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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21 01:49:36
Name 눈시BBv3
Subject [일반] 시마즈 요시히로, 스테가마리, 노량


시마즈 요시히로. 임진왜란 참전 무장 중 유명한 편이긴 한데 사실 다른 참전 무장들과 비교하면 급이 다릅니다. 그와 비교할만한 이는 고바야카와 다카가게 정도죠. 전라도 공략에 실패한 (...)

시마즈 가문은 큐슈 남쪽을 다스리는 슈고 다이묘, 그러니까 막부에서 직접 임명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래저래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고 있엇죠. 이러다가 시마즈 다카히사가 가문의 혼란을 정리했고, 그 자식 시마즈 요시히사에게 당주자리를 물려줍니다. 요시히사에겐 3명의 동생들이 있었고 다들 잘났으니 이른바 시마즈 4형제였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쳐 70년부터 10여년간 큐슈를 휩쓸어버립니다. 헌데 큐슈 통일이 눈 앞에 다가온 순간(87년) 기독교인 다이묘 오토모가 히데요시에게 헬프를 날렸고 히데요시는 대군을 이끌고 큐슈를 정벌했죠 -_-; 좀 맞서 싸우다가 항복. 이걸로 형 요시히사가 은거하고 둘째 요시히로가 당주가 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0년, 세키가하라 결전이 일어나죠.

여기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단 천명만을 동원합니다. 뭐 이런저런 이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쪽에선 당연히 노량해전의 피해로 그랬다 하고 있구요. 일본 쪽에선 사쓰마 내의 혼란, 형 요시히사와의 의견대립 등으로 분석한다 합니다. 요시히로는 동군을 편들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서군 편에 들어갔다고도 하구요 -_-; 야습을 주장했다 하는데 서군을 이끈 이시다 미쓰나리는 요시히로를 무시하죠. 이런저런 갈등 끝에 요시히로는 전투가 시작됐는데도 방관하고, 공격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아군이 도망쳐오자 공격했다 합니다 (...) 왜 이랬는지는 이래저래 미스테리입니다.

그러다 전투가 끝날 무렵, 서군의 패배가 확정될 무렵 역시 참 어이없는 결정을 내립니다. 일단 후퇴명령을 내립니다. 근데... 동군 본진을 돌파해서 후퇴한다는 거였죠.


자료화면? 전국무쌍 4입니다. 늙은이가 시마즈 요시히로, 젊은이는 조카 토요히사입니다. 퇴로는 앞이다, 우리는 귀신(오니) 시마즈다. 돌격한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여기서 시마즈군은 스테가마리라는 전법을 씁니다. 일부 병력이 적장을 집중 저격하고 돌격 시간을 버는동안 본군은 도망가는 거죠. 토요히사도 이 스테가마리가 돼서 전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큐슈로 돌아간 병력은 천 명 중 80명이었다 합니다.

+) 중간에 나오는 '체스토'는 사쓰마 특유의 기합소리입니다. 이 쪽 군사들은 독하기로 일본 내에서도 유명했다 하네요.

솔직히 뭔가 이해하기 힘든 그런 방식입니다만... 뭐 같지만 멋있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일본에서는 '시마즈의 후퇴'라고 부른다 합니다.

자,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적장 공격, 그걸 위한 매복과 기습, 그리고 철포(조총)입니다. 이건 시마즈 가문이 큐슈 통일 직전까지 가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매복해서 집중사격하든가, 유인하든가 하는 식입니다.

이제 이걸 기억하면서 1598년 노량으로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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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해전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원거리에서 화포로만 잡았다는 겁니다. 틀렸죠. 화포로 좀 때려부수고 박치기도 한 후 화살로 적병 죽이고 나포하거나 불화살로 아예 태워버려야 했습니다. 한산대첩쯤 가면 장수들이 신나게 돌격해서 일기토도 벌이기도 하구요 -_-; 이렇게 한 척 한 척을 정성스럽게 없애는 방식이었습니다. 화포가 아무리 사거리가 길다 한들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명중률을 높이려면 접근해야 했습니다. 어디 지금 무기라고 최대사거리에서만 쓰나요. 소총의 멀이 250m인데요.

+) 이순신의 장계를 보면 누구는 한 척을 불태우고 한 척을 나포하고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남이라면 대충 깨뜨린 것도 다 쳤을텐데 말이죠. 이런 점에서 전 명량해전의 31척도 정말 그 급박하고 전투 끝나자마자 후퇴해야 했던 상황에서 확실히 나포하고 불태운 것만 계산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판옥선이 높기에 위에서 아래로 쏘는 이점도 컸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면 적의 조총 사격에 안 맞을 수는 없는 상황이죠. 절대 원거리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근접전이 동반됐고, 제대로 없애야 되는만큼 그 시간도 짧을 수 없었죠.

안 쪽에서 보호되는 대장은 괜찮을까요? 글쎄요... 사천 해전 때 적선은 컸다 해도 겨우 12척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방 맞았죠. 정말 천만다행으로 중상이 아니었구요.

부산포 해전, 일본군은 조선인들을 동원해 화포를 쐈습니다. 여기서 정운이 전사합니다. 그리고 하아안참 흘러 원균이 통제사가 됐을 때 김축과 안홍국이 적탄에 맞죠. 이후에도 마찬가집니다. 꾸준히 맞고 심하면 전사하고... 병사들이 아니라 장수들이요. 금적금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고, 일본군도 정말 할 수 있는 걸 다 한 것이며, 조총의 위협이 상당히 컸다는 것이죠.

노량해전은 야간에 시작됩니다. 적의 수는 작게 쳐도 300척, 너무 많았죠. 야간에 근접전, 적을 관음포로 몰긴 했지만 악착같이 돌파를 시도합니다.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현감 고득장 등이 전사했죠. 첨사, 군수, 현감, 다 고위직입니다. 그들을 포함해 지휘관 10여명이 전사했다 합니다. 적은 수가 아닙니다. 당시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많아야 80척으로 추측되니까요.

http://ulanbatu.cafe24.com/zeroboard/zboard.php?id=imjin&page=1&sn1=&divpage=1&sn=off&ss=on&sc=off&keyword=%C0%FC%B6%F3%BF%EC&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17

거기다 이에 따르면 전라우수사 안위가 적탄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고 하죠. 조선수군 넘버 2도 당한 겁니다.

장수들의 피해를 생각하면 일반 병사들의 피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적다고 볼 수도 있고 상황이 상황이라 기록하기 힘들었을수도 있죠. 노량해전은 이덕형의 장계로 겨우 그 상황을 어느정도 알 수 있습니다. 전과와 피해를 제대로 기록한 건 없죠. 아무튼 확실한 건 지휘관들의 피해가 너무도 컸다는 겁니다.

상선은 어땠을까요? 적은 명군을 노렸고, 위기에 처한 진린을 구하기 위해 직접 움직였습니다. 상선이 적에게 완전히 노출된 겁니다. 이러면서 군관 송희립도 적탄을 맞습니다.

애초에 적장 노리는 게 정석이기도 하고, 일본군은 7년간의 해전을 통해 적장을 저격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그리고 시마즈군은 조총에 능했고, 적장을 저격하는 전법을 가지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적들이 대장선이라는 걸 뻔히 알 수 있는 상선에 타고 마침 날이 밝아오는 상황에서 장대에 오르진 않더라도 대장이라는 게 뻔히 보일 갑옷을 입은 통제사가 적탄에 맞아 전사한다는 건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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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해전의 키워드 중 하나는 자살설입니다. 여기서 자살위장 은둔설로 발전하기도 하죠.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여기서 살았더라도 편히 살긴 힘들었을 거고 십중팔구 토사구팽 됐을 겁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죠. 거기다 그 동안 얼마나 죽고 싶었겠습니까. 어머니 잃고 자식 잃고 몸 다 망가진 상황에서도 적과 싸워야 했습니다. 난중일기 보면 죽고 싶다는 말이 한두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네, 이제 소원도 이루었으니 더럽게 살 바에야 깨끗하게 죽을 때가 됐죠.

자살설은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구요. 자살까진 아니더라도 갑옷을 벗고 적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면 되는 거 아니겠냐는 말도 나오죠. 이 갑옷을 벗는다는 게 열심히 싸운다는 뜻의 관용어라는 걸 조선인들이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이순신의 상황이 그 정도라는 것을,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것을 다 아니까 하는 얘기겠죠. 그 맘 알겠으니까 조금이라도 편히 가시라는 것...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저도 이 유혹에서 벗어나긴 힘들어요. 그냥 적당히 적에게 더 가까이 그 정도라면 말이죠.

하지만, 좀 따져보면 그것마저도 '나라면 죽겠다' 정도죠. 그리고 이순신은, 장군님은 그런 범인들의 생각을 몇 번이고 뛰어넘었구요.

시마즈군은 그저 고니시군을 구원하러 온 이들입니다. 이들을 상대하고 고니시를 다시 쳐야 했습니다. 소서행장, 그 얼마나 이가 갈리는 이름입니까. 선봉으로 평양까지 간 게 고니시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고문시켜서 칠천량까지 이어지게 한 게 고니시였죠.

"이 원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此讎若除 死即無憾(차수약제 사즉무감) - 이충무공행록

원수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니 제일 먼저 온 원수가 바로 코 앞에 있었고, 심안돈인지 석만자인지 하는 저 놈은 그걸 방해하러 오는 놈일 뿐이었죠. 대마도까진 못 가도 최소한 울산에 있는 가등청정 정도는 잡아야 원수를 무찔렀다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고니시는 해전 중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그것까지 파악 혹은 예상하고 있었을까요? 고니시군 역시 1만이 넘고 수백척의 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고니시가 뒤에서 협공을 해 왔다면? 이쯤되면 조선 수군이라고 어쩔 수 있었을까요? 아 물론 장군님이 계시니까 어떻게 되겠죠. 그런데 그 장군님이 이런 걸 무시하고 자살을 선택할까요? 원균 짓이라 해도 일본군이 툭 치자 무너진 게 수군이었고, 죽어라 싸우자 다짐했는데 슬금슬금 물러나서 혼자 싸워야 했던 게 1년 전입니다. 아무리 일본군이 철수한다 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칠 생각을 했을까요?

저라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자살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나라면 그랬을 거라고. 하지만 그랬다면 거기까지 가지도 못 했을 겁니다. 그 참담한 상황에서, 상중이라는 핑계로 단 한번만 거절해도 됐을 것을 그냥 받고, 적지를 누비며 수군을 다시 모으고,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고, 수군 재건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까지 성공했으며, 이제 재건한 수군으로 원수를 갚을 것만 남은 상황, 그것도 이제 좀 갚으려 하니까 적들이 도망가서 한시라도 하나라도 더 잡아야 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우리라면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그럴 수 있는 분이 아니죠.

"왜적의 시체와 부서진 배의 나무 판자·무기 또는 의복 등이 바다를 뒤덮고 떠 있어 물이 흐르지 못하였고 바닷물이 온통 붉었습니다" - 이덕형의 보고

노량해전이 끝나도 고니시가 도망가지 않았다면 왜교성 전투는 계속됐을 겁니다. 도망갔다면 남해도를 넘어 거제도로 갔겠죠. 그리고 최대한 빨리 안골포로, 부산포로, 울산 서생포로 갔을 겁니다. 적을 잡을 수 있을 가능성은 적었겠지만, 그게 장군님이죠.

노량해전이 마지막 전투였기에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충무공께서 전사하셨기에 노량해전이 마지막 전투가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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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오랜만에 신장의 야망 하다가 스테가마리 얘기나 좀 해볼까 하던 거였는데 말이죠........... 요시히로나 막내 이에히사로 스테가마리 쓰면 효과가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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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jyess
14/07/21 01:55
수정 아이콘
자살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그정도 정신력으로 거기까지 갈래야 갈수가 없어요. 진작 죽었죠.
눈시BBv3
14/07/21 02:40
수정 아이콘
거기서 죽을 정신력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는 게 또 함정이죠 (...) 정유재란 기간 동안 걍 자살하거나 무작정 적진에 돌격 전사해도 뭐라하기 힘든 그런거요 크크
14/07/21 02:12
수정 아이콘
시마즈 얘기를 하시나 싶었는데 결국엔 기승전 장군님이네요 크크. 간만에 쓰신 장군님 이야기 잘 봤습니다.
저도 솔직히 자살? 까지는 아니라도 마지막 전투에서 좀 위험한 시도들을 하신건 아닐까 했는데, 이 글 보니 상황이 이해가 가네요.
눈시BBv3
14/07/21 02:43
수정 아이콘
분명 시작은 스테가마리 얘기하면서 노량판 시마즈의 후퇴라고 하고 '만나도 이런 놈을 만났네요'라고 할랬는데 말이죠 ㅠ 요시히로가 모든 걸 계획했을 것 같진 않지만 원래 저런식으로 싸웠다고요.
아무튼... 적이 도망가려 하니 더 급해지고 더 무리수를 두긴 했을 것 같긴합니다. 다만 그게 죽기 위해서가 아닌 명량에서 했던 것처럼 적을 죽이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겠죠 ㅠ 아아...
다시 보니까 차라리 죽는 게~ 이 부분부터 감정이 격해졌나봐요 =_=;;
14/07/21 02:50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면 시마즈 전통전술에는 츠리노부세도 있습니다.. 후퇴하면서 적을 끌여들여 활과 철포로 적의 장수만 저격하는 방법이죠.
게다가 장군님은 적을 격멸할 생각이었으니 아아... ㅠㅠ
눈시BBv3
14/07/21 03:07
수정 아이콘
류조지랑 싸울때 끌여들였다는 게 그건가요? 에고 또 새로운 용어가 ㅠ 전국시대도 다시 들여다봐야겠네요
아무튼.... 장군님 어찌 그렇게 가셨나요ㅠㅠ
14/07/21 02:20
수정 아이콘
슈고 다이묘라는 게 삼국지의 탁고대신 느낌인가요?
14/07/21 02:35
수정 아이콘
일본 정치 시스템을 좀 알아야 되는거긴 한데.. 가마쿠라 막부 성립이후 일본은 2원제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실권이 전혀 없지만 명예는 있는 조정(덴노) / 실권과 무력을 가진 막부(정이대장군)
그 이전에도 각 지방영주는 임명했습니다. 그중에서 슈고 다이묘는 막부가 임명하는 지방장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이야 國이라고 이름붙은 지방으로 나누어지고 그 아래에 郡이 있고 그 군내에 성이 있었던거죠.
당연히 지방의 군권과 징세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각 지방 守(카미)로 조정이 임명했었죠.

시나노카미,무사시노카미,이세노카미 뭐 이런거면 다 조정에서 내린 관직이고. 슈고가 붙으면 장군이 임명하는 관직입니다.
그 양쪽은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렇게 된거야 뭐 가마쿠라 이후 부터 아시카가까지 열심히 장군가가 삽질해준 덕분이구요 -_-

쉽게 설명하면 지방장관과 총독의 차이라고 해야하려나요.
눈시BBv3
14/07/21 02:39
수정 아이콘
양님이 말씀해주셨네요. 간단히 막부에서 임명한 세습되는 지방 영주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 시대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14/07/21 02:29
수정 아이콘
자살설은 진짜로 말이 안되는게.. 그럴 분이면 해군을 다시 살려놓지도 못했겠죠. 어차피 죽을건데...

시마즈 다카히사는 방계출신입니다. 아버지인 다다요시가 분가에서 본가로 넘어온 첫 인물이죠. 그것때문에 내분이 일어나긴 합니다.
이 가문이 조총을 사용하는데 능숙했던건.. 휘하에 타네가시마 가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에서 총포를 들여와 일본식으로
개량한 조총의 명칭은 이 가문의 이름을 따서 타네가시마입니다. 뭐 이것도 설이 있긴 하죠. 포르투갈인이 큐슈뿐만 아니라 사카이에도 갔을테니.
시마즈 4형제는 규슈내에서 만큼은 알려진 공적을 쌓았죠. 맏형인 요시히사는 내정에 진력하고(당주니까...) 요시히로야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남은게 너무 많아서 생략. 이에히사는 고작 6천명으로 큐슈 삼국의 하나인 류조지를 박살내버렸고....
도시히사는 히데요시에게 끝까지 저항하다가 할복.. ㅠㅠ

사실 타이밍이 뭐 같았던게 그때 딱 모리도 쵸소카베도 히데요시 손에 집어넣은 상황이라 큐슈로 병력동원이 가능했던게 원인이었죠.
그렇게 손에 집어넣었던 가분 대부분이 에도 막부 성립때 다 상태가 안좋았던건...

이후야 세키가하라 전투의 결과로 영토가 대폭 축소.. 사쓰마번의 원류가 됩니다. 막말에 토쿠가와를 무너트리는 한축이 되지요.
이시다 미쓰나리와는 서로 데면데면.. 유력영주가 달랑 천명 데려오는 바람에 빡친거죠.. 그래서 총대장을 모리로 삼아놨더니 뒤통수를 빡...
천명밖에 동원 안한건 일단.. 본국이 멀어서..-_;;; 이게 제일 유력하긴 합니다. 정예라는 이유도 있지만요.
사이좋게 세키가하라에서 박살나고 적대하던 타치바나랑 사이좋게 귀국한건 안자랑...

체스토 하면 생각나는건... 이 동네가 유게에도 올라온 검술. 시현류가 생긴 동네라는거죠 크크크.
진짜 저런 무사들이 일제사격이후에 기합을 넣으면서 돌격해온다고 하면 참 무서울겁니다.

결론은 다 됐고 장군님 만만세..
사실 신장이고 행장기고 귀신이고 뭐고 간에 수군 S,A급 장수들 다 발라서 뭐라 할말도 없습니다 크크크
눈시BBv3
14/07/21 02:51
수정 아이콘
정말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닌 거죠 -)b
방계였군요. 휴; 각 가문들 이야기 알면 재밌긴한데 역시 복잡하네요ㅠ 타이밍이 참 희한하긴 해요 크크. 하필 딱 히데요시가 대군 모을 수 있는 타이밍이라니요. 큐슈 정벌과 오다와라 정벌은 히데요시 전국통일의 엔딩이죠 ㅠ
천명이 다 요시히로 위해 죽었던 걸 보면 그래도 정예 데리고 온 거 같은데 다 날리는 것도 좀 ㅡ.ㅡ 시마즈의 후퇴는 뭘 노린 걸까요? 퇴로가 아예 없진 않았을건데... 그냥 후퇴하면 가문에 피해 클테니 무시못하게 뜨거운 맛 보여준 걸까요? 시현류도 그렇고 참 마초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장군님 만만세~~!!
14/07/21 02:55
수정 아이콘
구지 거기를 돌파한건.. 상대가 거기로 돌파할건 예상못하겠지? 거기가 최단거리야! 하고 돌파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_-;;;;;;;;
사쓰마 남자에게 우회란 없다.. 라고 하고 매번 포위전술로 적 말리는게 특기였던 사람이 할짓은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죠~

"천명을 다 죽이더라도 사쓰마인의 용맹을 천하에 떨친다면 그걸로 됐어.." 이렇게 말할수 있는 사람들이죠 크크크
거긴 그랬던 시대이기도 했구요.
근데 그 여파를 보면.. 주력을 다 끌고온 모리는 쥬코쿠 10개국이 싹 날아가고 달랑 2개 남은 반면에..
사쓰마는 남 큐슈를 거의 다 살렸죠. 예전에 먹은 가신들도 인정됐고.. 이런게 나비효과려나요~
눈시BBv3
14/07/21 03:04
수정 아이콘
... 진짜 뭐같지만 멋있는 거에 죽고사는군요 (...) 하긴 그랬던 시대구요 크크.
몽키.D.루피
14/07/21 03:01
수정 아이콘
1000명 중 80명 남은 걸 전술로 치나요? 그냥 전멸인 거 같은데..
14/07/21 03:06
수정 아이콘
저 동네는 영주가 죽으면 그냥 망하는거라서요.. 정예를 다 죽이고 조카를 제물로 삼아서라도
영주인 요시히로가 살아갔으니 성공이죠. 게다가 그 어려운 적중돌파도 성공했으니 이름도 남을거고..
눈시BBv3
14/07/21 03:13
수정 아이콘
도망가다가 입은 피해가 아닌 적진을 돌파해서 대장을 무사히 보낸다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거죠 크크
Siriuslee
14/07/21 11:43
수정 아이콘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B8%ED%82%A4%EA%B0%80%ED%95%98%EB%9D%BC%20%EC%A0%84%ED%88%AC#s-4
여기 대략의 배치도가 나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 군대는 서쪽 하늘색 배치도의 정가운데 전열, 고니시 유키나가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군요..)

세키가하라 전투 종반까지
명목상 총대장이었던 모리가문의 병력은 움직이지 않았고(배치도상 동쪽 산위의 파란색 병력들...)
고바야카와의 배반으로 3면이 포위된 상황 (뒤는 산)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전멸인 상황입니다.

이때 빈틈을 노리고 정면을 돌파해 이에야스 본군의 앞을 지나서 지도에 나오는 남동쪽 길을 따라 퇴각을 하기로 한거죠.
병력은 대부분 희생되었지만, 일단 다이묘는 살렸구요(..)
총 참가 1000명 -> 80 명이라지만, 시마즈병력이 탈출을 시도할때는 이미 300여명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300명 탈출 시도해서 80여명 남았으면, 그래도 꽤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300명이 돌격해서 돌파한 포위망이 최소 만명.. 단위입니다.(동군 총병력이 8만 + 배반한 병력까지 하면 최대 10만)


그 직후 여러가시 정황상..
서군에 참가했던 많은 다이묘중에 시마즈 가문만 미미한 피해를 받고 그대로 유지를 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만 당주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
오쇼 라즈니쉬
14/07/21 03:50
수정 아이콘
체스토를 여기서 보는군요. 체리오~!
Je ne sais quoi
14/07/21 07:3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인규Roy문
14/07/21 09:27
수정 아이콘
미쓰나리는 츤츤의 원조가 아닐지
서린언니
14/07/21 12:26
수정 아이콘
사쓰마 하니 괴한 기합소리를 내며 적을 박살내는 시현류가 생각나는...
개평3냥
14/07/21 15:03
수정 아이콘
전 이순신장군님 은둔설을 신봉합니다.
정설인 전사설,자살설보다는 은든설에 믿음이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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