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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12 19:09:07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영화공간] 영화, 관객과 연애하다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공간] 영화, 관객과 연애하다


김어준은 정치 그 자체의 속성이 연애와 닮아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영화 또한 비슷하다고 본다. 말 그대로 영화 관람이란 행위 그 자체가 작품과 관객 간의 짧은 연애랄까? 그래서 오늘 글은, 연애 스타일을 통해 짚어보는 영화와 관객 간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이다.



1. 겨울왕국(2013) – 한없이 투명하고 생기발랄한 새내기 후배  

영화 [겨울왕국] 관람은, 보면 볼수록 질리기는커녕 마냥 귀엽고 예쁜, 상큼한 새내기 후배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단순하고 빈약한 내러티브 등 꼼꼼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쉽게 단점을 찾아낼 수 있는 작품. 하지만 이런 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소 어설픈 화장에, 십대 티를 벗지 못한 옷차림 등 어설프고 아쉬운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마저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일 만큼의 생기발랄하고 투명한 매력을 이 작품은 지니고 있기 때문. 새내기 후배의 다소 덤벙대는 성격과 약간씩 엿보이는 어설픈 백치미마저도 눈감아주고 싶을 만큼, [겨울왕국]이란 작품, 그리고 두 주인공인 안나와 엘사의 존재는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2. 7번방의 선물(2013) – 뻔하지만 착하디 착하고 순박한 순정남  

가끔은 나가기 싫은데 억지로 나가는 데이트 만남이 있다. 별로 잘생기지도 않고 그냥 뻔하고 재미없을 것만 같은 사람과의 만남. 실제로 만나본 [7번방의 선물]은 관람 전 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착하지만 뻔한 느낌. 착하고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뭔가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는 어설픈 순정남을 마주한 기분. 하지만 순정남의 꾸준함도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뻔한 느낌에 마음을 주지 않았던 영화가 결국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 수준의 영화에 울컥하다니..'라며 당혹스러워하던 내 모습에서, 눈에 차지 않던 연애 상대방의 꾸준하고 한결같은 정성에 결국은 감동하고 마는 우리네 모습이 오버랩되는 기분이었다.





​3. 올드보이(2003) –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까다로운 밀당남  

영화 [올드보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른바 ‘오리무중’. 말 그대로 30초 후, 1분 후에 어떻게 전개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독특하고 신선한, 그러면서도 기괴한 느낌이 전달되는 묘한 작품이다. 남자로 표현하자면, 스타일리시하고 쌈박한 외양에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취미를 가진,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까다로운 밀당남이랄까. 도대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독특한 내러티브와 개성 강한 색감에 정복당한 채로 영화 속에 빨려들어가는 관객들. 연애로 치자면 그 어떤 유혹이나 흔들림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만의 연애방식을 추구하며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최고의 밀당남이라고 볼 수 있겠다.





4. 실미도(2003) – 박력있지만 촌스럽고 투박한 복학생 선배  

[실미도]는 박력있는 영화다. 관객 눈치 보지 않고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공법으로 밀어붙이는 힘 있고 박력있는 영화. 결국 이러한 마초성이 이 영화의 매력이자 한계인 것이다. 분명 남자답고 박력있다. 맘에드는 여자후배에게 솔직하게 공개 고백하고 끈덕지게 돌직구를 날리며 몰아붙이는 복학생 선배다운 박력은 넘치지만 결정적으로 투박하고 촌스럽다. [올드보이]와는 다르게 속이 훤히 보이는 당당한 대시남을 마주하는 기분. 결국 이러한 연애방법이 누군가에겐 먹히고 누군가에겐 먹히지 않듯, [실미도]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도 그렇게 나뉜다.  





5. 달콤한 인생(2005) – 수트간지를 뽐내는 도도하고 시크한 차도남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스타일리시하고 간지나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없이 김지운 감독,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을 꼽고 싶다. 결국 영화 [달콤한 인생]의 매력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선우(이병헌)의 매력과도 동일하다. 은은한 블랙 수트간지를 뽐내는 듯한 도도하고 시크한 차도남의 느낌. 관객들에게 유혹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된 미소 한 번 주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전개되는 이 작품이 풍기는 매력은 그래서 꽤나 치명적이다. 이 사람과 만나면 아픈 상처를 입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면서도 자꾸 빠져들게 되는 그런 치명적인 차도남의 매력을 이 작품은 가지고 있다.





6. 해운대(2009) – BMW를 끌고나온 졸부 소개팅남  

소개팅을 나갔다. 듣기로는 허우대도 멀쩡하고 집도 잘 살고 차도 BMW를 끌고 다닌다는 남자. 일단 외적인 조건 자체가 화려해서 만나보기로 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어딘가 촌스럽고, 저급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스케일은 크고 화려한데, 그에 어울리는 내실은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힌 블록버스터 신파극 [해운대]를 마주한 기분이 이런 것이다. 매너 없고 재미도 없는데다 돈만 많은 졸부 소개팅남이 유일하게 뽐낼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애마 BMW인 것처럼, "내가 니 애비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해운대]가 유일하게 뽐낼 수 있는 자랑거리는 공들여 만든 쓰나미 CG 하나뿐이다.





7. 역린(2014) - 겉멋만 들고 머리는 텅 빈 자뻑 허세남

[역린]은 잘생긴 영화다. 영화의 때깔만 놓고 보면 현빈급이다. 근데 문제는 키 크고 잘생긴 이 남자가 알고 보니 겉멋만 들고 머리는 텅 빈 데다가 자뻑 증세까지 있는 허세남이라는 것. 차라리 [7번방의 선물] 같은 남자는 솔직하고 순박한 맛이라도 있지, 세상에 구를 대로 구르고 산전수전 다 겪은 자칭 픽업아티스트(?) [역린]에게 남은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허세로 상대방을 꼬셔내는 얕은 수법 뿐이다. 잘생긴 얼굴 속에 숨겨진 그 고약하고 치졸한 심보와 뻔뻔한 허세에 화가 난다. 분명 충분히 잘 만들 수 있는 영화였고 충분한 여건이 확보된 작품이었지만, 결국 이 망작은 연애 상대방의 역린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8. 설국열차(2013) – 똑똑하고 젠틀하고 부유한 고스펙의 엘리트 변태

​학교 선배 가운데 똑똑하고 젠틀하기로 소문난, 거기에 잘생기고 부유하기까지 한 고스펙의 엘리트남이 있다. 예전부터 흠모해오던 그 선배와의 고대하던 첫 만남. 근데 웬걸? 막상 만나본 그의 취향은 다분히 변태적이며 음울(?)했다. 결국 실망감과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 기대감만큼의 분노와 적개심을 남자에게 표출하는 여자.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남자 자체가 아닌 여자 자신의 과도하게 어긋난 기대감이었고 영화 [설국열차]를 향한 관객들의 시선도 그러했다. 봉준호라는 감독의 정체성 보다는, 대한민국 최고 감독이라는 타이틀과 400억원의 블록버스터급 제작비, 화려한 캐스팅, 다국적 프로젝트라는 수식어에 부푼 기대감으로 영화를 관람했지만 영화는 기대와 달랐다. 그래서 누군가는 열광했고, 누군가는 실망감에 치를 떨었던 작품.





9. 끝까지 간다(2014) – 짜릿한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화끈한 클럽남  

영화 [끝까지 간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마음대로 휘젓고 유린한다. 끈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과 특유의 빠른 호흡으로 관객을 끝까지 몰아치는 범죄액션 스릴러 특유의 매력. 이것은 마치 특유의 말발과 매력으로 첫 만남부터 상대방을 정신없이 휘저으며 혼을 쏙 빼놓는 화끈한 클럽남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여기에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짜릿한 원나잇 스탠드는 덤. 색깔이 깊고 진한 순정파의 연애가 아닌 만큼, 영화가 끝나면 '재미있고 즐거웠다.'라는 인상과 느낌만 남을 뿐 영화적 정서나 뿌리 깊은 잔향, 혹은 마음을 건드리는 여운은 1그램도 남지 않고 휘발되어 버린다. 하지만 짧은 원나잇 스탠드면 어떠랴. 곱씹고 사색하게 만드는 여운은 없을지언정, 관객을 강하게 흥분시키고 몰입시키는 장르 영화와의 뜨거운 만남만으로도 관객들은 충분히 짜릿하고 즐거웠을테니 말이다.





10. 트랜스포머4 : 사라진 시대(2014) – 눈치 없이 줄창 몸자랑에 스킨십만 시도하는 몸짱 민폐남

처음 세 번의 만남까진 괜찮았다. 얼굴도 남자답게 생겼고 키도 훤칠하니 결정적으로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지닌 이 남자. 성격이나 대화코드에 관계없이 그냥 눈으로 보고 만지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공감대 형성이나 대화는 뒷전인 채로 오늘은 벤치프레스를 몇키로를 했느니, 단백질 영양제가 어떻느니, 오로지 자기 몸자랑에만 여념이 없다. 지루한 러닝타임 다 참아내고 억지로 다 들어주고 나서 좀 진지한 대화 좀 나눌라치면 이번엔 눈치 없이 주구장창 스킨십만 시도하는 이 남자가 바로 영화 [트랜스포머]이다. 자기 몸자랑도 한두번이고 찐한 스킨십도 한두번이지, 이건 시도 때도 없이 벗어제끼고 근육자랑질에 스킨십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이젠 지겹고 피곤할 뿐이다. 연애를 하고 싶어서 날 만나는 건지, 지 몸자랑 하고 싶어서 날 만나는 건지 이젠 헷갈릴 지경. 이게 마이클 베이 감독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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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2 19:1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실미도에서 웃고갑니다 크크
Eternity
14/07/12 19:23
수정 아이콘
유머포인트를 잘 짚어주셨군요 흐흐
Fanatic[Jin]
14/07/12 19:14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봤습니다~

본영화도 있고 보려했던 영화도 있는데...

보려했던 영화를 안봐야겠다는 확신이!!
Eternity
14/07/12 19:24
수정 아이콘
아마도 트랜스포머나 역린이겠지요? 흐흐
Fanatic[Jin]
14/07/12 21:12
수정 아이콘
드...들켰네요.
王天君
14/07/12 19:19
수정 아이콘
세번의 만남까지가 괜찮았다구요. 이럴 수가. 이터니티님은 정말 관대하시군요.
전 트랜스포머 삼편 볼 때는 진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는데
Eternity
14/07/12 19:23
수정 아이콘
그냥 4편을 의미하는 수사적 표현입니다.
저 개인적으론 첫번째 만남부터 별로였어요-_-;
마스터충달
14/07/12 19:54
수정 아이콘
두번째까진 괜찮아요 메간폭스가 달리기 하는 장면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레지엔
14/07/12 19:24
수정 아이콘
트랜스포머는 몸은 좋은데 알고보니 테스토스테론 과잉 복용으로 (이하 생략)... 아닌가요. 사진만 보면 있어보이는데 영화는 영...
전소된사랑
14/07/12 19:34
수정 아이콘
트랜스포머4 - 정상위로만 164분을 미친듯이 하는데 (인정상) 사정할 수 없는 지루남
사티레브
14/07/12 22:53
수정 아이콘
9번영화의 평을 그렇게 하신거 보고 이런 류의 글이 왠지 올라올거 같았는데 흐흐
아무로나미에
14/07/13 03:2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달콤한 인생은 남자들이 뭘좋아하는지 아는 게이 선배같은데요.
그리고 제 느낌이지만 별로인 외모와 인성인데 운좋게 닮은 사람이슈퍼스타가되서 동반상승한느낌입니디
중학교일학년
14/07/13 08:42
수정 아이콘
역시 여초싸이트 pgr아니랄까봐 관객이 죄다 여자입니까?? 영화 관객과 연애하다인데 어째서 00남만 있는거죠?? 곧 00녀 글도 올려주시리라 믿습니다.
Eternity
14/07/13 10:11
수정 아이콘
[겨울왕국] 관객은 남자입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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