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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2/04 00:24:56
Name 눈시BBand
Subject [일반] 임진왜란 해전사 - 10.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간단요약


"나에겐 군대가 있다."
"우린 이순신 있는데?"
"그 괴물은 사라졌잖아?"

  혹은


포기하면 바로 전쟁 종료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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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전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일본군의 진격을 막던 가장 강력한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죠. 이제 진격할 때였습니다.
일본군의 진격은 칠천량해전 후로도 10일이 더 넘은 후에 시작됩니다. 일단 칠천량해전 자체가 진격보다는 보급로를 막는 조선 수군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으니 준비가 다 된 게 아니었겠죠. 거기다 한산도로 진격한다는, 예정에도 없고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목표가 더 추가된 상태였으니까요.

칠천량해전에서 일본군의 전공은 160척 나포, 수천명 참수입니다. 그 외에 불태운 배들도 많았다 하죠. 이 중 도도 다카토라가 23척, 와키자카 아스하루가 16척을 나포했다 합니다. 나머지는 구체적인 수가 없는 모양이군요. (옛날에 썼던 도도 60척, 시마즈 160척 이건 잊어주세요 ( ..)) 이 '나포만 160척'을 과장으로 봐도 될 거고, 작은 배들부터 군량선 등까지 합친 걸로 봐도 될 겁니다.

이러고도 조선 수군의 '구성원'들이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었습니다. 장수들이고 병사들이고 열심히 도망갔고, 배는 버리고 간 거든 태울 병력이 없어서 정박시켜둔 거든 적지는 않았으니까요. 그게 스무척이든 서른척이든 말입니다. 뭐 이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대패군요.

문제는 그걸 지휘해야 할 총대장이 도망가 버렸다는 겁니다. 물론 원균이 잘 했어도 겁 먹어서 도망갈 놈들은 다 도망갔을 겁니다. 그리고 이놈들이 죽일 놈이 됐겠죠. 하지만 원균이 한산도로 돌아가기만 했어도 배설이 이끈 것보다 훨씬 많은 판옥선이 합류했을 것이고, 이억기도 퇴로를 지키다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대패였다 하더라도 실제 역사처럼 한산도를 불태우고 도망갈 상황은 안 됐을 겁니다. 잘 됐으면요? 2차 한산도 대첩이요. 적이 견내량을 넘어오는 족족 잡아버리면 천 척이 어디 대수겠습니까.

+) 아 원균이니까 혹시 모를 일입니다. 한산도로 잘 가놓고 남은 거 다 침몰시키고 도망갈지도요 -_-;

하지만 그 원균이 도망갔습니다. 덕분에 조선 수군 중 도망간 자를 욕할 이는 김완, 이억기, 최호 정도였고 자기 배와 병력 무사히 간수해서 도망간 자들은 명량에서의 기적을 이뤘으며 몸만 도망간 자들도 다수가 합류해서 수군의 재건을 도왔고 이후의 해전에서 활약합니다. 다 원균 때문인 거죠.

이순신이라 해도 쉽게 이길 싸움은 아니었습니다. 부산포까지 가는 길의 섬이나 포구는 일본군이 장악했고, 물길도 날씨도 험했으니까요. 먼 바다에서 지치고 싸울 장소를 선택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적은 앞뒤에서 계속 찔러댔고, 임진년의 공포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싸웠으니까요.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싸우는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완벽한 승리는 물론이고 그 이순신이라도 어느 정도의 패배를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칠천량의 패전은 그걸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수군이 심심하면 정박했던 칠천량에서 기습을 받고, 거제도를 타고 내려가기만 해도 되는 견내량을 안 가고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승리는 어려웠을지 몰라도 이 정도의 말도 안 되는 패배 역시 생각하기 힘들죠. 네 정말 '원균이니까 그렇게 진 거지' 수준입니다. 진짜 생각하면 그냥 웃길 뿐인 패전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생각하면 웃을 수가 없죠.

수군이 사라졌다는 것,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죽도를 출발, 성주는 적을 염탐하면서 선두를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시어 전라도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지나가는 해로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선이 머물고 있는 모든 섬에서는 적선이 파괴되어 불에 태워지고 있었고, 성마다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 7월 29일(조선력으론 7월 28일)
"들도 산도, 섬도 죄다 불태우고, 사람을 쳐 죽인다. 산 사람은 금속 줄과 대나무 통으로 목을 묶어서 끌어간다. 어버이 되는 사람은 자식 걱정에 탄식하고, 자식은 부모를 찾아 헤매는 비참한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 8월 6일
"조선 아이들은 잡아 묶고, 그 부모는 쳐 죽여 갈라 놓으니,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된다. 남은 부모 자식의 공포와 탄식은 마치 지옥의 귀신이 공격해 오는 때와 같이 공포와 서러움 속에서 몸을 떨고 있다." - 8월 8일
"성내의 사람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죽여서 생포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일부는 돈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엇다. / 무심하구나.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덧없는 세상 일이라고는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죽었구나." - 8월 16일
"전주를 떠나가면서 가는 도중의 벽촌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죽이고 있는 참상은 차마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 8월 28일

케이넨은 군감(다이묘들을 감시하고 공을 평가해서 보고하는 역할이죠)으로 출전한 오타 가즈요시의 종군승이었습니다. 칠천량해전 직전에 조선에 와서 참 많은 것들을 보고 일기에 남겼죠. 7월 28일부터 한산도로, 섬진강으로, 남원성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끔찍한 살육 역시 기록해 놓습니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도 리부트하는 김에 새로 만드는 게 나았을건데 뭐 그냥 이대로 가죠 ( ..)
히데요시의 광기 어린 명령은 가는 곳마다 시체의 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습니다. 임진년 때의 경험을 잘 살려 좌우군으로 큰 덩어리로 움직였고, 그저 성에 숨죽여 있어야 했죠. 그나마 곽재우가 화왕산성에서 적을 막아내 공을 세웠지만, 공성을 포기하고 전라도로 진격하는 적들의 뒤를 치지는 못 했죠.

그렇게 남원성, 전주성이 함락되고 적은 충청도로 진격합니다. 코무덤으로 대표되는 잔혹한 학살을 계속하면서요. 명군과 직산에서 한 번 교전해서 진격을 멈추긴 했지만, 아직 일본군은 별 피해를 받지 않았고 한양까지 치고 갈 능력도 충분했습니다.

한편, 일본 수군들은 섬진강을 통해 북상, 남원성 전투에도 참전했다가 다시 내려옵니다. 어마어마한 수의 수송선을 호위하면서 말이죠. 이들의 목표는 서해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최소한 육군이 진격한만큼까지는 가 줘야 됐겠죠.

글쎄요. 언제쯤이었을까요? 꿈에서 들어도 소름끼칠 무서운 소식을 듣게 됐을 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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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김식이 와서 칠천량 해전을 보고합니다. 적이 포위해서 공격했고 우리나라 배랑 장수랑 병사랑 다 죽었고 원균이랑 우치적이랑 겨우 탈출했는데 원균은 멀리 못 가서 주저앉았다, 적이 원균에게 달려드는 것까지 보고 그 뒤는 모르며 배설 등은 살아서 도망갔고 무수한 적들이 한산도로 향했다 뭐 이런 내용이었죠.

선조와 대신들이 큰 충격을 받은 건 굳이 말할 필요 없겠습니다.


"대답 안 하지? 대답 안 하면 왜적들이 알아서 다 물러가냐?"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na

선조는 대신들에게 계책 안 세우냐고 막 갈굽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변호는 참 잘 하죠. 사람이 한 게 아니라 하늘이 그렇게 만들었다느니 한 겁니다.

웃긴 건 정말 중요한 말이 나올 때마다 말을 돌린다는 거였죠. 앞장선 건 이항복이었습니다.
"지금의 계책으로는 통제사와 수사를 차출하여 계책을 세워 방수하게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옳다 하면서도 말을 돌립니다. 그러면서 패전분석을 하는 둥 하다가 또 사람이 한 게 아니라 천명이니 했죠. 이러니 김명원과 이항복이 다시 나섭니다. 누구를 장수로 삼을까요, 지금 필요한 건 적절한 인재 선발입니다 하면서요. 적절한 게 누구겠습니까. 권율은 이미 그 인재의 통제사 재임명을 주장하면서 이미 남해로 보낸 상태였습니다.

... 우리의 선조, 또 말을 빙빙 돌리고 회의를 끝내죠.

http://xuecheng.egloos.com/category/%ED%95%9C%EA%B5%AD%EC%82%AC%E9%9F%93%E5%9C%8B%E5%8F%B2
이글루스 연성재거사님의 블로그입니다.

헌데 징비록 초본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징비록에는 김명원과 이항복이 원균의 죄임을 말하며 이순신의 통제사 임명을 주장했고, 선조가 이를 따랐다 돼 있죠. 헌데... 초본에는 그 말을 들은 선조가 나가버렸다 합니다. 결국 신하들이 밀어붙여서 결국 통제사 임명을 얻어낸 거죠.

이런 꼴이 되자 화가 나도 단단히 난 건지 비변사고 신하들이고 무기력하게 계책을 짜지 않는다고 욕 합니다. -_-; 비변사야 당연히 아이구 죄송합니다로 나왔죠. 내 참... 류성룡은 초본에 수군의 전멸을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고 '임금이 예리하게 보지 못 해서'라는 식으로 선조를 깝니다. -_-; 오죽했으면... 당연히 간행본에서는 위의 내용과 같이 잘렸죠.

선조라고 답을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그냥 싫었겠죠. 변방의 명성 높은 무인, 보통 왕이래도 싫을 상황에서 선조의 강박증으론 훠얼씬 크게 다가왔을 겁니다. 그렇다고 머리 좋은 선조가 지금 그가 필요한 걸 모르진 않았겠죠. 그냥 어떻게 될 지 알면서 짜증만 실컷 낸 거죠.

선조가 싫어했던 사람, 만약에 그가 한신처럼 권력에 욕심이 좀 있어서 반란을 생각하기라도 했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 겁니다. 아니면 사리사욕이 있든가, 하다못해 다 때려치우고 낙향해서 조용히 살 사람이기라도 했으면 좀 나았겠죠. 왕이 변방 장수 싫어하는거야 역사에 많고도 많고, 토사구팽도 많으니까요. 선조가 딱히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고, 장수 좀 죽이고 죽이려고 했다고 이렇게 집중적으로 욕 먹을만한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 역사는 우리가 아는대로 흘러갔고, 그렇기에 그를 존경하는만큼 선조가 더 미워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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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gr21.com/?b=8&n=44603
간략히 다루겠습니다. 비교적 자세한 건 이 글을 봐 주세요. ... 써놓고보니 별로 안 간단하지만 어쨌든 ( ..);


일기는 4월 1일 그가 옥에서 나오면서 다시 시작됩니다. 외롭진 않았을 겁니다. 사람들이 계속 와서 위로해주고 류성룡, 정탁 등도 사람을 보냈으니까요. 다들 거의 매일 술판을 벌이며 그를 위로해 줬습니다만... 그의 마음은 착잡할 뿐이었죠. 자신의 모든 걸 부정당한 상황에서 고문의 아픔은 오히려 작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앞에 다가온 비극은 더욱 컸죠.

13일, 어머니의 부고를 듣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죠. 16일에 어머니의 시신을 모시고 빈소를 차립니다. 그리고 3일만에 남쪽으로 길을 떠나야 했죠.

"천지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어서 죽는것만 같지 못하다." - 4월 19일

그렇게 권율에게 가기까지, 일기의 내용은 세 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거나 소식을 들은 것, 원균의 미친 짓거리를 들은 것,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때를 잘 못 만난 처지를 한탄하며 대체 왜 죽지도 못하냐고 슬퍼한 것이죠.

사람들이 그를 많이 찾긴 했습니다. 권율도 나쁘지 않은 대우를 해준 것 같고, 이전의 부하들은 물론 이억기부터 원균의 심복인 우치적까지 그를 챙겨줬죠. 그래도 그의 슬픔을 위로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원균에 대한 얘기를 계속 들으며 걱정하고 분노해야 했죠. 5월 12일에는 원균의 점을 쳐 봤다고 합니다. 대흉이었죠. 기뻐했을지 수군의 운명을 걱정했을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사실 원균에게는 물론 수군에게도 이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통제영 근처에 이순신이 있었고, 수군 장수들이 그를 챙기고 따르고 원균을 욕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다들 아무 생각 없었는지 모르겠네요. 권율도 이순신을 만날 때마다 원균 욕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이순신이 권율에게 어떤 대답을 하거나 조언을 했는지는 일기에 적지 않았습니다. 침묵했을지 권율을 응원했을지, 혹은 원균의 편을 들었을지는 알 수 없죠.

7월 7일 칠석날, 역시 슬픔에 젖어 있던 날, 희한한 꿈을 꿉니다. 원균과 한자리에 있었는데 자신이 원균의 윗자리에 앉아 음식상을 받았는데 원균이 즐거워했다는 것이죠. 자기도 이게 뭔 꿈인가 했을 겁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지 정말 오랜만에 '원 공'이라는 말을 썼죠. 그러거나 말거나 이 날도 박영남이 원균 대신에 곤장 맞으러 끌려왔습니다 -_-;

이후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하기 그지 없는 것이엇죠. 12척이 표류하고, 20척이 깨지는 등의 일들이요. 특히 도망쳐 온 종 세남에게서 서생포에 표류한 7척이 상륙했다가 다 죽었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믿는 바는 오직 수군에 있었는데, 수군이 이와 같으니 또 다시 가망이 없을 것이다. 거듭 생각할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 7월 16일

하지만 이건 예고편에 불과한 거였죠.

"맑음. 새벽에 이덕필, 변홍달이 와서 전교하기를 '16일 새벽에 수군이 기습을 받아 통제사 원균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및 여러 장수들이 다수의 피해를 입고 수군이 크게 패했다'는 것이었다.; 듣자하니 통곡함을 참지 못 했다."

7월 18일의 일이었습니다. 이어 권율이 직접 찾아옵니다.

"일이 이미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어쩔 수 없다"

고 하면서요. 이후 사시(9~11시)까지 얘기를 계속하다가 결국 마음을 정합니다.

"내가 직접 해안 지방으로 가서 듣고 본 뒤에 방책을 정하겠다."

권율은 더할나위 없이 기뻐했다고 합니다. 장계에 이순신을 남해로 보냈다면서 그를 통제사에 재임명해달라고 하죠.

물론 충분히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겠습니다만 일기 내용은 참 담담합니다. 그의 어머니를 잃고 슬퍼할 때나 이후 그의 아들을 잃고 슬퍼할 때에 비해서 말이죠. 지금 상황에선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가족의 죽음보다 자신이 직접 무찌를 수 있는 적을 상대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요.

권율은 벼슬에 있을 때도 자기보다 하급자였고 지금은 백의종군하고 있는 이순신에게 직접 남해로 가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 했습니다. 이순신이 직접 나섰죠. 미안해서 그랬나 봅니다. 이순신은 이후 3일만에 노량에 이르러 수군을 만납니다. 그의 결심이 하루이틀 더 늦었다면 수군과의 합류도 더 늦었을 것이고, 그 동안 남은 12척도 더 줄어들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예 만나지 못했을수도 있죠. 하지만 그는 빠르게 결심했고,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21일, 안위와 조계종, 이의득 등이 만났고 울면서 원균을 욕 합니다. 그 살점이라도 뜯어먹고 싶다면서요. 그대로 4경(밤 1~3시)까지 얘기를 나누다 잠을 못 자서 눈병에 걸렸다 하네요. 이후 배설과 배흥립 등도 만났죠.


남은 배는 단 12척, 그 심정은 어땠을까요. 뭐 배설 제외 다른 부하들은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치고 있었겠죠.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 피난민들 역시 행복합니다 하면서 죽어라 수군을 따랐을 거구요.

25일에는 김언공이 수군에 증원될 병력을 이끌고 찾아옵니다만... 이순신은 아무 직책이 없었기에 이들을 받지 못 합니다. 권율은 김언공에게 섬진강을 방어하게 했지만 아쉽게도 다 흩어지고 말았죠. 글쎄요. 이순신이 처음부터 이 병력 (최대 4천명입니다)을 거느렸다면...

8월 3일, 임금의 명령을 받는 꿈을 꾼 그 날, 선전관이 찾아옵니다. 삼도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한다는 것이었죠.


"왕은 이르노라. 오호라! 국가가 의지할 곳은 오직 수군뿐인데, 하늘이 화를 내려 흉악한 칼날이 다시 성하여 마침내 삼도의 군사를 한 번 싸움에서 모두 잃었으니 이후로 바다 가까운 고을은 누가 다시 막아 낼 것인가? 한산도 이미 잃었으니 적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눈썹을 태울 존망의 위급함이 조석에 닿아 있으니, 지금의 계책은 오직 흩어져 없어진 군사를 다시 모으고 전선을 거두어 합쳐, 급히 아군에 요긴한 지점에 의거해 엄숙히 한 군영을 만들면, 도망해 숨어 돌아오지 않던 무리들이 돌아갈 바를 알 것이요. 바야흐로 큰 적들 또한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건대, 그대는 일찍 수사 책임을 맡았던 그날부터 이름이 드러났고 또 임진년 승첩이 있은 뒤로 업적이 크게 떨쳐, 변방 군사들이 만리장성처럼 든든히 믿었건만, 지난번에 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토록 한 것은 역시 사람의 생각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 오늘 이 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제 각별히 어두움에서 경을 일으키고, 상복을 입은 채로 다시 천거하여 겸 충청. 전라. 경상 등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노니, 경은 지금 나아가 군사를 모아 어루만지고 흩어져 도망간 자들을 찾아 불러 단결시켜 수군의 진영을 회복하고 요해지를 지켜 군성을 일시에 떨치면 이미 흩어진 백성의 마음을 다시 편안케 할 수 있고, 적 또한 우리가 준비가 있음을 듣고 감히 다시 방자하게 창궐하지 못할 것이니, 경은 이를 힘쓸 지어다.
수사 이하는 모두 지휘하며, 규율을 범하는 자는 일체 군법대로 시행하려니와, 나라 위해 몸을 잊고 경우에 따라 나가고 후퇴하고 하는 것은 이미 그대의 능력을 하는 바라, 내 구태여 무슨 말을 많이 하리오.  저 오나라의 장수 육항이 국경 강 고을을 두 번 맡아 군사상의 할 일을 다했던 것이며, 또 왕손이 죄인의 이름으로 일어나 능히 적을 소탕하는 공을 세운 것 같이, 그대는 충의의 마음을 굳건히 하여, 나라 건져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길 바라며, 이제 교지를 내리니 그대는 알지어다."


이렇게 왕이 잘못했다면서 빌어놓고는 품계를 돌려주진 않습니다. 임진년 때의 승리로 당상관이 넘치던 수군에서 그저 일개 수사의 품계인 정 3품 절충장군만 준 것이죠. 이후 명량에서 승리하고서도 품계를 안 올려주다가 명나라 장수들이 요구해서야 겨우 올려줍니다.

위에 징비록에 나왔던 상황을 생각하면 뭐 이상한 일은 아니죠. 왕 눈치가 있으니 품계를 손댈 순 없겠지만 이 일을 할 게 이순신밖에 없으니 최대한 저자세로 나오는 식이죠.

참 어이없는 일이었겠습니다만... 그에 대한 고민 역시 단 한 줄도 할애하지 않습니다.

"숙배를 한 뒤에 삼가 받은 서장을 써서 봉해 올리고, 이 날 바로 길을 떠나 곧장 두치 가는 길에 이르렀다."

이 날 일본군은 진주를 함락시킵니다. 땅으로 바다로 진격을 하고 있었죠. 수군 역시 적 수군을 피해 이순신과 따로 이동했고, 이순신은 뭍으로 이동했습니다.

그의 결심이 하루라도 늦었다면 모든 게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었죠. 그에게는 확실한 핑계가 있었습니다. 상 중이었으니까요. 안 받는 게 아니라 한두번 정도만 거절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나라의 운명 빼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죠. 하지만 그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로 길을 떠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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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르니까요. 다행히 그 때 적들은 남원을 공격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섬진강 쪽만 조심하면 되긴 했죠. 적을 피해다니면서도 병력과 물자를 최대한 모아야 했습니다. 특히 이순신 자신의 관할이었던 전라좌수영 쪽에 기대를 많이 했겠죠. 하지만 웬만한 곳은 전라병사 이복남이 청야하고 난 뒤였고, 관리들은 숨어 있었죠. 순천부의 창고는 놔두고 가서 어느 정도 가져가고 나머지는 땅에 묻었지만요. 이 과정에서 순천부사 우치적도 합류했고, 바다에 있던 거제현령 안위와 발포만호 소계남도 찾아옵니다. 전라좌수영 우후 이몽구도 합류했는데 특별히 곤장 80대를 쳤죠. 전라좌수영의 물자를 관리해야 될 이몽구가 도망쳤고 이 과정에서 전라좌수영의 물자들도 다 날아간 모양입니다.

아무튼 나름대로 장수와 병력도 늘고 물자도 어느정도 얻었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실망이었을 겁니다. 별 수 있나요. 이제 수군과 합류할 때였습니다.

이렇게 바쁜 가운데서도 선전관은 잘 찾아왔고, 그 때마다 수군의 상황을 장계로 올려야 했습니다. 7일에 원집을 만나 왕의 유지를 받고 수군의 상황을 담은 장계를 올렸으며, 15일에는 박천봉을 만납니다. 역시 바로 장계를 올립니다.

"5~6년간 적은 감히 호남으로 곧바로 쳐들어오지 못 하였습니다. 이는 수군이 그 길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죽기로 힘을 다 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 볼 만 합니다. 만일 수군을 폐한다면 이것은 적이 가장 기뻐하는 바로써, 호남을 거쳐 한강으로 올라올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지만,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 할 것입니다.微臣不死則不敢侮我矣."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 만약 이긴다면 가장 큰 이유, 그게 바로 자기라는 거 아닙니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자신감입니까.

... 그런데 저거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17일, 장흥까지 갔지만 배설은 배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에도 회령포까지 갔지만 배설은 배멀미를 핑계로 오지 않았죠. 그리고 그 다음 날, 왕의 교서가 왔는데 배설은 숙배(절)하지 않습니다. 이순신은 분노했지만 배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죠. 넘버 투에다 경상우수영 소속 배들은 다 그의 명령을 듣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것도 칠천량에서 자기가 직접 지휘해서 그 배들을 보존한 거였구요. 결국 아랫놈들만 엄한 곤장을 맞습니다.

20일에 진을 옮긴 후,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모양입니다. 곽란(설사)가 심해서 소주로 치료해보려고 하다가-_-; 더 심해져서 죽을 뻔 합니다. 이게 23일까지 이어지죠. 나라가 또 한 번 망할뻔한 순간이었습니다.

26일에는 신임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옵니다. 이렇게 13척이 됐죠. 적들은 계속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역시 싸울 곳을 찾아 후퇴하고 있었죠. 28일 어란포에서 첫 교전이 일어납니다. 적선 8척이 들어온 거였죠. 배설은 급히 도망가려 했고 이순신은 직접 나서서 싸워서 쫓아냅니다. 다음 날에 다시 함대를 진도 벽파진으로 옮기죠. 배설은 계속 도망가려고 했고, 이순신도 차마 직접 건드리지 못 하는 상황, 차라리 다행히도 30일에 배설이 아프다고 육지로 보내달라 합니다. 이순신은 선선이 보내줬고 이틀 후 배설은 도망가죠.

배설이 무능한 장수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이순신 밑에서 처음 있을때도 (원균과의 대비효과도 있겠지만) 이순신이 욕을 안 했고 (...) 칠천량 해전 때 유일한 공을 세우기도 했죠. 자기 휘하 병력을 잘 후퇴시켰고 지금까지 유지해 왔습니다. 도망가려면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죠. 최소한 이 때 도망간다면 욕할 자격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칠천량 이후 아예 조정에 실망해서 그들을 위해 싸우기 싫어서 그랬다, PTSD다 뭐 그런 말들도 나오는 거죠. 이후 배설이 자기 고향에서 뭔가를 꾸미다가 붙잡혀 죽은 것까지 포함해서요.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 때 배설이 도망가려 했고 진짜 도망갔다는 건 확실하죠. 그리고 이 덕분에 지휘권이 확실히 잡히긴 했군요.

9월 7일, 적선 13척이 공격해 옵니다. 탐망군관 임중형의 첩보를 통해 이를 알아냈고 바로 대응하자 적들은 달아났죠. 그는적들이 야습을 할 거라고 예측했고, 적들은 진짜 왔습니다. 이순신의 상선이 직접 앞장서서 싸웠고, 적들은 네 번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물러났습니다. 이게 끝일 리는 없었죠.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3일, 임진년에 승리할 때와 비슷한 꿈을 꿨다 합니다. 다음 날에 적선 2백여척 중 55척이 어란포에 왔다는 첩보가 왔고, 포로가 됐다 도망쳐 온 김종걸에게 적들이 조선 수군을 섬멸한 후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는 증언을 듣습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진 몰라도 대비를 해야 했죠. 피난민들을 모두 육지로 보냈고, 다음 날 15일에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깁니다.


명량, 울돌목, 이 좁은 해협을 등지고 싸울 순 없었습니다. 이 곳이 모든 것을 바꿔줄 열쇠였으니까요.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했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으니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오자에 나온 말이죠. 이와 함께 명령을 어기면 군율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이제 싸워야 할 때였습니다.

참... 이렇게 쓰기만 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뎌내서 명량까지 간 것일까요? 포기할 순간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조선에서 그를 욕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았는데, 오히려 하늘이고 인간이고 그에게 시련만 가득 주었는데요. 이름을 깨끗이 남기려면 그냥 죽기만 해도 됐어요. 자결을 하든 적진에 돌격을 하든 말이죠.

하지만 그러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리고 이순신의 관심은 그것 뿐이었습니다.

정유년 일기에는 송사를 읽은 독후감, 독송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립니다. 그것도 아주 확고한 어조로 말이죠. 그리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고,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겼죠.

9월 15일 밤, 꿈에서 신인(神人)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했답니다. 정말 꿈 하나는 기가 막히게 꾸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부담이 아주 조금은 덜어졌을까요?

그렇게 눈을 뜬 이른 아침, 마침내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 그 역시 바다로 나아가죠.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만에 하나 나라를 건질 도리를 찾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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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바꾸다
14/12/04 00:40
수정 아이콘
나중에 13척이 되지만 12척은 전반 내내 장식이였던거 보면....
눈시BBand
14/12/05 09:24
수정 아이콘
응원단도 못 됐죠 -.-
아칼리
14/12/04 00:48
수정 아이콘
오죽 급했으면 천하의 선조가 저렇게 저자세로 나왔을까요.
눈시BBand
14/12/05 09:25
수정 아이콘
다 원균 때문 아니 덕분입니다 _-)b;
자판기냉커피
14/12/04 00:55
수정 아이콘
진짜 기록을 파보면 파볼수록 선조는 소인배같아요...
뭐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염치란게 있으면....
눈시BBand
14/12/05 09:29
수정 아이콘
소인배가 저런 상황에 빠지니 그게 잘 드러난 거죠 뭐 ㅠ
어제의눈물
14/12/04 01:10
수정 아이콘
이순신에 관한 기록은 보면 볼수록 존경심만이...
눈시BBand
14/12/05 09:29
수정 아이콘
장군님은 찬양 뿐입니다 _-)b
김티모
14/12/04 01:11
수정 아이콘
제가 어릴때만 해도 선조가 이렇게 까이는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어느틈엔가 거의 말년 손제리급으로 까이더군요... 근데 역사서들 보면 까일 수밖에 없...; 왕한테 그나마 최대한 유하게 써준 사서에도 저지경인데 실제로는 어땠을지 후덜덜합니다.
눈시BBand
14/12/05 09:31
수정 아이콘
사료들은 기본적으로 왕을 직접 까지 않고 (위의 징비록처럼요) 그걸 가지고만 연구하면 왕은 우유부단하고 머리 나쁜 게 문제일 뿐 잘못은 신하들이 했다 요런 쪽으로 많이 가죠. 요새는 그런 껍데기가 벗겨진 거죠 '-'
피아니시모
14/12/04 01:14
수정 아이콘
보면 볼수록 원균과 선조는 까야 제맛이고
배설의 저 마지막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칠천량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음에도 저런 행동을 했는지..ㅠㅠ
14/12/04 10:17
수정 아이콘
사실 칠천량에서의 행동도 "공"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애매하고...
김경진의 임진왜란에서는 배설이 숙배를 거부한 점, 이순신 통제사의 난중일기 서술 방식 등을 바탕으로 "배설이 당시 조선 조정에 염증을 느끼고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죠.
(그렇지 않은 예도 당연히 많이 있지만,) 충성스러운 장수는 이겨서 선조에게 죽든(이순신,김덕령?, 신각?) 져서 적에게 죽든(이억기, 최호) 죽고 무능한 장수는 도망쳐서 사는(원균, 배설, 김억추?)게 당시 전쟁의 진행방식이라면, 수십배의 적을 향해 무모하게 돌격하느니 그냥 조용한 곳에 숨어 사는게 현명한 행동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대에 "안위야! 네가 도망간들 살 것 같으냐!"를 외쳤던 통제공에게서는 광기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당연히 도망가야 살죠-_-;; 당시 조정에서는 몽진을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로 죽어라 싸우고 있던 판국인걸요?(orz)
눈시BBand
14/12/05 09:34
수정 아이콘
크크크 그렇죠. 도망가야 살죠 -_-;
눈시BBand
14/12/05 09:34
수정 아이콘
뭐 어쨌든 1천척의 적과 싸우라는 게 미친 짓이긴 했습니다. -_-; 밑에 장수들이 대장을 보고 있으니 자기도 그 중압감을 다 받았겠죠. 더 싸울 생각은 없었는데 이순신이 다시 와서 싸우자고 하니... 뭐 이게 제일 크긴 하겠죠.
서린언니
14/12/04 01:39
수정 아이콘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인재들만 모여있던 조정을 가지고 선조가 하는짓이 참;;;
눈시BBand
14/12/05 09:36
수정 아이콘
그렇죠 뭐 ( ..)
피아니시모
14/12/06 00:42
수정 아이콘
그래도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악의 군주와 최악의 조정풀을 갖고 똥만 싼 인조도 있는데요 뭐..(..)
뒹굴뒹굴
14/12/04 01:42
수정 아이콘
내가 있으니 개안을거임.. 이라고 얘기하는..
언제봐도 참 대단한 말이라는 생각이드네요.
눈시BBand
14/12/05 09:39
수정 아이콘
정말 엄청난 말입니다 --)b
14/12/04 02:41
수정 아이콘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 역사는 우리가 아는대로 흘러갔고, 그렇기에 그를 존경하는만큼 선조가 더 미워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밑의 이순신의 장계가 가장 명대사겠지만, 항상 언급하는 내용이니 전 이 문구가 마음에 드네요. 이 문구에 힘을 팍팍 쓰신 것도 알겠고요. 잘 읽었습니다.
눈시BBand
14/12/05 09:41
수정 아이콘
>_<) 네 진짜 한 글자 한 글자 딱딱 썼습니다. 그 이상의 말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감사합니다 '-'
HOOK간다.
14/12/04 03:56
수정 아이콘
캬.. 주모~~!!!!
눈시BBand
14/12/05 09:43
수정 아이콘
여기 장군뽕 하나요 >_<)
하늘빛
14/12/04 08:06
수정 아이콘
드디어 올 것이 왔군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명량에서 졌다면 몇 백년은 앞서서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났을지도? ㅡ_ㅡ;
눈시BBand
14/12/05 09:43
수정 아이콘
뒤를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ㅡ_ㅡ;;;
... 아 은근히 재밌는 상상이긴 합니다
말하는대로
14/12/04 08:49
수정 아이콘
선조에 관련된 글 볼때마다 리더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고 갑니다.
어떻게 저 인재들을 데리고도 (하필이면) 원균의 편을 들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했던건지.. 마지막의 마지막에라도 이순신을 떠다밀다시피 통제사로 임명한게 천만다행인듯..
눈시BBand
14/12/05 09:46
수정 아이콘
무과 쪽이라서 그런 거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무 쪽으로 밝았던 왕은 별로 없었으니까요.
뭐 그렇네요 ㅡ.ㅡ
PoeticWolf
14/12/04 09:51
수정 아이콘
아... 이놈의 오전 업무 ;; 일단 선추해놓고 점심 때 정독하러 갑니다.


좀 자주 쓰세욧!!!!!!!!
눈시BBand
14/12/05 09:48
수정 아이콘
크크 >_< 시적늑대님도 자주 써주세요~
14/12/04 12:21
수정 아이콘
안그래도 언제쯤 글 쓰시려나 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지도 같은거 리부트 안하셔도 되니 연재사이 텀만 좀 줄여주시면 참 좋을것 같다는...크크
눈시BBand
14/12/05 09:48
수정 아이콘
크크 감사합니다. 저도 자주 쓰고 싶은데... ㅠㅠ 일단 올해 안엔 끝낼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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