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11/22 14:18:18
Name 無識論者
Subject [일반] 세계 최초의 무신론 국가, 알바니아


동유럽에 수많은 '아'자 돌림 나라 중에 알바니아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 반도에 위치한 나라죠. 인구수는 300만 정도에 불과하고 면적은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정도이며,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이루어져서 궁핍한데다가 역사의 대부분을 타민족에게 지배당하며 보냈기 때문에 별로 유명할게 없는 나라입니다만, 알바니아가 역사적으로 이웃나라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이 세가지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서 이슬람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점.
둘째, 한때 북한과 맞먹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였다는 점.
셋째, 세계 최초로 무신론 국가를 선포한 나라였다는 점.

이 중 둘째와 셋째 항목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유명한 독재자 중 한명인 '엔베르 호자' 선생 되시겠습니다. 



위에서 북한 얘기를 했는데, 이 '엔베르 호자'라는 인물은 그 경력에 있어서 김일성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일제에 대항한 독립군 출신인 김일성처럼 호자 역시 이탈리아와 독일 침략군에 맞서서 게릴라전을 펼쳤고 아예 그들을 몰아내기까지 했지요. 민족주의를 강조했다는 것, '혼자 놀기' 식의 폐쇄적인 독재체제를 선호했다는 것, 본인을 신격화 했다는 것도 아주 판박이입니다. 당연히 그의 주도 아래 있었던 당시 알바니아 사회 또한 북한과 비슷했기에 오늘날 북한에 관심이 많은 학자들은 알바니아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호자의 사상적 특징은 철저하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마르크스-레닌주의자(그리고 스탈린주의자) 였습니다. 그는 주변 국가들을 언제나 '알바니아를 집어삼키려 드는 잠재적인 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조금만 사이가 틀어지면 상대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벗어난 수정주의자'라 비난하며 국교를 단절시키곤 했죠. 1945~48년은 유고슬라비아와 친하게 지내다가 뻥 차버렸고, 1948~61년은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에 의해서 스탈린 독재정치에 대한 비판이 소련 내부에서 나오면서 소련과 관계를 단절합니다. 1961~72년은 마오쩌둥이 집권중이던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는데 이후 덩샤오핑 등 개혁파가 집권하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하자 중국도 사상이 틀려먹었다며 퇴짜를 놓죠. 알바니아가 중국과 친할 당시 북한 역시 친중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는데, 같은 노선을 탄 알바니아와 북한은 이 시기 급격하게 친해집니다.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극동의 알바니아']로 불리게 되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알바니아가 ['동유럽의 북한']이지만요. 아 물론 북한과도 70년대 이후로는 사이가 나빠지자 호자 고유스킬 ["너 수정주의자!"]를 시전하고 절교해버립니다.

이런 식으로 국교라는 국교는 모조리 차단해버리니 우방이라는게 남아날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 호자의 적대감과 피해망상은 더욱 심해져서 자본주의 국가의 우두머리인 미국이나 주변 국가들이 침략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국방력 강화를 위해 [전국에 75만 개의 벙커와 방공호를 설치합니다.] 예. 경기도+강원도만한 땅 크기에 무려 75만개요. 전 국토를 뒤덮고도 남을 정도였고 당시 알바니아에는 과장 좀 보태서 사람 사는 주택보다 벙커가 많았다고 하죠.









호자 : 3연벙으로는 부족하지. 75만개쯤은 되야....

 


폐쇄정책과 각종 무리수 때문에 나라 살림은 갈수록 망가져가는데도 호자는 1967년에 남들이 안하던 짓을 또 하나 저지릅니다. 세계 최초로 무신론, 무종교 국가임을 선포한 거죠.






공산권 국가에서 무신론의 이름하에 종교를 탄압한건 흔한 일입니다만 그 스탈린이나 모택동도 대놓고 못하던 짓을 이 인간은 해냈습니다. 알바니아는 역사적으로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를 차례로 받았기에 국민 거의 모두가 종교를 믿으며 다수의 이슬람 신자와 소수의 기독교인이 섞여있었는데, 호자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므로 우리는 이 진실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도록 해야 하며, 이미 중독된 사람들도 그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치료해야만 한다."](어디서 많이 듣던 주장인데...)라고 외치며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갑니다.

사실 1967년 전에도 탄압은 꾸준히 가해왔습니다. 종교단체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기본이고 일반민중의 종교적 믿음을 약화시키기 위해 [무신론 운동을 언론, 교육, 모든 공공단체를 통해 실시했으며] 종교적 내용을 담은 서적의 출판은 일체 금지시켰습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우리 말 잘 들으면 개인적으로는 종교활동 하게 해줄게" 수준이었지만 1967년부터는 헌법으로 종교를 금지시키고 무신론-무종교 운동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표방합니다. 이 당시 알바니아에 존재하던 수많은 모스크나 교회는 모조리 파괴 및 폐쇄당하고 운동경기장이나 창고로 개조당했습니다. 당연히 종교 신자들은 체포되어서 각종 고문, 처형을 비롯한 불이익을 받거나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되죠. 1967년 한해에만 1600여 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인민의 마음을 오염시키고 정권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했다는 명분으로 처형되고 어떤 신부는 무슬림과 가톨릭 신자들을 모아 종교행사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26년간 강제수감을 당합니다. 호자의 집권기간인 41년 동안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6천여 명이 처형 당했고 2만6천여 명이 투옥되었으며 3만2천여 명을 강제 이주시켰고 7천여 명이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 

 








호자의 정책의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면, 무척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썼지만 어쨌든 종교와 정치를 완전히 분리시켰다는 겁니다. 그리고 박해받던 종교인들이 서로를 숨겨주고 도와주며 신뢰감을 쌓은 덕분에 알바니아는 다수의 무슬림과 소수의 기독교가 공존하며 북부는 로마 카톨릭, 중부는 이슬람, 남부는 그리스 정교 등으로 나누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종교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선출 직후 유럽에서 알바니아를 가장 먼저 방문하며 "종교적 화합의 모델"로 꼽은적이 있죠.
(테레사 수녀의 사진이 나온 이유는 그녀가 바로 알바니아인이기 때문)

하지만 호자의 이런 종교 정책이 오히려 알바니아의 종교 생태계를 망쳐놓았다는 분석도 있는데, 호자 집권 이전에도 알바니아는 종교 관련으로 비교적 평화로운 국가였지만 탄압 때문에 종교 기반 시설들이 무너졌고 종교 지도자들이 학살당해 이것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외국의 지원을 받게 되자 거기에 편승해서 원리주의나 근본주의 종파들이 들어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1985년이 되자 호자가 죽고 후임자가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이미 알바니아의 경제는 완전 파탄 상태였고, 90년대에 들어 다른 동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화가 이뤄집니다. 장기간 폐쇄적인 정책을 고집해온 후유증 때문에 여전히 경제 상황은 엉망에 혼란은 지속되고 있고, 지난 2008년에는 호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그래도 호자 시절이 좋았다" VS "독재자 아웃"을 외치는 세력들이 대치하는 등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호자 정권의 상징인 벙커는 워낙 숫자가 많은데다가 죄다 철거할 여력도 안되서 알바니아의 골칫거리인데


 





이렇게 해체업자들의 돈벌이가 되거나










호텔이나 카페, 혹은 관광명소로 개조하는 등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예전에는 알바니아가 민주화 된 것처럼 우리 윗동네도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3대째 세습을 착실히 진행해오는 것만 봐도 역시 알바니아와는 클라스가 다른 국가인 것 같습니다. 이만 총총.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4/11/22 14:25
수정 아이콘
국가가 종교에 간섭하면 참... 문제가 많이 생기죠. 독재자가 내세우는 건 허울 좋은 명분 뿐이죠 크크.
無識論者
14/11/22 14:33
수정 아이콘
정교분리란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정치권의 종교탄압을 금지하는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당근매니아
14/11/22 14:30
수정 아이콘
껄껄
無識論者
14/11/22 14:32
수정 아이콘
깔깔
소독용 에탄올
14/11/22 16:46
수정 아이콘
호텔 사진 아래에 아마 카페사진일 부분이 엑박으로 나옵니....
無識論者
14/11/24 19:45
수정 아이콘
늦게나마 충고 좀 해주자면 할말이 없으면 그냥 댓글을 달지 말기 바랍니다. 안쓰러워요.
당근매니아
14/11/24 19:50
수정 아이콘
아뇨 그제 바빠서 모바일로 달고 넘어갔습니다.
가소로운 저의를 굳이 끌어내 까는 것도 무의미할 거 같아 넘겼는데 뭐 지금이라도 드잡이질하자고 하신다면 응해드리죠:)
가브리엘대천사
14/11/22 14:34
수정 아이콘
아.... 저게 벙커였군요. 무슨 솥뚜겅인 줄 알았네. 마지막에 호텔로 개조한 건 경치는 좋은데 내부는 과연 어떨지.... 흐흐. 종교가 완전히 달라도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네욤.
지바고
14/11/22 14:42
수정 아이콘
아주 지독한 지도교수님 하에 있는 대학원생들이 서로 친해지며 유대관계가 돈독해지는 원리와 같다고 볼 수 있겠군요....
유리한
14/11/22 15:06
수정 아이콘
역시 회사에서도 상사나 갑이 x같으면 아랫사람들끼리는 엄청 잘 뭉치게 되죠. 크크
14/11/22 15:13
수정 아이콘
북한은 언제쯤 김씨왕조가 무너질까요?
14/11/22 15:22
수정 아이콘
무적의 추억 뽕 "그래도 옛날이 좋았지."
14/11/22 15:28
수정 아이콘
추억 보정은 여느 나라도 똑같군요.
라이트닝
14/11/22 15:57
수정 아이콘
딱 반대되는 나라도 있는데 인도네시아는 무신론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극렬반공국가인데다 종교색도 강해서 무신론자=공산주의자로 취급하죠.
그래서 모든 국민은 반드시 이슬람교/카톨릭/개신교/불교/힌두교/유교 신자 중에 하나임을 신분증에 기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긴있는데 종교를 안믿을 자유는 없는거죠;
Otherwise
14/11/22 16:07
수정 아이콘
그쪽은 그쪽대로 막장이네요.
원달라
14/11/22 16:40
수정 아이콘
또라이 한명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의 또 다른 예..
종교인이었으면 이교도 탄압하고
자본주의자였으면 빨갱이 탄압하고
개복치였으면 해파리 탄압할 놈이겠죠.
하늘하늘
14/11/22 17:35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개복치 크크
소독용 에탄올
14/11/22 16:43
수정 아이콘
알바니아랑 유사한 외교적 궤적을 밟고, 한때 친하게 놀던 '북한'은
IS가 꿈에그리는 것 조차 넘어선, (구일본제국 조차 실패한) 현인신이 통치하는 제정일치 신성왕조를 만들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일견 상극인 것처럼 보이는 (하지만 다양한 공통점을 가진...) '국가가 신을 대체한 체제'<->'현인신이 통치하는 신성왕조'의 분기가 도대체 어느 요인에 의한 것인지도 궁금해지고요...
14/11/22 16:44
수정 아이콘
알바니아에 4박5일 있어봤는데.. 재미있는곳이에요 소와 염소 닭들을 아무데나 볼수있는 시골부터, 고층건물이 솟아있는 수도까지
오큘러스
14/11/22 17:44
수정 아이콘
전투적 무신론자들의 천국이겠군요
아 천국이 아니지
영원한초보
14/11/22 17:48
수정 아이콘
벙커에는 역시 마린과 메딕이 들어가야
無識論者
14/11/22 18:02
수정 아이콘
알바니아에서 두사람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벙커에서는 젊은 남녀의 회합이 자주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죠...음...
14/11/22 19:02
수정 아이콘
제대로 된 우방이군요...
하나당 마린 4명씩 들어가 있으면 75만이니까 300만명...
근데 인구가 300만이 안 되네요?? 빈벙커 압박이 후덜덜 하군요.
소독용 에탄올
14/11/22 19:07
수정 아이콘
한국군 장성급 마인드 ㅠㅠ(사실 한국군 장성이 알바니아 독재자급 마인드라는 쪽에 가깝겠지만...)

초소가 왜 이거밖에 없냐?->초소를 늘림->병력부족으로 투입안됨->어 뭐야 여기 왜 초소가 비어있냐?
14/11/22 19:26
수정 아이콘
헌데 저쯤되면 나치즘/파시즘이건 맑시즘이건 무얼 표방하건 간에 그 자체가 종교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다고 봐야할듯. 성리학의 위정척사처럼 말이죠.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고향입니다. H서류 속 알바니아는 개인간 사소한 관계에서도 지극히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협잡과, 호메로스 시기 계승과 변주로서 실현되는 서사시적 전통이 혼재하는 기묘한 나라로 그려지죠.
몽키매직
14/11/22 20:06
수정 아이콘
그런데 요즘 자주 오르내리는 종교에 대한 글들을 보고 있으면
무교 = 무신론 을 혼용하는 느낌이 있어요.

실상 '무교'에 가까운 사람들은 딱히 신을 긍정/부정하지도 않고 그냥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고
무신론은 오히려 종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구분해야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좋아요
14/11/22 20:44
수정 아이콘
최근토론을 보았을때. 확실히 구분지어 용어를 사용할필요성을 느낍니다
無識論者
14/11/22 20:48
수정 아이콘
한국 인터넷상에서 용어 흐름을 보면 예전에는 '난 무종교인이다'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난 무신론자다'하는 경우가 많아졌지요. 무신론이 무종교의 대체어 정도로 잘못 쓰이다보니 혼용되는 것 같습니다. 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생각쟁이
14/11/22 20:20
수정 아이콘
사상이 신앙화된 예네요.
swordfish-72만세
14/11/22 20:41
수정 아이콘
사실 너무 흔한 예죠. 한국에서 민족주의도 사실 신앙이니까요.
소독용 에탄올
14/11/22 20:52
수정 아이콘
신앙과 사상 사이엔 애초에 뭔가 딱부러진 경계같은것이 없으니까요...
민족주의의 경우 민족 자체가 '정체성'과 관련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단 점에서 (한국사회로 제한하지 않더라도) '신앙'하고 구분할 수 없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Hwantastic
14/11/22 21:35
수정 아이콘
아 이런 글 좋아요.
그런데 사진들이 동영상 캡쳐본인 것 같은 데 원본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無識論者
14/11/22 22:32
수정 아이콘
본문 사진의 상당수는 '걸어서 세계속으로-알바니아편'을 참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14/11/22 23:59
수정 아이콘
지난 번 이야기하면서 글 쓰시겠다고 하셨는데, 이 글이 1편(?) 이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동유럽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아는 게 0 에 가까운데, 알바니아가 무신론 국가라는 말도 저번의 댓글에서 처음 보았었네요. 읽은 감상을 중요도의 반대 순서로(응?) 정리해보자면,

1. 무신론이 심해지면 이렇게 됩니다! 의 근거로 알바니아같은 초막장을 드는 것은 그렇게까지 설득력이 강한 것 같진 않습니다. 종교가 막장이 되면 IS 같이 됩니다! 가 설득력이 별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오히려 자코뱅 세력의 종교 탄압같은 것이 더 재미있는 경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성을 신앙시함' 의 전통은, 그간 사회를 지배해 온 기독교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대를 천 년 넘게 겪어온 시점에서, 기독교 이데올로기는 치우고 싶은데 다른 거 뭐 없나? 에서 이성과 합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던 거지요. 그러다보니 '인간에게 합리적이지 않을 자유는 없어' 라는 식의 계몽주의식 파시즘으로 이어진 것이 공리주의나 공산주의겠지요.

3. 1967 년의 알바니아라는 특수한 경우를 빼고 일반적인 역사 발전을 보면, 이제 대놓고 계몽주의식 파시즘을 이야기하는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과 합리보다 더 나은 해법이 무엇인 지 모르기에 아직 저 개념들이 왕좌에 있긴 하지만, 예전만큼 숭배받진 못하지요. 따라서 무신론도 개인의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도 '애들한테 종교 교육 좀 시키지 말라고!' 라는 정도가 최대치지 '애들한테 무신론 교육 시킵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죠. 뭐, 샘 해리스 같은 사람이 대통령 되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겁니다.

4. 반면에 종교적 파시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아요. 미국이라면 '텍사스가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유권자에게 약속한 릭 페리 전 주지사라든지, '이명박 장로 안 뽑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이름 지워버릴 거야' 라는 모 목사라든지하는 경우들이죠.

해서, 1~4 를 다 합해서 생각해볼 때, 저는 인간 사회는 조금은 더 세속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균형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無識論者
14/11/23 00:18
수정 아이콘
제가 쓰고 싶은 글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나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개념과 정의' 등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이지 이건 그냥 심심풀이입니다. 저번 글에서 알바니아 얘기 꺼낸김에 써본거죠. 1편(?)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사료됩니다.

1. 예. 이런 막장은 어디까지나 '극히 예외'의 경우이죠. 하지만 '무신론자가 무신론을 이유로 파괴나 살인행위를 저지른 적은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버로우 시킬 정도는 된다고 봅니다. 당장 도킨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가 많은 반박을 당하는 판이니까요.

2. 역사적으로 기독교 사상의 지배는 사실 15~16세기쯤에 이미 끝났다고 봐요. 시대상으로 괜히 중세-근대를 구분하는게 아니고 말이죠. 따라서 반작용으로 뭔가 미친 짓을 저지르는 것도 딱 그즈음까지만 심리적으로 이해해줄수 있다고 봅니다.

3. 전 대부분의 무신론자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화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도킨스에게 경도된 자칭 전투적 무신론자도 상당수는 일반 무신론자와 생각이 다를바가 없다고 봅니다. 무신론을 주장하고는 싶은데 마침 대신 떠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같이 손을 흔들어주는 것 뿐이겠죠. 하지만 '애들한테 종교 교육 좀 시키지 말자'를 넘어서 '애들한테 무신론 교육 시킵시다'라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도 분명 존재하며, 그게 뭔가 문제인지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 또한 존재합니다. 저번 논쟁에서 봤듯이 말이죠.

4번과 결론은 동의합니다.
14/11/23 00:40
수정 아이콘
아 그렇군요. 이 글은 심심풀이고 진짜가 나중에 올라온다면 당연히 저야 좋지요.

1 - 그렇네요. 그 정도의 의미는 있겠습니다.
2 - 반작용이라는 제 어휘 선택이 좀 잘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계몽주의 중 과격파들은 기독교에서 타이틀만 바꿨지 여전히 '내 이데올로기로 온 세상 사람을 통제할 거야' 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3 - 무신론 교육 시킵시다 라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는 저 개인적으로는 본 적이 없지만, 있다면 그건 선을 넘어간 거라고 동의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8208 [일반] Re:피아노를 연습해보자! [36] 스테비아4846 15/05/15 4846 13
57972 [일반] [어린이날] 거짓말하면 손이 썩는 약 [10] 박진호4498 15/05/05 4498 16
57900 [일반] [혐오] 우리나라가 아르메니아 사태에서 터키편을 들어야 하는 이유. [41] 난멸치가싫다15206 15/05/01 15206 16
57896 [일반] [연재] 빼앗긴 자들 - 28 [4] 가브리엘대천사1907 15/05/01 1907 2
57692 [일반] 리스본행 야간열차: 노잼들의 사랑 이야기 (스포 있음) [3] SaiNT2837 15/04/21 2837 1
57466 [일반] 신변잡기 - 제가 너무 피곤하게 살았던 걸까요. [11] 이치죠 호타루5407 15/04/10 5407 0
57449 [일반] 레진코믹스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64] 마징가Z10767 15/04/09 10767 1
57266 [일반] 캠핑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어느 캠퍼의 안내서 (부제 : Q&A Best 10) [43] 제랄드9291 15/03/30 9291 34
57239 [일반] 아버지의 비빔밥이 싫었다 [23] Eternity7825 15/03/28 7825 88
57100 [일반] 무신론자가 신천지 다큐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 [72] Alan_Baxter14141 15/03/22 14141 10
56577 [일반] 한심한 남자의 연애 이야기 -2 [4] 가치파괴자4682 15/02/15 4682 3
56563 [일반] <킹스맨>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지? [56] 마스터충달11502 15/02/15 11502 8
56553 [일반] 20대에 하지 못해 가장 아쉬운 것. [22] Liverpool9822 15/02/14 9822 2
56551 [일반] 킹스맨(스포일러 가득) - 똘끼 충만한 감독의 패기 [31] aSlLeR5614 15/02/14 5614 2
56529 [일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후기 (노스포) [63] 카슈로드7197 15/02/12 7197 2
56421 [일반] 정홍원 국무총리의 우울 [49] 발롱도르12075 15/02/07 12075 13
56404 [일반] 스카이라인으로 보는 도시순위 [26] Dj KOZE9712 15/02/06 9712 1
55971 [일반] 제 4학년 전공강좌였던 [영화비평론]에 교재로 쓰였던 영화들 소개해봅니다. [33] 요한7309 15/01/15 7309 8
55960 [일반] [스포] 거인 보고 왔습니다. [4] 王天君4608 15/01/14 4608 1
55893 [일반] 열 번 찍어 넘어가는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에 대한 고찰. [28] 凡人15487 15/01/10 15487 3
55136 [일반]  인터스텔라만큼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 [4] 망고가게주인5336 14/11/27 5336 1
55060 [일반] [연재] 빼앗긴 자들 - 20 [8] 가브리엘대천사1679 14/11/24 1679 1
55037 [일반] 세계 최초의 무신론 국가, 알바니아 [36] 無識論者11686 14/11/22 11686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