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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16 01:08:36
Name 한아
Subject [일반] 한국 관객은 정말로 한국 영화를 좋아할까? - 2편

지난 글(링크: https://pgr21.com/?b=8&n=54913)에서는 파라마운트 판결의 대략적인 배경과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10여년 지속된 소송이고,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1985년 미 법무부의 ‘파라마운트 판결’의 집행 철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보기 시작했죠. 전체적인 흐름은 보았지만, 아직도 모호한 부분이 있어 판결의 디테일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Big Five & Little Three, 그들의 영향력





당시의 Big Five(파라마운트, 로우스/MGM, 워너브라더스, RKO, 폭스) & Little Three(콜럼비아, 유니버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로 불리던 8대 메이저 스튜디오의 극장 점유율부터 살펴보죠. 1931년 파라마운트는 1,000여개의 상영관을 소유했습니다. 8개 대형 스튜디오 중 상영업을 겸하던 6개의 회사가 소유한 상영관은 2,400여개 정도로 미 전역의 1/8 정도였습니다. 한 회사도 아니고, 6개의 회사가 전체의 1/8이면 나쁘지 않은 숫자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극장들은 넓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어 각각의 대형 스튜디오가 중점적으로 밀던 지역만 활성화 되어있어서 전국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웠죠. 실제로 초기에는 그 영향력이 미미했습니다. 각 영화사마다 수직 계열화는 이루어 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입을 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경영 전략이 등장합니다. 효율적인 이윤 추구의 목적도 있었지만, 이런 대형 영화사들의 자본은 은행에서 들어온 것이라, 투자 측의 압박도 있었을 겁니다. ‘더욱 공격적인 경영을 하라!’ 그리고 결국 8대 대형 스튜디오들의 수평적 담합을 이루어 냅니다. 이 결과로 지난 글에서 소개한 블록부킹(끼워팔기), 블라인드 비딩(선물거래; 무시사 상영 계약), 런-존-클리어런스(독립 극장 차별)의 경영을 하게 됩니다. 8대 대형 기업이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되기 시작하고, 1/8의 점유율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죠. 당시 극장이 주로 개인 소유(1~2개의 상영관)이거나 지역을 기준으로 모인 소형 체인(100개 상영관 미만)이었다는 점을 보면, 전국에 퍼져있는 2400여개의 상영관이 동일한 영업 전략으로 움직이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때문에 힘없는 소규모 영화관들의 폐업이 줄을 지었습니다. 대형 스튜디오들의 목적은 점유율 상승이었기 때문에, 갑으로써 장기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했다기보단, 철저히 차별하여 영화 상영의 기회도 주지 않는 등의 행위로 소규모 극장의 도산을 유도했습니다. 갑이 을을 착취조차도 하지 않고, 짓밟아 시장에서 쫓아내 버린 것이었죠. 그만큼 대형 영화사들이 받는 자금 압박이 심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단기적이고 강력한 담합의 형태로 등장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잠재적 기업의 진입 장벽을 높히기 위해 최저 관람가도 담합하여 설정했죠. 이게 현재에도 모든 영화의 표값이 동일하게 된 근본적인 원형입니다.

(200억짜리 영화도 9,000원, 10억짜리 영화도 9,000원 이라는 것 – 동일한 9,000원이라면 어떤 영화를 보시겠습니까? 경제적인 관점에선 가격이 같다면 아무래도 200억 영화를 보는게 더 이득이겠죠. 그런데 이런 200억 영화의 제작은 대형 스튜디오만 가능했습니다. 한마디로 대형 스튜디오들이 가격 담합을 통해 자사의 영화를 더 많이 보도록 유도한 것이었습니다.)

수치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극장 점유율은 1/8에 불과했지만, 제작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이들 메이저 & 마이너 스튜디오는 당시 미국 영화의 62%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71%를 이들이 배급했죠. 제작 단계에서 독립 제작자의 입지는 좁아졌고, 배급 단계에서 극장에게 선택권은 없었습니다.





이를 바라본 사법부의 판단, 그리고 그 차이



“셔먼 법 하에서 수직결합의 법적 정당성은 다음 사항을 검토함으로써 확인된다. 즉, (1) 수직결합을 인식하는 목적, 혹은 의도, (2) 수직결합이 만드는 지배력과 참여자들의 목적, 의도 등이 그것이다. 먼저, 수직결합이 적법한 사업상의 필요를 확장하는 것을 넘어 시장의 상당한 부분에 대한 통제를 획득하려고 할 계산된 계획을 하였다면, 혹은 경쟁을 제한하거나 압박하였다면 이는 셔먼법의 이념과 상충한다. 둘째, 수직결합된 기억은 경쟁을 제거할만한 지배력이 그럴 의도와 목적과 결부될 경우 독점화된다.”

- 당시 판시문, United States vs. Paramount Pictures, Inc., 334 US 1313(1948)




처음에 소송을 맡게 된 지방 법원은 이러한 형태를 수직 통합화의 ‘구조’적인 문제보다, 독과점의 의도를 갖고 움직이는 ‘행동’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형 영화사들의 극장 소유, 그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자유경쟁을 차단하고 불공정거래를 유도하는 경영 전략이 문제라는 것이죠. 그래서 1941년, 1차 동의 판결에는 ‘극장 분리안’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간단하게 보면 스튜디오는 극장은 소유할 수 있으나 끼워팔기, 선물거래, 극장차별은 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 최저 가격 설정, 고정 상영 기간 설정이 불법
- 제작, 배급 및 상영 부분의 독점화 시도에 대한 증거는 찾지 못함
- 불법적인 극장 공동소유, 블록부킹, 프렌차이즈의 증거 확보
- 극장 부문 분할매각 결정은 부결
- 경쟁적 입찰로 영화를 배급해도록 명령


이것이 지방 법원의 입장이었는데 구조 자체 보다 운영방식이 문제라고 보는거죠. 그리고 ‘경쟁적 입찰’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후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가며, 이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부분부터 다시 살피기 시작합니다. 대법원은 지방 법원의 결정을 세 가지 이유로 오류라고 판단하게 되고, 재심 청구를 위해 환송합니다.


첫째는 ‘경쟁적 입찰’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글의 타임트레블님 의견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영화가 상품으로써 관객을 만나려면 무조건 극장을 통해야 했습니다.(TV보다도 이전 시대니 요즘과는 다르죠.) 관객은 극장 밖에서 영화를 접할 여지가 없는 산업의 필수 시설이었죠. 경쟁적 입찰을 하게 되면 영화의 상영 선택권이 극장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수익성이 없는 영화는 사장되고 맙니다. (팔리지 않는 영화에 대한 손해는 이제 극장이 아닌 제작사가 보는 것이죠.) 이는 제작의지를 꺾게 되고, 다양성이 훼손되며, 독립제작자와 독립극장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일관된 스타일로 위험부담이 작은, 적은 편수의 영화만 제작되게 되며, 결과적으로 극장 사업의 수입 자체도 줄어들게 되죠. 한마디로, 너무 극장 입장에서만 생각해 극장의 선택권을 극대화시킨 결정이었다는 겁니다. ‘경쟁적 입찰’은 독과점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수요독점, 공급독점의 위치만 역전 시킨 꼴이 되는거라는 판단이죠. 이 ‘입찰’이라는 것은 자유 경쟁을 보장하지도, 독점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이 해결법은 독과점 규제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판단입니다.


두번째는 지방 법원의 판단 근거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1/8이라는 점유율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연방 법원은 판결에서 1/8이란 수치는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진 독점이라는 데에 무리가 있다고 봤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연방 법원의 판단이 ‘개봉 시기’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판단, 당시의 시장 자체를 전체 상영관 개수가 아닌 1차 개봉관으로 다시 정리합니다. 이렇게 계산된 점유율을 통해 메이저 영화사가 무려 70%대의 점유율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2,400 vs. 100의 구도가 대법원의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 밝혀진 겁니다.  이 결과로 인해 앞서 연방 법원이 결정한 ‘극장 부문 분할매각 부결’이 대법원에서 뒤집어지게 됩니다.


세번째는 독점의 형성원리와 확장력에 관한 고찰입니다.

독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 한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된 기업은 입지를 강화 및 유지시키기 위해 다른 시장에도 진출해 독점화를 하려는 확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인구가 적은 소규모 지역 중 92%가 단 하나의 메이저 산하 극장만 있었습니다. 그 지역의 관객 수요는 그 상영관 하나가 독점으로 차지하게 되는 것이죠. CGV가 현재 그런 형태로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관객이 극장을 선택할 수 있지만, 외곽 지역에서는 그런 선택권 자체가 없는 것이죠. 연방 법원은 메이저 영화사들이 극장을 소유하는 ‘구조’가 독점법에 위반한다는 증거가 없고, 독점 의지를 갖는 경영 전략만이 위반이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런 소규모 지역의 작은 단위에서 독점이 결국 독점의 확장성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극장 소유의 ‘구조’자체도 위헌이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위와 같은 근거로 대법원은 연방 법원의 경쟁적 입찰의 배급 방식을 기각하고, 극장 매각 부결 건을 재심하도록 철회합니다. 연방 법원은 극장 부문에 대한 재심을 하죠.


-        가격 고정의 범위 내에서 수직결합이 불법적이라는 증거 발견
-        로우스/MGM, 폭스, 워너 브라더스의 극장 부문 매각을 명령
-        8대 메이저 영화사들에게 입장 요금 고정, 상영기간 협의, 불합리한 장기 상영, 능률 외 요인에 의한 극장과의 계약, 블록부킹 등을 금지

(이미 RKO와 파라마운트는 극장을 매각하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 파라마운트 판례는 제작-배급-상영은 서로 어떤 경우에도 경영상 연계되어서는 안된다는 기준으로 작용해, 거대 영화사들이 여러 자회사로 나뉘어 매각되었습니다. 또한 독점을 유도하는 불합리한 기존의 판매 방식과 각 회사의 담합을 '규제와 협의회 설치'로 막고 통제했습니다.





‘파라마운트 판결’의 중요성


그렇다면 이 판결의 영향력은 어땠을까? 이것을 파악하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파라마운트 법’ 이후의 평가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형태와 결과로 나타났는데, 다들 전가의 보도처럼 ‘파라마운트 판결’을 꺼내들면서 제각각의 정보만 취합해 근거를 제시하고 자신만의 주장을 관철하게 되거든요.

대표적으로 파라마운트 판결이 투자 심리가 위축되어 유입 자본이 축소되어 전체적인 영화 산업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제작-배급-상영이 분리되며, 더이상 독과점의 편법으로 이윤을 추구할 수 없게 되자, 기업은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데 집중하게 되어 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예술적 지위를 지켰으며, 경쟁을 통해 영화 산업 전체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죠. 두 가지 경우 다 적절한 근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 맞는 부분만 차용하여, 이를 통해 위와 같은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은 '파라마운트 판례'를 본인 입맛에 맞게 다분히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죠.




판결 이후 업계의 흐름

판결 이후, 독립 제작사들은 메이저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영화 제작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것은 그저 형태만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조각조각 나뉘어진 기업들은 대기업으로 인수되었고, 계약을 통해 모기업에게 집중되는 방식을 갖추게 됩니다. 하나의 회사 였던 것이 이제는 계열사로서 종속되는 것이죠. 형식상의 분리일 뿐 계약을 통해 모기업에게 수익이 편중되었고, 결국 수익성이 관건인 극장이 트는 영화들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독립 제작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영화를 틀기가 어려웠습니다.

메이저 입장에선 오히려 타의적으로 대기업에 인수되어 거대 자본을 등에 업게 되고 영화 산업에서 굉장히 유리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죠. 이전 ‘스튜디오 시스템’과 황금시대가 은행 부채 위에 세워진 것과 비교하면 말입니다.





제작사들은 분리되면서 더이상 독과점 구조에 기댈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시장에 상품을 공급하는 생산자로써 좀 더 구매력있는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자각이죠. 그래서 기존 영화가 가지고 있던 포맷들을 다시 연구하고, 영화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탐구하여 질적 향상을 도모해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데 치중하게 됩니다. 물론, 좋은 상품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수익성이었습니다. 게다가 제작사가 가지고 있던 고가의 영화 장비나 세트장, 과거 '스튜디오 시스템'의 잔여물들을 그대로 활용해 효과적인 제작 라인을 구축하고, 물리적 대여를 통해 부수적인 수입도 올렸습니다. 이 가운데서 독립 제작사들은 여전히 대기업 산하 메이저에 이끌려다니는 존재였지요. 메이저 복합 기업의 거대한 벽만 깨면 자신들도 동일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독립 제작사였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유통구조의 마지막 부분을 맡았던 상영권을 ‘파라마운트 법’에 의해 박탈당하면서 대기업 산하 메이저들은 그 다음 마지막 단계였던 배급에 굉장히 집중하게 됩니다. 배급-상영의 핵심이었던 끼워팔기가 금지되고, 단체로 한 극장 체인에 판매하는 방식도 금지되면서 더이상 배급 방식 자체가 영화의 성공을 좌우하지 않았죠. 제작과 상영에서 떨어져 나온 배급사들은 다른 방법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작품도, 극장도 더이상 메이저에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계약을 통해야 했고, 배급 방식이라는 판매 틀보다는 영업, 즉 판매 능력 자체가 중요해졌습니다. 여기서 각자의 영업 전략을 배급사들이 갖추게 되고, 하나의 영화는 완성된 이후 ‘누가 배급할 것인가’하는 배급권을 여러 배급사가 경쟁하고 구매하게 되는 구조로 진화하게 되었죠. 대기업 산하로 들어간 메이저 배급사들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이 배급권을 따낼 수 있는 경쟁력 자체를 갖출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이는 소규모 자본을 갖춘 중소규모 배급사와는 차이가 생깁니다. 결국 ‘파라마운트 법’ 이후에도 중소규모 배급사들이 끼친 영향력은 미미했고, 메이저 배급사 위주로 산업이 흘러가고 있었죠.



극장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기업에 의해 일괄적으로 통제되던 배급과 상영이 분리되면서, 배급업에 자본이 들어오고 경쟁력을 갖추면서 메이저가 배급시장을 이끌었던 것과는 다르게, 더 독립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극장업에선 소규모 극장이나 체인의 입김이 거세었고, 순수한 사업 전략의 일환으로 의견을 모으는 행위도 독점법 위반으로 취급되면서 극장업 전체가 점차적으로 경화됩니다. 극장 산업은 메이저가 생각보다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파라마운트 소송’이 메이저가 극장업 시장을 완전히 잠식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이라 그렇기도 하구요.


이렇게 영화 산업 전체에서 배급업과 극장업의 비중이 점점 배급쪽으로 쏠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굉장히 양극화 되었는데, ‘파라마운트 판결’의 주인공인 메이저 영화사인 파라마운트는 1973년 19개의 영화를 직접 제작해 22개를 배급하였고, 1974년에는 14개 제작, 25개 배급, 1975년에는 4개 제작, 20개 배급을 하였습니다. 이런 구조로 변화되자 영화 제작이 메이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죠. 이와같이 변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이전에는 영화를 장르적 혹은 스타일적으로 구분하는 지점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관객의 요구가 다양해짐에 따라 여러 종류의 영화를 찍어야 함을 느끼고, 각각에 어울리는 제작 방식을 갖춘 수많은 영화 제작사로 분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화와는 상이한 애니메이션이 그 전까지는 영화제작사 소속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렇게 되자 메이저 소속이 아니었던 독립 제작사에도 비슷한 조건으로 경쟁에 참여할 여지가 생기게 되었고, 메이저 영화사의 원형은 이후 거대 자본을 필요로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에 치중하는 제작사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래서 파라마운트 영화제작사의 영화를 파라마운트 배급사에서 배급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죠.

둘째로 미국 영화 시장이 커지고 국제적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영화 산업에서 배급업의 지위 자체가 굉장히 올라가 배급으로도 다양한 이윤 창출을 도모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각 국가마다 적용되는 법이나 수익구조가 달랐고, 기대되는 매출액도 상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과거 단순히 필름을 실어나르고 이윤을 가져가는 단순한 유통을 담당했던 배급업이 고차원적인 영업까지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 배급사로 성정한 것이죠.



이런 다양한 수익구조와 경쟁력 강화에 뒤처지는 사업이 극장이었습니다. 영화계는 점점 더 극장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져가고, 극장업은 갈수록 경영이 어려워졌습니다. 파라마운트 판례가 생긴 이후, 1940년대엔 극장이 스튜디오에 지불하는 필름 대여료는 입장 수익의 28%정도로 였습니다. 하지만 스튜디오(제작사)에서 이 대여료를 인상했고, 1970년대에 40%, 1980년대에는 55%까지 상승하게 됩니다.

거기다가 이 필름 대여료의 계약 방식은 상영기간이 길어질수록 극장이 갖게되는 비율이 높아지는 방식이었는데, 얼핏 보면 극장에서 오래 틀어주니 극장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게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는 극장업에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극장에 오래 걸리는지의 여부’는 어떤 영화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그런데 극장은 흥행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영화 제작에는 전혀 관여를 할 수 없으면서, 영화 흥행 여부에 수입의 상당부분을 의존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이런 계약방식은 제작사가 개봉 초기에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와이드 릴리즈와 블록버스터의 등장을 가속화 시켜, 영화에서 발생하는 총수익의 많은 부분을 개봉초기에 제작사가 가져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극장의 입지는 좁아졌죠.

극장 업계에서 최초로 제작-배급-상영의 분리를 주장해 파라마운트 법이 생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결정이 제작 vs. 배급 vs. 상영의 기묘하고 심화된 3자 경쟁구도까지 만들었고, 그렇지 않아도 분열되어있고 시대의 반응에 둔감했던 극장 산업 전체의 큰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이보다 더 심한 사건이 있습니다. 영화 제작이 활발해지고 배급업이 팽창하던 시기에, 극장 업계에는 굉장히 치명적이고, 영화 업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준 일이 하나 생깁니다. 바로 텔레비전의 등장과 보급입니다. 이후 비디오로도 이어지죠. 영상 기술은 더이상 극장 스크린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영화 산업 전체에 불황이 닥쳤고, 어렵던 극장 업은 이제 확정적으로 사양 산업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제작업계와 배급업계는 이러한 텔레비전의 등장을 수용하고, 영상을 브라운관에 맞게 가공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영업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갔지만, 텔레비전와 비디오 같은 영상 플랫폼 그 자체였던 극장업은 완벽히 새로운 플랫폼 자체와 다시 또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결국 이것은 영화 관람료의 50% 인상으로 이어졌는데, 이런 살인적인 인상률에도 극장의 평균 수익률은 1~2%에 불과해 수많은 극장 기업이 파산했습니다. 결국 뒤늦게 세부 분열화 되어있던 극장들이 인수와 합병을 하며 규모를 키웠고, 텔레비전 방송국에 투자하게 됩니다. 또한 시설 전반의 현대화 및 팝콘이나 오락실 설치 등 영화 내외적인 경쟁력도 키웠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바로 극장업계 최대의 발명인 멀티플렉스입니다.





스튜디오와 배급사에겐 빛, 극장에겐 어둠이 된 '파라마운트 판결'


이렇게 극장 사업의 발목을 잡고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이 바로 ‘파라마운트 판결’입니다. 판례가 명확했기 때문에 제작사와 배급사는 극장 인수하는 등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치기 상당히 어려웠던 것이고, 극장 대신 텔레비전이나 비디오가 대체제로 등장해 그쪽으로 눈길을 돌려버리며 극장은 외면받죠.

하지만 극장에서의 흥행 여부는 가정용 비디오와 텔레비전 수익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극장 입장료 수입이 총수입의 20%밖에 안되는데도, 극장의 최소 운영비를 보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계약을 제시합니다. 이후 레이건 정부의 분위기에 맞춰 반독점법이 느슨해지고, 극장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져 숨만 붙어있던 관계로 1985년 미 법무부는 다시 극장을 사들여 직접 운영하려는 스튜디오의 움직임에 한해 ‘파라마운트 판결’의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습니다.

이 결정은 영화 산업에서의 독과점을 인정해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텔레비전와 비디오에 밀려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어 몰락해가는 극장 사업을 구제하려는 기업의 의도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더이상 메이저 스튜디오가 극장을 소유하려는 움직임은 독과점에 영향을 줄 만한 가치도, 명분도, 의도도 없다고 해석한 거죠. 슬프지만, 이것이 1985년 미 법무부 '파라마운트 판례' 집행 철회의 뒷이야기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파라마운트 판례는 대형 스튜디오의 독과점 체제를 완벽하게 저지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독과점 체제가 가속되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반경쟁적이고 불공정적인 관습 때문에 피해자가 발생하게 되어 정부가 개입할 명분이 생겼고, 규제를 통해 기업들의 독과점 의지를 꺾고, 그 속도롤 일시적으로나마 완화시켜 산업 전체를 통제한 사례입니다.

쪼개진 회사들은 또 각자의 영역에서 이윤 창출의 극대화 – 궁극적으로 업계 내 독과점 - 를 향해 달렸지만, 그 과정에서 다시 관객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분야가 세분화되면서 자체적으로 독과점 속도가 늦춰진 것 뿐이었습니다. ‘파라마운트 판례’는 독과점을 하기 어렵게 만들어 그 진행속도를 강력하게 늦춘 제도이지, 독과점을 향해 가는 기업의 방향 자체를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주절주절 정말 오래 걸렸군요.
복잡한 이야기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네요.
다음 편은 한국 영화 산업 구조와 CGV 이야기를 해볼께요.
3편으로 끝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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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10년차
14/11/16 01:34
수정 아이콘
역시 3편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4/11/16 07: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14/11/16 08:4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홍승식
14/11/16 22:51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군요.
역싱 대세는 트릴로지입니다.
3부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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