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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20 10:47:40
Name 퐁퐁퐁퐁
Subject [일반] 거실에서 실잠자리가 날아다녔던 때의 이야기

이게 무슨 제목이냐 하실 것 같지만,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전 쯤 저희 집 거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생태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식물, 하여튼 살아있는 것 중에 사람이 아닌 건 전부 다 좋아하셨죠. 이십년 전 즈음에는 한창 민물고기를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차를 몰고 서울 근교부터 멀리까지 계곡이며 개울이며 곳곳을 다니셨습니다. 네, 거기까지야 뭐 좋습니다마는... (어머니는 좋지 않으셨지만.)

집에서 민물고기를 기르면서부터 어머니의 분노 게이지가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민물고기를 어항에 키우면, 아무리 어항을 싹싹 닦고 물을 갈아줘도 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어항’이란 물건은 가정집에 흔히 있는 앙증맞은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횟집 사이즈였죠. 그런 거 세 개가 베란다에 둘, 거실에 하나. 여기까지는 어머니가 어찌 저찌 참고 넘어갔는데…….

민물고기‘님’들은 물고기 먹이만 먹으면 영양이 보충이 안 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아버지가 슬금슬금 이상한 물건을 퍼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항에 장식을 할 거라며 나무를 (그런 구질구질한 것 좀 주워 오지 말라니까! 라고 말해도 역시 소용이 없었죠) 주워오시더니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이셨죠. 기어이 ‘물고기 몸보신용’ 물벼룩을 한 반가지 퍼 오신 겁니다.

물론, 엄마한테는 말 안하고 ‘몰래’ 가져오셨지만...
무슨 개울이 마트처럼 코너가 딱딱 나눠진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벌레 알이 함께 끼어들어왔습니다. 베란다에서 물벼룩을 발견했을 때 어머니의 분노도 만만찮았는데, 그놈의 벌레들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에서 놀고 있었는데, 눈앞으로 뭐가 슝 날아가더라고요. 저게 뭐지? 하고 쳐다봤더니

실잠자리…….
참고로 저희 집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였습니다. 그것도 10층.
실잠자리가 호젓하게 날아다닐 수 있는 환경은 절대 아니었죠. 어머니는 기가 막혀서 한동안 씨근씨근 화도 못 내시더군요. 제가 안 보는 데서 쥐잡으셨을 수는 있지만. 실잠자리까지는 또 어찌저찌 참으셨는데, 벌레 알에서 모기 유충이 깨어나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나가서 저 물벼룩이랑 살던지, 나랑 살던지 둘 중 하나만 해라.”
결국 물벼룩이 버려지는 걸로 결론이 나기야 났습니다만...
아버지의 사랑은 민물고기에서 새로, 새에서 수달로 옮겨갔고, 언젠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수달 티셔츠를 한 장 사다주면서 그러시더라고요.

“당신 애인티셔츠야, 입어.”

저 놈의 애인은 밥도 안해주고 옷도 안 사입혀주고, 영 쓸모가 없다면서 투덜거리셨습니다. 아버지 서재 방문에는 대문짝만하게 ‘애인’ 수달님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더니 짜증나시던지 문을 쾅 닫으시더라고요.

어렸을 땐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계속 화를 내셔서,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고 하나하나 돌이켜볼수록 어머니가 보살이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네요. 덕분에 전 ‘우리 집에서는 실잠자리가 날아다녔다’라고 말할 거리가 생겼습니다만, 워낙 황당한 이야기라 그런지 다들 안 믿네요(…). 글쓰기 권한 풀린 기념으로 옛날 이야기 한 번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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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터치
15/03/20 10:50
수정 아이콘
취미생활에 치이는 사람들 은근 많죠..크크
보라빛깔 빗방울
15/03/20 10:53
수정 아이콘
수달..이요?
천연기념물일텐데 그걸 키우신건 아니겠죠..?? 흐흐
퐁퐁퐁퐁
15/03/21 16:15
수정 아이콘
물론 키운 건 아니에요. 크크.
수달 책 보기 수달 사진 보기 수달 다큐멘터리 수집하기 등등. 아버지 팬질(?)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본 기억은 없어 정확히 말은 못하겠지만 아이돌 팬질하고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크크.
15/03/20 11:02
수정 아이콘
어머니 호탕하고 재밌으시네요 애인 티셔츠 크크

잘보았습니다. 이런글 좋네요 추천 드립니다
15/03/20 11:12
수정 아이콘
물생활을 포함해 다양하게 길러봤던 입장에서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네요.
기르고 싶은 것은 많고, 그렇게 기르는 놈들에게 애착이 가서 여러 가지를 먹여주고 싶고 그러는 거죠.
저도 한 때 어항이 대여섯 개 이상 있었는데 결혼 후에 하나씩 정리하면서 이제 딱 둘 남았습니다.
먹이를 위해 민물새우와 밀웜이라는 벌레를 사육한 적도 있고요.
요즘은 수족관 쇼핑몰에서 실지렁이나 물벼룩과 같은 것들을 판매하지만, 동호회분들 보면 시골에 놀러갔다가 물벼룩 보이면 한 바가지씩 퍼오는 일이 예사입니다. 그러다가 퐁퐁퐁님 아버님과 비슷한 일을 겪는 분들도 있지요^^;
큰 잠자리 유충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어서 골치가 되기도 합니다. 실잠자리도 아닌 일반 잠자리가 집에 날아다녔던 분도 있었네요^^;
유리한
15/03/20 14:13
수정 아이콘
작년 여름 즈음 와이프님께서 아는 사람한테 구피 두마리를 강제 분양 받아오셨습니다.
새끼였는데 암수 구분 가능할 정도로 키워보니 다행히 암수 각 한마리더군요.
강제로 떠앉게 된 구피 두마리는 받아올때 그대로 조그마한 플라스틱 팥빙수 통에서 반년을 키우다가
첫 출산에서 추운 겨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모두 사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한자짜리 작은 어항을 구입해서 히터 빵빵하게 틀어주고 한달 보름정도 어항생활을 하고 있는데..
보름 전쯤 태어난 치어들이 20마리가 조금 넘습니다. 보름쯤 지나면 또 그정도가 늘어나겠죠... 어항을 더 크게 유지할 재간은 없는데..
첫 출산떄도 치어가 많이 불어날까봐 치어 분리 안하고 부모들하고 같이 뒀는데 한마리도 입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모두 카니발리즘이 없는 개체인가 봅니다..
이거 강제 분양 말고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15/03/20 21:45
수정 아이콘
답변이 늦었네요.
구피는 햄스터와 비슷합니다. 예쁜데 번식이 워낙 잘 되어서 문제지요. 난태생이라서 적에게 잡아먹힐 확률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구피가 워낙 환경에 적응을 잘하긴 하지만, 무작정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한정적인 공간에서는 알아서 개체수 조절이 됩니다. 그것은 어떤 개체든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카니발리즘도 보이고 기형, 전염병 등으로 문제가 생기므로 일정 수를 넘어가면 분양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강제분양을 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저도 몇 년간 주변에 분양하다가 구피를 아예 없애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좋은 방법이라면 수컷 개체만 남겨서 2~3년 동안 기르시거나 아예 구피를 몽땅 분양하시고 제브라나 네온테트라 등 번식이 쉽지 않으면서도 튼튼한 개체를 몇 마리씩만 기르시는 것입니다. 1자 어항이라면 대여섯 마리 정도만 기르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너무 많아지면 물고기가 먹고 싸대는 응가들을 박테리아가 다 처리하지 못해 여과사이클이 깨지고 결국 물이 더러워져서 물고기 전체가 위험해지죠.

보통 이런 종류의 열대어들 평균 수명이 2~3년 정도입니다. 잘 기르면 6~7년도 산다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렇죠. 그리고 처음에는 구피가 치어를 낳는 모습이 정말 예쁘고 새끼 구피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니다만, 몇 달 정도만 지나면 무덤덤해집니다. 그때 즈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 한달 반 정도라면 한창 예쁠 때이고 구피 치어들이 다 자란다고 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을 때, 좀 더 보고 싶으시다면 2자 어항으로 늘리시거나 아니면 구피를 몽땅 분양하시고 위에 말씀드린 종류의 물고기 몇 마리만 키우실 것을 추천합니다. 1자 어항이라면 베타 한 마리를 기르시는 것도 좋고, 제브라나 네온테트라, 카디날테트라, 백운산 등의 물고기를 한두 마리씩 기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
개과종굴이
15/03/20 11:13
수정 아이콘
아. 크크크크크크 웃기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취미가 민물낚시셨는데, 어머니 눈치에 항상 낚시대 어디서 산걸 얻어왔다고 하곤하셨죠. 지금 생각하면 몇십만원 했을듯?
지금은 취미생활도 마땅히 없으셔서 집에 그냥 티비보시는게 취미신데, 그때 저한테 낚시대 자랑하시면서 흐뭇해 하시던 모습이 그립네요.
껀후이
15/03/20 11:21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살아있는 것중에 사람이 아닌건 다 좋아하신다니...크크크
종이사진
15/03/20 12:09
수정 아이콘
어릴 적에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아버지 덕에 정말 별의별 것을 다 길러봤습니다.

개, 고양이, 닭, 토끼, 붕어, 미꾸라지, 송사리, 열대어, 게, 우렁이, 개구리, 뱀장어, 도마뱀, 새...이와 다양한 화초들...

개, 고양이, 새가 새끼낳아서 키우는 것,
고양이가 사나운 닭에게 쫒기는 것,
우렁이가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 것,
행인을 공격한 닭이 밥상에 올라오는 것(...)

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육이나 재배에 흥미를 가지고 있긴 한데,
아버지만큼 잘하진 않아서 쉽진 않더군요.
15/03/20 19:30
수정 아이콘
수... 수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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