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5/24 03:41:43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홀로서기.
7년 전 5월24일 새벽, 병원에서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의 상황으로 봤을때, 그 전화는 좋은 소식일리가 없었다.
다만 그 전화에 응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냉정했고,
전화를 끊고 우리에게 말하시는 표정 또한 담담했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부랴부랴 정신만은 뒤로한채 모든것을 챙긴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고 계신가요?"
"네, 지금 급히 가는 중입니다."
"아, 아닙니다... 그냥 최대한 빨리 오세요."

당시 고3, 어른들의 대화를 잘 이해하는 나이는 아직 아니였지만,
이게 내가 예상하는 "그 뜻" 이라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나오기 직전이였지만,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울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병원에 도착해 아버지를 내 눈으로 확인한 뒤,
그동안 억눌렸던 힘든 감정들을 모두 눈물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그날, 나와 3명의 동반자들이 함께 걷던 길은, 단 2명의 동반자만이 남게 되었다.



힘든 순간은, 힘든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을 납득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힘든건, 그 과정을 거치는게 내 자신이 아닌 타인일 경우이며,
내가 해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을 때이다.
약 한달간 입원하셨던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동안 울수 없던 내 자신도 결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던것도 아니다.

그저 이 모든것을 납득할 시간이 필요했었고,
난 내 눈으로 결말을 확인하고서야 서서히 납득할수 있었다.
더이상 함께할수 없고, 내가 혼자 가야만 할 길이 있다는 것을.

그날을 기점으로, 아버지라는 그늘 아래 접하지 못했던 세상의 뜨거운 햇빛을 보았다.
때로는 따스하기도, 때로는 너무 뜨거워 살갗을 태우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있어야만 하는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당장은 대학 진로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대충 해도 될것같았던, 부모님의 기대 충족을 위했던 대학 진학이,
어느새 내가 짊어져야할 인생의 무게로 바뀌어 내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었다.
그 결과 태어나서 한번도 해보지 못한 페이스로 악착같이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페이스가 아니였다면 내 성적이 위태로울지도 몰랐겠다.

대학을 가서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필요없는 학비걱정, 생활비걱정을 업고 있었지만,
친구들이 함께하자는 모임들도 결코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내 잠을 줄이면서, 내 성적을 조금이라도 깎아 먹으면서 내어놓은 시간이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들이 가장 소중한, 내가 가고있는 길의 동반자였다.

함께 가던 길도, 때가 되면 누군가는 방향을 바꾸고,
누군가는 멈춰서게 된다. 조금 더 같이 갈수는 없겠냐고 되물어 보지만,
결국 멈춰설 사람들은 멈춰서야 하고, 나아갈 사람들은 계속 나아가야 한다.
어째서 한명을 뒤로한채 갈 수 밖에 없는지 잠시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이 멈춰선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그리고 어느새, 내 주변에는 다른 동반자들이 생겨났다.
분명 이들도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가고 제각기 다른 길들을 가겠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내 인생의 동반자들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애초에 자립하는 것, 홀로서기라는 것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였다.
특정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특정인을 제외한 타인과도 멋지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였다.



그때 그 이별 뒤 어느새 7년이 지났다.
한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만큼의 시간.
그 날을 기점으로 타시 태어났던 내가 충분히 홀로서기를 해낼만큼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날 이후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그때의 기억도 점차 무뎌져 간다.
물론 깨끗히 다 잊은건 아니지만, 내가 계속 나아가는데는 지장이 없다.
다만 그래도 일년에 이 하루만큼은 잠도 잘 안오고, 마냥 울고 싶기도 하다.
1년 364일을 열심히 살았으니, 오늘 하루만큼은 아버지를 위해 잠깐 묵도하고 싶다.

딱 오늘만.
내일부터는 다시 같이 길가는 이들과 함께할 테니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5/05/24 17:44
수정 아이콘
파이팅
스타슈터
15/05/24 18:53
수정 아이콘
무플로 끝날줄 알았는데...
어이쿠 감사합니다 :)
마스터충달
15/05/25 00:48
수정 아이콘
아.. 저는 무플로 추게 가는 전대미문의 글이 나오길 바랬는데 ㅠ,ㅠ
리듬파워근성
15/05/24 20:00
수정 아이콘
언젠가부터 인생은 항상 이별의 연속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나 봅니다?
속깊은 아들을 두신 스타슈터 아버님을 위해 저도 잠시 목도에 동참하고 갑니다.
스타슈터
15/05/25 00:48
수정 아이콘
격려 감사합니다.
아이를 그래서 낳는데 이 불효자는 아직도 솔로랍니다 ㅠㅠ
15/05/24 21:2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1360 [일반] 동북아역사재단 47억 지도 [46] 눈시BBand12642 15/10/07 12642 10
61339 [일반] 사도 - 우리 세자가 달라졌어요 [58] 눈시10613 15/10/06 10613 8
61297 [일반] 2015년 최동원 상의 주인공은? (2) [64] 눈시BBand7816 15/10/03 7816 0
61295 [일반] [검거 완료] 부산 실내사격장에서 남성이 권총, 실탄 탈취 도주 [45] 눈시BBand13288 15/10/03 13288 3
61244 [일반] 두 형제 이야기 - 황형의 유산 [24] 눈시BBand6929 15/09/30 6929 6
61211 [일반] 글 써서 남 주기 대회 결과 발표입니다~ [24] OrBef7056 15/09/28 7056 23
61187 [일반] [1][우왕], 모든 것을 부정당한 왕 [83] 눈시BBand15758 15/09/26 15758 71
61038 [일반] 두 형제 이야기 - 삼수의 옥, 무수리의 아들 [14] 눈시BBand5852 15/09/20 5852 7
61018 [일반] 두 형제 이야기 - 신축옥사, 장희빈의 아들 [16] 눈시BBand6323 15/09/19 6323 10
60997 [일반] [계층] μ’s, Music start [8] 조재걸얼빠7244 15/09/18 7244 2
60987 [일반] [야구] 이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고 [30] 눈시BBand5736 15/09/17 5736 0
60831 [일반] 두 형제 이야기 - 아버지가 남긴 것 [16] 눈시BBand7615 15/09/09 7615 6
60758 [일반] [프로야구] 시즌 초의 의문이 풀린 것 같습니다. [41] 눈시BBand10265 15/09/05 10265 1
60586 [일반] 영화 '사도' 포스터가 공개되었습니다. [28] 여자친구16034 15/08/27 16034 1
60493 [일반] 요즘 듣는 노래들 [25] 눈시BBand7857 15/08/22 7857 2
60297 [일반] 2015년 최동원 상의 주인공은? [10] 눈시BBand7399 15/08/10 7399 0
60295 [일반] 영맨(young man)을 보고 눈물을 흘린 이유 [16] The Seeker6862 15/08/10 6862 12
59361 [일반] 왕좌의 게임 시즌5 감상 소감 (스포대잔치) [63] 리듬파워근성15897 15/06/25 15897 13
58724 [일반] [펌] 우리 민족의 진실이 담긴 역사서. 단기고사 [49] 눈시BBand9370 15/06/03 9370 10
58690 [일반] 한 자기계발서 작가가 생각하는 고조선 역사? [19] 인벤7707 15/06/02 7707 0
58574 [일반] 부산에 내려가고 있습니다 [13] 마티치5306 15/05/29 5306 15
58491 [일반]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떠나가는 커뮤니티의 미래는? [33] ramram9208 15/05/28 9208 15
58400 [일반]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홀로서기. [6] 스타슈터4119 15/05/24 4119 2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