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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29 11: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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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조선왕도 500년에 대한 강연요약입니다.
                                                                                                       서울대학교 허성도교수님의 조선왕도 500년에 대한 강연요약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병탄이 1910년입니다.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래서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경제, 조세,법,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기록의 정신
첫째는 기록의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을 다 적고,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들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후손들이 보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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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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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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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본 세계인이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대한민국은 어떤나라인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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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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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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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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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모가 나지 않고 방정하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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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사관 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그 당시 책이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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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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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고 했죠. 조선이 망한 이유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듯 조선이 망하기 전까지 500년이나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응당 찬성입니다.

다만 이 글은, 아마 우리 역사를 너무 낮잡아보는 데 대한 반대급부겠지만, 너무 높이는 데만 치중한 면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냥 역사죠. 우리 조상이 잘났다고 해서 우리가 좋을 것도 없고, 못났다고 해서 우리가 나쁠 것도 없잖습니까. 조선이 막바지에 엉망진창으로 망했다고 해서 패배주의에 빠질 것도 없고(세상에 안 망한 나라가 몇이나 됩니까), 마찬가지로 전성기에 잘 나갔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없이(왕년에 잘 나가 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저 역사를 역사 그대로 바라보고 익히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일제시대처럼 민족주의 사학이 필요한 시절도 아니니까요.
15/05/29 11:41
수정 아이콘
네, 역사를 역사 그대로 바라보고 익히는 자세가 중요하지만, 저런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감사합니다.
15/05/29 11:35
수정 아이콘
글 잘봤습니다.

글 다 읽고나니 추게에 있는 '역사가 끊긴 학문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것에 대한 탄식' 이라는 글이 생각나네요.
https://pgr21.com/?b=1&n=2597
15/05/29 11:52
수정 아이콘
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swordfish-72만세
15/05/2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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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지엽적으로 비판하면
루이14세 시기 국력의 프랑스가 베르사유 짓는 거보다 더 악질이 대원군이
경복궁 지은 거 같은데요.
심지어 면적 따지면 왕궁과 부속건물에 한정하면 베르사유보다 경복궁이 더 크죠

그리고 수학에.관한 한 정말 꿈보다 해몽이 좋네요. 유클리드 기하학 마저도 조선 내내
소화가 안된 상태였는데요
15/05/2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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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런점이 있었군요. 베르사유궁전은 약 51년동안의 공사끝에 완공되었고, 경복궁 중건은 약 7년이 걸렸네요.
swordfish-72만세
15/05/29 12:17
수정 아이콘
그리고 베르사유의 경우 귀족이 사는 빌라의 경우 귀족이 돈을 냅니다. 사실 베르사유는 왕궁도 있는 일종의 귀족 사회의 신도시라는 점을
잊어서 안 됩니다. 반면 경복궁은 악화인 당백전까지 찍으면서 국력 깍아서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크게요.

그런데 베르사유는 조선 시스템에서 밴 먹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게 말이 안되죠. 애초 이 분이 가진 이상의 조선이라면 경복궁 자체가 중건되
않았겠죠.
15/05/29 15:47
수정 아이콘
로마제국 이후 유럽 건축은 좀 오래걸립니다... 그런 차이도 감안하면 별 다를건 없지요.
그런거 감안 안해도 임란 이후에 대놓고 종묘,창덕궁부터 시작해서 궁궐잔치를 벌인 광해군이 있습니다.
건설 다 될때까지 신하들은 쥐죽은듯이 있어서 (반대하면 목이 달아날테니) 못막았고 인조반정이 성공한것도 어떻게 보면 운이었죠.

그리고 그 인조가 조선 역대 암군 탑급에 꼽힌다는게 함정.. ;;
아수라발발타
15/05/29 11:59
수정 아이콘
결론에는 대공감 합니다

지금이라도 한자공부를 해야 합니다
..... 이렇게 주장하니까 한자알아도 한문책 못읽는 다는 반론이 많던데요 당연히 한자 알아도 모든 한문텍스트를 해석할순 없습니다
영어사전을 통채로 외운다고 영어법전을 이해할순 없죠
그러나 우리말은 한자어가 대단히 많습니다 사자성어인용이나 한문관용어도 많구요 한자 문법을 쉽게 익힐 감수성을 어지간히 갖고 있는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문은 어럽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조상의 노비문서를 가보로 간직하다가 진품명품에 자랑스레 내 놓는
비극은 없을 겁니다
ohmylove
15/05/29 12:09
수정 아이콘
1. 한자와 한문은 다르며
2. 한문 익혀서 과거의 것을 연구하는 건 소수 전문가가 하면 될 일이고 대다수 국민은 영어를 공부해 발달된 서구문명을 익히는 게 합리적.
15/05/29 12:26
수정 아이콘
정말 한자가 도움이 된다면 남들 다 안할때 자녀분 시키세요. 그럼 다른 아이들은 멍청하게 영어나 배울때 아수라발발타님 자녀는 뛰어난 한자 교육의 혜택을 입겠죠. 개이득인거 같은데
ohmylove
15/05/29 12:33
수정 아이콘
질문이 있는 게 Cogito님은 어느 정도의 한자교육을 적당하다고 보시나요?

1. 아예 모르는 것
2. 물 수, 벌레 충 등 단어를 만들 때 필수적인 한자만을 배우는 것
3. 2천 자 정도의 교육부 권장 한자를 아는 것
4. 1만 자 정도
5. 2~3만 자 정도
6. 웬만한 한자 전부
7. 한자+한문
15/05/29 12:41
수정 아이콘
글쎄요... 아직 총각이라 ^^;; 결혼하고 애 낳을 때 쯤 되면 고민을 해볼 것 같습니다. 대충 떠오르는대로라도 이야기 해보자면 아이의 학습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전 2~3번 정도라고 생각해요. 배우면 좋긴 좋은데 시간투자가 너무 빡세며, 단순암기라서 나이가 들면서 다 까먹어버리니까요. 저도 어렸을땐 3번 정도였지만 지금은 2번인 상태고 주변 상위 1% 안에 드는 사람 수백 명 중에서도 한자 잘 아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ohmylove
15/05/29 12:47
수정 아이콘
답변 감사합니다.

저의 경우는 영어단어는 잘 외워지는데 한자는 gg더군요.. 확실히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으면 안 외워지는 것 같습니다...

또 질문이 있는데, 만약 중국이 부상한다면, 간체자 및 한문을 배워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그래봤자 영어엔 안 되겠지만..
15/05/29 12:50
수정 아이콘
네. 중국이 새로운 슈퍼파워가 되고 팍스 차이나가 되고 위안화가 기준통화가 되는 수준이라면 당장 저부터도 중국어 파야 된다고 봐요. 근데 중국이 어지간히 커도 학문은 영어가 주도권을 잡을 거라고 생각해서요. 애가 머리는 별론데 비지니스적인게 괜찮다면 중국어도 좀(많이?) 시켜야겠죠.
ohmylove
15/05/29 12:54
수정 아이콘
하긴 지금 현대학문은 다 영어로 되어있죠..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swordfish-72만세
15/05/29 12:45
수정 아이콘
저는 일본 문부과학성 낸 고등학생이 최소 익혀야 할 한자 수준이면 사는데 지장 없다고 봐요.
2136자였나요. 참고로 한국은 1800자 정도를 권장하고 있더군요.

물론 공무원 공부 할거면 이보다는 많이 알아야 하겠지만요.
ohmylove
15/05/29 12:50
수정 아이콘
2천 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시는군요.. 만약 중국이 부상하면 영어공부와 한문+중국어공부의 비중이 어떻게 될까요?
swordfish-72만세
15/05/29 12:52
수정 아이콘
그때는 중국어로 접근하셔야 합니다. 어자피 걔들도 쓰는 한자는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게 한국에서 쓰는 한자도 많지만 아닌 한자도 있으니까요.
ohmylove
15/05/2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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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씀입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아수라발발타
15/05/29 13:03
수정 아이콘
저도 그정도 수준의 한자 정도만 알아도 최소한의 한자교양은 갖추었다고 봅니다

근데 제 경험으론 한국 고졸자의 평균이 그정도 한자를 못 읽는것 같더군요
아수라발발타
15/05/2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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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제 아이들에겐 어릴때 부터 한자공부를 열심히 시켰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머리에 특출난 노력이 아닌데도 제 어릴때 보다 성적이 훨씬 나은건 한자공부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삼원일차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시오"라는 수학문제를 설명할떄 어느정도 한자를 아는것과 모르는것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영어문법을 공부할때도 "동명사"등을 한자를 상기시키면 암기나 이해가 훨씬 쉽습니다

한자와 한문은 물론 다르지만 풍부한 한자지식만 있으면 한문공부뿐아니라 중국어공부 일본어공부의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집니다

영어공부 역시 하지만 일단 우리말을 정확히 쓰려면 현재 교과과정보단 심화된 한자공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ohmylove
15/05/2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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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을 알기 위한 징검다리역할로서의 한자공부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한문글을 읽기 위한 한자,한문공부는 글쎄요..
아수라발발타
15/05/2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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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전공자 말고는 한문고전을 읽을 수준의 한자교육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문학 전공자도 관력지식이 없으면 전문적내용이 들어간 한문텍스트를 해석하지 못합니다
ohmylove
15/05/2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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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15/05/2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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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학습에서 한자가 필요한게 이해를 잘 못하겠어서요. 한자 몰라도 게임 할만큼 하면서 공부해도 꽤 상위권이었거든요. 단어의 뜻을 중시하시는 것 같은데 현재 학문은 대부분이 서양에서 왔고 한자보다 영어가 원문의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동명사 대신 gerund라는 말이 있으니까요. 이 이야기는 많이 나온 이야기니 여기서 갈음하겠습니다.
15/05/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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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애초에 학습에서 한자가 필요한게 이해를 잘 못하겠어서요(2). 제가 어릴 때 집에서 부모님이 한자교육을 시켜서 국민학교때 천자문, 사자소학 이런 거 외우면서 학교에 들어갔는데. 정작 중고등학교 때 는 다 까먹고 기억 나는 게 하나도 없고, 성적 폭발했을 때는 그 한자 하나도 모르던 고등학교 시절이었거든요. 물론 안 배우는 것 보다야 당연히 낫겠지만 비용대비 편익에서 최악이고, 한자공부 자체가 뭐 생각할 거리도 거의 없는 그냥 단순 암기가 대부분인데 여기서 뭐 사고력이 생길 것 같지도 않고. 정작 대학교에서도 한자로 만든 조어따위는 취급도 안 하는 세상이고 말이죠. 뭐 국문과나 역사학과면 좀 다르겠습니다만. 저도 물 수 지 화 이정도 진짜 기초적인 단어 정도만 알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에게는 굳이 학교 수업 이외에 따로 보게 하는 일은 없을 거구요.
ohmylove
15/05/2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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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지엽적으로 비판하면
1. 기록에 엄밀함을 기했으나 태종의 왕자의 난, 세조의 왕위찬탈 등 일부기록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
2. 각종 기록으로 볼 때 지방수령이 백성들을 수탈했고 백성들이 이에 항거하여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된 건 사실. 꼭 왕조가 유지된 게 합리성 때문만은 아님.
3. 지구가 둥글다는 건 알았으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건 몰랐을듯.
4.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처음으로 증명했나? 현상적으로는 케플러의 법칙이 먼저고 기반이 되는 법칙은 뉴턴의 것일텐데...
5. 우리의 달력은 조선에는 맞았으나 global한 달력은 못 만들었을 것.
6. 글에서 세종시대의 과학을 예시로 들었으나 조선의 과학은 거의 세종만의 것이었지 않았나.
swordfish-72만세
15/05/2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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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둥글다는 것도 소수만 알고 사라지고 알고 사라지고 식이었습니다. 조선 개화전 내내 세계관은 중국 중심의 천원지방이니까요.
저 발견이 뒤에 큰 역할을 했다면 조선 후기 홍대용 등이 선교사들이 가져온 지구본 보고 충격 먹을 일은 없었겠죠.

달력 문제 역시 사실상 시헌력 만들 당시 재상 김육인가가 본인들 입으로 이렇게 이야기 했죠. 천문학은 아랍이 중국보다 낫고 아랍보다 유럽이 낫다라고...
사실상 칠성산이나 이런 거 모두 서양 달력을 참고한 거고 조선 후기 시헌력 역시 청에 들어온 가톨릭 선교사 없었으면 만들 수도 없었던 겁니다.
15/05/2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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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처음에는 글이 좀 나가다가는 대놓고 구라를 치네요. 이런걸 모를 사람 같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글을 쓰셨을지.. 모른다면 참담한 일이고요
소독용 에탄올
15/05/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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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둥글다는 '정보'를 누가 처음으로 알아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여러 양반들이 알았다 사라지고 알았다 사라지고 해왔으니,
조선이라고 딱히 예외가 될 수는 없기도 하죠...

정보건 기술이건 자리를 잡으려면 '써먹을 수 있는' 사회를 필요로 하니까요 ㅠㅠ
정직한사람
15/05/2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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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사 공부하고 있는데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이네요! 잘봤습니다.
15/05/2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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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을 대상으로 했고 강연 보다는 논설문 같은 느낌이라서 그러려니 하지만 글에 헛점이 너무 많아요. 옛날에 본 기억이 있는게 예전에 나온 글 같은데 이젠 피지알에도 올라왔네요. 일단 왕조가 오래간다고 좋은 나라라는거 이상하지 않나요. 그 기준이면 마그나 카르타나 시민혁명이 역사의 오점으로 볼 수 도 있겠습니다. 한국과의 건축물 비교도 국력이 약해서 못한거라고 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고요. 불교때는 종교건물 꽤나 열심히 만들었죠? 위에 언급하신 경복궁도 있고. 그 앞에는 참아줄 만 한데 수학 와서는 아주 답답하기 그지 없는 수준입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원주율을 계산했다는게 무슨 자랑인 것 처럼 얘기하는데 서양에서는 천 년 전에 계산을 한 거거든요... 에휴...
솔로10년차
15/05/2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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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면 천년전이긴 하죠. 고려건국이 천년전이니까요.
15/05/2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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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율이 언제 발견되었는지는 상식이 아니라고 해도 글 문맥상... 그 보다 천 년 전이라는 겁니다. 원주율은 기원전에 나왔으니까요.
솔로10년차
15/05/2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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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제가 그 사실을 몰랐는데, 문맥상 그보다 천년 전이라고 읽히지는 않습니다...
15/05/29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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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가 지금보다 천 년 이상 전이라는건 상식 + 문맥상 서양이 원주율을 훨씬 일찍 발견

근데 윗 댓글이 좀 기분 나쁠 만 하네요. 날이 선 문장 죄송합니다. 메르스 관련 헛소문들이 또 돌아다니는데 헛소리의 파급력이 너무 세다는 느낌이 들어서 ;; 딱 봐도 이 글 좀 이상하거든요
솔로10년차
15/05/2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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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제가 천년의 기준을 잘 못 알아서 생긴 일인걸요.
메르스 관련 헛소문이 다시 돌아다니는 군요... 아무래도 환자가 늘어 그러는가봅니다.
swordfish-72만세
15/05/2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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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정도는 이미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도 아는 거라서요.
사실 실크로드를 통해 유클리드 기하학 책은 동양에도 꽤 오래 전에 전래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도 사실 개념 자체를 첨 알게 된 사람을 찾는다면 이 글보다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솔로10년차
15/05/2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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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몰랐다기보다 어릴 때도 본 기억이 있는데 깜빡했네요.
swordfish-72만세
15/05/2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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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글 보면 자신을 올리는데 힘을 낭비하려다가 이 때 남은 뭐했는지 모르는 무지를 보이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유럽과 중동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미 아는 것이었죠.
무려 월식 당시 달에 비친 지구 그림자 보고 수식으로 계산해서 지구 크기까지 증명했구요.
물론 중세 초기 혼란기 때 잊혀지는 듯 했지만 8~9세기 카롤링거 르네상스 이후로는 과학 기술이 좀 떨어졌던 서구 유럽 조차
지식인 사이에는 상식에 가까운 문제였습니다.
15/05/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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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도 아니고 학문을 하는 사람이면 비교를 통해서 파악하는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텐데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만 드네요 ;;
솔로10년차
15/05/2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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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렇게 저렇게 꼬여있는데, 조선왕조가 오래 유지된 이유는 상당히 공감할 수 있는데, 우수성을 설명하다 왕조가 아닌 민족에 대한 것으로 변질된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청춘이다
15/05/2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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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바보는 아니었다 정도로 만족하죠.
반만년동안 지금이 한반도의 최전성기일테니까요.
swordfish-72만세
15/05/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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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도 조선의 시스템 자체는 높게 평가합니다. 그런데 최소 아닌 건 아닌 거죠. 왜 실상 따지면 중국이나 유럽에 비해 쪽팔리는 분야까지
부풀리는지 모르겠습니다.(원주율 등의 수학 등등)
15/05/2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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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런식으로 조선은 이렇게 혈통으로 500년갔지만 외국에 그런거 없음 그래서 조선 짱 하는 식으로 말하는 건 좀 그렇네요. 이런식이면 프랑스도 카페 발루아 부르봉 ..계속 혈통 이어진다고 인정해줘야죠
15/05/2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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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
이런 발언도 하셨는데 저 교수님 어릴적 시대라면 그럴지 모르지만 요새는(요새라고 해봤자 전 7차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조선비하하는 식으로 교육시키지 않을텐데요. 저만해도 "붕당정치 그거 완전 선진적이다" 이런식으로 교육받았는데 교과서에서... 대원군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솔로10년차
15/05/29 13:24
수정 아이콘
30대중반인데, 달달 외우게 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이 500년만에 망한 이유라면서 교육을 받은 적은 있었습니다.
최대한 좋게 해석하면, 저 교수님 같은 분 덕에 요즘처럼 바뀌었을 수도 있겠죠.
세츠나
15/05/29 12:53
수정 아이콘
정치 제도에 대한 부분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됩니다.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파트는 약간 무리수인 듯하네요.
엘시캣
15/05/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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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summer song
15/05/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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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저장해놓고 두고두고 보고픈 글이네요^^
황쉘통통
15/05/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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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 글은 여기저기서 몇번 봤는데 그럴때마다 잘못된 내용이 많지만 참겠다라는 댓글을 봤는데 어디어디가 구라인지 가르쳐 주시면 안될까요? 좀 걸러듣고 싶어서요...
swordfish-72만세
15/05/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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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수학 파트는 볼 필요 없는 국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원주율이나 달력은 역으로 얼마나 조선이 수학이나 천문에 대해 별볼일 없었나를 증명해주는 거라서...
그리고 사실 이 발견 모두 홍대용과 비슷한 과정으로 배운 겁니다. 즉 동서양 교류에 의해 서양의 수학이나 천문 지식이 들어 오면 조선 사람들이 거기에서
배우는 형태. 사실 칠정산이나 시헌력 같은 달력도 그런 과정이었고 담헌서의 수학 공식도 홍대용 스스로가 만들어 낸게 아니라 가톨릭 선교사들의 책을 통해 배운 거죠. 문제는 이렇게 배우고도 이게 홍대용이나 북학파 일부, 그리고 경기남인 일부를 빼면 별로 발전이 없이 그냥 신기한게 배웠네 수준에서 끝났다는 겁니다. 뭐 역법이야 당시 중요했지만 이것도 수백년 동안 시헌력이냐 명나라 때 만든 부정확한 태양음력인 대통력 쓰냐가지고 쭉 싸워댔죠. 뭐 시헌력도 우리가 만든게 아니라 청나라 때 선교사 아담 샬이 만든 걸 그냥 도입만 한것인지라...

사실 법학적 측면이나 정치제도도 상당부분 까고 싶지만 참습니다. 앞의 댓글에 쓰긴 했지만 베르사유 같은 사치건물은 조선이었으면 못만들었음은 정말 가관 수준이군요.
황쉘통통
15/05/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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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거군요 감사합니다 그 부분 헛소리로 치부하고 경복궁 중건은 이래저래 생각해볼 부분이 많아 보이네요
15/05/2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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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지속된 국가가 몇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왜곡입니다. 당장 프랑스 왕국만 봐도 987년 카페 왕조 시작부터 1789년 혁명까지 800여년간 끊김없이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왕조가 교체되긴 했습니다만 (카페 -> 발루아 -> 부르봉) 이건 순전히 대가 끊겨서 방계 인물을 왕위에 올리다 보니 생긴 변화지, 프랑스라는 국가의 정치체계가 뒤집힌 적은 전혀 없지요.
서양의 역사에서는 왕조 교체와 국가체계 전복은 전혀 별개의 것인데, 이걸 동양적으로 무리하게 해석한 결과라고밖에요.
swordfish-72만세
15/05/2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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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양식으로 하면 조선도 선조 때 한번 끊기고 고종 때 다시 한번 끊긴 거죠.
고려도 현종 때 한번 끊긴 거구요.
겨울삼각형
15/05/2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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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건 그냥 국뽕이거니.. 하고 참겠는데,
스페인왕조가 500년 갔다는 헛소리는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가 더 난감할 뿐이지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이 통일왕국으로 성립된게 카를5세때인데 말이죠.(1500년대 중반..)
카를5세의 외할머니가 레온-카스티아의 여왕, 외할아버지가 아라곤의 왕, 친할아버지가 신롬의 황제, 친할머니가 브루고뉴대공(+저지대) 를 모두 상속받음... 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이 사실상 통합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200년만에 단절되고,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을 거쳐서 스페인 왕위는 부르봉 가문으로 넘어갔고,
결국 스페인 왕국은 1900년대 초반 쿠테타가 일어나서 왕가가 쫓겨나지요.

레콩키스타 기간동안은 스페인이라는 건 없고, 레온-카스티야(도 연합왕국..) 아라곤 이 있을뿐이고;;
소독용 에탄올
15/05/2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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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동네랑 동양으로 묶이는 동네 사이에 '왕', '왕국' 개념이 역사적으로 동일한 것이 아닌데 걍 동일하게 보려 하니...
F.Nietzsche
15/05/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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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못 믿겠습니다. 권력지향적이고, 억압하는 인간의 본성이 조선시대에만 없었을것이라 생각할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역사적 퇴보를 한거겠죠. 왕이 직접 신문을 해서 억울한 자를 구해주었다니... 현실적으로 왕이 직접 그런 일을 한다는 것도 넌센스, 또한 조선시대 왕들만 유독 도덕적인 철인이었다는게 말이 안되죠.
소독용 에탄올
15/05/2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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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체계'의 견고함의 사례로 써먹을 수야 있긴 합니다.
가산관료제가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관료제'로서의 특징, 중앙집중과 제한된 가용자원, 신하 양반들의 세력 등이 있는 상황에선 도덕적인 철인이 아니라 걍 고만고만한 정도만 되도 그럭저럭 통치체계가 굴러가긴 하죠.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고 김칫국 마시는 부분들이 주로 문제고요 ㅠㅠ

안정적인 통치체계를 굴렸고, 그때 정책과 제도들 중에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장점이 있었음.
하지만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문제들도 있었음.
현 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러이러함.
형태의 강연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F.Nietzsche
15/05/2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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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이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고 자꾸 국뽕으로 흘러버리니 신빙성이 떨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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