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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29 10:27:21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에도 시대 일본의 경제 활성화
에도(江戶)시대 일본은 동시대 여타 국가들에 비해서도 상당한 수준급의 경제대국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비교적 앞선 수준의 화폐경제와 상품경제가 작동하고 있었고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상당히 활성화된 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사람들이 '바빠서' '패스트푸드'가 생겼을 정도였습니다. 

 

그 대표격이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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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지금의 도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이들은 간단하게 먹는 것을 원했습니다.

 

원래 스시는 오랜 기간동안 발효시키고 숙성시켜 먹는 고급요리였는데, 이를 간소화시킨 게 오늘날의 스시, 18세기 초 처음 생길 당시에는 '하야스시(빠른 스시)'라고 불렸던 스시입니다. 

 

발효시킨 정통 스시와 비슷한 향과 맛을 내려고 식초나 겨자 등을 넣었던 것이죠. 

 

사람들은 에도에서 다양한 구경거리를 보고, 물건을 사고, 또 달이 훤히 뜬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구경하면서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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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학설들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유력했던 것은 바로 7999992370605px; color: rgb(102, 102, 102); background-color: transparent;">'참근교대'(参勤交代)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한 이후 수립된 에도막부 정권은 전국의 다이묘들의 자치권을 인정해주는 대신 1년마다 그들이 자신의 영지를 떠나 에도에 머무르게 하였고 그들의 처자식들은 아예 에도에 상주해야 했습니다. 

 

당시 일본에 260개에 달하는 영지가 있었는데 이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신단을 거느리고 이동해야 했기에 그 규모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죠. 물론 그 비용은 모두 자기들이 부담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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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유력한 다이묘의 경우 2000명이 넘는 가신단을 이끌고 에도를 왕래했습니다. 특히 사츠마의 경우 (비록 세키가하라 전투의 패자였지만..) 거대한 가신단을 이끌고 큐슈에서 에도까지 왕래하였는데 한 번 가는데 50일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기적인 왕래는 당연히 잘 정비된 도로와 수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겠죠. 물론 그러한 도로는 처음에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설된 것이었지만, 참근교대가 정례화되면서 도로는 더욱 잘 정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여관 및 식당이 생기고 이들은 모두 7999992370605px; color: rgb(102, 102, 102); background-color: transparent;">'현금결제'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물론 다이묘와 가신단도 물건의 지불을 현금으로밖에 할 수 없었겠죠... 이동하는 길에 쌀포대를 계속 가지고 다닐 수는 없으니....

 

그리고 에도에 가신들과 함께 머물게 되었던 다이묘들은 대단한 소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공예품을 사들이고 연극공연을 관람하고 차와 비단 과 같은 사치품을 사들이는 큰 손들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가신들도 의식주를 모두 에도의 시장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수요'는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생산자들을 에도에 집결, 이는 에도의 경제를 폭발적으로 성장시는 것이었고, 18세기에 이르면 에도는 인구 '100만'의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동시대 오사카, 교토는 인구 40만의 도시로 성장했고요.  

 

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 1만명 이상의 도시인구가 전체인구에서 자치하는 비율은 1600년에 일본 4.4%, 중국 4.0%였는데, 1820년에 이르면 일본 12.3%, 중국 3.8%였씁니다. 동시대 서유럽은 각각 7.8%, 12.3%였씁니다. (조선은 19세기 말에 서울 25만명, 전 인구 대비 도시화 수준은 2.5%)

 

참근교대는 일본 전국의 도로 인프라를 발전시키고 이러한 도로망을 따라 무역망을 촉진시키고 화폐경제를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만듦과 동시에 수요를 집중시키는 블랙홀을 만들어 나름대로의 규모의 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참근교대는 다이묘들의 재정을 갉아먹는 주 요인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여러 번으로 나누어져있던 일본의 지형을 경제적으로 통합시킨 것이기도 했습니다. 

 

7999992370605px; color: rgb(102, 102, 102); background-color: transparent;">에도시대의 도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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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일본의 정치적 파편화가 경제성장에 나름 기여했던 거 같기도 해요. 유력 다이묘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자기 영지를 개발하려고 했으며 무역을 활성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유럽열강이 발전했던 이유 중의 하나로 유럽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사실을 지목하듯이, 일본 또한 각 지방의 영주들이 경쟁적으로 자기 영지를 더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이죠. 

그래서 '탈번'(번 밖으로의 이동, 내지 탈주)은 심각한 죄였고, 대개 극형으로 다스렸던 것입니다. 영주들은 영지의 소중한(?) 노동력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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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끼 짬뽕
15/05/29 10:31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화폐 경제를 도입하기 위해 무던 애를 썼는데, 결국 다 실패했고 일본은 무사히 안착시킨걸 보면 저 참근교대제가 주요하긴 했나 보네요. 다이묘 경제력 약화시키기 위한 제도라고만 배웠는데, 저렇게 각지의 다이묘들이 에도로 왕래하면서 뿌리는 돈을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하겠습니다.
칼국수
15/05/29 10:31
수정 아이콘
일본의 빠른 근대화는 개항을 먼저 했다는 점도 있지만, 사실상 에도시대때 다져놓은 경제 기반이 크죠.
권진관
15/05/29 10: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우키요에는 정말 에도시대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 사료군요.
공허의지팡이
15/05/29 10:35
수정 아이콘
봉건제와 중앙집권체제의 절묘한 조화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15/05/29 10:38
수정 아이콘
위 내용하고 대비되는 느낌이 드는 허생전의 허생의 말이 생각나네요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라는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ohmylove
15/05/29 10:40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보다 더 발달했었네요. 이런 일본을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참...
15/05/29 13:27
수정 아이콘
http://todayhumor.com/?history_20723

글쓴분이 다른 곳에도 똑같은 글을 올렸던데... 그에대한 반박 의견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ohmylove
15/05/29 13:35
수정 아이콘
tynet이란 분이 지식이 대단하시네요. 균형잡힌 사관을 가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가사끼 짬뽕
15/05/29 13:53
수정 아이콘
링크 타고 가서 댓글 확인해보니, 중국의 위엄이군요.
도들도들
15/05/29 14:40
수정 아이콘
반박 의견의 내공이 정말 엄청나네요. 다른 분들도 필독 권해드립니다.
라라 안티포바
15/05/29 18:12
수정 아이콘
글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 링크글에 있는 답글이 화룡점정이네요. 감사합니다.
vanilalmond
15/05/29 10:41
수정 아이콘
탈번 같이 속한 땅을 떠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은 봉건제가 유지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찬가지였지요.유럽의 농노들도 사실상 땅에 메인 존재라 영지를 벗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 허락을 받고 세금을 내야했으니...노동력=영지의 힘으로 본 것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swordfish-72만세
15/05/29 10:47
수정 아이콘
사실 이건 봉건제 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도 마찬가지이죠. 일단 좀더 정밀한 세제가 발달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세금은 인두세에 기반
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특히 조용조 중 용과 조는 대놓고 사람과 호에게 부가되는 세금이었니까요.
그런데 마음대로 도망가면 용과 조의 납부에 문제가 생기죠.
vanilalmond
15/05/29 10:48
수정 아이콘
그래서 어느나라나 라고 덧붙였습니다 흐흐
정지연
15/05/29 10:42
수정 아이콘
저 당시 에도는 엄청난 남녀 성비 불균형의 도시였다고 합니다..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하네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곽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죠.. 싼 값에 술과 성욕을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한 유곽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데 집지을 공간이 없어서 지금 고시원처럼 잠잘 방만 있고 물 나오는 곳은 공용으로 쓰는 집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서 제대로 조리를 해 먹을수가 없으니 외식을 할수밖에 없고 그래서 발달한게 위에 나온 스시, 소바(메밀국수), 덴뿌라(튀김), 장어구이 같은거라고 합니다..
Darwin4078
15/05/29 10:42
수정 아이콘
참근교대가 화폐, 경제의 유통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광산의 개발도 일본경제력의 향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아키타 번의 구리광산이나 인나이 은 광산은 일본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포르투갈에서 거래할 정도로 국제적인 광산이었거든요.
유럽의 상인들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거래기법을 배우고 유럽의 재물이 일본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전체적으로 당시 일본의 막부 경제가 윤택해지고 활성화되었다고 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리와 사무라이라는 책을 보시면 됩니다. 재미있습니다.
광산이 번성한 이후 막부와 아키타 번의 광산 채굴권을 놓고 정치적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하죠.
swordfish-72만세
15/05/29 11:07
수정 아이콘
그 구리에.의존하던 나라 중 하나가 조선이죠.
무기에도 들어가고 화폐에도 들어가고...
특히 상평통보의 성공은 화폐가격 하락에도 있는데 그게
일본에서 구리 유입으로 구리값 하락에도 있으니 말이죠
swordfish-72만세
15/05/29 10:42
수정 아이콘
사실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나 주장하는 중앙집권이 잘 되었으니 더 좋은 거라능에 대해 어느 정도 의문을 가진 사람입니다.

중앙집권을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 합니다. 만약 저발전 사회에서 고도의 중앙집권 체제는 필연적으로 필요이상의 거대한 돈 먹는 정부가
만들어 질 수 밖에 없죠. 관료들 녹봉만 해도....
봉건제에서는 그냥 가신 몇명만 필요한데 중앙집권에서는 수백 수천명이 넘은 녹봉 먹는 귀신들이 그 일을 하고 있죠.
즉 수익- 비용에서 비용이 커지게 되고 이걸 메꾸기 위해서는 피지배계층을 가혹하게 짜내던지 다른 부분에서
비용을 축소해서 이를 유지시킨 다던지 방법 밖에 없죠.

또한 중앙에서 내려간 관리들에게 지방 발전의 동인 상당히 적죠. 한다고 해도 장기간은 불가능하고 단기간 만 시간이 주어지구요.
특히 세도 정치 시기 정도 되면 발전은 커녕 수탈할 생각 밖에 없으니... 특히 중앙 정부 재원 결손분에 뇌물 비용 때문에 재대로 지방이 무너졌죠.
차라리 봉건 영주였으면 수탈은 했을 지언정 나름 장기간 플랜을 통해 지방 발전을 생각했겠지만...(언제나 쥐어짤 수 없으니)
중앙 관리가 내려와 지방 관리가 되었을 경우 수탈 밖에 없으니... 이건 문제죠.

물론 봉건영주제가 반드시 좋은 건 아닙니다. 일본도 그렇고 동유럽도 그렇고 가혹하게 쥐어 짰으니 말이죠.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는 차라리 봉건제가 나은 점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고려 말이든지 조선말 같은 상태)

그런면에서 전근대사회에서 적절한 중앙집권과 봉건제 병행이 쵝오라고 봅니다.
aurelius
15/05/29 10:51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러한 관점에 공감하는 입장입니다. 조선의 중앙집권이, 정말 근대적 의미에서 중앙집권이었나...라는 것에 회의적이고, 오히려 전근대에서는 그러한 체제가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봅니다.
15/05/29 17:23
수정 아이콘
봉건제의 나쁜 면을 보면 이보다 지옥일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조선에서야 수령이 진짜 미친 놈같은 게 하나 내려온다해도,
최악의 경우엔 중앙정부에 고발이라도 할 수 있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기간만 참으면 수령이 발령이라도 나는데
봉건제에서는 자기 영주가 지랄맞으면 죽을 때까지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죠.
그렇다고 지방간의 이동이 자유롭냐면 그것도 아니고요.

봉건제가 괜찮아보이는 건 진짜 현대 시대의 결과물만 보니 그런 것이지,
그 당시 한 명의 개인으로 태어나 산다면 확률적으로 중앙집권체 안에서 사는 게 그나마 사람답게 살 확률이 높을 겁니다.
자기 영지를 부유하게 만드는 게 목표가 되어버리면 백성들의 고통은 신경도 안 쓰게 될 때가 많습니다.

기업이 다른 기업과 경쟁을 하기 위해 성과를 위해, 사원들 그렇게 굴리는 건 분명 문제라 생각하면서,
과거의 사람들에겐 미래를 위해 그들은 희생해야 한다는 당연스러운 감정이 현대인에게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기승전정
15/05/29 11:10
수정 아이콘
참근교대가 제가 고등학교 때 배운 산킨코타이제도인가 보군요. 단순히 교과서에서는 지방 다이묘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라고만 배웠는데 이런 점도 있군요. 재미있고 유익한 게시물 감사합니다^^
파리베가스
15/05/29 13:41
수정 아이콘
일본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한 두권 읽어본 일본 시대물이 에도시대를 다룬 때라 어렴풋이 떠올리며 즐겁게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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