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나 깍으러 갈까?"
친구가 염색을 한답니다. 염색하러 가는김에 같이 가자길래 어느정도 머리도 기른터라 잘라야 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친구와 자주 가는 단골 미용실은 크기가 작지 않은 나름 동네에선 큰 규모의 미용실입니다. 하지만 슬픈일은 그전에 머리를 잘라 주시던 분이 그만두셨다는 거지요. 그래서 특별히 머리를 맞기는 디자이너분은 없습니다. 뭐 그닥 머리에 신경쓰는 스타일이 아니라 상관은 없지만 서도..
날씨가 요란하게 또 눈발이 날리덥니다. 올해는 특히 예년보다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데 오늘은 정말 엄청나게 내리더군요.
흐으 춥다 이런날은 패딩이야 패딩. 군대를 갔다온 후로 간지고 가오고 다필요 없고 따뜻한게 최고다 라는 마인드가 생긴 저는 두툼한 패딩을 입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미용실에 들어서자 직원분들이 반겨줍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이 친구는 머리 염색 할거구요. 저는 그냥 커트만 하려구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공하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 하는 동안 친구는 염색한다고 제 옆을 떠났습니다. 크래쉬오브클랜 약탈도 했겠다 오목도 포인트 전부 썼겠다. 이만하면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저는 왜 아무런 말도 없을까요? 피지알 글이 업데이트 안되있나 멍때리면서 보다가 지나가는 직원 아가씨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저 머리 깍으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지금요."
"지금요?"
타이밍이 절묘했군요. 지나가는 분이 아니라 절 부르러 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분따라 자리를 앉았는데 그분이 머리를 깍아주시려고 하는군요. 아.. 디자이너 분이셨구나 몰랐네.. 특별히 원하는 헤어스타일은 없기때문에 그냥 남자들이 가장 자주하는 멘트인 "그냥 깔끔하게 다듬어주시고 옆이랑 뒤만 쳐주세요" 를 날렸습니다.
서걱서걱 가위로 제 머리를 날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아.. 네.. 하하. 또 리액션 하면 저고, 맞장구 하면 저라 이야기를 잘 받아주었습니다. 뭐 진짜 별일 없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수진 이쁘지 않나요? / 박수진 이쁘죠. /근데 남자들은 눈이 높아서 박수진같은 여자를 찾는다니까요 / 에이 박수진이 일반적이면 티비에 나올리가 없지요. / 그렇죠? 하하하 호호호 -_-..
어느정도 깍다가 물어봅니다. 머리 어떠세요? / 아 나쁘지 않은데요. /그렇죠? 제가 봐도 이쁘게 잘 깍았네요.
평소에 머리에 왁스 바르세요? 아뇨. 머리에 뭐 안바르는 스타일이라.. / 머리 반곱슬이라 바르시면 좋아요 바르세요 / 제가 이런건 약해서../
머리에 바르셔야죠. 그래야 여자가 생기죠. / 아 네.. / 그 오늘 입고 오신 패딩같은 것도 입으시지 말고요. 코트 입으세요 코트 /
... 음..
이 아가씨는 제가 여자가 없는걸 어떻게 안걸까요..? ... 전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얘기 하다가 뜨끔 했는지 확인 사살까지 하더군요
여자친구 .. 없으시죠? / 아 .. 네.. 하하..
... 생긴게 없게 생긴건가.. 무언가 괜시리 슬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보통 있으시죠? 라고 물어보지 않나요?.. ㅠ 으허헝..
그래서 왁스 바르는법이나 알려달라고 하고 왁스 바르고 나왔습니다. 아직도 친구는 염색중이었습니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멍하니 핸드폰을 보고 있었지만, 뭐랄까 그 생각치 않은 멘붕은 여운이 나름 길게 가더군요.
여러분. 여자친구 생기려면 패딩입지 마세요. 코트 입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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