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12/01 14:03:06
Name 사악군
Subject [일반] 내 보따리는 어디있소? (나는 사람목숨을 구한걸까의 후일담)
흠..제목이 적당한지 잘 모르겠군요. 가끔 느꼈던 감정과 이 건이 유사하게 느껴져
제목을 달긴 했는데 좀더 파고들어보면 이 사건에서는 결국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진 건 아니기 때문에 부적절한 제목인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 썼던 사연의 뒷얘기입니다.
https://pgr21.com/?b=8&n=51067

------------

이후 저 분의 사건은 제가 직접 진행한 것은 아니고, 저희 부서의 다른 친구가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상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였죠.

그런데 소송을 진행하다보니.. 상대방이 나중에 변호사를 샀는데
합의서와 부제소 합의서를 증거로 내놓네요..?? (변호사는 뭐하러 샀지..)

합의서는 형사사건 당시 의뢰인과 상대방 사이에 *00만원을 받고 민형사상 합의를 하고
처벌을 원치 않는 한편 민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부제소합의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이 분은 저희에게는 돈을 이미 받았다거나 이런 합의를 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었구요.
그래서 벙찐 저희는 이런 합의를 한 것이 사실이냐..라고 확인하자
돈을 받은거나 합의를 한 건 맞는데 강압과 협박에 의한 합의였다..라 이야기하면서
협박에 대한 입증자료는 전혀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신빙성이..없... 의뢰인이 순진한 시골처녀나 문맹 할배도 아니고...
충분한 사회생활 경험 및 형사고소 관련 경험도 있는 사람이었는데다가
이미 고소를 통해 수사 등 사건이 진행중이고 당시 병원에 있었는데
병원에서 강제로 끌려나가 구청에 가서 인감증명서를 발부받아 줬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기가 어려운 내용이었죠.
뭣보다 저희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그동안 숨겨왔다는 것이 치명적이기도 하구요.

이런 경우 저희는 더이상 소송구조를 진행하지 않는, 구조중단 절차를 밟게 됩니다.
저희는 의뢰인에게 돈받고 일하는 기관이 아니라 공단재정+국고보조로 비용을 들여 일하는 곳이니만큼
승소가능성이 없고, 의뢰인이 공단을 기망하여 신뢰관계가 깨지는 등 소송구조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음을 이유로 더 이상 의뢰인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소송대리인에서 사임한다는 거죠.

이후 이 의뢰인에게는 소각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소송대리에서는 사임했으나 같은 재판부 재판에 들어가니까 자꾸 보게 되더라구요-_-)

그런데 며칠전, 왠 기자라는 자들이 사무실에 찾아왔다네요.
다짜고짜 찾아와서 녹음기를 들이대고 담당자에게 이것저것 물었다는데 (당시 저는 재판중이라 자리에 없었음)

질문의 요지는 저 의뢰인이 법률구조공단에서 내 일을 불성실하게 처리하고 사임하는 바람에 내가 재판에서 졌다고
기자에게 찔렀다는 거고 기자는 그 전제하에 사건진행을 제대로 했는지 취재를 위해 왔다는 겁니다.
(패소하게 되면 상대방 변호사 비용도 물어내야 하니 소를 취하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을
소송비용을 들먹이며 자신에게 소취하하라고 상대방 편을 들며 협박했다고 각색한 것은 덤.)

담당자는 좀 당황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 인터뷰 하고 나서 많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더라구요.
잘못한 건 없지만 기사가 잘못한 것처럼 나면 골치아프니까요. 녹음될때 약간 짜증낸 것도 걱정되는 모양이고..
뭐 잘못한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려 놓고 기자랑 통화하면서 상황설명 좀 더 하긴 했는데
어째 듣는 태도가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알아들을 의사가 없는 듯)
혹시 기사를 쓰게 되면 연락은 주겠다 정도로 이야기가 끝났네요.

뭐.. 물에빠진 사람 건져 놓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고 하죠.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제가 한 건 직접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놓은 건 아니고
구조대에 신고한 것 뿐이니 저 속담에 바로 들어맞는 얘기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소송에 있어서도 도중에 구조중단을 했으니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놓은 사례는 아니니
비유라 하기에도 애매하죠. (승소를 해도 보따리 내놓으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저 속담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네요. 그래서 딱 맞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저 속담을 제목에 썼습니다.

스스로는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꼭 실제로 억울한 건 아닙니다.
그냥 남한테는 엄하고 자기에게는 관대한 사람들이 억울함을 더 많이 느끼죠.
그리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기도 쉽고요.

판사에게 석궁 쏜 교수가 있었죠. 오죽 억울하면 그랬을까 얘기를 많이 하고요.
저는 오죽 독선적이고 오죽 성격이 모났으면 그랬을까 라고 얘기합니다.

이상행동들은 그 사람의 주관적인 감정을 보여주기는 하죠.
슈퍼에서 진상부리는 사람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화가 나지 않음에도 화를 꾸며서 성질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당당합니다. 그 사람들의 세계에선 자신의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침해당했고
나는 정당하게 화를 내서 내 권리를 쟁취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진심으로 화가 나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의 옳음이나 상대방의 악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

그때 이 의뢰인이 죽어버렸으면 이렇게 우리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았겠죠.
이런 섬뜩하고 악한 생각을 하다니.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놀라고 반성하고, 뇌리에서 그런 생각을 지워냅니다.

그래서 저는 저 의뢰인이 밉습니다.
제 안의 악을 자꾸 들여다보게 해서요.

-------
비슷한 주제의 만화 하나 첨부합니다.

http://blog.naver.com/kionc123/220208735944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레지엔
14/12/01 14:07
수정 아이콘
더 드라이하게 더... 를 현대 전문직의 필연적인 태도라고 보더군요. 바꿔말하면 소비자는 더 끈적하게 더를 요구하고, 필연적으로 '진상'의 증가를 늘린다고도 하고. 정말 개고생하셨네요...
사악군
14/12/01 15:20
수정 아이콘
사실 제가 직접 담당한 건이 아니라서 실제 고생한 건 별로 없고
이런 클레임 자체도 많이 겪는 일이긴 한데
이전 경험 + 이런 클레임이 결합된 사례는 좀 충격적이어서..-_-...기분이 참 그러네요.
14/12/01 14:13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네요.

세상을 살다보니, 상식적인 사람 만나기 참 쉽지 않더군요.
사악군
14/12/01 14:58
수정 아이콘
사실 상식적인 사람을 더 많이 만나긴 합니다..^^
그런데 상식적인 사람 만난 이야기는 화제거리가 안되니까요. 헤헤
王天君
14/12/01 14:16
수정 아이콘
유게의 전태규씨 하소연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군요.
Rorschach
14/12/01 14:16
수정 아이콘
섬뜩하고 악한생각 아니라고 봅니다.
사악군
14/12/01 15:54
수정 아이콘
사실 아직은 뭐 기자가 찾아와서 불쾌한 질문 좀 하고 갔다.. 이상의 뭐가 없으니까요.
이 정도의 불쾌함과 의뢰인의 생명을 저울에 놓는 것은..그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심군
14/12/01 14:22
수정 아이콘
사람은 거짓말을 하죠.

개인적으로도 소송을 걸어본 적도 있는 입장에서 그 모든 과정들이 공감이 가더라고요. 결국엔 소송이란 게 잘잘못을 가리는 솔로몬의 판결이 아니라 서로간의 정보와 돈을 탄알삼아 벌이는 전쟁처럼 느껴지더군요.
소독용 에탄올
14/12/01 15:53
수정 아이콘
판사가 독립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판사'가 사회적 맥락이나, 관계들로부터 절연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법률은 그 '성립'단계에서부터 정치적인 활동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사법체계 역시 학술적 의미에서의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해당하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화씨내놔
14/12/01 14:22
수정 아이콘
하. 대체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걸까요?
14/12/01 14:24
수정 아이콘
억울해 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억울해 하지만 실제로 억울한 건 아니다 이 말이 진짜 공감되네요...
사실 어릴 때는 나도 공익을 위해 뭔가 크게 기여하면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나의 호의가 꼭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서 요즘은 살짝 회의감이 들고 있습니다.
엘핀키스
14/12/01 14:42
수정 아이콘
구조공단에 계시나(혹은 계셨나) 보네요. 이 쪽 시장뿐만 아니라 세상 어딜가도 고객들은 보통 그렇다 생각하긴 합니다.
이쥴레이
14/12/01 14:48
수정 아이콘
저도 요즘 소송건2개 준비중인데 골치가 아픕니다. 30대 이전까지는 재판이니 소송이나 고소 고발등..다 다른세상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어떻게 30대 지나면서 다이나믹해졌네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기에 피해를 주지도 피해를 받지도 않았는데.. 이거 이제 홀몸이 아니다보니 참 세상살이 어렵게 느껴지네요.
사악군
14/12/01 15:22
수정 아이콘
참 피곤하죠.. 저희 직종하고는 엮이지 않는게 최선인데 점점 엮이는 분들이 많아지고 계셔서..
대패삼겹두루치기
14/12/01 15:48
수정 아이콘
호의가 둘리가 되어 돌아왔군요...
글만 읽었는데도 짜증나는 상황이네요. 맘 잘 추스르셨으면 좋겠습니다.
바위처럼
14/12/01 15:54
수정 아이콘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모든 직종에게 관료제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섬뜩하죠. 내면의 악이 어느순간 내가 보호해야할 것들(작게는 개인의 안녕부터 크게는 가족까지)앞에서 타당해지는 순간들을 마주치고 긍정하게 만드는 시간들이...

옳은일과 좋은일을 하는게 정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악해서, 못되서라기보단 그냥 많은 사태들에 대한 방법론적 해결책들이 서로를 그렇게 이끄는 것 같아요. 무서운 구조.. 고생하셨습니다.
하심군
14/12/01 15:56
수정 아이콘
근데 천천히 보다보니까 슈로대에서 10% 명중 맞추려고 계속 리셋노가다 하는 광경이랑 겹처보이는 제가 이상한걸까요.
곧내려갈게요
14/12/01 15:58
수정 아이콘
아찔하네요
Outstanding
14/12/01 15:59
수정 아이콘
나 죽는다 이러고 자살시도 한거 보면 그냥 태생부터 개진상이 아니었을까요..
14/12/01 16:28
수정 아이콘
생각이 많아지는 글인데 낯설지가 않네요. 학교에서도 규모만 작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애들은 성장하는게 아니라 몸집과 담만 커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교육 무용론이 피부에 와닿을 때가있는데 이 글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네요. 고생 많으싶니다. 사악군님도 동료분도 별 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7747 [일반] 부정청탁법 시행과 관련한 픽션 [405] 사악군11590 16/09/29 11590 1
67437 [일반] 블랙머니 사기 이야기 [29] 사악군9557 16/09/05 9557 9
67384 [일반] [8월놓침] 운동권의 추억 [51] 사악군6891 16/09/02 6891 15
66808 [일반] 인천상륙작전 감상. 개인평점 7점. [스포] [35] 사악군6696 16/08/06 6696 7
66756 [일반] 오! 한강의 한 장면. [57] 사악군8910 16/08/03 8910 12
66231 [일반] 우간다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난민사유 [39] 사악군9138 16/07/08 9138 88
65467 [일반] 라이온수호대 8화ㅡ 디즈니의 인종차별 [4] 사악군6398 16/05/30 6398 1
65466 [일반] 삐라의 추억. 2016리메이크 판. [24] 사악군3716 16/05/30 3716 0
65067 [일반] [스포] <미스컨덕트> 알파치노+앤서니홉킨스+이병헌->디워이래최악.. [14] 사악군6281 16/05/09 6281 4
64854 [일반]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안돼. [32] 사악군9115 16/04/26 9115 18
64436 [일반] [공지] 규정 작업 게시판을 종료합니다 [3] OrBef3739 16/04/03 3739 0
64401 [일반] [프로듀스101]은 진보세력의 비수 [22] 사악군6621 16/04/01 6621 20
63096 [일반] 복지부동이 짱이다 [78] 사악군7649 16/01/14 7649 43
61429 [일반]  규정작업을 시작합니다. [9] 항즐이3872 15/10/11 3872 5
61112 [일반]  규정작업 위원 추가 모집 [32] 항즐이3144 15/09/22 3144 0
60557 [일반] [본격 육아] 아이의 진로 선택 [47] OrBef5428 15/08/26 5428 0
60187 [일반] PGR21 간담회 '공감' 사전 질문에 대한 답변 정리 [8] crema4216 15/08/04 4216 1
57183 [일반] 간통죄 위헌결정 이후 들어온 일 한가지. [71] 사악군10991 15/03/26 10991 2
56762 [일반]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20] 사악군5517 15/02/26 5517 0
56331 [일반] 나는 갑질을 하고 있나, 아니면 호구인가. [15] 사악군5850 15/02/03 5850 5
55997 [일반] 어린이집 cctv 의무화에 대해 [24] 사악군5988 15/01/16 5988 0
55229 [일반] 검찰청 전화가 이상하다. [11] 사악군6585 14/12/03 6585 4
55185 [일반] 내 보따리는 어디있소? (나는 사람목숨을 구한걸까의 후일담) [20] 사악군4724 14/12/01 4724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