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08/11 17:02:02
Name 王天君
File #1 Caeser.jpg (4.8 KB), Download : 54
Subject [일반] [스포]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보고 왔습니다.


시저가 유인원 무리를 이끌고 골든 브릿지를 건너 레드우드 숲에 정착한 지 10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원래대로라면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들이 시저 무리에게 괘씸죄를 물어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겠죠. 그러나 치매 치료제를 연구하던 과정에서 생긴 바이러스가 인류를 멸종 위기에 몰아넣은 덕에 시저는 그들의 무리와 함께 유인원들만의 사회를 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공동체 생활을 영위해나가던 중,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은 인간들 몇이 숲을 들어왔다 유인원 하나를 다치게 하고, 서로를 무시하며 살아가던 두 영장류 사이에 다시금 전란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시작과 끝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시저와 유인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전작에서는 함께 살던 윌을 통해서 그나마 관찰자로서의 비중을 차지하던 인간은 이번 편에서 더욱 비중이 줄어들었어요. 엄연히 인간과 대결하는 이야기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인간은 철저히 손님의 수준에 머무릅니다. 모든 희노애락은 시저와 그 무리들에게서 생겨나고 인간은 관객이 시저 무리를 보며 느끼는 감정 이상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과제는 분명해집니다. 과연 인간 대신 동물이 보는 사람에게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가겠죠. 전작에서 인간에 근접해가는 동물을 보며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경외와 두려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만큼의, 혹은 인간 이상의 무언가를 시저와 그 무리들이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 과제를 잘 수행해내고 있습니다. 사슴 떼를 사냥하는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1편 막바지에 나왔던 유인원 무리의 진화가 어떻게 됐는지를 알 수 있어요. 이들의 지능은 영리한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흐르는 세월 동안 일사분란한 조직으로 거듭날 정도가 되었으며, 발달된 조직력을 바탕으로 모든 생물 위에 군림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본능 위에 있는 계율이 있고 문화가 있습니다. 유인원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명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코바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 이들은 단순히 위험한 존재가 아닌, 위엄 있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말을 타고 다니는 시저와 측근들입니다. 다른 동물을 길들일 정도의 지배력을 상징하면서도 다른 존재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시각적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들에게 평화적인 제안을 하러 갈 때에도, 말 위에 있는 시저를 올려다보며 이야기하는 말콤을 보며  (재미있는 것은, 코바가 무리들을 이끌 때는 땅을 기는 원숭이와 높은 곳에 위치한 인간들의 높낮이가 유난히 대비된다는 것입니다. )  이 영화가 시저 무리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죠.

그렇다고 시저의 무리가 갑자기 인간만큼 지적인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결집하면 결집할 수록 그들의 원시성은 배가됩니다. 말콤 일행이 시저 무리와 처음 맞닥뜨렸을 때부터 영화는 계속 시저를 제외한 유인원들에게 아직 야생의 흉포함이 건재함을 강조합니다. 맨몸으로는, 혹은 총 한 자루가지고는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툭 하면 위협에 시달리는 말콤 일행을 통해 상기시키죠. 이 때문에 드라마가 전개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인간의 공포와 종 사이에 좁힐 수 없는 장벽에도 설득력이 생깁니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해 올 수 있던 무기 중 하나인 조직력은 시저 역시도 가지고 있고, 진보된 테크놀로지의 우위는  거의 사라지고 없으니까요.

때문에 이 무리를 통솔하는 시저는 대단히 카리스마 있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것이 단순히 멍청한 원숭이들 속 뛰어난 한 마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는 자신의 우월함을 밑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리더로서, 시저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Home, Future, Family” 라는 시저의 대사는 그가 얼마나 지혜로우며 뚜렷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거기다가 그는 가족을 아끼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윌과의 추억에 젖어들기도 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으으리를 강조하는 사나이다움까지도 갖추었구요.

이렇게까지 전형적인 영웅의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전달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걸 해내고 있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 공을 앤디 서키스와 배우들에게 돌릴 겁니다. 실제로 시저의 표정과 목소리가 앤디 서키스란 배우 없이 가능했을거라고는 저 역시도 생각하지 않아요.그렇지만 저는 이것이 유인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설정의 힘 또한 몹시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이들이 인간이 아니니까, 어떤 특징들이 두드려져 보인다고 해서 이것이 그렇게 인간에게 부여되는 전형성만큼 튀어 보이지 않는 것도 있을 겁니다. 시저를 제외하고는 유인원들은 어쩔 수 없는 짐승의 한계가 있으니까요. 때문에 시저의 완전무결한 영웅성은 군계일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진화한 시저의 특출남인 듯이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사건 중심의 서사보다는 캐릭터에 의해서 진행되는 부분이 훨씬 더 강합니다. 그 누가 됐건, 그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그렇게 사건이 생기고 상황은 복잡해질 수 밖에 없어요. 아무리 시저가 코바를 때리고 훈계한들, 그는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는 시저를 절대 이해할 수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유인원 역시 흥분 상태에 휩쌓여 코바를 따르고 멋도 모른 채 인간들을 습격했을 테지요.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겁쟁이들이 일으키고 마는 불길에 인간과 유인원 모두가 휘말리는 것은 정해진 수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뻔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중에도 영화는 힘을 잃지 않고, 비극적 기대를 배반하지 않은 채 난관을 차근차근  타개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들이 없진 않습니다. 코바가 총을 탈취하는 장면은 부자연스러워요. 멍청한 경비원 클리셰가 인간들의 경계심이 극에 달한 그 상황에는 아귀가 맞지 않아보입니다. 또한 드레퓌스의 강경함도 작품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극도의 원한이나 보호본능에서 비롯된 것일텐데, 그의 행위를 이해하기에는 영웅적 코드의 근본이 되는 부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소통을 모르는 존재로서 유인원 측의 코바와 짝을 맞추기 위한 구색이 너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할까요.

영화는 일종의 우화처럼 인간과 유인원을 대비시키며 인류의 위대함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라 말합니다. 평화가 이루어지는 협상과 결렬의 과정을 통해 이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어려운 것인지 교훈을 던져주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시저라는 한 유인원의 위대함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우월한 능력이 아니라 그의 고뇌와 성찰이 그 위대함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그를 우러러보는데  종의 차이는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겉멋과 화력의 크기에 빠져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잃고 있던 영웅극 본연의 핵심일 것입니다. 하기사 하나의 종이 독립해나가는 데 저만한 영웅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안되겠죠. 확실한 건, 이만한 여름용 블록버스터용으로  이 영화는 너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 전 아무리 그래도 앤디 서키스 하나 때문에 모션 캡쳐 연기 부문을 따로 만들자는 건 동의하지 않습니다. 특수효과 팀을 무시하는 처사에요.

@ 이 영화는 훌륭한 속편의 조건을 다 충족하고 있습니다. 액션의 확장, 연출기법의 발전, 더 커진 드라마,새로운 종류의 더 어려운 미션.

@ 번역된 제목은 어떻게 봐도 이상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당근매니아
14/08/11 17:03
수정 아이콘
앤디 서키스는 그냥 특수분장하고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근데 이 아저씨 예전엔 진짜 직접 얼굴 나오는 배우할 페이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나이 들고 하면서 오히려 인상이 배우하기 적합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거 같아요.
스트릭랜드
14/08/11 17:11
수정 아이콘
너무도 보고싶었는데...ㅠ.ㅠ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멜로나 코믹 정도가 아니면 큰 스크린을 고집하는 편이라 혹성탈출을 보러 갔다가 군도만 보고 왔네요. 가오갤 보러 갔다가는 명량만 보고 오고...;; cgv가 보여주는 영화만 보고 있는 요즘이라 그토록 기다렸던 혹성탈출을 나중에 아이티비로나 봐야 할 운명에 처하고 말았네요. 200석 넘는 관에서 하나라도 하고 있었으면 망설임 없이 선택했을텐데 87석짜리 영화관은 비디오방 같아서...쩝~!!!

리뷰를 보고 나니... 다시금... 으허엉~

리뷰 고맙습니다~
라미레즈
14/08/12 17:37
수정 아이콘
가오갤은 용산 아이맥스..

혹성탈출은 김포공항 롯데시네마 288석 7관..

영화는 역시 큰 스크린에서 ^^ ;;
14/08/11 17:16
수정 아이콘
유인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유인원을 유능하게 그리기 보다는 인간을 너무 무능하게 그려버린듯...
14/08/11 17:49
수정 아이콘
사람을 그렇게나 죽인 위험한 유인원들이 떼로 있고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데 숲을 곧장 봉쇄하고 최소한 다음날에는 숲을 태워서라도 소탕작전을 펼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지능을 가진 유인원들이라도 화기 사용도 못하고 한다해도 수년간 훈련받은 인간보다 떨어질텐데요. 숫자도 엄청 부족하고요(한 도시에 그렇게 많은 유인원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바이러스가 얼마나 빨리 퍼졌길래 유인원 수십마리도 소탕 못한 걸까요...
아스날
14/08/11 18:44
수정 아이콘
나오는거 보니 수십마리가 아니라 최소200마리 이상은 돼 보이던데요?? (1편 얘기인가요?)
그건 별개로 인간을 너무 무능하게 그린건 맞는것 같습니다.
14/08/11 18:55
수정 아이콘
네 1편 이야기입니다.
타임트래블
14/08/11 20:05
수정 아이콘
잘 만든 영화죠. 마지막 장면에서 시저에게 무릎꿇고 손을 내미는 유인원 일족의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진정한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봤습니다. 그 이어 보인 시저의 고뇌와 결의가 엇갈리는 듯한 눈빛으로 끝맺은 건 정말 최고의 연출이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5407 [일반] 카톡으로 알았던사람에게 대순진리회 피해를 당했던 일입니다. [54] 가네21857 14/12/12 21857 1
55348 [일반] 지성적 직관(직관의 원리와 개발방법) [62] 소오강호8313 14/12/09 8313 5
55153 [일반] 마도카 오케스트라 콘서트 예매 시작 30분 전입니다 [2] 랜덤여신4583 14/11/29 4583 1
54681 [일반] 테헤란 로의 마경, 커피숍 [45] GameFictionMovie8393 14/11/03 8393 18
54136 [일반] IQ210 천재소년 김웅용 어디까지 진실일까? [51] 놋네눨느싸UI눨느46438 14/10/05 46438 5
54003 [일반] [단상] 자조하는 분위기에 대하여. [11] 해달4982 14/09/27 4982 3
53911 [일반] [잡설] 교만, 음란, 나태에 관해 [32] 파란무테9242 14/09/21 9242 21
53792 [일반] 유게에 올라오는 바이럴 광고글 찾아내기 [38] 7387 14/09/15 7387 8
53789 [일반] (스포) 루시 보고 왔습니다. [31] 王天君7354 14/09/15 7354 0
53577 [일반] 미드 <멘탈리스트> 리뷰 : 과장의 내적 리얼리티 [38] 헥스밤9649 14/09/01 9649 5
53548 [일반] 직장인의 한 부류_인간사시미 [20] 캡슐유산균9179 14/08/31 9179 3
53165 [일반] [스포]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보고 왔습니다. [8] 王天君5017 14/08/11 5017 0
53081 [일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오덕과 비오덕이 갈리는 영화 [49] 주먹쥐고휘둘러7642 14/08/06 7642 0
52722 [일반] [스포있음]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을 보고 [50] 풍경5862 14/07/14 5862 2
52586 [일반] 테니스이야기 -로저 페더러 2014 상반기 결산 [56] 달달한고양이6951 14/07/07 6951 4
52067 [일반] 패완얼의 사회학 [26] 헥스밤8486 14/06/02 8486 8
52061 [일반] (스포)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보고 왔습니다. [5] 王天君5180 14/06/02 5180 0
51767 [일반] 추억의 드라마 '첫사랑'을 아시나요? [68] 살앙하는차11680 14/05/16 11680 2
51534 [일반] [우주]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인위적 개체, 보이저 1-2호 (2/3) [38] AraTa_Higgs10407 14/05/03 10407 72
51442 [일반] 친척 어른들을 보면서......(?!) [3] 성동구5145 14/04/30 5145 0
50883 [일반] 주여 이 노답들을 구원하소서(우리동네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니!) [159] 워3팬..10892 14/04/04 10892 8
50866 [일반] 상대의 말을 못알아 먹는다는 것의 여러 의미. [87] 캡슐유산균7694 14/04/03 7694 4
50496 [일반] 로보캅 보고 왔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王天君4645 14/03/17 464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