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4/12/02 17:38
악 주파령 맞습니다. 이 부대 시설에대한 썰만 풀어도 참..
갈수기엔 씻지도 못하고 장마엔 흙탕물로 씻어야하며 일년에 두세번은 장염이 돌죠.. 애초에 계곡물이 바로 정수기로 들어가는데 정수기가 무슨 신의 기계도 아니구요 크크
14/12/02 17:35
두번은 안가야죠...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라는걸 배우게 한 곳이 군대였던것 같습니다.
부대장의 진급열의(Max), 주임원사의 꼼꼼함(Max), 행보관의 눈치(Max), 중대장의 서열순위(Min), 중대간부의 개념도(Min) 오위일체가 된 그 부대는 .......... 크크크크크크크크.. 그래도 분대장의 능력(Max), 내무군기(Max) 덕분에 생각외로 크게 군생활이 힘들다 느끼진 않게 되긴 했습니다. 아 분대장을 다니 오위일체의 공포를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_-;;
14/12/02 21:28
부대장-행보관-중대장이 진급심사 대상자인 경우도 참 즐거웠(?)다는 경험보고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면회갔다가...)
특히 이번에 못달면 '끝'인 분이 한분 계셔서 아주... 하다던 말이...
14/12/02 17:46
저도 짬을 먹고 악습을 많이 없앴었는데 그게 그러다보니 필요이상으로 친해지기도 하고, 일을 내가 더 하게 되는 것도 있고 그렇게 되더군요.
전역 2~3달 쯤 앞뒀을 때는 우리가 너무 풀었나... 하는 푸념을 제 맞선임과 하기도 하고 그랬죠.
14/12/02 18:44
아 100키로 행군 생각나네요... 전날8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4시에 복귀했는데 산을 몇개를 넘었는지.. 12시쯤에 막사가 보이길래 다왔다고 좋아했는데 막사 바로옆 산길로 다시 올라갈때의 절망감이란... 근데 행군하던날밤에 다 널부러져서 쉬고있는데 하늘에 무언가가 8자를 반복해서 그리며 동에서 서로 날아가던데 그게 진짜 뭐였을까 아직도 궁금합니다... 100명이 본거라서 잘못본것도아니고..
14/12/02 18:44
방탄에 방탄내려치는 것과 전투모 쓰고 있을때 모자챙을 치는게 수치심 장난 아닌데....ㅠ
저는 진지하게 맞은게 아니라 이런게 있었다. 하면서 그냥 경험해보라고 선임들이 맛뵈기만 보여준거긴 한 건데도 순간 화가나서 얼굴 벌개졌습니다. 저도 훈련복이 터져서 RCT를 두번에 말출 전에 두번째 유격까지... 부들부들... 저도 있을때 정말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를 돌아본다면 후회가 남지 않는 생활이여서 다시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14/12/02 19:11
20사단 복무했었습니다. 지독하게 훈련 많이 뛰었고 공사판에서 무릎다치고 뭔놈의 공사판을 그렇게 많이 갔던지... 말출전에 유격도 뛰고 별짓 다해봤죠.
군생활을 못한것도 있었고 사람들이랑 맞지도 않아서 농담아니고 운좋아서 포상휴가라도 자주 나갔다 오지 않았으면 임병장꼴 났을거 같아요. 다신 가고싶지 않습니다. 재입대 하라고 그러면 그냥 범죄자 되는게 낫겠다 싶을정도로요.
14/12/02 19:36
27사단 보병 05년 군번입니다.
다만 연대마다 분위기가 달랐고 저희연대는 2대대는 또 따로 독립적인 위치에 있어서 분위기가 달랐습니다만 저희 연대내에서는 짜잘한 악습 있었으나 2006년 들어 대대장이 다 없앰.(샴푸.폼클렌징등 목욕용품 이등병 못씀. 매트리스 깔아주고 관물대정리해주기 등등) 원래 청소 업무등은 업무분담제에 의해 나눠서 함. 말년이라고 열외하는거 없음. 구타는 입대당시에도 없었음. 내무생활 그리 빡세지않음. 대신 훈련량은 글쓴이보다 더괴랄.기본적으로 군생활730일중 300일정도는 밖에서텐트치고잔듯..feba부대의숙명.. gop같은 경계근무가없고 오로지훈련 또 훈련.훈련시 군기 더럽게잡음. 가끔 정신못차리는 후임들의 하이바가격등의 순간적 구타는 묵인됨. 훈련은 실전같이. 내무생활은 편하게가 일반보병소대에선 기본마인드였음. 내무실에선 선후임하하호호 즐거운분위기가 많이연출. 언어적 갈굼은 적당량 있었으나 피말릴수준은아니였음.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연발로 어정도 상쇄가능.
14/12/02 20:59
저도 5연대 였습니다 크크크
저는 운좋게도 신병때부터 GOP에 있어가지고 feba에 짬 좀 차고 내려와서 내무생활은 크게 힘들진 않았던거 같아요 feba 내려와서는 주파령 독립중대에서 생활했는데 일단 PX가 없어서 불편했고 간부가 적어서 편했습니다(?)
14/12/03 09:35
11년도에 주먹으로 가슴을 맞아 침상 끝까지 날아가는 모습을 보셨다니...
요즘 이병장 사건도 그렇고, 군대가 거꾸로 가는 느낌이네요. 제가 입대한 02년도에도 갈구는거야 있었지만, 구타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죠.. -_-;;
14/12/03 11:03
7사단 민통선 수색대 옆에 기생(?) 하고 있던 정비대대 근접2중대(영외중대) 05군번 운전병입니다. 반가워요
저는 군생활을 너무 즐겁게 한지라.. 흐흐흐 간단히 풀어보자면, 1. 자대전입 후 몸좋다고 그날 바로 끌려가서 (다부진 몸매지만 겁나 좋진 않습니다 키두 작구요) 중대 팔씨름 3, 2, 1위와 차례로 붙었습니다 (차례로 붙음 당연히 지는데,.,. 는 꿀꺽 삼키고) 일단 3위 꺾었는데, 힘빠져서 2위에게 졌죠.. 그 이후, 팔씨름 순위권 강자가 없었던 저희 분대 상꺾들이 좋아하며 바로 전입 일주일도 안되서 일과 후 운동을 같이 할수 있게 해줬죠.. (그때 저희 중대에서 이등병은 운동금지였어요.. 그럴 힘 있으면 일 더하라고) 2, 근데 이 사건이후 못되먹은 일병 두명이 이 일로 저를 아니꼽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로 갈구기 시작했죠. (정비대대 소속 운전병이기에, 미션 내리고, 엔진 내리는 정도 아니면 직접 정비를 다 했어야 했습니다) 운전보다 정비로 갈굼을 당했다는,, 그래서 열받아서, 5톤을 제외한 1/4톤, 5/4톤, 2 1/2톤(2돈반)의 모든 정비 교본을 한달정도 이해 될때까지 읽고 또 읽고, 기동 정비반 고참들에게 계속 물어가면서 완전히 이해한 후에 군생활이 활짝 폈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인재가 되었.. 3. 모두에게 인정받으면서 멘탈을 잘 간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애들 안괴롭히고, 상병 달자마자 인정받았고 고참들은 집에 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기에 레벨제한 다 풀어버리고, 생활관에서 욕한마디도 잘 안나오게 맹글었습니다. 그리고 병장되고 나서도 이등병 일병이랑 똑같이 일하고, 애들 많이 챙겨 주려고 노력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악습을 바꿀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구요 4. 여튼 제대 전일, 제 윗 선임들 모두가 당하던 멍석말이(모포로 말아서 불끄고 밟는.. 지금까지의 울분을 내 터보 발바닥으로 분출!)를 처음으로 안당했습니다. 제 후임들이 타 분대에 하면 죽인다고 절 지켜주었더군요 (사실 각오했었는데 살짝 감동) 5. 담주 일요일에 절 갈구다가 인정한 1년 선임병이 결혼을 합니다. 근데 시간없다고 모바일 청첩장을 줘서 갈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크크크 근무시간에 짬짬이 써봤는데, 집중이 안되서 그런지 글이 두서가 없고 내용도 없고,, 그렇네요 크크 하고 싶은 말은 참 산더미인데.. 나중에 저도 정리해서 올려볼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