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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6/11 11:37:21
Name 덱스터모건
Subject [일반] 무궁화호의 그녀
10여년전 추석 연휴를 앞둔 평일이었다. 친구들과 XX역앞에서 거나하게 한잔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집으로 간다고는 해도 명절맞이 귀향이 아니고 그냥 하교길이다. 당시 나는 정기권을 끊어서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깨질듯한 머리를 감싸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도 채 비비기 전에 동네 방앗간에 가서 찹쌀을 빻아오라는 집주인어머님의 명을
받아 스뎅 소쿠리에 찹쌀을 두어되 담아 집을 나서는데..

집앞 사거리 신호등 너머로 비추는 강렬한 햇살에 내 머리속을 스쳐가는 무엇인가가 생각났다. 정말 번뜩이듯이 지나갔다. 나쁜놈을 죽이기 위해 총을 들이댄 순간 킬러의 머릿속에서 슉슉 지나가는 플래시백 처럼...

황급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번호목록을 뒤졌다. 복학한지 얼마안되어 백명이 채 안되는 목록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있다.. 있었어.. 김XX... 그 당시 내 폰엔 김씨 여자가 10명은 넘고 수진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8~9명쯤 되었지만.. 이 번호가 어제 기차를 타기 전까지는 내 폰에 없었던 번호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번호를 확인하고 나니 플래시백이 몇개 더 지나갔다. 술을 그렇게 처먹고 마시고도 객차사이 칸 바닥에 앉아서 기차에서 팔던 카스를 홀짝 거렸다. 그리고.. 옆에 누군가 있었고 습관처럼 '어디까지 가세요?' 라고 물었던거 같다. 그런데.. 구체적인 대화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기차를 타다보면 뭔가 보는눈이 생긴다. 출근길 직장여성분들은 그 어떤 질문을 던져도 블로킹이 대단하다. 몸쪽 직구를 95마일로 꽂아도, 눈높이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커브를 던져도 배트가 나오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학생들한테는 잘 통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실제 내 스터프는 80마일도 안되는 직구라서 굳이 메이저에 가보지 않고 고교생들만 상대해봐도 형편없는 공인건 누구나 다 알기 마련아니겠는가..

말문을 트기 상대적으로 쉬운 경우는 주말이나 연휴를 앞두고 귀향하는 사람들이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주저하다가도 
'저는 XX까지 가요' 라는 말을 붙이면 곧잘 대답을 해준다. 어차피 곧 내릴 놈인데.. 죽은 사람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뭐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여간 요딴식으로 작업을 걸고 번호를 따던 습관이 취중에 자연스럽게 나온 모양이고 또 번호를 땄다.

고민고민하다가 점심시간이 지나고 문자를 보냈다. 그냥 의례적인 문자가 오가고 전화를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술냄새가 조금 나긴 했으나 별로 취해보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굉장히 또박또박 말을 했다고 한다. 그게 내 술버릇이다. 안취한척 하려고 행동도 천천히 하고 말도 천천히 하거든..

만나기로 했다. 연휴가 지나고..그 다음 토요일인가.. 어딘가에서 만났다.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1호선 전철을 타고 간 인천의 어디였다. 커피숍에 들어갔고 얼굴을 마주하니 기억이 더 날거 가기도 했다. 쌍커풀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지만 귀여운 편이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했다. 내 나이 ±1살 정도 였던거 같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물었다.










' 교회 다니세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조~~기 밑에 메이저리그 글쓰시는 분... 버스에서 만나신 분과 데이트하신다길래..

갑자기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저주가 역레발이 되길 바라며...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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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1 11:44
수정 아이콘
결말이 마음에 드네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크크
통기타
14/06/11 11:45
수정 아이콘
크크크킄크크 오예~
언뜻 유재석
14/06/11 11:45
수정 아이콘
커피 얻어먹으셨으면 개이득 까진 아니고 이드기여~
덱스터모건
14/06/11 11:46
수정 아이콘
아마...제가 냈던듯??
언뜻 유재석
14/06/11 11:49
수정 아이콘
하아... 이분.. 남일 같지 않네요? ㅠㅜ
14/06/11 11:45
수정 아이콘
(교회)다녀야죠, 다니면 생긴다는데...?! 다녀야지!!
덱스터모건
14/06/11 11:46
수정 아이콘
뭐...저뒤로..2년쯤 후..썸타전 처자 쫓아서 같은교회 다니면서 성공?을 하긴 했었지요.. 크크크
14/06/11 11:52
수정 아이콘
.... 운영진!!!! 운영진!!!!!!!!!!
*alchemist*
14/06/11 12:25
수정 아이콘
근데 생겨서 다녀봤는데.. 별로에요.. 결국은 다시 안다니게 되더라구요.. 흐흐
덱스터모건
14/06/11 13:36
수정 아이콘
저도 끝나고 나서는 안다니게되드라구요...
endogeneity
14/06/11 11:46
수정 아이콘
( ͡° ͜ʖ ͡°) ( ͡° ͜ʖ ͡°) ( ͡° ͜ʖ ͡°)
화이트데이
14/06/11 11:50
수정 아이콘
...
14/06/11 11:52
수정 아이콘
다단계, 보험, 종교!!
tannenbaum
14/06/11 12:01
수정 아이콘
+레포트!!!
산적왕루피
14/06/11 18:14
수정 아이콘
tyro님 인상이 선해보이세요..크크크 제사 지내러 가실레요? 크크
세상의빛
14/06/11 12:09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alchemist*
14/06/11 12:25
수정 아이콘
교회 다니세요... 라뇨.. 크크크크
역시 PGR입니다
당근매니아
14/06/11 12:30
수정 아이콘
뭔가 자게가 점점 불펜화....ㅠㅠ
14/06/11 12:35
수정 아이콘
결말이 피지알다워서 추천 누르고 갑니다.
역시 이래야 내 피지알이지!
감모여재
14/06/11 14:42
수정 아이콘
이 분 성공하셨답니다. 추천 내려주세요. 흑흑..
덱스터모건
14/06/11 14:58
수정 아이콘
지금 유부긴 한데...그걸 어찌아시고... 크크 어찌어찌 결혼도하고 연애도 많이해봤지만 찌질한기억이 얼마나 많은지...다음편 기대해 주세요
一切唯心造
14/06/11 12:56
수정 아이콘
떼어내기 위해서 종교를 던진건 아니었을까요??
9th_avenue
14/06/11 13:13
수정 아이콘
역으로 가나요?
강동원
14/06/11 14:10
수정 아이콘
추천수를 보고 과감히 클릭하였습니다.
역시 피지알의 추천은 저를 배반하지 않는군요.
14/06/11 14:42
수정 아이콘
데...덱스터라니!?? 설마 일부러 접근하신건 아니겠죠??크크크
종이사진
14/06/11 15:04
수정 아이콘
술먹는 사람이면 교회에 다닐리는 없고,
나름 디펜시브 메트릭스가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말하면 떨어져 나가겠지...

제목의 불안함이 가셔서 다행입니다.
탕수육
14/06/11 17:52
수정 아이콘
스테시스필드를 방어막으로 활용한 것이 아닐까 마 그래 생각해봅니다
王天君
14/06/11 18:00
수정 아이콘
기독교인이라고 탄압하다니!!!
레지엔
14/06/11 20:34
수정 아이콘
Tonight's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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