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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0/17 10:40:50
Name swordfish-72만세
Subject [일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후원자 중 한명

대학교수였던 갈릴레이는 많은 부양 가족 때문에 언제나 가난했는데 이런 그의 연구 자금을 대주는
유력인 몇몇이 존재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마펠로 발베리니 추기경이었습니다.

그는 교황청내에서 강력한 갈릴레이의 후원자로써 그를 적극적으로 변호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현재 그는 대중에게 그래도 지구는 돌아간다 할 때 갈릴레이의 핍박자 우르반 8세로 알려지게 됩니다.

사실 갈릴레이는 교황청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두명의 교황을 접견했으며(그중 한명 우르반 8세 나머지 한명은 바오로 5세)
예수회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의외로 당시 교황청 내에 지지세력을 컸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삭제 된 채로 알려지게 되죠.
단지 그가 소송에 휘말리게 된건 30년 전쟁 때문이었는데 이 시기 교황청내 보수파들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릴레이는 스스로의 지지세를 믿고 괜히 책을 출간했다가 봉변 당한 꼴이 된 거죠.
결국 정국을 눈치챈 그는 그 후 지동설에 대해 침묵해 버리게 됩니다. 물론 그들의 후원층도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보고
친목관계를 지속했습니다.

사실 갈릴레이가 반 교회적 선구자가 된 가장 큰 이후는 정치적 이유 때문입니다. 엄밀해 말해 계몽주의자들의 날조때문인데
교회를 구시대의 악습으로 만들고 싶었던 그들은 그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발췌해서 대중에게 유포해버립니다.
엄밀히 말하면 선동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엄밀히 말해 우리가 아는 서양 근대사의 일화 상당수는 종교전쟁과 계몽주의 시대에 각종 정치 세력의 프로파간다의 유산일
경우가 많습니다.

- 기사는 넘어지면 못 일어선다.-> 기사 계급을 비웃기 위한 서술에서 시작
- 빵이 없으면 케익-> 왕족을 공격하기 위한 날조
- 로마는 기독교 때문에 망했어요-> 계몽주의자들의 근거 없는 역사 기술

등등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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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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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도 갈릴레이가 했는지 코페르니쿠스가 했는지 둘 다 했는지도 불분명하고 지금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후대에 끼워넣었다는 설이 있죠. 본문처럼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교황청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고요.
후라이드슈타인
14/10/17 10:51
수정 아이콘
로마가 기독교로 멸망햇다가 가장 헛소리라고 하죠
정작 그 기독교가 로마의 멸망후 유럽에 서구문명이 탄생할수있는
토양을 만들어 냈는데 그서구문명의 수혜자들이 저런소리를 했으니
14/10/17 11:13
수정 아이콘
근데 갈릴레이가 소송에 휘말린 것이 유럽 사회에 알려졌더니, 그거 보고 겁 먹은 데카르트가 인쇄중이던 자기 책에서 갈릴레이 부분을 급히 삭제했다고 하더군요. 에잇 소심쟁이 같으니라고.
도로시-Mk2
14/10/1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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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귀엽네여.
14/10/17 11:14
수정 아이콘
사실 둘은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
하심군
14/10/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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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은 역사는 진실을 말해야한다는 주장은 헛소리거나 적어도 역사학도의 공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사적으로 봐도 (?!)역사는 미래의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한 도구로 쓰였지 국사교과서 첫페이지에 나오는 국사를 배우는 이유에 나온대로 쓰였던 예는 드문 것 같아요.
無識論者
14/10/1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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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 사건은 알면 알수록 계몽주의자들의 날조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지동설 관련해서는 요하네스 케플러가 갈릴레이보다 못할 이유가 없고, 갈릴레이 본인의 인성도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고, 정치권력에 아부했으며 본문에 나온 것처럼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이었죠.
이런점을 쏙 빼놓고 지동설 재판얘기만 퍼트린건 갈릴레이에게 '이성의 순교자' 이미지를 덧씌우려한 계몽주의자들의 선동이죠.
몽키.D.루피
14/10/1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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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갈릴레이의 예를 들면서 기독교를 마치 과학의 적인냥 묘사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소독용 에탄올
14/10/1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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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면 다른예가 많이 나오지만 (패기있는 "평평한 지구회"라던가) 각인효과가.......
swordfish-72만세
14/10/17 13:51
수정 아이콘
어자피 가톨릭 자체가 너무 거대하다 보니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정의가 불가능합니다.
한쪽은 오컴, 코페르니쿠스, 멘델로 이어진 쪽이 있다면 다른 한쪽은 평평한 지구회, 천동설, 등등이 있는거죠.
이정도 되면 종교가 촉진시켰다 미발전 시켰다기 보다는 개체의 성격 혹은 지역적 특수성이 더 큰거 같더군요.

지동설 그리고 요즘 동성애 시노드 보면 정말 가톨릭은 너무 거대해서 뭐든 바꾸기가 힘들다는게 느껴지더군요.당장 급격히 바꾸어 버리면 바티칸 공회의 반발해서 떨어져 나간 멜깁슨이 믿는 교파 같은 현상이 발생해요.
소독용 에탄올
14/10/17 14:12
수정 아이콘
애초에 '기독교', '이슬람' 하는식으로 하나로 묶긴 하지만, 각 종교의 구성양식은 역사적/지역적으로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카톨릭'이 거대해서 하나의 '정체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종교 자체가 역사적/지역적인 구성-재구성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바뀌는 사회적 현상이라 단일한 아이덴티티를 찾으려면 상당히 '추상적인 영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단체라고 해서 다른 '단체'들하고 딱히 크게 다른 점은 없고, 관료조직이 가지는 '안정성' 같은걸 생각하면 '카톨릭'이 변화과정에서 경험할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바라서요......
어떤 방식으로 '조정'하느냐의 문제죠.
無識論者
14/10/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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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중에는 '기독교가 없었다면 과학이 천년은 더 발전했을거다' 식의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swordfish-72만세
14/10/17 13:56
수정 아이콘
그사람들은 고대 수많은 저서들이 중세 혼란기 초반 어떻게 보관되고 재생산되었다는 것 자체를 모르죠.
기독교가 분서했다는 것만 죽어라고 주장하지, 정작 많은 서적과 지식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무지하고 대부분 고서들은 이슬람에서 들어온줄 알더군요.
소독용 에탄올
14/10/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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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중세유럽은 딱히 '중요한 지역'이 아니라....... 설사 '그' 황당한 주장이 맞다고 해도 그런 발전은 없었을거라는 점에서 ㅠㅠ
나이트해머
14/10/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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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중국, 인도 다음가는 인구돼지 넘버 3인 지역이 중요한 지역이 아니라는 건 사실 과도한 유럽 폄하죠.
중세 유럽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중요한 지역입니다.
소독용 에탄올
14/10/1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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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3이긴 한데 16세기 이전까진 '팬텍' 느낌인지라......
해당지역에서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천년씩 더 발전하고 하는 '과한기대'가 달성되긴 어렵죠
swordfish-72만세
14/10/17 14:47
수정 아이콘
넘버 3이라도 문명은 유럽과 중국 양대 축으로 발전했죠. 서로 교류를 통해서요.
소독용 에탄올
14/10/17 14:55
수정 아이콘
문명이야 세계각지에서 '나름대로' 발전(양적의미에서)해 왔고, 상호간의 교류 역시 이루어져왔죠.
그중 유럽과 중국이 현시점에서 회고적으로 보아 '양대 축'으로 볼 수 있고요.
(당시에도 그랬는지는......)

하지만 유럽에서 외계문명과의 접촉이라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천년씩 더 발전하고 할리는 없습니다.
swordfish-72만세
14/10/17 15:05
수정 아이콘
중세에 생각보다 교류가 있었습니다. 단 직접적 교류가 아니었을 뿐이죠.
유럽-아랍- 중앙아시아 소국- 중국이라는 실크로드가 발달한게 서로는 당시로는 몰랐던 이 교류 때문이죠.
특히 진정한 암흑기인 6세기 부터 9세기가 끝나고 고중세에는 보다 확실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개봉부터 콘스탄티노플 다시 베네치아나 제노바- 플랑드르이에 이르는 엄청난 교역선이 존재했고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
번영했던 시기도 이시기 입니다. 생각보다 10세기 이후는 구대륙에서 교역은 생각보다 역동적인 면이
있습니다.

덧붙이면 천년 더 발전은 개소리죠. 유럽이 중국을 넘어서는 게 신대륙 발견 부터이고 이전에는 중국이
좀더 기술발전 면에서 우위죠.
삼공파일
14/10/17 14:41
수정 아이콘
이러한 일화의 진위 여부와 관계 없이 갈릴레이의 과학적 업적은 엄청난 것이고 중세를 종식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갈릴레이의 저작들은 과학적 실험의 사실상 시작이고요.

갈릴레이가 계몽주의자들에 훗날 꾸며진 가짜 영웅이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겠습니다. 당시에 교회와 학문은 사실상 한 범주로 갔다는 문화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지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부분의 어떤 상징적 일화로서 지동설을 발표하는데 교회의 핍박이 있었다는 정도로 알면 되겠죠.

케플러에 비해 천문학적 업적이 떨어지고 데카르트에 비해 근대성에 대한 의미가 떨어지고 뭐 갖다 대자면야 끝도 없지만 갈릴레이가 없으면 과학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이 사람들 업적을 다 합쳐서 정리하고 그 합친 것의 곱절의 업적을 낸 뉴턴이 진정한 과학을 시작시켰고요.
swordfish-72만세
14/10/17 14:46
수정 아이콘
갈릴레이는 영웅이지만 문제는 반교회적 영웅이 아니라 가톨릭 과학자로써 교회가 과학에 미친 영향과 한계를 고스라니 보여준 사람이라는 게 진정한
평가죠. 교리적으로는 과학 발전에 나름 열정적이면서 신학에 벗어나면 침묵이 강요되는 그런 류요.
물론 지동설은 신학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적 문제였습니다. 개신교 애들하고 같은 소리를 하는게 그냥 기분 나쁜 보수파들이 고소해서 입닥치게
만든 거죠.
삼공파일
14/10/1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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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가 남긴 업적들이 당시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만들어 놓은 한계 내에서만 움직였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천년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종식시킨 것이 갈릴레이의 실험들이고 과학 발전에 나름 기여했다 이런 수준이 아니라 과학의 시작이고 중세의 끝이죠. 갈릴레이의 일화 몇 개가 뻥이고 갈릴레이의 인간성이 찐따고 이런 거랑은 무관합니다.
無識論者
14/10/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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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갈릴레이는 근대 과학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동시대 과학자를 다 제쳐두고 갈릴레이만, 그것도 그의 이론 중에 지동설만, 그중에서도 교황청에서 받은 종교재판만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건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부각시키려 한 계몽주의자들의 날조나 다름없다는 거죠. 이건 갈릴레이 개인에게도 좋은게 아니라 오히려 인물상을 왜곡시키는 셈입니다.
삼공파일
14/10/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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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설 재판만큼 피사의 사탑 실험도 유명하고 지동설에 대한 것도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를 폄하하면서 알려진 것도 아닙니다. 코페르니쿠스도 갈릴레이와 마찬가지의 갈등을 겪었고 교회의 탄압이었죠. 케플러는 방대한 관측을 토대로 한 것들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어렵겠고요. 중세의 학문이 교회의 후원을 통해 꽃피웠고 인류 최초의 대학이 그래서 이탈리아에 생겼으며 갈릴레이 역시 그러한 문화적 혜택의 수혜자지만 그것이 갈릴레이가 교회의 핵심 사상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는 상징성에는 조금의 선동도 없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이 찬양할 수 밖에 없죠.

교회 때문에 지동설을 얘기 못한 찐따가 되었다는 사실과 교회와 맞서싸운 잔 다르크는 아니었다는 오해 사이에서 갈릴레이가 어쨌든 중세 철학의 근간을 다 무너뜨렸다는 것은 부동의 위대한 사실입니다. 교회가 이를 부정하기 위해 갈릴레이에 압박을 가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갈릴레이와 교회, 더 나아가 중세의 사상 간에 있었던 일은 거짓된 신화는 커녕 알려진 것보다 더 위대한 신화라는 겁니다. 갈릴레이가 용기와 신념으로 중세를 엎은 게 아니라 이성과 그 이성을 증명해줄 실험으로 엎었기에 그 모든 핍박에서도 과학이 꽃핀 것입니다.
無識論者
14/10/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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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사탑 실험도 유명하지만 대중들에게 물으면 십중팔구는 지동설 재판 얘기가 나오죠. 그리고 피사의 사탑 실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당시 시대상이 어땠는지, 갈릴레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었는지도 거의 알려져있지 않죠. 대중들이 아는건 그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고, 오늘날 우리는 지동설이 사실이라 알고 있고, 교회(종교)는 성경을 토대로 그것을 막았고, 따라서 종교는 과학의 적이고. 뭐 이런 식의 논리죠. 이것 자체가 계몽주의자들의 교묘한 날조라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의 핵심 사상이기 이전에 고대와 중세의 핵심 사상이자 철학이고 이론입니다. 그걸 교회나 종교에 한정시키는 것부터가 잘못된 거죠. 전 지금 갈릴레이가 시대를 바꿨다는걸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그의 업적이 잘못된 방향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거죠.
삼공파일
14/10/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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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나 종교에 한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중세의 사상이 그렇게 한정되었기 때문이고 그런 사상이 로마 때부터 1500년대 말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발표하려고 할 때도 교회가 막았습니다. 끝까지 못 막은 이유는 갈릴레이가 용기 있는 안티크라이스트 전사라서가 아니라 갈릴레이가 발견한 것이 진실이기 때문이고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교회와 종교, 신의 권위에서 실험과 과학, 인간의 이성으로 전환시킨 상징이자 출발이 갈릴레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올바른 인식입니다.

갈릴레이의 행적이나 인간성, 누가 갈릴레이를 후원했느냐 이런 것들에 대한 오해가 없으면 좋겠지만, 갈릴레이에 대한 업적이 널리 알려서 고쳐야 될 정도로 잘못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높게 평가될 필요가 있겠죠.

종교가 과학의 적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지동설이 최초의 과학 이론과 종교적 자연관의 충돌이었고 이것이 탄압의 형식이었다는 점에서 대중의 인식에서 바로 잡아야 할 게 그닥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동설이라는 과학의 진리 앞에서 한 번 무릎 꿇고 종교계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에 보이는 태도가 그런 오해의 더 큰 원인이겠죠.
삼공파일
14/10/1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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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지만 피사의 사탑 실험은 아주 쉬운 수준의 일화 아닌가요? 무겁든 가볍든 똑같이 떨어진다는 건데요. 진짜 피사의 사탑에서 했는지 안 했는지 진위 여부도 논쟁이 많습니다만 굳이 이것도 만들어진 신화 운운할 일은 아니겠죠.
삼공파일
14/10/1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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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시로 유명한 누군가가 알고 보니 친일파였고 하도 친일파다 보니까 별 일 없을 줄 알고 저항시 하나 냈다가 재판 받고 풀려났고 그 이후에도 친일파였다 뭐 이런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라는 점에서 재밌지만, 전혀 이런 식으로 볼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갈릴레이 개인이 그렇다고 본인 실험에 대한 신념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갈릴레이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는데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재판을 받았지만 사실은 교회랑 친했다 정도로 고치라는 건가요? 지동설도 사실 교회가 얼마든지 받아 들일 수 있었지만(예수회라면 지동설을 쉽게 받아 들였을까 회의적입니다만 잘 모르는 부분이네요) 당시에 카톨릭 예수회와 보수파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카톨릭의 종교적 자연관을 무너뜨렸다는 사실보다 중요하다는 걸까요?

갈릴레이는 실험과 이성의 대변자,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성경의 대변자라는 지동설을 둘러싼 기본적인 대립구도에 선동을 붙일 정도의 호도는 없습니다.
swordfish-72만세
14/10/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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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돈 받으며 신학을 위해 연구 했던 사람을 마치 교회로 부터 핍박 받는 인물로 고쳐 왜곡 전파하는 계몽주의자가 바로 선동가죠.
삼공파일
14/10/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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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때문에 살아 생전 지동설을 제대로 펴지도 못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고 갈릴레이의 연구들이 중세 신학 자체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죠. 그런 사실을 중심으로 알려지는 게 제대로 된 평가지 어디서 돈을 받고 누구랑 친하고 이런 건 "그런 일도 있었구나"에 불과합니다.

계몽주의자들이 갈릴레이가 "지구가 돌아 태양이 돌아 바른대로 말 못해!" 이러면서 고문이라도 당한 것처럼 얘기가 꾸며졌는지 뭔가 더 한 구라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갈릴레이와 갈릴레이가 주창한 지동설이라는 진리가 교회와 성경의 이름 앞에 핍박 받은 건 왜곡이 아닙니다.

갈릴레이가 신의 섭리를 알겠다는 마음으로 실험을 했겠지만 그건 그거고 갈릴레이의 어느 연구가 신학 발전을 위한 것인지 제가 아는 한도에는 없는데요.

계몽주의가 전성기였을 때는 이미 "신 안 까면 지식인 아님" 수준이었지만, 갈릴레이는 계몽주의가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라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계몽주의의 사상적 뿌리입니다.

갈릴레이의 구체적인 일화들에서 뻥이 섞인 거랑 본문에서 예로 드신 왜곡된 일화들이랑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니까 굳이 제대로 고치자면 성경과 교회가 진리로 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늘에 가려서 태양이 도는지 지구가 도는지 무거운 게 먼저 떨어지는지 같이 떨어지는지도 모르던 인류에 눈을 띄워준 인물 정도겠네요. 그걸 천 년동안 모르던 게 카톨릭 교회 때문이니 과학의 발전을 천 년 늦췄다 그런 비유가 나오는 것이겠죠. 물론 중세의 학문이나 문화가 계몽주의에 의해 과도하게 축소평가되고 폄하된 부분이 있겠지만 그런 건 그런 부분이고 과학은 과학이고 진리는 진리죠.

이성의 힘으로 자연을 보는 법을 일깨운 갈릴레이를 "사실은 교회 돈 받고 연구하던 신학자"로 정정하는 게 맞나 싶어요.
swordfish-72만세
14/10/1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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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애초 신학과 과학은 나눌 수 있지만 가톨릭 교회도 이성을 통해 자연을 보죠. 단지 신학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만....
사실 님이 나눈 구도 자체도 계몽주의자들 프레임 그자체 입니다.
기실 당대에 그렇게 양자 간의 대결은 날카롭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 갈릴레이 자체도 신학 때문에 입닥친게 아니고요.
정말 지동설이 신학에 어긋난다면 폴란드 주교 코페르니쿠스는 자기 이름을 그런 책 못내죠.
엄밀히 말해 이사안은 신학과 과학의 대결이 아닌 유럽 당대 정치적 문제일 뿐입니다. 30년 전쟁 시대였으니까요.
이걸 억지로 신학과 과학의 대결처럼 꾸며 교회를 반 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모는 거 자체가 프레임 장난입니다.
계몽주의자들이 과학이라는 발전한 학문을 자기만 독차지하려는 수작에 가까운 프레임 장난이요.
그 증거로 기업화 거대 자본화 되기 전 20세기 초까지 사제 출신 과학자는 꽤 많았습니다.
삼공파일
14/10/17 18:20
수정 아이콘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이 카톨릭에 의해 금서로 정해지고 지동설을 부인할 것을 강요 받았다는 사실과 코페르니쿠스가 주교였고 연구하면서 카톨릭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사실이 공평하게 알려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이해합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로마 카톨릭의 중세적 우주관을 무너뜨렸다는 한 줄 요약이 과도한 생략은 아니라는 거죠. 이 사상적 대립이 덧댐이나 뺌이 있나요?

유럽 당대의 정치적 문제들과 당대 학자들이 카톨릭의 후원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발견한 과학적 진리에 비해 아주 사소한 일화에 불과하며 특히 갈릴레이를 "교회의 후원을 받은 신학자" 정도로 요약하는 건 호도다 정도로 말할께요.

중세 신학에 대한 오해로 그 당시에 그렇게 대립하지 않았다는 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그 때까지 자연과학이나 학문의 토대로 과학사적 의의까지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20세기까지 쭉 살펴보면서 신학도 과학을 공유할 자격이 있다까지 나가면 좀 토론이 너무 산으로 가고 격해질 것 같네요.
나이트해머
14/10/18 00:11
수정 아이콘
과도한 생략 맞아요. 애초에 중세적 세계관과 근세적 세계관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둘은 연속적이죠. 중세의 천동설이 고정된 진로 취급되어 교리적으로 수호된 게 아닙니다. 천문학이 계속 발달하면서 관측데이터가 쌓이고, 그걸 토대로 계속 수정 보완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우주관이죠. 중근세의 천문 관측 기술로는 천동설을 과학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괜히 당대 그 누구보다 천문관측 데이터를 많이 축적한 티코 브라혜가 천동설을 고수한 게 아닙니다. 갈릴레이가 재판에거 패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죠. '지동설을 천동설을 대체할만한 학설이 되게끔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는 것.

그러다가 관측 데이터가 정밀해지고 정교해지면서 더이상 천동설을 고수하는 게 어렵게 된 순간 지동설이 비로서 천동설을 대체하는 데 성공합니다. 결국 이건 고대, 중세적 우주관의 '데이터 축적에 따른 변화와 발전' 의 연장선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이점을 무시하고 지동설을 이전것과 완전히 다른 것, 교회와 대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사실 왜곡에 가깝죠. 지극히 18 19세기 계몽주의적인.
삼공파일
14/10/18 00:34
수정 아이콘
지동설이 천동설을 보완해서 발전했다면 연속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지동설은 말씀하신 그 데이터의 축적으로 천동설을 완전히 대체하는 새로운 이론입니다. 티코 브라헤의 데이터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데이터를 하나의 이론으로 케플러가 정립했을 때 나타났고요.

갈릴레이와 케플러가 뛰어난 망원경을 만들자 축적된 데이터가 더이상 천동설로는 관측 결과를 설명할 수 없게 됐고 그래서 지동설이 받아들여진 것인데 이게 어떻게 연속적인가요? 구체적으로 갈릴레이는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목성의 가장 큰 위성 4개를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발견해 궤도를 밝히고 천동설로는 그 궤도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다소 데이터에 문제가 있었지만 갈릴레이와 케플러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데이터가 있었고 이론도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빠르게 지동설이 인정 받은 것이고요.

쿤이 제시한 과학 혁명에서 위기(crisis) 발발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것이 패러다임 전환이고요. 하나도 안 연속적이에요. 시간적으로 겹치는 부분은 위기 발발의 순간이고요.

과학사적 사실도 이상하게 바꾸시고, 연속적이라는 말이나 연장선이라는 말을 시간적 앞뒤를 뜻하는 수준으로 자의적으로 쓰시면 대화가 어렵죠.

아니, 하나는 태양이 돈다고 하고 하나는 지구가 돈다고 하는데 이게 어딜 봐서 연속적인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나이트해머
14/10/18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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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는 완벽한 데이터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지동설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만. 갈릴레이가 재판에서 패배한 건 '지동설을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인 부문도 있습니다. 완벽하게 모든 천체의 움직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재차 수정보완하는 것이 더 타당하였던 것이죠. 케플러의 성공은 그가 티코 브라혜의 막대한 데이터를 통해 이를 성공적으로 입증했기 때문이고. 왜 성공했고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부분을 멋대로 왜곡하시면 안돼죠.

그리고, 몇몇 선구자들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식의 영웅주의 사관은 지양할 때가 되었다 봅니다.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표현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예죠. 중세와 자신들을 분리시키고자 했던 계몽주의의 표현이 착실히 성과를 거뒀다고나 할까. 혁명적? 글쎄요. 천동설이나 지동설이나 둘 다 근거한 데이터의 기초는 동일하고 이론적 과학성도 그렇죠. 지동설이 나타났다고 천동설이 단번에 그 학설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도 아니며, 지동설이 천동설을 순식간에 완벽히 부정할 정도의 과학성을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초반에 둘은 옿려 보완적 특성을 지녔고, 병립하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정밀한 데이터가 관측되면서 천동설이 견뎌내지 못하고 도태된 후 지동설만이 남은 것이죠. 그래서 단절적이라기보단 연속적이라는 거죠.

단절적? 종교때문? 이것만큼 현대에 부정될만한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애초에 야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 학설은 그때까지 가장 과학적인 이론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중세 중엽 즈음하여 당시 사회적 틀을 대표하던 교회로 대표되는 종교계에서 그 권위를 인정, 수용하였던 것이지 종교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주장이 의심없이 믿어진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의 포기가 소위 말하는 '과학의 발앞에 종교가 굴복하'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이전까지 가장 과학적이라 여겨져 수용했던 이론을 바꾸는'것에 불과한 일이였으니까. 차라리 그냥 과학계 내부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라고만 한다면 그건 나름 타당할지도 모릅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주류 학설이 신학설로 점진적인 대체가 벌어지는 현상이니까. 하지만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고 단절이라고 한다면 그건 꽤 잘못된 주장이죠.
삼공파일
14/10/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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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로 나이트해머님과 제대로 대화하려면 제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입장인데 별로 그렇게 생각하진 않으실 것 같네요.

쿤의 과학사적 해석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신 것 같긴 한데 오용이 너무 심합니다.

갈릴레이가 데이터가 부족했다느니 카톨릭이 가장 과학적인 이론을 채택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보니 댓글로 바로 잡긴 힘들 것 같아요.

갈릴레이 이전에는 실험과 데이터라는 개념 자체가 제대로 성립이 안되었다는 전후 관계와 갈릴레이 4위성이라고 불리는 궤도 측정은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매우 정확하다 정도만 얘기할께요.
나이트해머
14/10/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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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파일 님// "지동설이 '참된 논증'을 통해 입증된다면, 성경에 근거하여 지동설이 틀렸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며 [성경을 신중히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 당시 유력 교회측 인사인 벨라르민 추기경의 발언.

갈릴레이가 왜 재판에서 졌는지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가르친다고 하는 게 실로 재미있네요. 제가 19세기 사람과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착각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시 가톨릭은 갈릴레이가 [확실하게 모든 과학적 의문에 제대로 답을 해낼 수만 있다면] 지동설을 천동설을 대신하는 학설로 받아들일 태도를 보였다는 것만 이야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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