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07/03 01:44:20
Name endogeneity
Subject [일반]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0. 들어가며

이 글은 사람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민법전의 관점에서 답해보고자 하는 글입니다.
민법은 제 3조부터 97조까지 '人'에 대해 다루는데 그 대부분이 법인(회사, 종중, 교회 같은 것들)에 관한 규정입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제 3조의 조문, 그러니까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말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법관계의 일반법이라는 민법은, 그 사법관계의 알맹이인 사람에 대해 너무나도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서, 굉장히 많은 말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1. 人 아닌 사람.

현대 민법의 중요한 시발점 중 하나로 꼽히는 1794년 제정된 프로이센 일반란트법 1조를 보시겠습니다.



"인간(Mensch)은 시민사회에서의 일정한 권리를 향유하는 한에 있어서 人(Person)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인간의 두 가지 의미가 구분되는 것이 보입니다.
앞의 인간은 '생물'로서의 인간이라면, 뒤의 人은 '법적 지위'로서의 인간입니다.
그리고 재밌게도 이 법은 '시민사회에서의 권리향유'를 법적 지위의 취득 조건으로 봅니다.

법적인 지위가 없는, 그냥 생물(아마도 동물)인 인간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1-1. 게르만법 상 '평화상실'

고중세 게르만법에는 '평화상실의 선고'라는 아주 낯선 제도가 있습니다.(이와 유사한 제도는 프랑스, 독일 등에서 19세기까지 잔존했습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한 '무법자'에 대해 선고되는 '평화상실'의 효과는 아주 간명합니다. '권리능력의 상실'입니다.
이게 대체 뭘 뜻하는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endogeneity가 허구헌날 뻘글만 싸지르다 운영진의 분노를 사서 pgr에서 평화상실 선고를 받았다고 칩시다.

1) 일단 endogeneity는 그날부로 pgr에서 'wolf-endogeneity'라고 불리게 됩니다.
2) endogeneity가 소유한 모든 토지는 몰수됩니다. 집이나 컴퓨터 등은 저주받은 물건이므로 전부 부숩니다.
3) endogeneity의 아내는 그날부로 과부가 됩니다.
4) 모든 pgr러는 endogeneity를 죽여도 될 뿐 아니라, 'pgr의 적'인 endogeneity를 죽일 최소한의 책임을 집니다.

한마디로 endogeneity는 적어도 pgr의 법체계 안에서 생명, 신체, 재산, 가족 상의 모든 법적 권리가 없습니다.
그 결과 endogeneity를 죽이는 행위는 '인간 생명의 침해'가 아니란 점에서 '살인죄'에 해당하지도 않습니다.
혹시 endogeneity가 들고 다니는 물건 중 탐나는게 있으면 두들겨 패서 뺏어도 그냥 '무주물의 선점'에 해당할 것입니다.




2. 人 아닌 사람 같은 건 없다. 즉 Mensch=Person이다.

저 가엾은 endogeneity의 운명을 보면 반대로 우리 민법 3조가 대체 어떤 결단을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생물인 인간=법적 지위로서의 인간입니다. 그 밖에 그 어떤 자격조건도 필요 없습니다.
전자를 사실, 후자를 규범에 해당한다는 건 아마 많은 분들이 진작에 눈치채셨을 터입니다.
덕분에 사실과 규범의 경계를 아주 흐릿하게 만드는 어떤 미묘한 영역이 우리 법질서에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1. 출생(=생존의 시작)과 사망(=생존의 끝)

사실 에전엔 출생과 함께 꼭 법적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사망과 함께 그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1) 가령 게르만법에선 '건강한 신생아'일 것을 요건으로 가장이 영아를 '수용'하는 행위(가장이 영아를 들어올려 안아주거나, 영아를 목욕시켜주는 경우라고 합니다)를 하여야만 권리를 취득했습니다.
건강한 신생아가 아닌 경우 가장, 친모 등은 영아를 '정당하게 유기'할 수 있고, 이러한 행위는 살인에 해당하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2) 한편 중세 가톨릭 교회들 중 '성 베드로 교회' 같이 성인의 이름이 붙은 교회의 재산은 바로 그 성인의 재산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베드로는 1200년의 성 베드로 교회 소유의 토지를 소유할 권리능력을 가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중세까지는 죽은 자도 제한적으로나마 권리능력을 가진다는 발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영혼불멸사상'이란 데 뿌리를 둡니다.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접하고, 사후세계를 잊어버리는 대가로
오늘날 우리 법체계는 그 근간을 일정한 사실에 의존하게 되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3) 가령 민법에서 모친 뱃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기가 사람이라고 보는데, 형법에서는 모친의 진통이 시작된 순간부터 아기는 사람이라고 봅니다.(일견 보기에 대단히 기괴해보이는 장면인데, 민법이 태아에게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특례를 두는 탓에 이 점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대단히 기괴해보입니다.)


4) 좀더 기괴한 건 사람이 언제 사망한것인가에 대한 학설대립입니다. 익히 알려진바와 같이 호흡종지설, 맥박종지설, 뇌사설(뇌사설은 다시 뇌간사망설, 대뇌사망설, 뇌 전부 사망설로 나뉩니다)가 있고, 민형법 공히 통설은 맥박종지설이지만 의학계에서 뇌사설이 강력하게 주장되면서 뇌사 개념을 수용해야 할 필요성이 아주 강하게 대두됩니다.
그러다보니 1999년 입법된 장기이식법 상 '뇌사판정위원회'라는 걸 설치해서 '전문의사 2명 이상과 의료인 아닌 위원 1인(아마 법률가일 것이 유력해보이는?) 이상이 포함된 4~6인 위원회의 과반수 출석+전원찬성으로 뇌사판정을 내릴 수 있게 했습니다.
대단히 조심스럽게 제도가 짜여지긴 했어도, 이 뇌사판정위원회를 주도할 전문가들이 '의학적 판단'에 의해 '사람의 권리능력'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건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사실과 규범의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해보입니다.



3. 人이란 즉 권리의무의 주체다.

이건 법 공부하신 분들에겐 아주 익숙한 말입니다. 근데 이것조차도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3-1. 나는 나를 소유한 것이 아니다.

요 몇년간 대중 교양서적으로 명성을 떨친 '정의는 무엇인가'의 한 챕터에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자유지상주의자인 노직은 자기가 자기에 대해 갖는 소유권에 기초해, 자기의 확장인 노동력을 행사한 대상에 대한 소유권이 성립한다는 식으로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고, 그에 기초한 이른바 '최소국가론'으로 이행해갑니다.

노직의 논리가 타당한지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여기서는 우리 민법이 노직의 논리와 약간 거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보고자 합니다.



1) 주체, '능력의 주체'


주체 하면 칸트입니다. 특히 여기선 인간을 '자기 행동의 준칙을 정하는 윤리적 주체'로 이해한 칸트의 윤리학이 아주 중요합니다.
19세기 독일 보통법학자들은 칸트의 주체 개념을 아주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한편으론 인간의 자유에 부합하는 법적 구속을 개념화하는데 칸트의 윤리적 주체개념만한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 인간=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봄으로서,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단 점이 중요합니다.

인간이란 법률관계, 즉 권리의무관계의 작은 나사로 국한시켜버림으로서, 인간에 대해 재삼 논하기보다는 채권자취소권에서 수익자 사해의사의 증명책임 귀속문제나 저당권실행시 법정지상권은 경매개시기입등기 전에 성립해야 하는지 경락 전에 성립해야 하는지 문제 같은 것들을 중점적으로, 아주 편하게 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인격권'
인간=人=권리능력의 주체로 정의한데 따른 또 하나의 효과는 인간이 '자신의 인격에 대해 갖는 권리'
즉 인격권이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사상되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칸트 자신은 인격이란 개념을 아주 적극적으로 옹호한데 비해
칸트의 주체개념을 받아들인 보통법학자들이 인격 개념은 배격했다는 점입니다.

칸트는 인격을 '인간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계발할 능력'으로 이해하며 그에 대한 권리를 가짐을 윤리학적 차원에서 옹호하였으나(한편 헤겔은 칸트의 인격 개념을 비판하면서 '인격권이란 물권의 일종이다'라고 평합니다)

독일 민법의 알맹이 중 알맹이인 '법률행위' 개념의 창시자라는 사비니는 人의 특성을 철저히 '권리능력의 존재' 여부로 좁힙니다.
사비니가 보기에 '인격'이라는 개념은 권리의 주체와 객체를 혼동시킬 우려가 있는 불필요한 개념이었고
이러한 사비니의 태도는 독일 민법 제정에 그대로 반영됬고,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까지 전래됩니다.


* 오늘날엔 명예훼손소송 등을 중심으로 인격권은 민사법 학계 및 실무 양쪽에서 강력한 화두이고, 아예 민법 3조 밑에 새로 '인격권'에 관한 규정을 만들자는 개정논의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다만 이런 논의 와중에도 인격권이란 권리가 '비교적 새로운 권리'라고 불리고 있음은 흥미롭습니다. 물론 위에서 소개한 연혁 상의 이유를 고려해본다면 당연한 것이지만.



4. 헌법=국가의 기본법, 민법=사회의 기본법?

"민법의 기본단위 또는 기본규율대상은 결국 인격, 소유권, 계약, 그리고 가족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삶의 기본적 양상이다. 어느 누구로부터 태어나서 남의 돌봄을 받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으며, 외계의 물자를 소비하지 아니하고 살수 있는 사람도 없다. 또 공동생활을 하는 한 누구나 약속을 한다. 그 한에서 이러한 양상은 국가 이전의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국가와 관련지어서만 정의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이들은 헌법을 포함한 법의 영역 저편에 있는 것이다. 이들 '기본생존양상'의 법적 존재형식을 민법이 정한다는 의미에서 민법은 '국가의 기본법', 즉 헌법과는 다른 관점에서 역시 하나의 기본법, 말하자면 '사회의 기본법'인 것이다."


언제나 예리하면서도 도발적인 양창수 대법관의 이 주장은 '삶의 기본적 양상',
달리 말하면 인간 존재(사후세계를 가정하지 않는 한 인간이란 삶을 사는 인간이니까)의 기본적 양상이 민법에 의해 지도된다는데 집약됩니다.
그렇다면 민법전으로부터 추단되는 인간 삶의 모습이 어떠하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
앞서 살핀 바로부터 몇가지 단초를 짚어보자면

1) 인간은 일단 자유로우며 평등한데
2) 단 그건 '권리를 누릴 능력'에 대한 자유와 평등이며
3) 이를 가질 전제조건은 '생존'이라는 자연적 사실이다.



특히 2)는 민법전의 대부분이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규율하고 있다는 점과 결부해서 보면
민법이 예정하는 인간의 삶이란 사실 '채권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물론 그게 중요한 일이긴 하겠으되, 인간이란 존재가 채권관계 속으로 집약되버리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3)은 한편으론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론 현대 문명의 규범적 토대가 아주 취약한 사실적 토대 위에 서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와 유사한 예는 민형사법의 공통 대원리인 '책임주의'가 뇌과학 등의 도전 하에 크게 흔들리고 있는 데서도 발견되는데
아직까지는 그냥 먹물들의 츄잉껌 정도의 화제인듯 하지만, 이 대목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5. 나가며

여기까지의 내용을 보신 분들은 느끼셨듯이 이 글은 실정법의 조문을 어디까지나 '소재'로만 삼았습니다.
본문의 결론을 억지로 추려보면 '민법 3조는 짧지만 사실 깊은 뜻이 담겨있다' 정도지만
사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이 글을 '소재'로 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기회를 찾는다면 필자의 알량한 결론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 무식한 필자가 4000자가 넘는 긴 글을 쓰기 위해선 당연히 훌륭하신 분들의 글을 베껴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황규창, "게르만법"
한스 하텐하우어, 서을오 역, "민법의 기본개념 1. 人"
양창수, "헌법과 민법 - 민법의 관점에서"


특히 하텐하우어의 논문이 없었더라면 필자는 민법 3조가 대체 뭐에 쓸모가 있는지 자체를 몰랐을 것이며,
한편으로 본문에서 인간과 人을 구분하는 방법은 서을오 교수의 탁월한 번역 센스가 없었더라면 쿰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서양에선 그리스 시대부터 생물체인 인간과 공동체의 성원인 인간을 개념상 구분했다는데
동양에는 같은 구분이 없는 것일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4/07/03 02:09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글입니다. 생물학적 인간이라는 사실과 법적 인간이라는 당위를 엮는 것은 항상 어렵지요. 저도 언제부터인가 이게 왜 정당한 논리적 유추인 지 고민하는 것을 멈추었는데, 덕분에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었네요. 감사합니다.
감모여재
14/07/03 02:1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wolf-endogeneity라니...
사실 이 부분은 민법의 기본이 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민법주해 수준 이상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한국 법학계(제가 학계 사람이 아니라 조심스럽긴 합니다만)의 현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쟁점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이 너무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대법원 판례라도 바꿔볼라치면 참고할 우리나라 논문은 하나도 없어서 해외 논문 뒤져가며 연구해야 하는 처지이니..
앞으로도 법과 관련된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endogeneity
14/07/03 02:21
수정 아이콘
근데 솔직히 무식한(?) 법률가들이 감히 인간의 생명에 대해 논하겠습니까...
위대한 의느님이나 생명공학자님들이 그렇다면 따라야죠.

다만 현존하는 법질서가 의학이나 생명공학이 발전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자칫 인간사회의 평화 자체가 뿌리뽑힐 지 모른다는게 우려스러운데

가만히 보면 아직까진 이런 걱정은 좀 시기상조인건 사실이고
뇌사 관련 제도도 저만큼 신중을 다했는데 생명을 전문가들 손에 좌지우지하네 하는 것도 좀스러운 일이고

어련히 의느님들이 알아서 평화로운 해결책들을 내주시지 않을까요...?
감모여재
14/07/03 02:30
수정 아이콘
어떻게 보면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회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의느님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과학적인 판단에 따르자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사회의 필요에 따라 사람의 삶과 죽음, 누군가가 사람인지 아닌지의 여부도 변해왔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결국 과학적인 사실에 따른 합의를 만들어 사회의 틀에 반영하는 것은 또 무식한 법률가들의 일이지 싶긴 합니다.
endogeneity
14/07/03 10:19
수정 아이콘
막줄은 솔직히 농담 격이었는데
결국 누구도 이 문제를 독점적으로 처리할 권한은 없고, 식상한 방법이긴 해도 '토론'만이 유일한 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토론 테이블은 되도록 넓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면 좋겠지요.
14/07/03 04:03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하니다. 법에 문외한이라 딱히 더 드릴말은 없습니다만 덕분에 제 식견이 조금은 넓어진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글 써주시길 부탁합니다.
14/07/03 04:37
수정 아이콘
약간 결이 다르지만 요즘 존재론과 인식론에 관련한 공부아닌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14/07/03 06:49
수정 아이콘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으로)사는 동안 (한국사람으로서의)권리와 (한국사람으로서의)의무의 (다만 한국법이 정한 권리/의무측면에서의)주체가 된다. 괄호를 빼니까 철학으로 비약해버렸잖아요.
endogeneity
14/07/03 10:12
수정 아이콘
요점은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이네요.
'철학으로 비약'해버린 법문을 다시 구체적인 '법'으로 되돌리는데 필요한 장치는 '한국' 뿐이다 이겁니다.

마치 19세기 독일 법학자들 중에서도 소위 게르마니스텐들의 입장하고 유사해보입니다.
게르만 민족에겐 게르만의 고유법이란게 있고, 근대적 합리성이라든가 개인의 자유 같은 것들은 게르만법이 주는 이 실체적 통합성 앞에선 부차적인 것이라는 식의?

그렇다면 적누님 입장에 맞게 민법 3조를 이렇게 바꿔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게르만 고대법의 법언들이 흔히 취하는 방식인데

'홍익인간인 한국인은 화려강산에 태어나 죽는 때까지 그 권리와 의무를 백두산의 천지가 푸른 한, 오대산의 단풍이 가을마다 계속되는 한, 한강에 강물이 흐르는 한 계속 갖는다.'
마스터충달
14/07/03 07:26
수정 아이콘
저는 개인적으론 인간과 人을 구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생명이 발현되는 몸 자체를 인간이라는 가치와 동급으로 존엄을 부과해야지
그렇지 못한 경우에 파생되는 전체 주의 같은 각종 부작용들에게 논리적 근거가 마련된다고 생각되서요.
문제는 태아나 뇌사 같은 극단적 특이 케이스 일텐데,
이러한 상황마저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생명에 대한 범용적인 철학 사상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가 들긴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신경학의 발달로 자유의지에 대한 통념이 위협받고 있기도 하고, 생명연장이 이뤄지면서 죽음의 경계와 의미가 달라지고 있어서요.
앞으로 과학이 더 발달해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간과 생명에 대해서는 점점 더 많은 케바케 대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녀에게> 리뷰글을 쓰고 자고 일어났는데 비슷한 사색을 다룬 글을 보게 되어서 놀랐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어떻게 법을 통해 저의 생활과 연결될 수 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endogeneity
14/07/03 10:24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면 사실 그 리뷰글을 보고 난 다음에 이 글을 쓰게 됬던 것 같습니다.
그 영화에선 특별히 언어 없이 일어나는 인간의 소통이란 문제까지 나아갔기 때문에
사실 어떤 점에선 본문에선 전혀 생각도 못해본 문제들이 다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표현의 자유, 토론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등...이런 모든 권리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을 전제하니까요.
하긴 영화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법을 앞질러버릴 수 있는 것이긴 합니다.
14/07/03 23:47
수정 아이콘
사실 법이 정의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은 모든 생물학적 인간을 포용하고 있지 못하는 빈틈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법이 적용되는 범위가 국가 단위로 나누어진다는 점에서, 법이 정의하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국가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있는 인간에 한한다는 점이겠죠.
그리하여 심지어 "의식적이고 이성적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비인간인 존재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쟁난민들이죠.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법과 국가가 보장하는 천부적인 권리와 의무가 사실은 너무나도 쉽게 박탈된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합니다. 특히 난민과 같은 국가 밖의 존재들에게 가능한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여하튼 쓰신 대로 이 글을 읽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그와 더불어 재미있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2563 [일반] [초보자 매뉴얼] 성당이나 가볼까? [109] 양면오리10479 14/07/06 10479 23
52510 [일반]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12] endogeneity7283 14/07/03 7283 19
52492 [일반]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신학도의 주관적 비판. Part 2 - 성장과 결과 중심의 개신교, 희망의 신학 [38] 피에군5153 14/07/02 5153 8
52368 [일반] 문창극 전격 사퇴 [116] 꽃보다할배10279 14/06/24 10279 4
52348 [일반] [영어 동영상] 무신론자 (도킨스 etc) vs 기독교인 (크레이그 etc) 토론 몇 개. [53] OrBef8818 14/06/23 8818 25
52317 [일반] MBC가 문창극 교회강연 방영을 위해서 긴급프로그램을 편성했네요. [115] 어리버리10260 14/06/20 10260 0
52258 [일반] 까도까도 튀어나오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80] 최종병기캐리어9343 14/06/16 9343 9
52257 [일반]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신학도의 주관적 비판. Part 1 - 신사참배 [72] 피에군6988 14/06/16 6988 3
52210 [일반] 문창극 역사 인식 그 이후의 반응들 [158] 어리버리13217 14/06/12 13217 11
52193 [일반] 무궁화호의 그녀 [29] 덱스터모건8232 14/06/11 8232 8
52163 [일반] (스포) 하이힐 보고 왔습니다. [14] 王天君5639 14/06/09 5639 1
52153 [일반] 이재수의 난 [23] 눈시BBv37699 14/06/09 7699 19
52143 [일반]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 : 찬송가가 울려퍼지던 제15회 퀴어문화축제 후기 [30] Tigris9092 14/06/08 9092 31
52136 [일반] 신촌 퀴어 문화축제와 반대 농성 [418] 모모홍차12750 14/06/08 12750 5
52108 [일반] 奇談 - 기이한 이야기 (단편 : 내가 보는 풍경) [8] 글곰4619 14/06/05 4619 4
52065 [일반] 씐나는 결혼 준비 이야기 [97] 제논9619 14/06/02 9619 0
52025 [일반] 나는 왜 창조과학을 싫어하는가? [76] TimeLord6593 14/05/31 6593 0
51977 [일반] [신앙에세이] 후회: 적그리스도 교황과 아버지 [31] 쌈등마잉4702 14/05/28 4702 4
51961 [일반] 여행가이드가 이야기하는 여행사이야기 [6] 코지군6254 14/05/27 6254 2
51841 [일반] 야밤에 생각나서 써보는 인턴경험. [22] 단신듀오9079 14/05/20 9079 5
51427 [일반] 낯선 이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 Vienna Calling2909 14/04/30 2909 6
51247 [일반] PGR간담회 '공감'의 뒷북 후기 [10] 더스번 칼파랑4890 14/04/22 4890 0
51163 [일반] [세월호 관련] "그만 슬퍼하십시오" 목회자 기도문 [펌] [19] 짤툴라7186 14/04/20 7186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