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07/02 03:39:49
Name 피에군
Subject [일반]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신학도의 주관적 비판. Part 2 - 성장과 결과 중심의 개신교, 희망의 신학

[저는 그저 신학을 전공한 대학원 졸업생일 뿐, 교단 전체의 목소리가 아니며, 마이너의 목소리들을 대변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제 개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결론을 내린 내용에 대해서 들려드릴 뿐입니다. 제 전공이 한국 교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자료에도 한계가 있으며, 자료의 인용도 부족할 거라 생각됩니다. 그저 교회 내에서 한국 교회의 문제들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으며,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혼자 분을 내고 격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상황에 대한 변호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문창극 씨의 일로 인해 갑자기 글을 썼던 지나가던 신학도 1인 입니다. 사실 이전 글 다음에 바로바로 연이어서 작성했어야 했는데, 제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시간이 한참 흘렀네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 전공 분야도 아니었고, 자료들은 너무 많고, 레포트가 밀리기 시작할 때 느끼던 부담감까지. 교수님께 내는 레포트 만큼이나 피지알의 글쓰기 버튼이 무겁게 느껴지다 보니. 변명은 여기서 멈추고 차분히 한국 개신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문창극 씨의 일이 마무리된 지도 일주일이 넘은 것 같습니다. 제가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동안에 교계에서는 문창극 후보자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 성명 바로 다음 날 문창극 씨가 사퇴하는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퇴했던 정 총리 유임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뤄줄 총리가 인선 되겠구나 하고 기대 많이 하셨던 목사님들 중 몇몇 분은 아직도 문창극 씨에 대한 비판이 악의적이며 왜곡된 편집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그 생각을 말로 표현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러한 목사님들이 그냥 정치권에 이용만 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걸 약간 혈맹 수준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속 되게 표현하자면, 일진들이 보기엔 빵 셔틀일 뿐인데, 정작 빵 셔틀은 일진을 베프 중의 베프로 여기는 거 같다고 할까요.)


글이 자꾸 딴 길로 새려고 하네요. 흠흠. 개신교 비판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무엇에 관하여 비판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는데요. 제가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던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문창극 씨의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가 아니라, 왜 문창극 씨와 같은 성도들이 출현하는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실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다 조목조목 비판하고 싶었지만, 제 능력의 한계와 함께,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개인적인 일들과 글쓰기를 동시에 할 순 없을 것 같아서, 가능하면 이번 한 편의 글에서 다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두 편의 다소 긴 칼럼이지만 제 생각을 보충하고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링크를 공유하구요, 필요에 따라 자료로 인용하고자 합니다.


링크1.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101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가?'

링크2. http://www.kpastor.org/news/articleView.html?idxno=481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 요약보고서'




저는 지난 번 글에서 신사참배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 중심의 의사 결정'입니다. 물론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선교사가 오기 이전에 중국 청나라에 사신이나 유학을 간 학자들을 통해 기독교를 접한 기록들도 있긴 했지만, 현재 한국 개신교의 모습이 있게 한 것은, 강화도 조약 이후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인해 학교가 생겼고, 교회가 생겼으며, 특히 신학교가 생겨서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던 것이 주요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선교사들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 한계는 '전도 중심의 선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전도 중심의 선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전도 중심의 선교란 무엇을 얘기하냐 하면, 다른 일들과 비교해서 한 영혼을 교회의 성도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분들은 당연한 것이며, 기독교인이라면 최종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를 왜 한계라고 이야기하는지 의아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구제는 안했는가 물어보신다면, 다른 종교들과 비교해서 절대적인 양으로 봤을 때 결코 적지 않은 선행을 베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계라고 이야기했는가. 선교사들이 보여 준 모습 때문인데요. 제가 보기에 선교사와 당시의 목사들은 교회라는 건물은 지켰지만, 하나님의 '선'과 '공의'는 지키지 못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선한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은 '늘어나는 성도 수'에 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정말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갖는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왜 그렇게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다른 민족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았을까요? 왜 이방신을 믿으면 다 죽이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하나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고대 문헌들을 보면 나라 간의, 또는 부족 간의 싸움을 '신들의 전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대 문헌에서는 악한 신과 선한 신의 대결로 묘사될 때가 많은데요. 이것에 대해서 학자들은 단순히 설화라기 보다는 '악한 신을 믿는 부족'과 '선한 신을 믿는 부족'의 싸움에서 선한 신을 믿는 부족이 승리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하곤 합니다. 선하고 악함은 그 신들이 원래 가진 속성이 아니라, 나중에 승리한 부족이 믿는 신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는 것이구요. 단군 신화에서 환웅과 곰이 결혼한 것을 가지고, 하늘을 신으로 여긴 민족과 곰을 신으로 여긴 민족이 결합한 것을 나타낸 것이라 해석하는 것도 저런 해석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여튼 얘기가 잠시 샜는데, 구약성경의 전쟁들, 우상숭배자들과의 대결 등에서 나타나는 어찌보면 일방적인 학살은 '이스라엘의 승리 = 가짜 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라는 공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들끼리 능력 대결을 했는데 하나님이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내용이 구약성경을 보면 상당히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결국 이 세상에 하나님 만이 유일한 신임을 증명하고 하나님의 가치를 한껏 높이기 위한 서술들이라고 일차적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토록 성경 속에 나오는 하나님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고, 예수를 보내 사람들을 구원하게 한 것도 어찌보면 하나님의 가치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로 인한 결과를 보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죽어가는 걸 못 보고 영생의 길을 열어주고 이끌어 준 것이기 때문에 '오오 하나님의 사랑 짱짱맨'이라고 고백하고,  성도가(어찌보면 하나님에 대한 팬덤)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에 따라 하나님의 가치도 올라가는 것이죠. 소시와 엑소의 팬덤이 흔들리면 SM의 주가도 흔들리고, 소시와 엑소의 팬덤이 날로 커지면 SM의 주가도 하늘을 찌르는 것처럼.


전도가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구요.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전도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 성도 수'라는 공식에 따라 전도하는 현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 하면, 성도 수를 늘리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고 생각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수를 늘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다 '사탄의 짓'이라고 생각하기도 쉽고, 또 현재 교회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성도 수만 늘어나면 되었다고 하는 풍토가 생기기도 하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뭐 많이 보이죠. 네. 뭐 그렇습니다.


신사참배를 통해 드러난 선교사들이나 목사들의 생각은 '성도 수를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에 가까웠습니다. 진주만 폭격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그 우호적인 외교관계 덕분에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더 많이 들어와서 활동할 수 있었고, 일본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초기엔 많이 받았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아니면 어차피 나의 조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신사참배나 일본의 압제에 대한 대응에서 선교사들은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반도에 사는 이들에게 선교사들은 정말 풍토병에 어린 아들이 죽고, 아내가 죽고, 자신도 병이 걸리면서도, 죽음과 고독과 싸워가면서 그야말로 헌신하면서 구제 활동과 교육 활동, 의료 활동 등을 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을 폄하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그분들의 희생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교지에서의 활동이 제지 당하지 않는 것과 자신이 돌보는 성도들이 해를 당하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으며, 그러한 선교사들의 결정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순 없지만, 지금 한국 개신교를 보면 부작용이 좀 큰 것 같다 정도일까요.


당시 신사참배와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적극 협력한 목사들이 광복 후에 한 이야기가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예배하러 올 교회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다 죽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성도와 교회를 지켰으니 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긴 합니다. 제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긴 어렵고, 저 역시도 당시에 어떤 판단을 할 것인지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만, 저라면 하나님이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구해볼 것 같습니다. 제 판단에 의지하기 보다는요.


한국 개신교의 교회 대부분은 가장 큰 목표를 전도, 즉 성도들의 수를 늘리는 것, '교회의 성장'으로 잡았고, 현재도 그것이 제일 중요한 목표입니다. 교회가 하는 여러 일들은 결국에는 성도의 수를 늘리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어찌보면 성도의 수를 늘리는 데 방해가 되는 개신교의 모습을 비판함으로써 이미지 쇄신 등등을 꾀함으로, 궁극적으로 성도 수를 늘리는 데 이바지하는데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허허허허. 저는 계속 이야기하듯이 한국 개신교가 '성도 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구요. '성도 수를 늘리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성도의 수를 늘리고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한 일 중에 도리어 '하나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교회의 제 1 목표를 '교회 유지와 성장'으로 잡다 보니, 성직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도 '들어온 성도들을 붙잡고 전도에 불타게 만드는 설교'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교를 최우선으로 보다보니까, 설교 능력만 검증하고, 다른 부분들은(예를 들면 인격)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예배 중 설교 강단에서는 스타이지만 사생활에서는 트러블메이커가 된 목사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고 있구요. 또 개신교 전체에서는 결국 교회의 수를 늘리는 것이 성도의 수를 늘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 보고, 교회를 늘리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수가 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신학교들이 엄청나게 생기고, 목회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에 대한 문턱도 많이 낮추었습니다. 그로 인해 성직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이들이 성직자가 되다 보니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링크1]을 읽어보시면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있습니다. 폭력조직 두목이 목사 안수를 받고 폭행을 휘두르고, 구설수에 올랐던 개그맨이 미국에서 신학 공부하고 목사 안수 받고 귀국했지만, 결국 교회 문 닫고 얼마 후에 아내가 폭행 당했다고 이혼 소송을 걸고, 자칭 타칭 고문 전문가는 목사 안수 받은 이후에 간증할 때, 자신이 어떻게 고문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등등의 일들이 벌어졌구요. 한 교회에서는 여자 성도를 목사실로 불러서 성추행하기도 했고, 논문 표절인 줄 알았는데, 아예 논문 대리였던 큰 교회 목사도 있고, 그리고 교회를 크게 짓고 단장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아 뭔가 총체적인 난국.


이런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성직자들을 제대로 교육과 훈련 안 시키고 내보냄 -> 성직자들이 교회에 가서 성도들 제대로 교육 못 시킴 -> 성도들이 교회 밖에서 문제 일으킴 -> 뭐가 문제인지 모름 -> 제대로 교육 안 받은 성도가 성직자 후보생으로 들어옴 -> 반복...


서두에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야기했는데요. 성경 속에서 전쟁에서의 승리가 가져온 결과는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민족이 하나님만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가치를 인정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그렇지만 한국 개신교의 현재를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서 하나님의 가치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믿어도 되는 하나님이면 너나 실컷 믿으라고 하니.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가치가 땅에 추락하고 있지만, 우리만 모르는 걸까요. 하아. 거기다가 민폐까지 끼치고 있으니 정말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희망의 신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나중이 아니라 지금의 삶 가운데서도 복을 받는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의 신학의 변주 중에 하나가 조엘 오스틴이 이야기하는 '긍정의 힘'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삼중축복'도 희망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개신교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가 '희망의 신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희망의 신학이 한국 개신교의 주류가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압제와 그걸 채 추스리기도 전에 일어난 6.25 전쟁으로 인해 그야말로 황폐화된 상황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이 급했습니다. 그야말로 쌀 한 톨 더 준다고 하면 목숨까지 거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미국의 신학자들 중 천국에 대해서 새롭게 접근한 사람들의 이론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현재 이 땅 가운데서도 천국의 복을 누린다는 내용을 가진 희망의 신학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또는 듣고 교회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희망의 신학을 제일 처음 한국에서 목회에 적용했다고 여겨지는 순복음교회는 그야말로 폭풍성장을 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이단이라고 이야기하던 다른 교단들도 희망의 신학과 관련된 설교를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에서 '예수 믿고 구원 받고 복 받으세요'로 전도의 문구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위에서 전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랬지만, 역시 '희망의 신학'도 옳다 그르다로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구요. 희망의 신학이 가진 부작용에 대해서 논하고 싶을 뿐입니다. 희망의 신학은 원래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는다' 인데, 이것이 지금은 갈수록 '교회를 나오면 복을 받는다' 정도로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이구요.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이 단순히 '교회 잘 다닌다' 정도에 그치는 것이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링크2]를 보시면 설문조사의 내용들이 나오는데요. 개신교인의 신앙 생활 이유를 물었을 때 18.5%가 건강, 성공, 재물 등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응답했습니다. 또 38.8%는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고 응답했구요. 개신교인의 비율은 98년 20%에서 2012년 22%로 2% 상승했지만, 개신교인의 그리스도 영접 여부(예수를 구주로 믿는가?)는 73%에서 63%로 10%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오늘 어떻게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던 사람이 신앙을 가지면서 잘 살게 되고, 또 그런 경우들을 보면서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에 교회에 찾아오게 되고, 그렇게 한국의 개신교는 엄청 커졌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교회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데, 교회 나오는 사람 중 20%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복을 주는 자판기' 정도로 인식 되게 만들기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조찬기도회로 불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어떤 생각이 기반일까 살펴보면, 그 중에 하나는 저 '희망의 신학'이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지도자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 쪽의 기반은 뿌리 깊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지지의 한 부분도 결국은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는 점이었죠. 더 죽고 있는 것 같지만...


잘못 적용된 희망의 신학으로 인해 생긴 문제는 이러한 것인데요. '하나님을 잘 믿으면'의 기준이 '교회를 매주 나오면' 정도로 축소되다 보니까, 불법적으로 취득한 부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기업인이 탈세를 열심히 해서 부를 축적했고, 비정규직은 월급도 제대로 안 주면서 혹사시켜서 순이익이 엄청 높았는데, 그걸 기업인은 자신이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하나님이 복을 주셨고, 회사의 순이익은 탈세나 갈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으로 형성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위에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엄청난 피를 흘리고 자유를 억압하는 등의 정말 해선 안 될 짓을 엄청 자행했는데, 결국 '우리 교회 다니는 성도들이 잘 살게 되었으니 넌 정치 엄청 잘 한거'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링크2]를 보시면 비개신교인들이 개신교를 왜 부정적으로 보냐는 설문 문항들이 있는데요. 많은 숫자가 돈만 밝히고, 이기적인 교회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신학을 통해서 교회 성장은 이룩했고, 교회에 나온 성도들도 다 잘 살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전 그러한 모습들로 인해 비성도들이 바라보는 하나님의 가치는 그야말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 개신교가 하나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추구해나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 민폐는 더이상은 naver. 보통 저런 문제들이 교회 안에서 터지는 게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죠.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글이 다소 길어지고 산만해진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정리하면, 교회와 성직자는 단순히 성도들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것에 더욱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를 주장하는 개신교 단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와 혼전순결 등의 문제를 제외하고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이라던지, 새누리당 의원들의 부정부패라던지, 개신교 성직자들의 스캔들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 외침이 없습니다. 그런 모습들은 사람들이 개신교를 위선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링크2]를 보시면 개신교인의 윤리의식이 나오는데요. 다른 부분은 접어두더라도, '외도와 뇌물 제공'에 대해서 각각 목회자는 4%, 11%, 개신교인은 15%, 30%가 '할 수 있다'라고 응답했다는 것을 보면 참 씁쓸한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다와 해도 무방하다'는 대답이 최근으로 올수록 더 높아지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지금 왜 한국 개신교가 욕을 먹고 있는지를 윤리의식의 변화가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 개신교가 남들과 다른 소리를 하기 때문에 비판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들과 지켜야 할 일들은 안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순결하고 의롭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더 법을 철저히 지켜도 모자른데, 오히려 편법과 범법을 자행하면서 안 들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전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너무 쉽게 잘못들이 밝혀지는 세상인데 말이죠. 한국 개신교가 교황의 마피아 파문을 보면서 좀 느끼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냐 아니냐는 교회를 다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교회 잘 나오고, 헌금 잘 내는 것이 아니라, 선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임을 예배 시간에 성도들에게 이야기하고 먼저 그렇게 사는 본을 보여주는 성직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제가 글을 쓰는 원인이 된 문창극 씨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물론 식민사관에 따른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더 큰 욕을 먹었지만, 사실 정말 문제는 썰전의 이철희 소장이 이야기했듯이 자신이 이사장이면서 교수 임용을 자기로 한 것과 같은 편법이나 범법 행위를 통해 자신의 부를 축적한 부분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순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르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르게 행동했다면 즉시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자중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개신교에서 현재 안 되는 것이 바로 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르게 행동해서 비판받는데, 다르게 생각해서 비판받는다고 여기고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사과를 했다면 뉘우치고 자중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욱 당당합니다. 


영화 '밀양'에서 살인범이 이렇게 얘기하죠, '자기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이 가득하다.' 교회를 다니면서 심신을 회복하던 전도연은 면회 가서 그 이야기를 듣고 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전도연의 극 중 상황이 나에게 닥쳤다면, 과연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회개한 걸로 그치지 말고, 네가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가서 그 사람이 용서할 때까지 용서를 구하라고. 그리고 죄를 용서 받아도 죄의 댓가는 치루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해서 교회에서는 저런 이야기 잘 안하죠. 그냥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라고,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를 사해주셨다고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내 죄는 하나님이 용서해줬으니까 끝'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인거죠.


정말 지금이라도 달려온 길들을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저부터 용서를 구해야 하겠죠. 교회의, 무엇보다 성직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행한 일들로 인해서 끼친 피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하는 사과가 교황처럼 모든 성직자의 대표로서 하는 사과가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성직자의 길을 걸어갈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뭔가 뒤에 덧붙일 말들이 더 있었는데, 갑자기 다 까먹어버렸네요. 하하. 지금 한국 개신교의 문제들 중에 이 글에서 논한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는 더 자세히 이야기해야 할 내용을 너무 축약해서 지나간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구요. 신학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그냥 넘어가서 오해를 하실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음, 개운치가 않네요. 화장실에서 큰 일보고 나오면서 뭔가 덜 닦고 나온 기분... 뭔가 더 이야기하고 싶으시거나 궁금한 점을 댓글에 남겨주시면 최대한 대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음 링크들을 타고 가보시면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안 보이는 것 같지만 한국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움직이는 많은 성직자들도 있음을 알아주시고 그들이 초심을 잃지 않도록 (비록 신이 없다고 생각하시거나, 같은 신을 믿진 않는다고 해도) 함께 응원해주시고 힘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길고 그림이나 사진도 없고 재미도 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Catheral Wolf
14/07/02 04:35
수정 아이콘
유독 피지알에서 많이 보는 글중 하나가 개신교를 믿으시는 분들과 개신교 전공자, 예비선교자 분들의 글인것 같습니다.
그 글들에서는 교인이 아닌 입장에서 보는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개신교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뭔가 바뀌는게 전혀 없다는거네요..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도 이 글을 쓰신 분이 바라시는 것 처럼 개신교가 좀 더 긍정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래봅니다.
14/07/02 05:44
수정 아이콘
실제로 교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큰교회로 성장시키는 목사들은 이런 분들이 아니고 다른 부류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피에군
14/07/02 08:43
수정 아이콘
뭐 다 그런 것은 아니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성도분들도 잘 안 오시거든요. '교회만 나오면 복 받는다'고 해야 잘 오지, 다른 이것저것도 다 해야 한다고 하면 라이트한 성도분들은 아무도 안 오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뭐 누구 책임이랄 것도 없죠.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지도자들의 문제라고 할 수 밖에는. 그리고 성도가 적은 교회는 교단에서도 발언권이 강하지 못하다 보니 여러가지로 난국입니다. 바뀌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스테비아
14/07/02 04:49
수정 아이콘
새벽시간에 잘 읽었습니다. 길게 쓰고 깊지만 시간이 없어서 일단 추천드립니다. 피에군님만큼 고민하는 목회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흐흐
피에군
14/07/02 08:4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고민만 하지 실천을 하지 못해서 사실 글을 쓰면서도 죄송할 뿐입니다. 저도 사실은 이런 고민에선 후발주자에 가깝습니다. 근데 초심을 유지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더라구요. 사실 성도 수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면서도, 막상 교회의 현장에 들어가면 성도의 숫자가 중요하게 생각되고 그렇다 보니. 하하하.
송파사랑
14/07/02 05:34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를 믿고 기도합니다. 그저 롬8:28만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피에군
14/07/02 10:1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저도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14/07/02 05:50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요즘은 제대로교육받은 신학자라는게 믿음이 큰사람들은 아닌거같더군요
신학교에서는 성경을 절대적인믿음없이 이론적인것만을 배우는건가요?

우연히 cbs냉시랭의 신학펀치를 몇번보게되었는데... 패널로나서는 신학교수들의 말이 제겐 충격이었는데 희망의신학이었나보군요
예수님이 세상에오신게 영혼구원 즉 천국이절대적인목적이아니다. 이세상에서잘살기위해서다. 성경자체가 사람이짜맞춘거기때문에 해석이 잘못되있다.
제가 보수적인교회만 다녀서그런가? 근데 유명한교회는 다 보수적인 믿음을 가지고있는거같더군요
옛날목사님들은 그들이 어려움가운데 경험한 믿음과 영혼구원이 최우선이라서... 그들의 모든잘못이 믿음과 영혼구원으로 포장되어서... 지금의 한국교회가 이모양인걸수도있겠지만요
피에군
14/07/02 09:21
수정 아이콘
일단은 이론적인 교육을 많이 받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믿음이 크다는 것이 무엇을 보고 이야기하는지는 신학적인 담론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하.

희망의 신학은 더욱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구원을 위해서'라고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초보수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걸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믿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큰 교회일수록 보수적인 믿음을 아마. 하하.
그리고 말씀하신 신학 펀치에 나온 패널의 이야기는 아마도 '윤리학적 신학'일 거 같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논쟁하기에 앞서서 성경 속 가르침은 일단 인간에게 선하기 때문에 우린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 정도일까요.
포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 같긴 합니다. 잘못을 시인하는 것도 뭐가 잘못인지 알아야 가능하니까요. 허허.
14/07/02 06:12
수정 아이콘
솔직하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 글 감사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무엇이 하나님의 공의인 지 해석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지 하늘에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계시가 내려오는 일은 없지요. 해서 언제나 해석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에 대해서도 항상 이견은 존재할 겁니다. 어떤 종교인들에게는 낙태 금지가 전쟁 반대나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거고, 본인의 신앙을 바탕으로 정 반대의 결론이 나오는 분도 있겠지요. 개신교처럼 만인 사제주의를 표방하는 교파는 결국 해석의 다양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피지알에서 줄타기 하는 사람들처럼 교리 가지고 줄타기하는 기복신앙도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처럼 개인의 교리 해석을 금지하는 교파는 이런 문제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방식은 또 나름대로의 문제가 많지요. 예를 들어서, 천주교에 대해서는 누구 맘대로 당신에게 교도권이 있는 거요? 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고, '말이 그냥 그렇다는 거지' 라는 식으로, 사제 따로 평신도 따로 노는 현상도 심하지요.
Psychedelic Moon
14/07/02 06:37
수정 아이콘
네, 저도 동의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의 경우 결국에는 종교의 근원적인 한계가 아닐까합니다. 이러한것을 해결할려면 종교 내에서는 불가능하고

종교의 밖에서나 가능할것 같습니다.
14/07/02 07:11
수정 아이콘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 다만 Moon 님이나 저같은 무신론자한테는 그런 결론이 너무 당연한 거지만, 종교는 아무래도 '이것이야 말로 궁극의 진리' 라는 슬로건을 포기할 수 없는 면이 있느니만큼, 그런 방식으로 선회하기는 힘들지 싶습니다. 뭐 현실적으로야 목회자들도 현실 세계의 도덕이 움직이는 경향을 잘 파악해서 그에 맞춰나가는 식으로 움직일 것으로 봅니다만, 일단 종교인 입장에서의 대의 차원에서는 종교가 도덕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도덕의 근원이 종교니까요....

피에군님의 원글과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여기까지만 댓글을 달겠습니다. 기껏 개신교 목회자 지망하시는 분께서 개신교에 대한 생각을 적으셨는데 우리끼리 너무 이야기를 진전시켜나가면 '님들은 해도 안됨' 이라는 식으로 보일 것 같아서요.
Psychedelic Moon
14/07/02 07:15
수정 아이콘
결국 종교를 포기하지않는한 불가능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지만 결국 게속 나가자면 원글의 내용가 멀어지긴 하눈군요.

무신론자와 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건널수 없는 입장차이네요. 저도 이 이상의 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이 글에서 다룰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피에군
14/07/02 10:11
수정 아이콘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 좀 더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말씀하신대로 제 개인적인 견해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죠.
하지만 전 하나님의 공의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이 쓰여진 시대에도 그랬고, 신약성경이 쓰여진 시대에도 그랬구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도 그랬는데. 다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법을 지키는 것이며 악법은 없애는 것이구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가 가장 기본인데, 자신들만의 논리로 이 울타리를 넘어서는 게 가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종교의 밖에서 가능하다는 부분이 저는 '법과 윤리'로 보는데요. 저건 기독교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죠. 더 잘 지켜야 하는 것이구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14/07/02 07:08
수정 아이콘
목사 잘 섬겨야 복 받는다 이건 윤리죠 전도강조가 아니라.
교회가 수에 관심을 덜 갖게 되는건 객단가가 뭔지 알아서 그렇습니다.
피에군
14/07/02 13:28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내용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목사 잘 섬겨야 복 받는다라고 얘기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창기 한국 개신교의 성직자는 약간 '군사부일체'처럼 스승이자 어버이 같은 역할로 성도들에게 비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윗분들을 잘 모시던 유교의 문화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도분들이 성직자를 챙겨주었는데...
문제는 이걸 받는 성직자의 입장에서는 '받을 자격도 안 되는데 너무 감사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정상일텐데,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고, 도리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그러한 대접을 요구하기도 해서 참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성직자의 길을 갈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들도 다 고쳐나가야죠.

객단가가 무슨 말인지 검색해보고 알았습니다. 하하하.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성도 수에 대한 관심은 지대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수에 집착하고 있는 교회들도 많구요. 다만 수를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의 변경이 나타나는 시기라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14/07/02 07:1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신학적인 접근이고 뭐고 다 떠나서, 날라리 신자로서 아주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한국교회가 더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일반 대중에게 외면 받는 이유는 대중에게 공감을 못 받아서죠. 그리고 이 점의 가장 큰 원인은 철저한 이중잣대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들에게 있다고 봐야죠.

기복신앙에 근거한 신도들의 잘못된 믿음이다 뭐다로 끌고가면 결국 양비론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저는 특별히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톡까놓고, 일반 평신도중에 성경을 통독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주석을 읽어가면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비유 (특히 신약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비유로 되어있죠)와 각주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용하는 신약시대의 사도들의 설교등)를 일일히 찾아가면서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제대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육체가 곧 성전이라고 하여 술 담배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이근안이 목사가 되고, 서세원이 목사가 되고....목사가 빤쓰를 내리라고 설교해도 문제가 안되고, 헌금을 많이내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교해도 문제가 안되고, 누구를 안찍으면 자신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설교해도 문제가 안되고...심령이 가난한자가 복이있다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라면서, 고급차에 언론사 회장에, 심지 그 언론사는 가장 살색이 난무하는 찌라시급 스포츠 신문을 만들고...하늘아래 누구든지 타인을 정죄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누구는 빨갱이다...포퓰리즘이다...

이런 이중잣대를 지적하면 또 현실이 이상을 지키기에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라면서... 아니, 목사가 현실에 굴복하면 그게 목사입니까? 그들이 맨날 경고하고 비판하는 사이비와 뭐가 다릅니까.
피에군
14/07/02 13:35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도 궁극적으로는 성직자의 이중적이며 위선적인 모습이 교회를 망가뜨리고,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점들에 대해서 사과드리고 싶었구요.
장경동 목사님이었던가요. 이런 말씀을 하셨던 거 같은데요. 사모(목사님 와이프)가 가장 예배드리기 힘들다고. 집에서는 가정 일 하나도 안 도와주고 맨날 잠만 자면서, 설교 시간에는 '남편 여러분 가정에서도 섬김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설교하면 사모님들이 '퍽도...'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저부터도 가장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은 성경 말씀과 저의 삶을 일치시키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교회 내에서도 이제는 성도들이 비록 떠날지라도 성경 말씀에 대해 공부하고,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직자가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해야 할 것이고, 올바른 신학관이 정립되어야 겠죠. 그리고 삶의 모범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구요. 이렇게 보면 갈 길이 멀지만, 늦었다고 생각이 될지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바라
14/07/02 07:39
수정 아이콘
"하나님께 죄를 회개한 걸로 그치지 말고, 네가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가서 그 사람이 용서할 때까지 용서를 구하라고. 그리고 죄를 용서 받아도 죄의 댓가는 치루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아니고 몇번 기웃거린 정도인데.. 저 사실을 처음 알았네요.
기독교는 "내 죄는 하나님이 용서해줬으니까 끝"인줄 알았습니다. 잘못 알고 있었군요..
14/07/02 07:59
수정 아이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4-35)"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개신교의 교리상,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로 이미 구약의 율법 (십계명과 관련된 하나님의 규율)은 그 효력이 새 계명으로 넘어가 버렸다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의 삼위일체론과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교리가 기독교 (여기서는 개신교와 동일하게 본다면)의 근본적인 이념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을 따르는 자 = 예수님을 따르는 자 = 율법을 지키는 자"라는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위의 글에 남겼듯이,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목사들이 이중잣대로 이상하게 해석하고 이상하게 설교하고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이죠.
마스터충달
14/07/02 08:17
수정 아이콘
저도 이 부분을 지금 처음 알았네요. 중고대학교를 전부 미션스쿨을 나왔는데 -_-;;;;;
피에군
14/07/02 09:09
수정 아이콘
마태복음 6장 14-15절을 보면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라고 무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이건 제가 잘못 가져온 구절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의 댓가를 치루는 문제는 신약에서는 물론 면제되는 경우도 나왔나 싶긴 하지만, 구약성경 사무엘서와 역대기를 보면 다윗의 인구조사가 나오는데, 하나님은 다윗이 인구조사하는 걸 죄로 여겼고 선지자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그걸 듣고 다윗은 즉시 회개하는데요. 하나님은 다윗의 죄에 대한 회개는 받았지만, 다윗이 죄를 짓고 생긴 결과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길 원하시죠. 그래도 회개를 했기 때문인지 세 개의 형벌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무려 선택권을......;;

성경을 보면 회개만큼이나 용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이것은 다르게 보자면, 용서를 하려면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이 구절이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이 구절은 단순히 용서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행위도 강조한다고 요즘은 해석합니다. 다른 성경구절들을 보면 서로서로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하거든요. 용서를 구하기 보다는 용서를 하는 주체에서 기록된 말씀들이 많으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보긴 어렵고, 죄를 지은 입장에서는 꼭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을 때에는 하나님이 너의 죄를 용서한 것같이 너희도 그들의 죄를 용서하라는 것이죠. (수정했습니다.)

'내 죄는 하나님이 용서해줬으니까 끝'이라는 이야기는 좀 더 신학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100% 성립은 아니구요. 성도들이 듣기에 좋은 설교를 하다 보니 더 깊이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까요. 용서를 사람에게도 구해야 하는 것과 하나님께만 구하면 끝나는 것의 차이는 꽤 크니까요. 이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구원파로 넘어가면 더 발전해서, '과거에 지은 죄'뿐 아니라 '미래에 앞으로 지을 죄'들에 대해서도 이미 용서를 다 받았다고 얘기를 해버리죠. '회개',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불필요하다는 것이고, 이게 사람들에게 먹혀서 기독교 이단 중에서도 꽤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Gorekawa
14/07/02 09:26
수정 아이콘
마태복음 6장 14-15절 말씀은 우리 "에게" 죄지은 사람에게 우리 스스로 마음 속으로 용서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 역시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우리는 어차피 모두 죄인이기에) 라는 의미 아닌가요? 그렇다면 본문의 상황과는 맞지 않아 보이는데요. 왜냐하면 그 성경 말씀은 우리가 "남에게 용서받아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남을 용서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본문에서는 전도연이 하나님께 용서받으면 당사자가 용서를 하든 말든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살인자의 태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와는 별개로 본문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피에군
14/07/02 09:55
수정 아이콘
네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피에군
14/07/02 11:41
수정 아이콘
끄응 더 좋은 예로 들어드릴 구절을 이제서야 찾았네요. 아 앞에 쓴 댓글 지우고 싶다 ㅠㅠ

삭개오 이야기가 있는데 교회에서 쉽게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자세히는 살펴보지 않고 그냥 세리장이 구원 받았다 정도의 에피소드로 넘어가는데요. 자세히 살펴 보면 죄를 지은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잘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식사를 하면서 삭개오가 뜬금없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다음과 같은 관습이 있었습니다. 범법 행위를 해서 상대의 돈을 취한 경우에는 원금 + 20%를 갚아야 하고, 자발적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면 2배나 4배, 5배까지도 갚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자발적으로 4배를 갚는다고 이야기하죠.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저래야 한다고 누가복음의 저자는 본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면, 단순히 세상이 정한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해도 부족하다는 것이죠. 이건 예수님께서 구원 받았다고 선포했을 때 삭개오가 감동받아서 얘기한 내용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끝난 후에 예수님이 구원 받았다고 말씀하시죠. 하하.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라고 하는 극단적인 해석은 아니구요. 삭개오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용서를 구하는 기독교인의 태도는 저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아탱
14/07/02 11:51
수정 아이콘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3-24)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Je ne sais quoi
14/07/02 08:5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교회를 30년 넘게 다니다가 그만뒀기에 이런 글은 어쩔 수 없이(?) 읽게 됩니다. 파고들면 끝이 없고 간단히 정리되지 않지만, 그래도 간단히 하면 교회가 반성 - 회개 - 가 없습니다. 명백한 잘못을 했어도 말이죠. 그런데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런 인간들이 주류랍시고 권력을 잡고 있으니 조금만 정신차리면 자신이 시간 들여, 돈 들여 가야할 가치가 없죠. 이런 인간들이 바뀔리가 없으니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기만 할 겁니다.
피에군
14/07/02 13:38
수정 아이콘
네. 링크2의 글에서도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쉽고 객관적으로 교회의 부정을 볼 수 있는데, 교회 내에서는 눈가리고 아웅식이죠.
줄어드는 것은 걱정이 안 되는데, 다만 정말 신실하신 분들이 상처 입고 교회를 떠나지 않을까 그것이 가장 걱정됩니다.
파란무테
14/07/02 09:36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논점이 많아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몰라, 적지 않겠습니다..하하하..
피에군
14/07/02 13:39
수정 아이콘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그걸 노렸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재주가 없다 보니, 정리도 잘하지 못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14/07/02 09:47
수정 아이콘
교회가 한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갈수록 몰락할 수 밖에 없겠죠.
이런 토대의 붕괴가 더 기형적인 기독교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고.
교회가 대중의 공감을 못받는 건 맞지만 오히려 본문과 같은 정론을 주장하는 교회는 더 망하고 흔히 개독이라고 욕먹는 교회는 그래도 세를 불리고 있죠. 이게 딜레마입니다.
사회 자체가 힘든 얘기, 어려운 얘기, 참된 얘기는 듣기 싫어하고 달콤한 얘기, 자극적인 얘기에는 맘을 여는 문화가 범람해 있고 그 문화가 그대로 교회에도 반영되는 것이죠.
이러다가 결국 소수의 참된 교회만 남고 다 망하지 않을까 싶은데 항상 망하기 전엔 극단적인 몸부림이 나오기 때문에 더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피에군
14/07/02 13:45
수정 아이콘
전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고 보는데, 다만 교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가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이미지란 이미지는 다 갉아먹으니 있던 자리들마저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진정 총체적 난국.

참 설교 문제는.... 난제인 것 같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데. 목회자들이 달콤한 설교만 해서 성도들이 달콤한 것만 찾는 것인지. 아니면 성도들이 달콤한 설교를 찾다 보니 목회자들이 달콤한 설교를 하게 되는 것인지. 저는 우선은 목회자들의 문제가 크다고 보는 쪽입니다.
전 소수의 참된 교회가 남는다면 괜찮은데, 반대로 다수의 참되지 않은 교회가 남게 되진 않을까 그것이 더 걱정됩니다. 하아.
유리한
14/07/02 10:30
수정 아이콘
http://www.ddanzi.com/?act=&vid=&mid=ddanziNews&category=&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B%AF%B8%EC%89%AC%ED%8C%8C%ED%8A%B8
딴지일보 미쉬파트님 글입니다.
이분 말고도 더 괜찮은 글을 쓰셨던 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블루칼라)
딴지 해킹사건때 글이 날아간건지 리뉴얼하면서 증발한건지.. 검색이 잘 안되네요.
읽어볼 만한 글입니다.
피에군
14/07/02 13:55
수정 아이콘
네 저도 읽어보았습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는 (특별히 성서론쪽은...) 뭔가 논쟁할만한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논쟁하고 싶어도 2010년에 쓴 글을 지금 와서...) 그 외에 부분은 저도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비슷한 내용들에 관해 비판하고 싶구요. 지금 현재 한국 개신교가 뭔가 기형적으로 변해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7/02 15:54
수정 아이콘
구약에 나오는 전쟁기사들은, 기본적으로 내집단 윤리로서의 '고대인'의 윤리의식을 반영하는동시에, 당시 유대인들이 '정서적'으로 해소해야 했던 것들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하느님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거짓신들을 징벌하는 내용은 '일정부분', 해당하는 전승을 구성한 당대 유대인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기위한 내용들입니다.
부족국가의 흥망, 제국에 의한 점령, 강제이주, 복귀등 다양한 '공동체'적인 경험들을
자신들이 가진 '신념체계'를 유지하며 해석하고,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양한 '전쟁기사'들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구약에서의 전쟁승리는, 다른민족이 하느님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성경이 될 '전승'을 유지하던 '공동체'가 하느님을 '인정'하게 할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보아야 할 수 있습니다.

이후로 '신약'이 지중해 주변 공동체들로부터 구성되고, 성경과 그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는 이천년 가까이 자신을 재구성 해왔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진리'도 정치적인 투쟁과, 장기간의 해석/재해석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사실 현대 한국에서 기독교의 각 종파들이 보이는 '행동'은 '한국사회'에서 재구성된 '기독교'로서는 올바른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존재여부가 불확실한 '기독교의 원래 믿음'이 아니라,
현대 한국사회의 기준 하에서 '한국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재구성 되어온 기독교'가 낙제점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에군
14/07/02 16:44
수정 아이콘
저는 말씀하신 부분에 관한 기록들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반대편의 기록들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에서는 한 쪽만 이야기했지만요. 하하하.

이스라엘의 성서고고학자들도 두 가지를 가지고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 끼리 논쟁이 계속 되고 있죠.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쪽과 사울부터는 이스라엘이 존재했다는 쪽, 또는 더 이전의 가나안 정복 시대의 성경 속 역사도 사실이라는 쪽까지요. 미니멀리스트가 고고학 발굴 근거를 들어 성경의 허구성을 증명하려고 하면, 또 한 쪽에선 맥시멀리스트들이 고고학 발굴을 통해 성경의 역사성을 증명하려고 시도하고.

여튼 전 쿨하게 둘 다 인정하는 편이라, 포로기 이전에 특히 솔로몬 시기에 정립된 전승들의 경우에는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것이 가능했다는 쪽이고, 포로기 이후에 정립된 전승들의 경우에는 심한 부침 속에서 민족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어했다 정도일까요. 신명기 사가와 역대기 사가를 구분 짓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뭐 비단 한국 사회에서만 개신교가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고 이와 비슷한 문제가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개신교의 신학 사상과 교회의 형태, 전도 방식 등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흥하고 쇠락하는 형태가 매우 흡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정교회가 결국 문을 닫은 것처럼, 어쩌면 강남의 모 교회가 결국 문을 닫게 될 수도 있죠. 사실 변화가 없다면 시간상의 문제, 오래 걸릴지, 아니면 금방 나타날지 정도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개신교와 한국 개신교의 특히 보수 진영의 차이는 이슬람(알 카에다? 후세인?)을 북한으로 대치시켜서 생각해보면 정치적 활동의 모습이나 신학이나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공화당과 새누리당의 포지션도 비슷하고. 성도 구성도 비슷하고. 기존의 개신교에 대한 반발로 수많은 대안 교회들이 탄생했죠.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행보가 나타나고 있는데 당분간 이러한 경향을 유지할 것 같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7/02 22:08
수정 아이콘
다윗이나 솔로몬시대에 이스라엘지역에서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은 '국가'가 명확하게 운영된 적은 없다고 봅니다.
주변에 영향력을 가지는 '부족국가'야 있었을 수 있지만요.
성경은 기본적으로 '역사서'라고 하기보단 '설화집'에 더 가깝습니다.
상당수의 설화나 신화에는 역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설화상 '기록된 바'와 같은것은 아니죠.

개신교에 한정한다면, '신도 재생산'성공 유무가 앞으로의 성패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히 혐오스러운 개념인 '모태신앙'과 같은 아동/청소년에 대한 사상적인 억압과 강제는 여전히 '잘 기능하는' 사상의 재생산 수단중 하나여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그렇게 금방 종교조직이 축소되고 할 것 같진 않습니다.
피에군
14/07/02 22:53
수정 아이콘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은 사실 영토의 경계가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존재했다거나 중앙집권체제 같은 국가 시스템을 가졌다고 보긴 어렵고, 좋게 봐줘야 아테네나 스파르타 같은 당시 그리스의 도시국가 정도로 추정할 순 있겠죠.
하지만 부족국가라고 할지라도 솔로몬 시대에는 주변에 영향력을 상당히 미쳤다고 추측할 수 있는 고고학 자료들이 이스라엘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맥시멀리스트들의 말을 부정할 수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신도 재생산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역피라미드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시간 문제라고 전 생각합니다. 현재 교회에서는 모태신앙이었으나 중학생 이후 대학생까지의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교회를 나가지 않거나 무신론으로 전향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것인가 계속 논의 중이기도 하구요. 마땅히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았기도 하구요. 아무리 사상적인 억압과 강제가 있다고 해도, 일주일 중 하루만 보내는 교회와 일주일 중 엿새를 보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나 가정에서의 사상적인 억압은 이제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게 가정 내에서의 갈등 요소가 될 순 있겠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3577 [일반] 미드 <멘탈리스트> 리뷰 : 과장의 내적 리얼리티 [38] 헥스밤9676 14/09/01 9676 5
53568 [일반] 레알 마드리드 치차리토 임대 영입등.. 해외축구 소식 [46] hola2675193 14/09/01 5193 0
53031 [일반] 레드벨벳에 대한 잡담. [28] 카랑카10846 14/08/03 10846 0
52913 [일반]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37] HOOK간다6304 14/07/25 6304 18
52871 [일반] [해외축구] 여름 이적시장 뉴스 , 그외 루머.. [77] V.serum6391 14/07/23 6391 0
52816 [일반] 형제갈등 [43] 기아트윈스7647 14/07/19 7647 7
52756 [일반] 독일음식 용어사전 (분량문제로 분리합니다) [4] 중년의 럴커6739 14/07/16 6739 0
52753 [일반] 독일에서 굶지 말라고.... [29] 중년의 럴커10622 14/07/16 10622 7
52492 [일반]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신학도의 주관적 비판. Part 2 - 성장과 결과 중심의 개신교, 희망의 신학 [38] 피에군5132 14/07/02 5132 8
52346 [일반] 아이돌. 그중 태연양의 연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40] Bergy107974 14/06/22 7974 0
52303 [일반] [연예] 인스타그램 댓글로 남긴 태연의 편지 [236] 비상의꿈12999 14/06/20 12999 0
52268 [일반] 우리는 조금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 [39] 당근매니아7116 14/06/16 7116 20
52037 [일반]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50] 뀨뀨10935 14/05/31 10935 0
51798 [일반] 말로 할래 VS 글로 쓸래 [28] 기아트윈스5655 14/05/17 5655 7
51789 [일반] [리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3], 벤 스틸러: 성장하는 관계와 여전한 자리의 가치를 흥미롭게 포착한 영화 (스포有) [25] 쌈등마잉5257 14/05/16 5257 1
51606 [일반] 만약에 내가 스페인 축구대표팀 감독이라면? [39] 최희6064 14/05/08 6064 0
51574 [일반] [아스날] 올시즌이 거의 끝나가네요. (스압) [51] pioren5690 14/05/06 5690 6
51511 [일반] 김황식 폭탄발언. 대통령이 출마권유. [158] 곰주9715 14/05/02 9715 10
51301 [일반] 우리는 과연 미개한가 [31] 콩콩지5494 14/04/24 5494 15
51239 [일반] 안전한 대한민국을 바라며... [18] Fallon3729 14/04/22 3729 1
50436 [일반] MBC가 정말 맛이 갔군요... [89] Duvet11956 14/03/13 11956 5
50391 [일반] 일전에 말입니다. [23] 김아무개5433 14/03/11 5433 2
50365 [일반] 취사병의 추억 [32] 제리드8137 14/03/10 8137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