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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05 01:07:18
Name OrBef
Subject [일반]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쓰는 다문화
자동차 오일 교환을 하러 왔는데 1 시간 반을 기다리라고 하네요. 컴퓨터도 없고, 잠시 시간 죽일 커피샾도 없어서 이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였던 다문화주의에 대한 글을 좀 써볼까 합니다. 모바일로 쓰는 거라서 맞춤법 수정도 할 수 없고 이미지 링크도 걸 수 없어서 좀 거시기하긴 한데,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쓰랴 싶어서 막 저질러보겠습니다.

1. 다문화 가정

한국에서 보통 다문화라는 단어를 접하는 가장 빈번한 계기라면 '다문화 가정' 이라는 맥락에서일 겁니다. 한국보다 약간 가난한 나라의 여자들을 한국의 남자들이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데려오는 형태죠. 이런 경우 한국으로 건너온 여자와 그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마련입니다. 일단 외모부터가 다르고, 주변에서 대해주는 태도 역시 일반적이지 않기 쉬우니까요.

근데 사실 '한국 사회에 적응한다' 는 개념 자체가 하드코어 다문화주의하고는 약간의 거리가 있습니다. 19-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가 수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였었는데, 이 당시 이민자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태도가 '이들을 빨리 미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해야한다' 는 것이었고, 현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다문화 가정' 을 보는 시각이 대충 이런 거지요. 이건 엄밀히 말하면 해당 여성의 원래 문화를 존중해준다는 '다문화' 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동화주의' 에 가깝습니다.

2. 다원주의적 다문화주의

즉,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이민을 오더라도 '주류 문화' 가 존재하고 이민자들이 해당 주류문화에 적응하도록 권장하는 것은 현대적 의미의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동화주의입니다. 다문화주의는 이민자들이 원래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주류 사회와 공존하도록 유도한다는 개념이지요.

다문화주의가 동화주의와 어떻게 다른 지를 이해하자면, 독일 사회가 이민자들에게 '너희는 독일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라고 대했던 것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수십년을 유럽 사회는 저 정도로 극단적인(?) 다문화주의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다문화주의를 다원주의적 다문화주의라고 한다더군요. 어렸을 때 스타워즈를 보면서 모스 아이슬리 우주정거장에서 여러 종족들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술을 마시던 장면을 아주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다원주의적 다문화주의가 추구하는 세상이 대충 그런 모습이 아닐까합니다. 문화간에는 우열이 없고, 다양한 문화가 어울림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유도 보장할 수 있고, 우리의 문화는 더 성숙하고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그야말로 이상주의지요.

3. 다원주의적 다문화주의의 실패(?)

사실 저는 유럽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런 부분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언론에 드러난 바로는 유럽식의 다원주의는 스스로 실패했다고 자평할 정도로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라면, 전근대적인 문화에도 다원주의적 포용을 발휘했더니, 대규모의 이슬람 이민자들이 본인들의 종교법인 샤리아를 사회생활의 원리로 삼아버린 거지요. '내가 내 딸을 명예살인하겠다는데,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라는 식으로 나오는 이들을 고전적인 다원주의로는 허용해주는 게 맞고, 근데 현실적으로 저런 걸 허용해준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해서 유럽은 다원주의적 다문화주의를 처음 시행하는 위대한 실험을 행한 기록은 남기되, 그것을 폐지하는 기록도 남기게 되었습니다.

4. 동화주의

근데 그럼 동화주의가 답이냐? 하면 그것도 답은 아닙니다. 물론 새로 이민와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베트남 새색시를 마음씨 착한 한국인들이 무료 한글학교 등을 통해서 한글을 가르쳐주는 거야 참 좋은 일이지만, 이런 것을 국가규모로 행한다면, 그 배경에는 '너희들은 노동력과 인구 재생산을 담당하는 기계일 뿐, 너희들이 어렸을 때 배운 가치관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라는 사상이 깔려있는 거니까요. 동화주의는 사실 그 태생이 제국주의 이네올로기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폭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5.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미국은 대체로 이 방향입니다. 현대 미국의 근본 가치관인 민주주의와 사유 재산의 보호같은 부분은 이민자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거고, 이를 제외한 다른 문화적 차이는 존중하는 절충안이지요. 예를 들면,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데 어떤 학생이 '그 날은 내가 가진 종교에서 가르치길 바깥에 나가면 안되는 날인데?' 라고 하면 해당 학생이 따로 시험을 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든지하는 개념입니다. 동화주의와 다원주의를 적당히 섞어놓은 셈이고, 그럭저럭 사회가 굴러가긴 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현대 서구권의 가치관하고 친한 경우라면 이 방식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 방식은 사실 양 쪽 모두에게서 욕을 먹기도 합니다. 다원주의자들이 볼 때에는 '민주주의를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민주주의를 들이대는 것도 일종의 폭력임. 어차피 걔들이 투표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장난하는 느낌도 있고' 라고 받아들일 여지가 있고, 동화주의자들은 '애초에 미국의 문화가 싫으면 안 넘어오면 될 거 아냐.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도 없는 놈들을 위해주다가 우리 사회만 조각조각날 것 같은데? 그냥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라고 말할 수 있겠죠.

6. 한국

그나마 미국이나 유럽은 인구 숫자도 어마어마하고, 굳이 동화주의를 강요하지 않아도 이민자들에 스스로 동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라고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거지요. 반면에 한국은 사회 자체도 그렇게 크지 않고, 다원주의를 허용할 만큼의 문화적 여력도 없고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결국 자국 문화에 자신이 있어야 다원주의네 뭐네 하는 거지요), 이민자들이 스스로 동화를 선택하는 경우도 그다지 많지 않아보입니다 (이건 그냥 제 추측). 그러다보니 외국인 혐오증도 생기는 거겠지요.  30 년 뒤의 한국이 어떤 모습일 지, 참 궁금하면서도 걱정도 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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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트윈스
14/11/0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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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동화주의가 아닌 다른 모든 종류의 다문화주의는 개개 구성원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지배하며 아주 강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문화를 달리하더라도 동시에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러므로 바로 그 사회의 아이덴터티를 구성하는 [것]들은 문화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뭐가 있을까요. 예컨대 미국의 경우는 그 자랑스러운 The Constitution이 사례가 될 수 있지요. 문화는 컨스티튜션에 비하면 하위쟝르이고, 니가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와 관계 없이 그냥 우리 컨스티튜션에 완전히 동의하면 곧 우리 사회 구성원임. 뭐 이런 거지요.

한국사회가 동화주의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하기 어려운 건 종족으로서의 한국인의 아이덴터티를 구성하는...음... 민족감정이랄까요? 그게 다른 그 어떤 요소보다도 한국 사회의 정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일 테구요.
14/11/05 01:43
수정 아이콘
오... 좋은 댓글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살다보면 미국인들은 본인들의 헌법과 거기 쓰여져있는 '자유' 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경우가 많지요. 애초에 메이플라워를 타고 건너온 초기 이민자들의 직접 후손들은 (인디안들 미안) 별로 없고, 대부분이 사회가 어느정도 안정된 이후 건너온 사람들이라서 역사같은 것을 배울 때에도 '내 생물학 적 조상의 역사' 로 배우는 게 아니라 '자유를 실현하는 미국이라는 위대한 실험의 역사' 를 배우는 개념입니다. 이게 물론 참으로 미화된 역사 교육이긴 하지만, 그런 잘못을 떼어놓고 생각해보면, 이런 방식을 통하다보니 말씀하신 대로 누구나 미국인이 될 수 있다는 강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도 텃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오천년의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이고 너는 아님' 이라는 수준은 아니니까요.
기아트윈스
14/11/0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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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바로 그런 종류의 역사관이 참.... 음... 결과일지 원인일지 모르겠군요.

원인이라고 한다면 위대한 실험의 결과 이 실험, 이 이데아에 동의하는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와서 이 문제의 [국가 그 이상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참여했다... 이런 주장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해당 이데올로기가 어떤 우연한 역사의 결과로 볼 수도 있지요. 어쩌다보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종문화의 존재감이 한 사회 내에서 너무 커지고, 그 사회를 일관된(consistent) 모양새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아이덴터티를 강력하게 규정해줄 어떤 상위의 존재가 요청되었다. 그 결과가 헌법에 대한 강조. 뭐 그렇습니다.

전자의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제 직감은 왠지 후자의 측면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어요. 막대한 이민의 결과를 해결해주는 이념적 정당화랄까요 -_-;
14/11/0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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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깊은 수준의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도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나면 역사란 게 지저분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14/11/05 01:42
수정 아이콘
예전에는 그냥 한국이 못나서 우리나라에 다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그 어떤 나라도 다문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곳이 없다는 점에서
다문화라는 것이 현실에 적용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청교도가 이주해서 세운, '고유의 문화를 지속시키는 것이 설립 목적인' 전세계의 유일한 국가라는 측면에서
미국만이 다문화주의를 채택, 유지할 수 있으며
다른 국가들은 불가능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다문화를 다뤄온 미국도 다문화와 관련해서 아직도 크게 홍역(인종차별 같은)을 겪고 있는걸 보면
그냥 인간 사회라는 곳에서 다문화는 성립 불가능한 목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14/11/05 01:47
수정 아이콘
저도 사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문화라는 걸 알면 알 수록, 이게 무슨 주말 점심에 케밥 먹고 저녁에 베트남 쌀국수 먹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더군요.

결국, 코어는 동화주의를 취하되 이민자들의 자존심을 배려하는 양념 수준의 다문화주의 정도만이 실현 가능한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14/11/0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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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 말하는 다문화주의의 실패는 유럽이나 미국의 이민정책입니다. 이러한 이민정책은 대한민국에서 시행한 적도 없고 시행할 가능성도 전무합니다. 지금도 귀화요건은 굉장히 까다롭고 좁은 영토에 5천만이 모여사는 현실을 봐도 서구식의 이민정책이 시행될 여지도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한국에서 다문화는 주로 국제결혼으로 인한 것이며 도농간의 격차로 인한 농촌 총각들의 결혼 문제 내지는 국내 여성들의 경제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힘든 경제적 약자들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의 저소득 여성들을 신부로 맞이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인데 이건 이민정책과 관련된 것이 아니죠. 다문화 가정이 느는 것이 사회적 위기감을 느끼신다면 전혀 상관 없는 서구의 이민정책의 예를 들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 복지정책을 가지고 논하셔야죠. 당장 FTA의 확대로 인한 농촌 경제의 붕괴내지는 복지 정책의 확대와 관련된 여러 논쟁과 갈등 등이 있는데 이런 핵심적인 관련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국내의 다문화 정책과 전혀 관련 없는 서구 이민정책의 실패를 거론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14/11/0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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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을 떠난 지 10 년인지라 사실 미국 사회에 대해서 할 말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한국은 상황이 또 다르겠지요. 근데, 국제 결혼으로 발생하는 다문화가정의 수가 상당하고, 해당 여성들은 사실상 동화주의의 대상이라는 점, 인천 원곡동같은 외국인 거주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등을 생각해볼 때, 한국도 다문화라는 것을 이런 저런 관점에서 이야기해볼 필요는 있지 않나 싶습니다. 속도가 다를 뿐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니까요.

말씀대로 이민 정책은 여러가지 요인을 고려해서 정하는 것이고, 한국의 이민정책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적습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영주권받기 엄청 힘든 나라가 한국이라는 정도만 들은 기억이 나네요. 그런 부분을 보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4/11/0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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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수정해드리고자 합니다. 인천이 아니라 안산 원곡동입니다.
14/11/0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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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 그렇네요. 수정 감사합니다.
14/11/05 02:05
수정 아이콘
약간 곁가지로 흐르는 댓글이지만 다문화 혹은 이민정책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능력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 아직까지 미국에서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로서 미국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이유는
미국사회가 능력주의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라는 생각입니다. 뭐 "노력해서 접시닦기에서 백만장자" "능력만 있으면 너도 성공할수 있다"
같은 류의 생각들이지요.. 뭐 실상은 다르겠지만요...
냉정하게 바라볼때 아직도 한국사회에는 "능력" 보다는 "혈연"이 더 중요시되는 사회인데, 어떻게 다문화 정책을 필지 저는 어느정도 회의적입니다.
모두에게 주는 기회는 공정해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능력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야 여러 인종들과 잡음없이 공존할수 있는 것 아닐까요 ?
14/11/05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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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능력주의란 것도 어디까지나 백인 끼리 그렇다는 거지 아시안한테도 그런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은 아니죠. 중동 출신의 이슬람 이민자들이 샤리아네 뭐네 하는 것도, 미국이란 곳이 중동 출신 이슬람들이 성공하기 너무 힘든 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그나마 그럭저럭' 능력주의 사회이긴 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다' 라는 고정 관념이 개개인에게 박혀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4/11/05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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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미국에는 흑인 공화당 의원도 있고 동양계 코미디언도 있습니다.
물론 아시안계 미국인들 중 상당수가 긴 이민역사에도 불구하고 주류사회에 진입하기 보다는 그들 만의 커뮤니티를 안 에서 지내곤 있습니다.
뭐 LA 한인타운을 보면 알수있죠.
하지만 미국 혹은 외국에서의 성공이 어느 정도의 "부" 와 그들의 자녀가 화이트 컬러 직종에서 근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들 상당수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면서 살 것 같습니다.
14/11/0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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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위대한 아시안들이 비천한 백인 들에 비해서 지적 능력에서 유전적 우월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 아, 아닙니다.
데오늬
14/11/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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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14/11/05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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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다원주의의 실패를 말하는 맥락이 OrBef님이 언급하신 맥락도 있습니다만, 또 다른 중요한 맥락이 하나 더 있어 댓글을 달아봅니다.
유럽에서 다원주의의 실패를 이야기할 때 주요하게 지적되는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다원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죠.
사실상 어떠한 국가에 주류를 차지하는 문화가 있고, 그 외에 새롭게 유입된 문화들은 하급 문화로 여겨져 문화 사이에 위계를 형성하고 그것이 사회적 갈등을 적지않게 일으킨다는 점이 다원주의를 실패했다 평가하는 주된 맥락이라 알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문화 다원주의라는 것이 '서로의 문화를 소중히'를 명분 하에 분리 정책을 하고 있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파키스탄계 영국인이 영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모국어를 사용하며 정규 교육을 받아 스스로를 영국인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인물에게서 파키스탄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주류와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고,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무언가 모자란 것으로 취급하거나 그 기대에 부응하면 이국적인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이러한 교묘한 구분은 결국 1급 시민과 2급 시민이 따로 있다는 묘한 차별을 드러내죠.

그래서 최근에 유럽에서는 '가로지르기의 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온전히 구분되어 보존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 환경 속에 여러 다채로운 문화들이 만나게 될 때 서로를 가로질러가며 새롭게 변화된다는 점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델을 밴다이어그램으로 생각해보자면, 이전에는 커다란 도화지에 겹쳐지지 않는 원들을 계속 그려가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그 원들이 부딫혀가며 혼합되고 깨지고 형태가 변화하는 모습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쉽지 않은가 싶습니다.
14/11/05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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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말씀듣고 보니까 동의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쓰는 속어 중에 twinkie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과자에요. 아시안이면서 미국 사회에 완전하게 동화된 사람들을 놀리는 용어로 사용하지요. 뭐랄까.... 아시안 입장에서는 '아 X바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인데, 이런 일이 잦아지게 되면 본인이 2등국민 취급받는 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겠네요.

뭐 그래도 한 세대 정도 더 지나고 나면 뭔가 더 성숙한 해법이 등장하겠지요. 애초에 문화란 것 자체가 서로 경쟁하는 면이 있고, 열등한 문화라는 것이 없다고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현실 사회에서 대중은 열등한 문화를 귀신같이 알아내서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문화는 너무 이상한데?' 싶은 것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에스디
14/11/05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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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재 국제결혼으로 인해 발생한 다문화가정의 대다수는 그저 동화될 수밖에 없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배척받든 뭘 하든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종교 또는 문화를 가지는 커뮤니티의 존재가 필수적인데, 대부분의 베트남 새색시들은 자신의 가정에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니까요... 앞으로 같은 형식의 다문화가정이 증가하고 수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실제로 경제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전무한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을 형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가족을 데려오는 것도 아니고, 2세대에게 자신의 문화를 전수해 줄 방법도 없으니, 다문화가 그냥 베트남 색시 본인의 대에서 끝나버릴 가능성이 아주 높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국의 다문화 미래라면...
역시 통일이 된 다음, 일베충과 극렬 김씨교도 젊은이들이 한데 뭉쳐 민족주의 폭력단을 구성해서 이민자를 린치하고 다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14/11/05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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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미국도 국제 결혼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당대에서 원문화가 종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건 뭐 국가가 간섭할 일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싶습니다. 그냥 그 당대에 해당하는 본인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요.
14/11/05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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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체가 되는 사회의 보편적으로 용인되는 문화에 따라 다원주의냐 동화주의냐 방향이 정해져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얼마전 그것은 알기싫다에서 가족에 대하여 다루었는데, 재미있었던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보여주는 도시와 시골(비도시 영역이라는 말이 정확하겠지만 이렇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의 모순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도시는 일반적으로 핵가족화된 가족의 규모와 코스모폴리탄적인 다원문화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상관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정에 대한 거부감이 오히려 시골의 그것과는 반대로 더 높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객관적 지표를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만). 하기사 저의 경험만 보더라도 시골에서 다문화가정을 이룬 형님들의 부모님과 형수님이 더 잘지내는 것을 보게되더군요. 물론, 그 뒤에서 어떤 부조리가 있었을 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문화적 충돌은 어디나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점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봅니다.

저도 orbef님과 같이 미국에 살다보니 생각에 많이 공감합니다. 개인적으로 다문화 사회에서 다원주의냐 동화주의냐를 결정하는 가장 큰 factor는 사회 문화이겠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인구수가 장땡이 아닐까 마 그리 생각해봅니다. 당장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어느 suburban 타운쪽만 가더라도 영어못하면서도 아주 살아가는 분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저도 적고보니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적게됬네요. 어허허허허
14/11/0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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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그거 신기하네요. 아무래도 시골이란 곳이 '우선은 배타적이되', 일단 무리에 끼고 나면 '그 다음에는 확실하게 우리편으로 끼워주는' 문화가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도 대도시가 외지인 살기 편하면서도 약간 차가운 느낌이 있다면, 촌동네는 적응 기간이 긴 반면에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좋은 이웃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14/11/05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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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도 있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시골의 경우 집성촌까지 아니더라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식이 주도적인 사상일테니까요. 지금 사는 곳도 유태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비슷한 감정을 많이 느끼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까 제 학위때도 그렇고 계속 유태인들이 제 보스였네요. 흠흠흠.
켈로그김
14/11/0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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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네에서는 나이 한 50정도 된 해외파 며느리가 새내기 며느리들의 멘토역할을 하더라고요.
성공적인 이전세대의 정착자가 있어서 새내기 해외파가 한국스러움(;;)을 더 빨리, 잘 습득하는 느낌?

다원주의적 가치관은 아마 도시랑 비슷할겁니다. (타 지역 출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오히려 못한건가 싶기도 하고요..;)
다만, 시골의 경우는 해외파 며느리가 더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
코리안 드림이 사실은 니네 고향이랑 다를거 없는 시골이라는 약간의 부채의식이 있을 수도 있고.. (남편 상태가 조금 멜롱한건 덤;;)
해외파가 잘 적응할 인프라(라고 하기에 살짝 민망하긴 하지만)도 있고..
해서 좀 더 동화되기가 쉬운 + 받아들이는 쪽이 너그러울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아닐까 합니다.
14/11/0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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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득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며느리님(?)들도 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들 모습이 6-70 년대에 외국으로 결혼이민 가신 한국 여성분들 모습과 비슷하겠지요.
켈로그김
14/11/0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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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정은 모르는거고.. 아주 일부의 표본일 뿐이지만.
저희 약국에 오는 다문화가정 중에서 1년에 한두번은 처가로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가 반정도는 되더라고요.
직업 특성상(농업, 자영업 중 일부) 한가한 시기가 있어 가능한거 같긴 한데.. 어쨌든 보기가 좋았습니다.

남편이 아버지뻘이고 같은 한국사람끼리도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고령의 시부모와 함께 말 그대로 시집살이를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서도요..

며느리 개개인의 삶이 행복한게 멀리 가지 않아도 한국사회에도 이득이니.
(행복한 해외파를 보고 내가 기분이 좋다 -> 기분이 좋으면 일도 열심히 한다 -> 지역 보건의 질이 참새눈꼽만큼 올라간다.)
모쪼록. 앞으로 올 사람들도 귀한 며느리/아내로 사랑받고 대접받으며 잘 살길 저도 바라봅니다.
구밀복검
14/11/0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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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적 다문화의 전제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1) 모든 인간과 그가 속한 사회은 그네들의 선호를 결정할 수 있는 이성이 있고, 2)문화는 이들의 이성적 선택의 결과이므로, 3)각 개인의 정체성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며 근간을 이룬다. 4)고로 모든 문화는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하며, 이에 적대하는 모든 행위가 폭력이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거죠. 각각의 전제들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숙고해보겠습니다.

1) 매우 엄밀하지 못한 이야기긴 하지만, 일단 현대 사회의 암묵적인 공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2) 그러나 문화가 이성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다분합니다. 긴 말 필요 없이, 우리가 관습이라고 말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그것이 이미 존재해왔다는 점 이외에는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경우가 흔합니다. 막스 베버는 이런 범주를 두고 <Brauch 관행>이라고 말했죠. 단적인 예로 많은 이들이 타작하는 병영의 악/폐습 같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3) 이성과 정신성을 중시하는 분위기 탓에 많은 사람들이 자아와 정체성, 정신과 같은 영혼적이고 비물질적인 느낌을 주는 개념들에 무한한 의의를 부여하며 이것들을 언터쳐블한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굳이 유물론 같은 것을 논하지 않더라도 현실에서 충분히 이러한 인식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현상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가령 한국 사회 그 자체야말로 매우 좋은 예시입니다. 한국은 일제시대, 한국전쟁, 군사독재, 급속한 산업화, 세계화, IMF, 정보 통신 혁명 등을 거의 10년 단위로 거치며 무수한 판갈이와 포맷을 겪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 자체가 문화의 해체와 파괴의 연속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이며,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치고 자신의 문화적 고유성을 잃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PGR의 많은 중장년층이 보기에는 더욱 그러하겠지만, 젊디 젊고 풋풋하디 풋풋한 제가 체감하기에도 20여 년 전과 작금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굉장한 폭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는 상실감을 낳고 상실감은 고립감으로 이어지죠. 응답하라 1994/1997 같은 것이 호소력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테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에 사는 이들은 다들 그럭저럭 적응하여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한국 사회가 마냥 살기 좋은 사회는 아니며, 급격한 사회 변동에 의해 생겨난 사회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평균과 비교해볼 때 한국만큼 사회적 안정성이 높은 국가도 별로 없을 겁니다. 이는 문화적 정체성의 상실이 낳는 상흔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생존과 적응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기존의 정체성을 버려가며 환경 변화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음을, 나아가 정체성은 생각 외로 쉽게 포기될 수 있음을 보여주죠. 이는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를 접근할 때에 성적 순결의 문제에 접근할 때마냥 소심해질 이유가 없음을 암시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이것이 이민자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추측도 해봄직합니다. 다원주의적 이민자 정책들이 실패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추측일지언정 상당한 강점을 가진다고 봅니다.

오히려 별 고민 없이 문화적 고유성을 인정해줄 경우, 이민자 개인이 충분히 자발적으로 포기할 수 있고 교체할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을 마치 언터쳐블하고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대상인 양 착각하도록 하여 이민자 개인이 아집과 집착을 품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시했으면 오히려 가볍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어중간한 존중심과 배려 때문에 미래의 골칫거리를 낳는 격이죠. (개인적으로 이와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PGR의 본문 삭제 시 댓글 보존 기능입니다. 불만을 가질까 저어하여 배려적인 조치를 취한 결과 자연적으로 휘발될 수 있었던 불만이 적체되고 구체화 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https://pgr21.com/?b=8&n=54303&c=2013294 )

4) 즉, 만약 인간이 마냥 이성적이지도 않고, 모든 문화가 이성의 선택이 아니며, 개인의 정체성에 있어 항상 본질적이지도 않다면, 우리가 왜 굳이 다원주의라는 접근을 고수하고 모든 문화를 평등하게 존중해야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식의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에 정답 같은 것은 없고 이성적인 인간들이 다들 나름대로 생각하는 게 정답이며 다원적인 세계가 아름답다'라는 원론적이며 그만치로 느슨하고 나이브한 감성적인 진부한 합리주의로서의 다원주의가 많은 것을 왜곡시킵니다. 다원주의라는 것은 문명화되고 도시화된 대부분의 선진 사회에서 매우 호소력 있게 사용되는 어휘이지만, 그래봐야 어차피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다원주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다원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라고 하더라도 납치혼이나 식인을 수용 가능한 문화로서 인정하려 드는 이는 극소수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실상 다원주의라는 레토릭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의미하는 바가 없습니다.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지만 모든 것을 긍정하지는 않는 것>이 다원주의라고 정의한다면, 일원주의가 아닌 한 모든 사상과 이론과 정견과 입장이 다원주의라고 하더라도 아무 무리가 없으니까요. 오히려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특정한 이론 체계가 무엇을 포용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배제하는지에 주목할 때, 그 이론 체계의 본질이 훨씬 잘 드러날 정도죠. 결국 '다원주의는 우리가 지향해야할 가치이다'라는 식의 언명은 내용없는 객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종교만도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실질적인 관점에서 동화주의가 가지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동화주의라는 <또 하나의 다원주의>가 가지는 실용성이 어느 정도인지 <실증>을 통해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동화주의 정책을 행한 국가에서 이민자 가정의 적응 정도는 어떠했는지, 이민자들이 이룬 계층적 구조는 어떠했는지, 실제로 문화적 동화를 강요 당할 때에 이것이 정신질환의 근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어떤지 등등을 계량적으로 따져보아서 정책적인 결정을 해야하지, '다원주의는 아름답고 동화주의는 폭력적이에요'라는 식으로 사전에 선악의 이원구도를 설정하고 답을 정해놓아서는 안 되겠죠. 본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한국이 사이즈가 큰 사회가 아니기도 하니 더 신중할 필요가 있고요.

* 위의 이야기들과는 별개로, 제가 생각하기에는 다른 부문만은 몰라도 언어의 통일만큼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언어가 가지는 고유한 문화적/정서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면서 정작 언어장벽이 낳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에, 관념적으로 모든 언어의 고유성과 가치로움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컨대 표준어가 존재하는 이상 방언은 침체될 수밖에 없고 표준어에 끊임없이 잠식되어 자생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표준어를 없애야하느냐하면 그건 아니겠죠. 표준어 체계 없이 국가의 언어가 방언 연속체로서 존재한다고 할 때의 비용과 혼란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 명증하니까요. 표준어 체계 자체가 근대 국가의 기준이 되는 것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언 연속체도 아니고 계통과 계보가 전혀 다른 언어들이 병존할 때의 혼란의 비용은? 그야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14/11/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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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강렬하고도 설득력 만땅의 댓글은 뭔가요!!

1 ~ 4 번 전제에 대한 구밀복검님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사실 저는 문화가 평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지라, 다원주의자가 아닌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다문화주의가 잘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그 배경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제가 이민자라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근데 저 본인을 자평해볼 때, 미국 문화에 동화 95% 완료라는 점은 함정....) 언어의 통일만큼은 필수적이다라는 말씀에도 100% 동의하는데, 세금 고지서를 20개 국어로 보내야한다고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요. 이 정도까지 다원주의를 밀고나가겠다는 건 그야말로 책상 물림들이나 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동화주의 = 폭력 이라는 도식이 무리수라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동화주의에 폭력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시기 쉽도록 한국의 언어와 역사를 무료 강의해드리겠습니다' 같은 모습이 동화주의의 앞얼굴이라면, '에미야 물좀 다오. 니가 한국에 왔으면 며느리 노릇 좀 해야지?' 라던지, '한국에서 일하려면 정 문화에 익숙해져야지?' 라는 문장들이 동화주의의 뒷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라고 소심하게 이견을 달아보면서도 매우 강렬하게 설득이 되는 거 보면, 저도 본심은 동화주의쪽으로 기울어있는 게 맞나보네요.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는 그런 온정이 있는 동화주의' 정도가 제가 바라고 제가 행할 의사가 있는 사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밀복검
14/11/05 15:47
수정 아이콘
네 뭐 저도 꼭 '동화주의가 답이다'라기보다는 '동화주의는 일반에 비치는 이미지가 폭력적이므로, 실제로는 적실성이 과소평가되고 문제점은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정도의 생각입니다. 모든 집단이 그렇듯이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오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관습적인 문제들이 일소되는 측면도 있긴 하니 마냥 단선적으로 볼 건 아니긴 하겠죠. 위에도 썼지만 궁극적으로는 감상에 근거한 사고실험이 아니라 실증에 의한 정책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고요.

그리고 말씀 듣고 댓글 달면서 생각한 건데, 다원주의자들/혹은 순진한 합리주의자들의 입장 중 하나를 표어화한다면, '다양한 가치관과 선호를 가진, 이질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개인들이 상호 존중 속에서 자유로이 소통하여 문화적 다양성과 풍부함, 풍요로움을 이룩하자' 정도가 될 텐데, 사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할고 커뮤니케이션이 증대되며 갈라파고스는 사라지고 다양성은 축소되며 문화적으로 획일화된다는 점도 지적할만하지 않나 싶어요. 미시적으로야 굴곡이 엄청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총체적인 의견 교류가 이루어질수록 그 과정에서 잡설은 가지치기되고 비슷비슷한 의견들은 통합되어 궁극적으로는 한 두가지로 중론이 모이기 마련이니까요. 이 점에서 <다양성>과 <소통>은 참 뭇 집단에서 섹시하게 활용되는 어휘들이며 자주 동반되지만 정작 현실에서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네요.
14/11/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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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님의 두 번째 문단 관련해서, 저는 사회진화론같은 것을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생물학적 유전과 밈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두 집단이 상호간에 고립되어 다른 생물학적 조건에 노출되어야 종분화가 일어나듯이, 두 집단이 상호간에 고립되어 다른 문화적 조건에 노출되어야 문화의 분화도 생겨날 것 같거든요. 근데 종 분화가 끝난 두 종이 다시 만나면 생존에 덜 적합한 종이 멸종될 수도 있듯이, 다른 문화가 기술의 발달을 통해서 소통을 하기 시작하면 사회에 덜 적합한 문화 (한 쪽 문화 전체라기보다는 각 문화 속의 작은 요소들) 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지요.

따라서 다원주의를 통해서 다문화를 포용한다는 것도 21세기에만 한시적으로 통용되는 화두일 뿐, 22세기에는 '다원주의? 그게 뭐냐?' 라는 시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리고 나면 인터스텔라 우주 개척을 통해서 은하제국을 (??) 건설한 뒤에나 다시 문화의 분화가 나타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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