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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15 12:17:15
Name Acecracker
Subject [일반] [스포일러 만땅] 어바웃 타임
집에서 어바웃 타임 보려는데 마누라가 옆에서 종알종알 댔습니다.
(자기는 연말에 직장 사람들과 같이 가서 봤는데) "너무 아빠중심적이야 임신해서 애가 뱃속에 있는 동안에도 엄마는 애랑 얘기하면서 키우는데 아빠가 자기는 얼굴 안봤다고 태어나기 전까지 애를 계속 바꿔."
"야 조용해 스포일러야"

그러고 혼자 봤는데... 자유도는 시원찮지만 메인스트림은 감동적인 RPG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스토리를 이렇게 만들기 위해 설정을 그렇게 넣었다는 식의 구성이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는 별로 없더라구요.

영화는 시간여행의 나비효과가 세상의 인과관계를 뒤틀어서 변화가 통제 불능으로 커지는 일은 없는 걸로 칩니다.
단순하게 '이 시간에 내가 여기에서 이 일을 했다면 다른 데에서 한 다른 일은 지워진다'는 정도가 전부죠.
그런데 다른 데에선 없는 나비효과가 아이 출산에만큼은 크게 작용하는 걸로 설정합니다.
수백만의 정자가 경쟁해서 아이가 태어나는데 정자가 바뀌었다는 거에요.
키우는 건 똑같고 나비효과는 없으므로 아이의 차이는 오로지 유전자에 의한 차이라는 건데,
그 효과로 애가 완전 딴 애로 바뀌어 버려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여기서는 오히려 나비효과를 과장한 것 같습니다.

극중 아이가 바뀌는 시점에서 애가 말을 잘 못하는 아기이므로 두돌도 안된 아기입니다.
고맘때 아기 생김새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요.
처형네 두 딸은 나이 터울 있는 아이들인데도 아기때 사진 보면 서로 동일인을 찍은 것처럼 완전히 똑같더라고요.
결국 큰 선택지는 아빠 판박이, 엄마 판박이,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태어난 이후 나비효과는 없으므로 내가 키운 내 자식이니 하는 짓은 차이 없을 거고요.
즉 SW 동일인(적어도 한살때엔 차이가 안 나타남),
HW 변화는 작게는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다가 '우리딸 귀 모양이 약간 달라진건가 아닌가?' 정도에서부터
큰 변화라고 해봤자 50%의 확률로 "어? 우리딸이 왜 아들이 됐지???!!!" 정도여야 할 것 같은데
영화에선 아예 딴 애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애가 태어나는 시점이 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한계점이 되지요.

이 한계점은 영화상에선 동생의 인생보다도, 아버지의 생명보다도 중요한 절대적인 것으로 작용합니다.
동생 인생을 구제했더니 우리 딸이 사라져 버리는 것과 우리 딸의 눈 색깔이 바뀌는 건 얘기가 다른데
이 영화는 이런 의심을 하면 안되는 영화죠.

또한 아버지와의 이별 지점을 만드는 셋째 아이도 저라면 그 상황에선 시험관 아이를 갖겠어요.
중요한 한계점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는 거고 세상엔 어떤 불행한 일이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역시 이 영화에선 생각하면 안되는 부분이죠.
메인스트림 안에서는 생동감 있지만 메인스트림을 벗어나면 NPC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RPG 같은 느낌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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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iteMan
14/07/15 12:28
수정 아이콘
아버지에 관한건 사진만 봐도 울컥할 나이라..아버지와의 얘기들은 저에겐 평범했고..나머지 에피소드들은 너무 예상 가능한 범위라.. 말씀하신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별로 없었어요.
Acecracker
14/07/15 12:50
수정 아이콘
영화의 소재는 '밤에 이불킥 벽펀치 날리는 대신 후회되는 순간을 수정할 수 있다'라는 점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참 좋은 소재잖아요?
특히 옛날에 애인한테 뻘짓한 기억들을 불러오는 소재인데
영화 내적으로는 상상을 펼치면 이상해져요.
임신 상태에서 뻔질나게 과거를 오가지만 아이는 바뀔지언정 그 섹스에서 임신이 성공하느냐 여부는 바뀌지 않는 것도 말은 안되는 것 같고.
시간 여행 영향이 점점 증폭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점점 작아져서 이후 인생은 똑같다면
먼 과거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만나도 수십년 후에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연애해서 똑같은 체위로 섹스하는데 애만 다르게 태어나는 게 이상하고.
마스터충달
14/07/15 12:54
수정 아이콘
아이의 생김새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이가 달라졌다'라는 사실을 관객이 쉽게 인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봐야겠죠.
그리고 아이의 '생김새'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아이 자체가 달라졌다는 인식이 된다면 그동안 키운 아이가 바뀌는 것은 용납하긴 힘들겠죠.
저도 '포지가 사라졌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자유도가 시원찮은 RPG란 비유는 정말 좋네요.
제가 쓴 글에도 지적했지만 이 영화는 답을 다 정해놓고 이야기를 하는 식이라 (심지어 답이 안나와준 장면은 나중을 위한 복선;;;;)
관객에게 고민을 못주고, 그러니 깨달음에 대한 공감도 부족하죠.
대신 따뜻함 이란 부분을 완벽하게 가져가게 됐고, 이 영화의 목적도 그러했다고 보는 것이 맞기에 익스큐즈 해야할 부분이겠죠.
뭐 우리가 파판을 즐겼던 마인드와 비슷하게 말이죠.
Acecracker
14/07/15 12:55
수정 아이콘
네. 니뽄 스탈 RPG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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