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판결에 대해서 보수진영이 응답해야 하는 이유



1.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있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피고인들의 지시로 매일 시달받은 이슈 및 논지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비방하는 정치 관여 행위를 한 점은 인정되지만 선거법상 선거 개입 혐의로까지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금 받아서 일하는 국정원 양반들이 조직적으로 [야당을 비난하고 여당을 빨았지만] 북한을 방어하기 위해 한 것이니 [선거개입은 아니다]라 한 것입니다. 여기 김상혁 1승 추가요. 김상혁 씨가 사실 이 비틀린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자신의 사회적 명성을 바친 위대한 전위 아티스트였다는 게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의 판막음을 법이 하려고 했지만, 법의 판결이 판을 마무리하기는 커녕 시들어가던 이슈에 작게나마 다시 불을 붙인 셈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논리에 수긍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말이겠지요. 아.. 혹시나 이 일에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거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 그분들의 양심과 이성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봅니다. 판결은 그 자체로 정의가 아닙니다. 이성과 정의가 있고 그걸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사법체계가 태어났을 뿐 여러분도 합리적인 선에서 이성과 정의로 판단할 수 있어요

“박근혜가 신뢰받는 이유… 아버지 박정희 때문도 있겠지만… 저는 세종시 발언에서 나온 그때의 그 짜릿한 국회 발언이 컸다고 그때는 정말 웬만한 야당보다 더한 임팩트였죠… 그런 소신이 있으니 지금까지 온거고요” - 국정원 계정이 리트윗(이하 리트윗), 2012년 10월 2일

“박근혜 후보 후원 계좌안내 대선 승리로 가는 큰 힘이 됩니다. ARS후원전화(1통화에 3000원) 060-700-2013” - 리트윗, 2012년 10월 28일

“오늘도 기분좋게 5통화했어요~♬ 박근혜 후보 후원계좌안내 대선 승리로 가는 큰 힘이 됩니다. ARS 후원전화(1통화에 3000원) 060-700-2013 여러통화해도 됩니다” - 국정원 계정이 트위터 직접 작성(이하 본인글), 2012년 10월 28일

“편하게 살수도 있을텐데 오로지 국민과 나라를 위한 일념으로 개인의 모든걸 버리고 희생하는 박근혜 후보를 밀어주셔야 합니다. 박근혜 후보 악수통증 고백 ‘손 잡히기보단 잡는게 덜 아파’” - 본인글, 2012년 11월 21일

"<동영상> 확실하게 준비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 후보의 로고송입니다! 무한 RT 부탁해요." - 본인글, 2012년 11월 30일

“종북 문재인이 당선되면 낮은연방제-적화통일(공산화)을 이루려고 할 것입니다. 자유월남이 적화통일되었을 때처럼 재산몰수, 자유·인권탄압, 학살되거나 정신수용소에 가거나 보트피플이 될 것입니다” - 본인글, 2012년 11월 6일

“문재인 대북관은 종북을 넘어서 간첩 수준이었다. 모든 국민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12월8일에는 “문재인 부친이 북괴 인민군 장교 출신??” - 본인글, 2012년 11월 23일

이런 글들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로 국정원 요원들이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그냥 눈 딱 감고 양심과 이성으로 판단하세요. 저런 글들을 수 백, 수 천, 수 만 건 썼으면 저게 대선개입입니까 아닙니까? 하다 못해 저거 지시한 사람 모가지 정도는 날려야 하는 일이 아닌가요?




2.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글에서 하려는 본론은 "이번 법원 판결은 잘못되었다"가 아닙니다. 지록위마. 저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걸 전제로 깔고 들어가야 이 글이 하고싶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제는 이런 판결이 나오고서 많은 사람들이 권력(행정, 사법, 입법, 언론)을 붙잡고 있는 세력에 대해 깊이 실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근본으로 나아가서는 그 권력에 계속 힘을 보태주는 보수진영 지지자들에게 환멸하고 있고요.

물론 어떤 정치권력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그 정치권력이 보이는 모든 행태에 지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는 건 압니다. 한 사안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도 다른 사안에서 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면 표를 줄 수 있는 일이죠. 나아가서 모든 이슈에 대해서 사상검증을 하듯이 대답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한마디로 [민주주의 다원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원칙이겠죠.

그러나 반대로 [민주주의 다원성]이 모든 의견에 대해서 표로 결정을 내리고, 서로의 생각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 사회 공동체를 함께 꾸려나가면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나 국가 그 자체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 그렇겠지요.

범야권 세력은 이미 통합진보당을 버렸습니다. 이석기 의원 제명안에 새정련 의원들이 찬성을 하였고, 통합진보당은 거의 유효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요. 하다못해 인터넷 어느 커뮤니티를 가도 NL 세력에 대한 옹호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자정작용이 진행된 것이죠. 문재인 종북론, 박원순 빨갱이론, 광주 폭동론...을 믿는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지금이라도 왼쪽 위에 '뒤로' 버튼을 눌러주세요.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원세훈 판결을 시작으로 해서 국정원 대선개입 이슈 전반이 보수진영 지지자가 [반드시 응답해야만 하는 문제]란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게 정말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이제 그 오만(?)을 던져버리고 여기에서부터 설득하는 글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3.

< [민주주의] >

저 단어에 동의하십니까? 그러면 당신은 이 국정원 이슈가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에 동의한 것입니다. 들어가봅시다.


만약 당신이 위 단어에 동의하신다면 아래 문장에도 동의할 겁니다. 법치주의 정신의 핵심에는 헌정질서가 있으며 더군다나 저 부분은 민주주의 정신을 선포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제 1장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위 문구에 대한 해석은 많은 헌법학자들이 비슷비슷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의 정치체제가 민주공화국이기에 적어도 독재, 왕정제를 부정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기에 원칙적으로 공동체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모든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직접민주주의]) 그러나 그게 현실적으로 완전히 실현되기는 불가능하기에 보통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사람을 선출하여 권력을 부여한다([간접민주주의], [대의제]) 그렇지만 여전히 국민주권의 원칙에 반하지 않도록 여러가지 견제 장치들이 작동해야 한다.([권력통제]) 권력을 나누거나([삼권분립]), 권력을 행사할 때도 법이나 절차를 지키게 하거나 ([법치주의], [절차준수]), 권력을 행사할 때도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인권존중]) >

크게 동의하기 어려운 말은 아닐 것입니다. 가장 핵심 키워드는 두가지입니다. [대의제](즉, 투표제도)와 [권력통제]. 이 두 개는 서로 대립하는 논리이기도 하면서 보완하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어쨌건 공공의 의사결정이 필요하기에 투표제도를 사용합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죠. 그러나 한편으로 국민투표로 뽑았다고 그걸 방치하도록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나치도, 북한도, 유신정권도 어쨌건 투표로 탄생한 권력이니까요. 고대 그리스부터 괜히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흐르는 것을 걱정한 게 아닙니다. 결국 [권력통제]원리는 [대의제]로 선출한 권력을 견제하지만, 반대로 충분한 통제를 거친 권력은 더 탄탄한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어려운가요? 걱정 마세요. 저는 친절하니까요.


[민주주의] : 군주나 독재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
[직접민주주의] : 모든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이상적인 상태. 그러나 실현시키기 어렵다.
[간접민주주의], [대의제] : 투표를 통해서 국민의 의사를 대리할 사람을 뽑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투표를 뽑은 권력도 여전히 남용의 위험이 있다. 가장 간단한 예가 투표로 집권한 세력이 결국 국민의 투표권을 없애버리는 경우.
[권력통제], [삼권분립] : 권력을 서로 나누어서 서로 견제하게 한다. 보통 가장 기본은 법치주의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세 개의 권력을 찢어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집니다. 국가정보원은 행정부에 소속되어 있고 그 임무는 국가 안보에 관한 여러 가지 방첩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권력과 권한은 ‘국가의 안보를 실현’ 시키기 위해서 행정부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들은 그런 행정부의 손과 발로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들이 준 세금과 권력을 가지고서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한 겁니다.

상황은 더 최악으로 이러한 권력을 통제할 메커니즘들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수사반장(권은희)에서부터 검찰총장(채동욱)까지 다 공격을 입었습니다. 더군다나 검찰총장은 청와대 행정관이 뒷조사를 했죠.(그리고 당연히 개인적 일탈이 되었고) 사법부 판결마저 그 논리가 “사람은 죽였으나” “살인죄는 아니다” 수준이니...

물론 지금 상황이 민주주의 가능성을 다 막아버리는 독재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가지고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국민의 의사판단을 흐려버리려 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골격을 부수는 행위이며, 일단은 심증이지만 권력통제 과정마저도 거의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사태는 더욱 심각합니다. 권력의 ‘일탈’까지는 있다고 쳐도 그 ‘통제’가 안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어떤 식으로 더 부서질지 모릅니다.

결국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틀을 공유하고 있는 이상, 정치적으로 어떤 진영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지 떠나서 서로가 인식을 공유하고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근거없이 옹호하는 일은 [민주주의 다원성]으로 존중해줄 일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응답해야만 하는] 일인 겁니다.



4.


결국 이 글은 보수진영 지지자를 소환하는, 사실 반쯤 타박하는 글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도덕적, 이성적 호소에 대해서 부정적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런 목소리는 보수세력 지지자 층에서만 나오는게 아니에요. 가장 최근에는 ‘진보 싸가지론’이 그 예겠지요. “보수진영 지지자들은 자유주의적 이성과는 다른 형태의 도덕(혹은 감성, 혹은 생활) 체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걸 존중해야 한다.” 결국 “쟤네들은 민주주의를 잘 모르니 너희들이 다른 방식으로 잘 구슬려야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른 게 뭘까요? 정치인에게는 유효한 충고가 될 수 있겠지만요.

앞에도 말했지만 범야권 세력은 통진당을 점점 발라내고 있습니다. 경제성장, 안보, 북한문제 전부 나름의 대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산업화 세력의 공은 이해하지만 이제 분배를 할 때”(경제민주화, 복지 이슈), “특전사 출신 대선후보. 통진당 수준이 아니면 근거 없는 빨갱이 모략은 안된다”, “북한이 권력을 세습하는 건 문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안정을 위해서 국가대 국가로서는 온화한 제스쳐를 취할 수 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꾸준히 대답을 하려고 해왔습니다.

이제 보수진영 세력의 밑바탕이 되는 지지자들이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침묵한다고 존중할 수 없는 이런 문제에서 그대들은 어떤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