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PGR 에 가입한지 오래 됐는데 가끔 질문 게시판에서
인생 선배님들의 여러 도움 받고 있는 박보영 이라고 합니다.
아주 옛~날에 자유게시판에 한 두번 정도 글을 써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다 보니... 하하하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쓰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있어 PGR 여러분의 축하를 받고 싶어서 입니다.

아마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5년 전? 제가 중학생이 될 무렵이네요.
아버지께서는 본인 스무 살 적에 지방에서 올라오셔서 서울에 공장을 차리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IMF 도 겹치고, 굉장히 친한 분 보증까지 잘 못 서시면서 저희 집안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몰고 오게 됩니다.
부모님과 누나, 저 네 명이서 나름 괜찮게 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집안 물건에
드라마에서만 보던 빨간 딱지가 붙고 저희는 원래 살던 집에 절반 크기 밖에 안되는 집으로 도망치듯 이사가게 되죠.

참... 한 달에 급식비 3만원이 내기 어렵고, 남들 다 받는 용돈도 못 받으면서 진짜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혼자 공부도 열심히 하였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나름 상위권 학생이 되었습니다.
일찌감치 대학이 가고 싶었기에 여기저기 수시 원서를 냈었고, 인서울 중~상위권 몇몇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3 10월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죠. 합격한 대학들 중 어느 곳을 갈까 신중하게 고민하였지만
저와 저희 가족의 가장 큰 결정조건은 "돈" 이었습니다. 제가 합격한 학교 중 국립대인 학교의 등록금은 다른 학교의
절반 도 안되는 수준이었고, 그 학교에서는 첫 학기 등록금까지 장학금으로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생활... 저는 항상 주말 알바를 하며 용돈과 생활비를 충당하였고, 학창시절 공부에 질려버려서 그런지
동아리 활동과 젊음, 그리고 여자친구 등 학점 관리 빼고 즐길 수 있는 건 다 즐겼던 것 같습니다.
1학년 2학기, 2학년 1, 2 학기 총 세 학기를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 생활을 하였고, 군대에 가있는 동안 다시 철이 들게 됐습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집안이 힘들었으면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고 했어야 했는데 내 성적이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전역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전역한 첫 학기인 3학년 1학기는 어찌 할 방법이 없어 다시 학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남은 학기는 모두 성적 장학금과 국가 장학금, 기업체 장학금 등으로 해결 했으니깐요. 그리고 끊임 없이 학원, 과외 알바등을 하며
제 생활비와 용돈을 해결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4학년을 마치게 되고, 남들이 다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나름 업계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중견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딱 작년, 27살 3월의 일이었죠.
그때서야 저의 경제적 상황을 다시 살펴보게 되니, 총 네학기, 한 학기에 등록금 200만원에 부모님께 드렸던 생활비 100만원.
300만원 씩 네 번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더군요.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알게 된것이 '내가 마이너스 1,200만원에서 시작하고 있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몇몇 선배들은 학자금 대출금은 이율도 높지 않으니 천천히 갚으라고 조언했지만 제 고집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뭔가 이 지긋지긋한 빚부터 빨리 없애고 싶더군요.

그런데 처음 입사하고 3월, 4월 월급은 하나도 모으지 못했습니다ㅠ 부모님, 친척들 선물 사드리고 그 동안 고마웠던 친구들이나
선배들, 그리고 제 자신에게 선물 하다보니 잔액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하하하;;;
5월 월급부터 차근 차근 모았습니다. 매달 통신비, 교통비, 데이트비용, 가~끔 생기는 술자리 비용 등을 제외하곤 전부 모았던 것 같네요.
불필요한 쇼핑은 하지도 않고, 남자들 취업하고 나면 지출이 커진다는 유흥비에도 전~혀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120~150만원 정도를 모으기 시작했고, 이때 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은행에 찾아가 대출 원금을 갚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입사한지 딱 1년이 된 어제... 3월 월급을 받으며 그 동안 지긋지긋 했던 학자금 대출 갚기와 완전히 이별하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모든 대출금을 갚는 순간 참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물론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대학생들과 사회 초년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고 누구나 갚아나가는 일이란건 알지만
그래도 뿌듯했습니다.
거래내역 확인증에 쓰여 있는 "대출금이 정상적으로 완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멘트가 제 기분을 이리 묘하게
만들 줄 몰랐습니다. 무언가 허무하기도 했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결혼도 하게되고, 집 장만도 하다보면 다시 또 대출을 받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출금 갚기" 를 시작하게 되겠죠?
그래도 적어도 그 전까지는 저에게 "빚" 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합니다.
무언가 제 자신에게 그 동안 고생했다며 선물하나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사치 같다는 생각이 들어
PGR 에 이렇게 두서없는 자랑글 하나 올리고 축하를 받으려고 부담스럽지만 조심스럽게 남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자금대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대출금을 갚느냐 고생하시는 여러분 모두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