크레이터... [27] Neanderthal11828 15/12/08 11828 8
62442 [일반] [픽션] PGR21 연말 솔로 모임을 열면 안되는 이유 [84] Jace Beleren9123 15/12/08 9123 30
62409 [일반] 조선 왕조의 영의정, 조준에 대한 이모저모 [29] 신불해12226 15/12/07 12226 106
62360 [일반] 말과 썰과 글의 경계 [2] yangjyess4682 15/12/04 4682 10
62228 [일반] 똥을 밟았다. [16] 오르골6799 15/11/27 6799 22
62008 [일반] 안녕하세요. 한윤형이라고 합니다. [69] 한윤형20909 15/11/14 20909 20
61866 [일반] 김문돌 이야기 -16- [12] 알파스4150 15/11/05 4150 6
61816 [일반] 에이핑크와 이별과 새끼손가락 [5] 좋아요4270 15/11/02 4270 5
61791 [일반] 원더우먼 탄생의 은밀한(?) 비밀... [20] Neanderthal12655 15/11/01 12655 33
61663 [일반] 야구가 뭐라고, 짝사랑이 뭐라고 [22] 아케미5171 15/10/24 5171 2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