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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05 21:55:58
Name KARA
Subject [일반] 일본측 서적에 기록된 이순신의 실각이유
일본쪽 서적을 읽다가 일반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이순신의 실각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아무래도 일본측 서적이다 보니 같은 사건도 우리와는 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습니다.

해당 서적 명은 「海と水軍の日本史(바다와 수군의 일본사)」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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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 - 가등청정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코니시 유키나가 - 소서행장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가토군 상륙과 동시에 군령위반으로 이순신은 체포되었다.
코니시 유키나가는 요지로라는 이중 스파이를 써서 기요마사의 도착일시 예정의 정보를 고의로 흘렸다.

주전강경파로 히데요시의 의지에 충실한 개인 다이묘 기요마사는 임진왜란에서 코니시의 화평교섭을 방해해 왔다.
기요마사가 건재한 이상은 이 의미없는 전쟁의 종결은 없었다.

순신에게도 그 정보가 전달되었다. 정보원이 적장 코니시라는 것에 의심을 품은 순신은 모략이라고 생각해 채용하지 않았다.
도원수 권율의 설득에도 응하지 않고, 왕명을 거부했다.

그동안 기요마사는 이미 상륙을 완료했고, 전기의 상실로 인해 원균등 서인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반역죄로 체포 투옥되었다.
군법상 사죄(사형)이지만, 지지파의 구명탄원, 불리한 증거도 없다는 것 등으로 인해 사죄를 면해, 도원수 권율하에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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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스파이에 관한 내용은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은 알고 있는 내용이고, 선조실록(김응단 보고서)에도 기재되어 있는 내용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해당 내용이 이순신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해석되어
선조가 왜군의 이중스파이 계략에 속았고, 이순신이 적의 술수를 간파했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파면된 것으로 해석되는 분위기인데,

일본측에서는 가토와 코니시의 주전-화친 정파 싸움을 기반으로 코니시가 가토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조선 정부측에 흘려준 정보를
이순신이 무시해서 (조선으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이 재미있군요.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 어느 쪽이 실체적 진실인 지 잘 판단은 안됩니다만, 선조실록과 일본측 주장의 공통점.
즉, 가토의 상륙정보가 선조에게 흘러 들어갔고, 선조의 어명을 이순신이 어긴 것이라면

왕권이 절대적이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선조가 이순신을 파면한 것은 그렇게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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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칼괴기
14/08/05 21:59
수정 아이콘
알아도 부산포 해전 같은 사례 보면 달성 불가능한 명령이니 무시했을수도 있죠. 일종의 핑계랄까요.

결론적으로 이 정보의 진위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가덕도 이동 지역에서 작전을 한다면 성공가능성 자체가 중요한데
이미 한번 겪은 이순신 장군 입장에서는 딱히 확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진 않았을 겁니다.
기실 할 필요도 없는 작전이구요.
14/08/05 22:00
수정 아이콘
저도 일본 위키피디아였나 뭐 비슷한 문서 읽다가 저 내용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근데 설령 코니시의 의도가 진심으로 가토를 죽이려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이순신이 그것을 믿을 만한 이유는 없었지요.
14/08/05 22:03
수정 아이콘
이순신이 일본군으로서의 정보를 의심한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출동명령이 어명이었다는 것이고, 이순신은 결국 어명을 어긴 것이죠.
선조는 이순신의 판단의 옳고 그름이 아닌 -어명을 어겼다-라는 이유만으로 파면시킨 것이겠죠. 뭐, 꼰대이기도 하고.
14/08/05 22:05
수정 아이콘
그건 그렇습니다. 근데 그 어명이란 게 다른 분들이 말씀해주셨다시피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 지라.... 그러니까 결론은 선조를 까야합니다.
14/08/05 22:07
수정 아이콘
사실, 전시에 최고 군사지휘관의 작전수행에 대해 왕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부터가 이상하긴 합니다.
지가 뭘 안다고;;;
14/08/05 22:09
수정 아이콘
그렇죠. 근데 선조 입장에서 보면 딱하니 이상한 점은 없는 게, 이순신은 전쟁을 수행하는 중이고 선조는 정치를 하는 중인 지라. 물론 그래서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Psychedelic Moon
14/08/05 22:07
수정 아이콘
그 어명 자체가 불가능한걸 하라는 소리랑 같은 이야기 였죠. 그냥 답이 없는 명령입니다.
nicdbatt
14/08/06 09:20
수정 아이콘
어명을 어긴게 크더라도 그 전쟁통에 만렙 영웅을 죽이거나 파면하려고 한다는 게...
Psychedelic Moon
14/08/05 22:02
수정 아이콘
여기서 두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수 잇겠는데

1. 저 정보를 믿을수 있느냐.
2. 정보가 사실이라고 해도 작전의 성공가능성이 어느정도냐 입니다.

애초에 진위 자체는 그리 상관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만 만약에 사실이라고 해도 그 작전의 성공가능성이 중요해지죠.
뭐 이전에도 한번 일을 겪은 입장에서 그것에 대해 깊히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던 상황이고요.
yangjyess
14/08/05 22:08
수정 아이콘
삼국지에서 나오는 <전장에 나선 장수는 주군의 명을 듣지 않아도 된다> 같은 개념은 우리나라에는 없었을까요?
요정 칼괴기
14/08/05 22:11
수정 아이콘
사실 선조가 써먹은 건 선조만 써먹은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군주가 자기보다 명망 높은 장군들을 실각 시킬 때 써먹는 방법이라서요.
그러다가 나라 해먹은 군주가 한 두명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최소 많은 군주들이 그 사람을 잘라도 대신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때 써먹는데 선조에게 그 대신할 사람이 원균이었다는 것도 비극이구요.
14/08/05 22:11
수정 아이콘
이순신은 그렇게 생각했으니 어명을 무시했을 터일텐데, 선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겠죠.
기아트윈스
14/08/05 22:49
수정 아이콘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의 범위를 놓고 오랜시간 주거니받거니 해석이 달라졌지요. 어떤 시기엔 더 풀어주고 어떤 시기엔 더 조이고.

어느 쪽이 더 좋냐는 문제에 대해선, 말씀하신 개념이 효율적이고 좋아보이지만 정작 오대 십국 기간동안 (907-960) 10년에 한 번 꼴로 왕조를 갈아치운게 다 그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 덕분이었거든요.
Siriuslee
14/08/05 22:12
수정 아이콘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9D%B4%EC%88%9C%EC%8B%A0#s-4.5

웃긴건,
선조의 명을 받은 통제사는 가토를 잡기 위해서 부산포로 출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올지 모르는 가토를 망망대해에서 기다리기 보단
그냥 부산포 정찰겸 무력 시위를 한판 하신 후에 돌아온것이죠.

이미 임진왜란 초기처럼 부산포에 기습을 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남해안일대에는 이미 왜성들이 축성되어있었고, 부산포의 일본수군의 수도 만만치 않았던것 뿐이죠.


선조는 그냥 [나가 죽어] 라고 하고 명을 내렸고, 그 명에 따르지 않자 자른것 입니다.
14/08/05 22:14
수정 아이콘
선조가 멍청한 것도 있지만, 아마도 인의 장막으로 인한 정보왜곡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원균이 자기라면 할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말이죠.
선조는 왜곡된 정보를 통해 충분히 수행 가능한 작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14/08/05 22:19
수정 아이콘
사실 그와 관련해서 윤 모 씨라고 까여야 할 인물이 있지만...오늘날은 원균 하나 어쩌지 못하는 판국이니...
포켓토이
14/08/05 22:12
수정 아이콘
일본은 이순신이 정보를 믿고 공격해오면 의도대로니까 생큐, 정보를 믿지 않고 무시하면 이순신이 어명을 어겨 징계받으니 생큐
선조는 이순신이 어명을 어기면 징계하면 되니 생큐, 정보를 믿고 공격하러 가서 성공하면 생큐, 실패하면 무능력을 징계하면 되니 생큐.
이순신은 어명을 어기면 징계받고, 어명대로 하면 망하고...
이 프레임에서 일본과 선조는 거의 무조건 득을 보고 이순신은 무조건 망하죠... 물론 큰틀에서 병력의 손실은 선조에게도 손해겠지만
어차피 정치의 세계에서 그딴 것은... 선조는 놀라운 정치적 감각으로 이 건이 자신에게 매우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무리한 어명을
내렸을겁니다.
14/08/05 22:13
수정 아이콘
선조야 마치 정찰하는 오버로드 잡는 것처럼 쉬운 줄 알고서 그런거지만 이순신이 보았을때에는 그 정보가 확실한지 아닌지, 가토가 오는걸 잡아서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본군이 가득한 부산으로 출정해 가토를 찾는다는게 무리였겠죠. 실제로 부산까지 가기도 했었고...그냥 선조의 의심병이라고 밖에 할 수 없죠. 그렇게 토사구팽했으면 후임이라도 잘 뽑아야 하는데 그게 원균이었고...
14/08/05 22:14
수정 아이콘
이순신이 출정하지 않은게 아니라 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이 조정이 가토 잡아라 라고 해서 들었을 당시에 가토는 이미 와 있었죠. 그래서 가토를 못 잡은 것은 사실. 이순신한테 타임머신은 없으니까요.
눈시BBv3
14/08/05 22:21
수정 아이콘
이때에 이르러 행장이 또 요시라를 시켜 응서에게 비밀히 말하기를 (응서는 이때 전라 병사였다.) “이번 강화의 일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청정 때문이므로 나는 청정을 매우 미워하고 있다. 아무날에 청정이 바다를 건너 올 것인데, 조선에서는 수전을 잘하니 만약 바다 가운데서 마주치면 가히 승리할 것이요.” 하므로 응서가 급히 장계를 올렸다.
- 연려실기술

이거 조선 쪽 기록 참고한 걸 걸요? (...) 일본측에도 기록은 많지만 다 가문기록이라서 임진왜란 연구할 때 조선쪽 기록 많이 씁니다. 징비록부터가 근대 이전에 일본에 소개됐구요
14/08/05 22:25
수정 아이콘
어느쪽 기록을 참조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쪽 기록들에도 (당연히) 가토와 코니시의 적대관계에 대한 사료는 많다고 들었습니다.
눈시BBv3
14/08/05 22:27
수정 아이콘
둘은 마지막까지 적대적이었죠 (...) 문제는 정유재란 당시 고니시가 진심으로 가토를 죽이고 전쟁을 끝내려고 그걸 알렸다는 게 일본 기록에 있냐는 거죠.
당시 고니시 상황이랑, 당시 가토 상황 보면 절대 그건 아니라서 말이죠. 그리고 고니시가 정말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당시 날짜를 보면 불가능한 얘깁니다. 출동이 아니라 그냥 한산도에서 배 타고 부산으로 놀러가기에도 힘든 시간이에요

아무튼 이순신에 옹호적이든 비판적이든 저게 뼈대입니다.
진실은 그게 아니라는 게 문제죠
눈시BBv3
14/08/05 22:35
수정 아이콘
https://pgr21.com/?b=8&n=28804
당시 상황에 대해선 이 글을 봐주세요.
조선 쪽 입장이든 일본 쪽 입장이든 본문에 나온 건, 지금으로 바꿔보면 정부의 공식 발표일 뿐입니다. 문제는 실록에서 그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다 적혀 있다는 것이죠. 선조는 자기 입으로 불과 얼마 전의 일을 왜곡했고, 신하들도 거기 맞춰 줬습니다. 그 '발표'가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죠. 그런데 실록은 그대로 남아있기에 뒤져보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구요.

간단히 말하면 조정에서 이순신에게 뭔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가토는 도해를 완료했고, 카톡으로 연락했어도 잡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이순신 역시 소식은 들었지만 당시 한산도에 없었고 한산도로 가서 뭔 준비든 출동 결정이든 하기도 전에 가토가 도해를 완료했죠
14/08/05 22:40
수정 아이콘
네. 선조를 조금이라도 커버칠수조차 없는게, 이순신의 죄는 ['이순신에게 타임머신이 없었다'] 밖에 없기 때문에...
나이트해머
14/08/05 22:41
수정 아이콘
1월 초 가토가 도해한다는 소식에 출진준비를 하지만 이미 도해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중지. 잠깐 있다가 2월초에 다시한번 출격해서 부산포를 들쑤시고 돌아옵니다. 해얀가 왜성이요? 그걸로 조선 수군이 막힌 사례가 없지요.

최소한 이 파직에 관련해서는 조정에서 옹호받을 사람 많지 않습니다. 연려실기술에는 류성룡을 실각시키기 위한 간접적인 타 당파의 공격이었다고 적었고, 그것이 통상어른 그 자체를 위협시여긴 선조와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Siriuslee
14/08/05 22:43
수정 아이콘
가등청정 - 소서행장 둘 사이가 얼마나 안좋았냐면..
일단 둘 모두 히데요시의 휘하에서 활약하면서 다이묘에 오른 인물들입니다만,

가등청정은 히데요시의 처조카로 히데요시가 패권을 잡으면서 집중적으로 키운 (친인척) 인물인데,
규슈를 제압하면서 받은 영지 구마모토 17만석 (물론 지금도 그가 세운 구마모토 성이 남아있습니다.) 의 영주가 되고

소서행장은 오사카의 장사꾼 출신인데, 주로 수군과 외교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역시나 히데요시가 규슈를 제압하면서 영지를 받아서 다이묘가 되었는데, 구마모토 바로옆에 24만석의 영주가 되죠.

출신부터 무사와 상인으로 달라서 서로 맞지 않았는데다, 영지마저 붙어있다보니 둘 사이가 정말 나빴습니다.

거기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 둘이 서로 선봉을 다투면서 진군을 합니다.
임진년에 출진한 다이묘 명단을 보면 특이할만한것은, 이 둘이 선봉을 맞을 정도로 대영주가 아니라는겁니다.

시마즈가문이나 모리가문(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끔) 처럼 100만이 넘는 대영주들을 제끼고 선봉에 선것은 바로 이 둘이 이끌던 병사들이 히데요시의 직속병력이었다는 것이지요.

결국 히데요시 사후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서 붙은 세키가하라에서도,
서로의 출신처럼 무사출신인 가등청정은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쪽인 서군에 붙었고,
소서행장은 석전삼성(이시다 미츠나리)의 동군에 붙었지요.

세키가하라 전투 결과, 소서행장은 참수 당하고, 소서행장의 영지는 모두 가등청정이 꿀꺽해서 50만석이 넘는 영주가 됩니다.

결국 가등청정만 잘먹고 잘 살았다는 슬픈 이야기
눈시BBv3
14/08/05 22:45
수정 아이콘
청정이도 잘 먹고 살진 못 했죠 ㅠ
나이트해머
14/08/05 22:51
수정 아이콘
별로 잘먹고 잘살진 못했습니다. 무단파로서 문치파의 수장격인 이치다 미츠나리와 사이가 너무 안좋아 이에아스 편에 서지만(실제로 히데요시 세력 내 무단파 상당수는 이에아스 편에 서서 세키가하라 전투를 치릅니다) 히데요시 가문 자체에는 여전히 충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이에아스와 대립하게 되고, 의문사하거든요. 조선통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에아스가 독살했다고.

그리고 그 아들 대에서 다이묘 정리를 거치면서 영지를 뺏기고 가문이 몰락하죠.
14/08/05 23:43
수정 아이콘
가토 온다는 정보가 조정에 올라간 건 맞는데 그게 충무공께 내려오면 이미 상륙한거죠
그냥 좋은 핑계였겠죠 뭐- _-;;
14/08/05 23:46
수정 아이콘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조정에 정보가 와봤자 말타고 한양가서 다시 말타고 전라도까지 갔다고 보면 한달은 걸렸겠군요;;;
꽃보다할배
14/08/06 11:12
수정 아이콘
결론은 위너가 고니시라는 것이죠. 가토를 잡아도 좋고 아니면 조선 수군이 흔들리고 퍼지면 유언비어로 전쟁 또 나나? 라는 혼란도 생기고 1석3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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