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7/25 20:40:56
Name Owen
Subject [일반] Lake Louise
블로그 작성글이어서 반말체입니다. 미리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_____


나는 1마리의 암컷 강아지와 2마리의 수컷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오늘 그 강아지를, 아니 동생을 편한 곳으로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눈물을 흘릴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아마도 이미 반년정도 전부터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병마와 싸우느라 고생한 동생에게 수고했다고 고생많았다고 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울음이 함께 나올 것 같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쓰다듬는 나의 손길을 통해 그러한 마음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일본 작곡가들의 피아노 곡들을 즐겨듣는 편이다.

보통 조 히사이시, 유키 구라모토, 류이치 사카모토 등의 작곡가들을 번갈아 가며 듣는데, 얼마전 일을 하며 이 곡을 들었을 때 '참 작별과 잘 어울리는 곡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별 이후의 모습이 아닌, 그 동안의 추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적당히 블러된 나의 상상속에서 옛 집 뒷 마당에서의 동생과 나의 모습이 있었다. 그 시간들을 되짚어 보고 있노라니 오히려 웃음이 지어졌다. 지금과는 정 반대로.

너와 함께했던 시간이 행복했고 항상 나와 우리 가족을 사랑해줘서 고마웠다. 너는 우리에게 소리한번 지른적이 없었지. 우리와는 달리 말이야.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간 애완동물이 마중을 나온다는데, 많이 부족한 주인이었지만 부디 니가 나와줬으면 좋겠다.
올해는 나에게 있어 크고작은 작별이 참 많은데, 아마도 너와의 작별이 가장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오늘 동물병원 원장님이 동물이 눈을 감지 않는 이유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라던데, 가끔씩 꿈에 나와주렴.
부디 그곳에서 평온하길.

_____

'차라리 현장에서 많이 울어둘걸' 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오늘따라 그도 여의치 않을거 같아 피지알에나마 하소연해봅니다.

병세가 더 심해져 걷지 못하여 똥오줌에 범벅이 된 동생을 씻길때, 귀찮다고 생각했던 저를 반성합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안락사의 마지막 과정에서, 나가계시라는 원장선생님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들어 임종을 함께 하지 못해주었던 저를 반성합니다.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인사를 할 때, 고름 냄새에 속으로 역하다고 생각했던 저를 반성합니다. 강아지는 사람보다 몇십배나 민감한 코를 가졌다는데, 스스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평소에 사람말을 정말 기똥차게 알아듣던 아이인데, 이런 제 모습을 저승에서나마 보고 용서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생기발랄
15/07/25 20:59
수정 아이콘
토닥토닥...
15/07/26 21:4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곤티어
15/07/25 22: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
15/07/26 21:45
수정 아이콘
자꾸 미안했던 일이 생각나는것 같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길..
리니시아
15/07/26 03:08
수정 아이콘
뉴에이지 음악들이 대게 우울하고 몽롱하게 만들지만 이 음악은 뭔가 상쾌한 기분을 준달까요?
그런데 Owen 님의 글과 함께 들으니 이보다 더 감성적으로 우울해질 수가없군요..
15/07/26 21:46
수정 아이콘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Aneurysm
15/07/26 12:53
수정 아이콘
억지로 감정을 쥐어짜낼 필요는 없지만,
반대로 너무 참을 필요도 없는것 같아요.
미안함도, 고마움도, 그리움도,
느껴지는 모든 감정들을 충분히 매만지고.
그런다음, 그렇게 흘려보내는게 좋은것 같아요.
생명에게 있어서
주어진 시간을 함께했다는것 만으로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수없을 만큼
아름다운 일이었고, 잊을수없는 기억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말이죠.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시고,
그 기억을 간직한채 남은시간도
또 다른 생명들과 지내셨으면 하네요.
15/07/26 21:47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슬픈생각들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금으로써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말씀감사드립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0063 [일반] 與 내부문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시 과반의석 붕괴" [49] 알베르토7216 15/07/29 7216 2
60062 [일반] [역사] 선조의 의병장 김덕령 탄압 사건의 전말 -하- [12] sungsik5758 15/07/29 5758 7
60061 [일반] 해외 직구 때문에 정말 답답합니다. [157] 알마16506 15/07/29 16506 5
60060 [일반] 국정원 사건에 대한 짧은 생각(월요일 기사 추가 및 반박추가합니다) [39] 이순신정네거리7097 15/07/28 7097 8
60059 [일반] 한화이글스 불펜 혹사 [375] 자전거도둑18292 15/07/28 18292 1
60058 [일반] 멀티플레이어즈(3) 오마이걸 승희 [11] 좋아요4122 15/07/28 4122 0
60057 [일반] 이종범에 관한 이야기 [60] 천재의눈물11269 15/07/28 11269 5
60056 [일반] 甲甲하는 무한도전 가요제 [303] 王天君25283 15/07/28 25283 21
60055 [일반] [WWII] 북아프리카 전선 외전 - 그리스 침공 [5] 류지나3275 15/07/28 3275 4
60054 [일반] [MLS] 디디에 드록바, 션 라이트 필립스 MLS 진출 확정 [11] 비타에듀5537 15/07/28 5537 0
60053 [일반] [MLB] 콜로라도의 유격수 툴로위츠키가 토론토로 트레이드됐습니다. [24] 까망탱이5582 15/07/28 5582 0
60052 [일반] 롯데 그룹에서 "왕자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75] 어리버리18348 15/07/28 18348 2
60051 [일반] Be Mom. [29] 종이사진5600 15/07/28 5600 10
60050 [일반] 유방 마누라 여후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 [24] 우주모함18089 15/07/28 18089 2
60049 [일반] 정부 “강남구 메르스 격리자 생계비는 서울시가 내라” 뒤끝 [50] 삭제됨9396 15/07/28 9396 0
60048 [일반] [음악] 쇼미더머니에 나오진 않지만 당신이 꼭알아야 할 래퍼 5 [38] MoveCrowd8769 15/07/28 8769 2
60047 [일반] [해축] 어제의 bbc 이적가십 및 선수이동 [32] pioren4931 15/07/28 4931 0
60046 [일반] [역사] 선조의 의병장 김덕령 탄압 사건의 전말 -1- [13] sungsik7668 15/07/28 7668 6
60045 [일반] 인텔 SSD 750 윈도우7 설치 및 컴퓨터구매후기. [22] Crystal9330 15/07/28 9330 1
60044 [일반] 축구 국가대항전에서 국가연주 [24] Korea_Republic6838 15/07/28 6838 0
60043 [일반] 한고조 유방의 다양한 면모들 [75] 신불해54838 15/07/27 54838 19
60042 [일반] [내 멋대로 리뷰] 후아유는 왜 후아유? [6] 봄의 왈츠4379 15/07/27 4379 1
60041 [일반] 몇가지 제가 아는 맛집 소개 [53] 우주모함12719 15/07/27 12719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