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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15 16:12:03
Name 헥스밤
Subject [일반] 압생트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어제 단골손님이신 피쟐러에게 쪽지가 왔다. 쪽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압생트가 너무 좋아서 압생트를 한 병 샀는데, 그냥 먹어도 맛있긴 한데 뭐 섞고 먹고 싶어요. 뭐 섞을까요' 라는 것이었다. 답변을 쓰고나니 어 이게 꽤 긴데, 이거 압생트 애호가들에게 나름 정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게에 옮긴다.

압생트의 유래나 기원 등에 대해서는 각자 인터넷을 찾아보자. 워낙 유명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술인 덕에, 온갖 기담급 도시전설이 난무하는 다른 술들과 달리 한국어 웹만 뒤져봐도 압생트 전반에 대한 꽤 정확한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 압생트와 파스티스. 보헤미안/체코 압생트. 압생티아나. 압생트와 저가와인의 경합. 압생트에 대한 거짓 신화. 이 정도의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재미있는 글이 많이 나올 것이다. 아니.

http://blog.daum.net/su-water/13743103

이 글이 정리가 참 잘 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한국어 웹/서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술에 대한 이야기는 도시전설과 괴담 투성이다. 과장 안 보태고 엔하위키의 진/보드카 항목의 반정도는 완전히 잘못된 서술이다(덕분에 술에 대한 오해와 거짓을 밝히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 책은 가을-겨울 쯤 출판될 예정입니다. 질게에 올렸던 위스키 번역서는 한달 내로 나올 거구요..)

자, 서론은 이쯤하고 압생트를 '맛나게' 먹어보도록 하자.

압생트는 예술가들의 술이라기보다는 프랑스에서 (특히 남부에서) 소주처럼 마시는 술이다. 예술가들이 예술 하려고 '오 뿅가죽네' 하고 일부러 압생트를 먹은 게 아니라 그냥 싸서 먹은거다. 이를테면 한국 인디뮤지션의 술, 소주처럼 말이다. 법적인 압생트 금제 이후, 압생트는 마케팅을 위한 여러 전설로 무장한 채 몸값을 올려버렸다. 그래서 현재 프랑스인들은 압생트보다 파스티스(압생트 금지 이후, 문제가 된 성분을 빼고 만든 프랑스산 싸구려 압생트)를 더 선호한다. 이는 파리 출신의 유태인 손님과 리옹 출신의 프랑스인 손님, 그리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여러 손님과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이니 꽤 신빙성 있고 현대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거기서는 주로 파스티스의 한 브랜드인 리카 (세계적인 주류자본 '페르노-리카'의 그 리카 맞다. 참고로 페르노 역시 파스티스 회사다. 한국으로 치자면 참이슬-처음처럼이 연합하여 세계 주류계의 패도를 걷는다! 같은 느낌이랄까)를 물에 섞어 마신다. 1:1로 섞어도 소주보다 독하고, 달달하다. 다만 아니스 술이 모두 그렇듯이 취향을 매우 심하게 탄다.

압생트는 설탕과 물을 섞어 마신다. 그게 가장 일반적인 음용이다. 자. 이걸 집에 두고 다른 술과 재료를 사서 칵테일을 만든다라. 뭐 '바텐더'로 유명해진 오후의 죽음 같은 칵테일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만, 샴페인은 압생트에 사치다. 안 그래도 취향 타는 압생트를 한번 따면 다 마셔야 하는 샴페인에 섞는다니. 뭐 하는 짓인가. 그러면 뭘 사서 섞어마시는 게 편하고 맛있나.

압생트와 함께 먹기 가장 무난한 리큐르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민트 그린 리큐르라고 생각한다. 주류매장에 '크렘 드 민트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며, 디카이퍼dekuyper와 마리 브리저marie brizarde의 제품이 가장 대중적이다. 디카이퍼 쪽이 맛과 색이 조금 더 쎄지만 약간 인공적인 느낌이 난다. 혹시 외국 나가는 친구가 있으면 Get27/Get33같은 프리미엄 민트 리큐르(프리미엄이래봐야 리큐르라 별로 안 비싸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민트 리큐르 중 하나인데 한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우훗, 우리가게에는 반병 남아있지롱)를 구해달라고 하는 것도 좋다.

민트그린과 압생트를 1:1 (바텐더마다 다른 비율이지만)로 섞고 취향에 따라 물 혹은 설탕을 섞어주면 '추파Glad eye'라는 칵테일이 완성된다. 추파를 던지다, 할때 그 추파다. 압생트의 허브향과 민트향이 민트의 민트향과 단맛과 섞여서 그야말로 추파처럼 달고 끈적하고 고혹적인 칵테일이 완성된다. 그리고 추파처럼, 절대 아무한테나 던지면 안되는 칵테일이다. 압생트 자체의 향미에 민트향이 강한데 거기에 민트를 또 섞는다. 민트 내성이 없는 사람에게 이걸 권했다가는 그가 당신에게 싸다구를 날리게 될 수도 있다. 추파나 Glad eye나 각을 보고 던지도록 하자. 각 안 보고 던지는 걸 우리는 하드쓰로잉이라고 칭하지 않는가.

추파가 아니더라도 압생트와 민트를 2:1 혹은 3:1정도로 섞어 살짝 압생트를 '달달한 압생트'로 만든 후에 파인애플 쥬스나 레몬쥬스, 키위쥬스같은 상큼한 쥬스를 넣고 탄산수나 탄산음료를 넣어먹어도 맛난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외국의 어벤져스 덕후가 만든 어벤져스 칵테일의 '헐크'가 아마 압생트-키위-탄산음료 조합이었을 거다. 아, 키위쥬스와 브로콜리쥬스, 파인애플 쥬스는 뭔가 이국적/열대적인 술-압생트라거나, 구아바 보드카라거나(병 예쁘다고 x-rated 사는 실수를 절대 하지 말자), 페이조아 보드카라거나(그냥 파스맛 난다 물파스맛)-에 넣으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맛으로 바뀌는 신비의 액체다. 대충 술을 샀는데 지나치게 이국적이고 열대적인 느낌이라 못 먹겠으면 저 쥬스를 넣어 해치워버리자.  

참고로 다른 밑술에 압생트를 리큐르로 활용해도 좋다. 다량의 보드카에 압생트 약간을 넣으면 '보드카 아이스버그'라는 칵테일이 된다. 그냥 압생트를 양 불린 맛이 난다. 참고로 여기 블라보드같은 착색 보드카를 쓰면 비주얼이 아주 핵폐기물이 된다. 다량의 진에 압생트 약간, 설탕 약간을 넣으면 '믹키 슬림'이 된다. 뭐, 옛날에 DDT로 만들던 칵테일이었다는데 아무튼 저렇게만 섞어도 충분히 살충제같은 기묘한 맛이 난다. 진과 보드카가 둘다 집에 있으면, 또 하나의 칵테일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샷잔에 보드카와 진과 압생트를 동량으로 넣고 한번에 넘기면 '어스퀘이크'라는 칵테일 완성. 그야말로 지진이 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무리를 해서 80도짜리 압생트에 에버클리어나 스피리터스같은 90도 넘는 보드카에 플리머스 네이비 스트렝스같은 60도에 육박하는 진으로 어스퀘이크를 만들면 조금 아주 매우 더 큰 지진을 느껴볼 수 있다. 바카디 151요? 에이 그건 철없는 애들이 즐길 때 먹는 거지, 지진을 위한 술이 아니죠.

모두들 즐거운 음주 즐기시길. 저는 이만 일하러 갑니다 힛히.


@barT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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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4/07/15 16:15
수정 아이콘
일하러가는데 웃으시다니..
압생트를 닉으로 쓰던 유저가 떠오르네요

토닉워터와 섞으면 어떤가요?
요즘 술마다 다 토닉워터 붓고있어서..
헥스밤
14/07/15 16:17
수정 아이콘
달아요.

압생트와 상위 분류인 아니스 술 자체가 대체로 물에 섞으면 향이 풍부해지면서 단맛이 강조되는데, 그 맛을 선호하신다면 설탕+물 섞는 느낌으로 토닉 섞어드시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단맛을 별로 안 좋아해서 압생트 하이볼 오더받으면 압생트+토닉보다는 압생트+오렌지 비터+큐라소+탄산수로 '화려함은 살리되 단 맛은 조금 줄이는' 식으로 자주 서빙합니다.
사티레브
14/07/15 16:44
수정 아이콘
우와 그렇군요.. 너무 쎈게 싫어서 토닉을 붓는데 너무 단건 또 별로인 막입이라.. 흐흐
밑에 제시해준 조제법대로 먹지는 못하겠지만 설명 감사드려요 !
王天君
14/07/15 16:27
수정 아이콘
오 제가 꼭 한번 먹어보고 싶은 술이에요.
14/07/15 17:01
수정 아이콘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19505

오래전 이 글이 생각나는 글이군요. 저도 꼭 먹어보고 싶습니다.
감모여재
14/07/15 17:24
수정 아이콘
압생트 좋아요. 조만간 술 마시러 한 번 더 가겠습니다.
마일스데이비스
14/07/15 17:28
수정 아이콘
저도 압생트를 꼭 한번 마셔보고 싶었는데 그냥 근처 동네 바에 가서 찾아도 있을까요??
헥스밤
14/07/15 17:55
수정 아이콘
요즘은 그래도 한국에 정식으로 몇 종류의 압생트가 수입되고 있으니, 예전에 비해서는 구하기 쉬울 겁니다.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춘 바라면 압생트가 있을 거에요.
14/07/15 18:08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맨 마지막 링크는 클릭하면 무슨 오리훈제 광고글(?)로 넘어가는데
제가 문제가 있는 건가요? -0-
사티레브
14/07/15 18:14
수정 아이콘
어라 저도 그러네요 크크크
헥스밤
14/07/15 18:14
수정 아이콘
겍 오타 수정. elgoos.라니.. egloos.
우리아들뭐하니
14/07/15 18:55
수정 아이콘
페르노와 압생트를 한병씩 사오기는 했는데 너무 마시기 힘들더군요. 페르노만따서 두어번 먹고 둘다 봉인중입니다;
이걸어쩌면좋아
14/07/15 19:33
수정 아이콘
술 몇 종류 안 마셔봤지만 그 중에서 호불호가 가장 심하게 갈리는 술입니다..크크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Claude Monet
14/07/15 19:46
수정 아이콘
무식한 사람이라; 압생트는 뭐에 섞어먹어야 하나요? 그냥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현실의 현실
14/07/15 23:34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압셍트 닉네임쓰던분이있었던게생각이나네요..
개장군
14/07/16 00:49
수정 아이콘
맛이 궁금하네요. 맛난 술 먹으러 언제 한번 헥스밤님네 바 찾아가야겠어요~
14/07/16 01:34
수정 아이콘
제가 일하던 바에선 'ABC'라고 해서
압생트 + 바카디 + 사르트뢰즈를 1:1:1 비율로 섞어 만들던 술이 잘나갔었는데...흐흐
언제나 좋은 글 잘 읽고있습니다 ^^
켈로그김
14/07/16 12:08
수정 아이콘
오리고기에 어울리는 술이 있다면, 오늘 회식때 뙇.. 하고 제공할텐데.. 압셍트는 왠지 아닐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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