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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22 13:11:55
Name 콩콩지
Subject [일반] 독서는 왜 하는가?
독서는 왜 하는가? 독서는 재미있어서 한다. 뭐든지 재미있어야 오래 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가서,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한다.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현명하고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에 독서만한 것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책 읽는게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독서를 많이 하기만 한다면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독서는 생각하는 힘의 충분조건일까?


유명한 고전들의 원전을 직접 읽어보면, 책의 실제 내용과 핵심은 다른 사람들이 인용하고 떠드는 것과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도 그런 책이다. 이 책은 '20세기 공산주의 몰락을 예언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전지구적 도래가 필연적임을 밝힌다'는 내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과정에서 70년대와 90년대 민주주의 국가의 개수의 변화를 보이고, 각종 경제수치를 통계적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 책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결로 읽으면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헤겔의 철학을 원용해서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헤겔에 따르면, 헤겔은 인간을 인정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봤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데에서 존재의 근거를 찾는 것이다. 이 인정욕망은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다른 사람과 대등하고 싶은 대등욕망.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우월욕망. 사람은 끊임없이 경쟁해서 남보다 우월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월한 위치를 한 번 점했다고 인정욕망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큼 숭고한 존재에게 인정받는것을, 나보다 못한 하찮은 존재에게 인정을 받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 철학자는 노예에게 받는 찬사보다, 동료 철학자에게 받는 찬사를 더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인간은 모든 사람을 인격적 주체로 보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대신 인간은 경제적 분야에서 우월욕망을 발현시킨다. 자본주의적 경쟁을 통해 우월욕망은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표출되고, 정치적 영역에서의 대등욕망과 공존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을 읽으면서 살펴볼 것은 후쿠야마가 자신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어떠한 대전제와 소전제를 사용하는지, 기저에 깔린 논리전개가 어떠한 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비판적인 사고나 생각을 가다듬는 것이 가능해진다. 반대로 피상적인 디테일이나 껍데기에 집착하면 생각을 절대 발전시킬 수 없다. 70년대와 90년대 민주주의 국가 개수의 변화나 중국과 미국의 GDP변화 같은 껍데기는 아무리 들여다 봐도 새롭게 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반면에 본질에 대해서는 생각거리가 많다. 과연 인간이 인정욕망같은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가, 대등욕망은 경제적 불평등의 영역에서는 왜 적용되지 않는가, 우월욕망은 경제적 영역으로 온전히 충족이 가능한가. 이러한 논점들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는 과정에서 생각을 가다듬고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논점들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책을 읽고 난 뒤 <자유민주주의가 사회주의에 승리를 했다>같은 디테일은 잊어도 좋다. 아니, 사회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이긴다고 거꾸로 이해해도 좋다. 자신만의 논리전개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면 말이다.


수험생 때, 한 대학의 입학설명회를 간 적이 있다. 논술해설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시간에 담당교수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시험을 보면서 엉뚱한 맥락에다 인용만 해대는 탓에 미치겠다."라고 했다. 우연히 그때 교수는 헤겔을 예시로 들었다. 학생들이 헤겔의 명언같은 걸 뜬금없이 인용할 때 더 안좋게 보인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책 읽으라고 할 때에는 피상적인 디테일 외우라는 것이기보다는 고전이 갖고 있는 논리적인 힘과 통찰력을 체화시키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쉬운 길을 택한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피상적인 디테일과 껍데기들에 줄을 긋고 적고 외우면서 지식을 쌓았다고 착각한다. <자유민주주의가 21세기에 승리한다>라는 껍데기는 한달만 지나면 다시 잊어버릴 것들이다. 때문에 생각하지 않고 읽는 책은 오히려 해가 된다. 피상적인 것에 집착할 때 하나의 책은 하나의 편견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고 읽는 책은 오히려 독이 된다.


초등학교 때 만화 삼국지를 한 질로 사서 열심히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한 권을 빨리 읽고 다음권을 읽으려는데, 사촌형이 내 다음권을 읽고 있었다. 형의 책장은 5분에 서너장 넘어갔다. 다음권이 궁금해 애가 타는 나는 "형은 뭔 만화책을 그렇게 천천히 읽어?"라고 타박했다. 형은 생각하면서 읽어서 그렇다고 했다. 고수는 삼국지를 읽어도 한비자처럼 '읽어낼' 수 있다. 하수는 미셸 푸코를 봐도 만화책처럼 넘겨 '보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TV드라마 보듯 구경하면서 100권을 읽은 사람은 생각하면서 1권이지만 치열하게 읽은 사람에게 진다.


독서를 하면 피상적인 껍데기와 그 중심에 있는 본질을 끊임없이 스스로 가려내야 한다. 교과서는 그렇지 않다. 교과서에는 불필요한 잡음은 깨끗하게 제거되어 있다. 살코기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읽는 사람은 편하게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온갖 불필요하고 해악이 되는 잡음과 껍데기가 돌아다닌다. 그 중에서 얼마 안되는 본질을 꿰뚫고 자기만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만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인가? 단언컨대 그렇다. 단 스스로 치열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그렇다. 가치있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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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우
14/05/22 13:17
수정 아이콘
마침 얼마전에 '독후감에 있어 비판적 사고는 매우 중요한데, 한국 교육현장에서 비판적 독후감은 감점의 대상이다'라는 이야기를 봤던지라 글 내용이 더 각별하네요.
붉은벽돌
14/05/23 01:04
수정 아이콘
전 그런 면에서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독후감 숙제를 내주셨는데 평범한 구성으로는 절대 A를 받을 수 없었죠.
그 덕분에 몇편 안되지만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읽은 책의 내용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독후감을 썼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환경이 제공이 안되니 아쉽죠.
14/05/22 13:17
수정 아이콘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어짜피 고전 독서의 중요성이 언급된 김에,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조금 더 전문서적/고전 번역 전문인력 양성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가볍게 읽는 소설 전문 번역가도 역시 중요하지만, 이미 책의 범주를 넘어선 고전 같은 문화적 저변이 깊이 박힌 책들은 정말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번역이 잘 되어야 할 것 같아요.
14/05/22 13:19
수정 아이콘
군대에서 목표가 책 100권 구입후 독파였는데 80권정도 읽고 말았던거 같네요...사회나와서는 전무하군요...다시 책을 잡아야 할텐데 말이죠...제대한지도 벌써 6년이 지났고...마지막으로 책을 놓게 만든게 슬라보예 지젝...경상계에게 이 아저씨가 하는 말은 정말..
켈로그김
14/05/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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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는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은 다독으로 귀결됩니다.
아무리 비판적인 사고를 깊게 한다고 해도 시행착오를 거친 후의 사고력이 완성도가 높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치열하게 생각하면서 읽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 끝난다면 깊게 자리잡은 사고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죠.
많이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혹은, 쓰는 것도 도움이 되죠.
내가 얼마만큼 알고 이해하는가를 알고싶다면 써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며...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는거죠..;;
양념게장
14/05/22 17:07
수정 아이콘
저도 처음엔 다양한 시각(?)을 얻기 위한 다독이 중요한거 같아요.
물론 심층적 사고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어느 정도 프레임웍을 만들어주는 느낌!
무선마우스
14/05/22 13:23
수정 아이콘
교과서는 잘 정리된 닭가슴살이라 맛이 없지요.
기아트윈스
14/05/22 19:25
수정 아이콘
너무 퍽퍽해요.
김연우
14/05/22 13:26
수정 아이콘
다독도, 심층적 독서도 둘다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은 초등학교 독후감은 죄다 줄거리 요약에 바쁘고. 그건 정말 최악인데.

일단 먼저 책을 많이 읽어서 '기본적인 읽기능력'을 배양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맥 읽기가 힘드니까요. 그런 다음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 생각하고 해야하는데, 그러기 전에 일단 토론하는 문화부터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허용돼지 않는 대답을 하면 혼나는 문화이다보니.
endogeneity
14/05/22 13:37
수정 아이콘
'독서를 왜하는가'에 대한 본문의 원론엔 찬성하고
"실제 내용과 핵심은 다른 사람들이 인용하고 떠드는 것"의 구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을 제안해보고자 합니다.

(1) 가장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비판인데(그러므로 가치가 떨어지는), 책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2) 본문은 '역사의 종말'을 일례로 나름의 '독서 모델'을 제시했다 보입니다. 그 모델의 정체는 사실 '저자의 본래 취지'에 충실하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한 전제 하에 '헤겔의 인간론에 입각한 후쿠야마의 문명론'이라는 '저자의 본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기준으로 '70년대:90년대 민주주의 국가 숫자' 같은 가라지들을 가려냅니다.
(2-1) 그렇지만 책을 읽는 것도 일종의 대화(소위 '저자와 독자의 대화')라고 한다면, 독자가 저자의 본지가 무엇인지에만 편향되어 광야를 헤매일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저자도 그걸 당연시할 자격이 있을까요? 차라리 하버마스처럼 '때로는 독자가 저자보다 글을 더 잘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선선히 인정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3) 이것들로부터 생각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밌는 논점은 '오히려 오독이 더 가치있다'는 테제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헤겔은 칸트를, 마르크스는 헤겔을 오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작업의 독창성은 어느 정도 그런 '오독'에 근거합니다.
(3-1) 심지어 가장 진지한 독서를 하는 와중에도 '편견'은 발생합니다. 오히려 진지함이 더 강렬한 왜곡을 낳을 수 있는데, 진지한 자세는 객관성으로의 문이라기보단 주관성으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객관적이기 위해 우리는 진지하면서도, 그러는 자기 자신과 거리두기를 시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근데 거리두기라는 건 결국 자기가 하는 일의 부질없음을 받아들인다는 뜻도 됩니다. 그쪽으로 계속 기울다보면 결국은 완벽한 냉소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마지막엔 가지고 있던 모든 책을 다 불태우고 이 부질없는 짓을 때려치우는 방법만 남을 것입니다.(흄이 어딘가에서 철학을 하다가 너무 암울해져서 철학을 하면서 만든 노트 같은걸 다 태워버렸단 얘길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4) 결국 우리가 책으로부터 얻는 것이 무엇인지의 문제가 남습니다. 체계화된 지식? 남다른 인식? 또는 그냥 나 자신에 대한 재삼의 고찰? 궁극적으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잡문들의 향연? 또는 그 외의 무언가?
14/05/22 14:27
수정 아이콘
(2-1)그래서 장정일과 백민석을 비교해 읽으면 재밌죠. 전자는 과연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았던 걸까 의문인 반면 후자는 그렇진 않으니까요

(4)물론 현실은 둘 모두 맴매 맞고 절필한다며 돌아앉았다가 몇 년쯤 지나 훼손된 채 비칠비칠 다시 돌아왔습니다만...

(3)그리하여 오독의 가능성이란 언제나 서 있는 맥락과 발화의 위치에 대한 상이한 이해로부터 나타날텐데... 아마 선취한 이들에게 갖는 후발주자의 단 하나 장점이란 이 정도겠네요.

(0)그럼 후발주자답게 본문을 님 댓글에 입각하여 오독해본다면, 본문에서 끌어온 사례나 언급한 그릇된 사례를 보아 논지는 '특정된 작가의 진의를 파악해야한다'기 보단 '진의건 오독이건 가능하려면 작가가 하나의 경구로 논지를 일축하기까지의 과정을 더듬어야하며, 이는 해당 저서에 대한 면밀한 독해로부터 가능하다'에 가까워보입니다. 이 점을 고려할시 해당 댓글은 '원론적인 부분을 접어놓고 "실제 내용과 인용간 괴리"'를 재고한다기보단 원론적인 부분을 재고하여 이를 경유한 연후에 다다를 지점이 아닌가 싶네요. 뭐 작금에 이르러선 굳이 필요한진 의문입니다만 헤겔의 대논리학을 읽지 않으면 자본론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던 레닌의 말이 마냥 지자의 사상사적 유희를 위함만은 아닐테니까요.
endogeneity
14/05/22 15:43
수정 아이콘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가 저 댓글을 달았을 때 고려했던 '본문의 원론'이 두 가지 있었던 셈입니다.

(1) 독서의 목적=저자의 진의의 탐구
(2) 독서하는 태도=진지한 원전주의

사실 이 댓글을 마무리지을 단계에서 내가 쓰고있는 댓글이 '원론적인 부분을 접어놓고 "실제 내용과 인용간 괴리"'를 재고한다기보단 '원론 자체'를 뿌리뽑아버리려는 시도로도 생각될 수 있다는 점이 느껴졌는데, 그럼에도 분명히 글쓴이와 내가 공유하는 생각이 있다는 점이 그런 식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걸 막았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진지함'. 다른 말로는 '하나의 경구로 논지를 일축하기까지의 과정을 더듬'는 '면밀한 독해'

이거 딱 하나만 남습니다. 책은 진지하게 읽어야 하고 기껏 요약서가 진정한 독서를 대체할 수 없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태도, 제스처만이 유일한 합의점이라는게 영 찜찜한 점이긴 하죠.
14/05/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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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플이네요. 원문을 쓰신 분께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추천합니다. 재밌는 책이거든요. 바야르 책은 다 재밌죠^^;

아울러 텍스트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왜 책의 양에 대한 이야기, 혹은 인용에 집착하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로 미끄러지는 지 모르겠네요. (계속 글쓴이에게 하는 말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드라마 보듯 구경하면서 100권을 읽은 사람과 생각하면서 1권이지만 치열하게 읽은 사람의 승패는 모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딴지 거는 김에 조금만 더 걸어보면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현명하고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하는 힘을 가지면 생각하는 힘을 가질 수 있을 뿐입니다.
14/05/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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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끄러지냐면 본문의 글쓴이가 후자를 지양하여 전자에 이르러야한다고 말하니까요. 여기에 글쓴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느낀 전자의 중요성마저 별첨되는 만큼 나름 글을 읽어나가며 독자가 느낄 최소한의 근거 정도는 마련될테지요. 그리고 본문의 맥락을 뜯어보면 전자가 후자에게 이긴다는 게 보다 큰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봅니다. '독서'란 영역에 한정된 이야기겠죠. 축구 경기의 사례를 들자면 분명한 목적을 갖고 팀의 전술적 맥락과 선수별 역할에 대해 곱씹으며 단일한 토너먼트를 본 이가, 축구엔 관심 없지만 자국 대표팀 나온다기에 한 번씩 챙기며 네댓번을 본 이보다 축구와 특정 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축구 팬이 될 이유는 없고 축구 팬이 느끼는 감흥이 일반 시청자의 그것과 모든 맥락에서 우열을 가리긴 어려울 것입니다만 적어도 다른 스포츠가 아닌 축구 경기만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선 더 많은 걸 얻을 순 있겠죠. 본문은 이 이야길 하고 있다고 봅니다.
14/05/2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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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란 영역에 한정된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저건 최소한 몇 천년된 '편견'이거든요. 책을 읽으면 집도 나오고 쌀도 나오고... 사실 전적으로 '편견'이 아닌 시대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어쨌든.

아울러 후자를 지양하는 것이 전자를 성취하는 것과 필연적인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후자는 후자대로 지양해야 하고 전자는 전자대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죠.

위에 적어주신 팟저님의 리플은 잘 읽었습니다.
14/05/2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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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상정한 게 본문이고, 그 필연적 관계는 오롯이 본문에 살아있으면 그만이 아닌가 생각해서요. 그리고 특정 발화의 맥락과 과정을 더듬어볼 습관이 몸에 밴 이라면 그만큼 앞뒤 잘라내고 지자의 격언구를 주워섬기는 버릇에선 멀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리 받아들이기 어렵지도 않구요.

수천년된 편견입니다만 그 편견이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상 이를 비판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책에서 비롯된 글쓴이의 가치판단 기준이야 문맥 속에서 읽어낼 수 있긴 한데 그 자체를 논하는 게 아닌만큼 살짝 접어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구요. 그런 것까지 추궁하는 건 아무래도 좀 가혹하게 느껴져서요.
14/05/2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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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길게 이야기할 꺼리는 아닌 듯 싶네요^^;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 조금 더 사고를 밀고나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콩콩지
14/05/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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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ejah 님의 댓글보고 저렇게도 읽힐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독서와 사회적 성취와의 관계를 주장하는 걸 누구보다 비판하는 사람이라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고. 현명하고 성공하는 인생에서 성공은 빼는게 나을뻔 했겠네요. 꼭 물적 성취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누구보다 다독의 효과를 믿는 사람으로서 숙독 다독의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생각하는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려했구요. 인용에 대한 얘기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팟저'님처럼 읽을걸 상정하고 썼지만 역시 글쓰기는 쉽지 않네요. 각양각색으로 읽히니까요. 쓰는 순간 저자의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14/05/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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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 글쓴이께서 개입하셨네요;;; 바로 위에 적었습니다만, 단지 미끄러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리플에 기대 한 줄 적은 것 뿐입니다. 꾸준히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가끔씩 이렇게 피드백도 있으면 좋겠네요^^
개념은?
14/05/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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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하시는 분들은 책을 다 읽고 어떻게 정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분명 감명깊게 읽었어도 한 2주일만 지나면 책에 대한 내용이 머리에 남지 않아서요..
이게 제가 머리가 나쁜탓인지... 아니면 따로 독후감이라도 쓰면서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스스로 해야하는건지...
스테비아
14/05/22 13:45
수정 아이콘
저는 저에게 생각할거리를 주는 문맥을 통째로 적어둡니다.
그리고 주제별로 분류해서 적어둔 뒤 수시로 보려 했으나 잘 안 보는 게 함정 ㅠㅠ
그나마 공책에 하던 거 중단하고 블로그에다 정리해두니까, 심심할 때 접속해서 보게 되네요 흐흐
실버벨
14/05/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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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개인 블로그에 저만 볼 수 있게 정리를 해둡니다. 책 이미지라던가, 대략적인 내용. 그리고 제가 느꼈던 감정까지 기록하는 편이라서..
14/05/22 16:04
수정 아이콘
책마다 다르긴 하지만 제일 큰 포인트는 큰 주제마다 저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이걸 썼는가? 하는겁니다.
그것마다 정리해두고 그에 대한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까지 해두면 정리가 됩니다.

이렇게 하면 교과서식 요점 정리가 됩니다. ㅠㅠ
머릿속에 책에 대한 태그표시를 붙인다고 보면 되겠죠. 이건 대~충 이런걸 말하자고 하는 책이다.
14/05/22 13:44
수정 아이콘
독자가 알아서 치열하게 생각해야만 요지가 보이는 분야가 있고, 자기 요지를 쉽게 설명하는 사람만이 좋은 글쓰기라고 인정받는 분야가 있지요. 저는 후자쪽 사람인지라....
14/05/22 16:35
수정 아이콘
사실 이공계 글도 요지를 쉽게 설명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곱씹을수록 내용이 끝내주는 논문도 많죠! 보통 이런 논문은 논문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에 남을 저서로 남긴 합니다만...
14/05/22 13:49
수정 아이콘
저도 독서에 최고는 교과서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네요. 물론 중고등 교과서야 사실 특수한목적을 가진 교과서니 언급할 필요가 없고, 대학교과서가 최고죠. 솔직히 개인적인 입장으로 시중에 나도는 책 절반은 쓰레기라고 봅니다. 아니 절반도 진짜 최소한으로 쳐줘서...
14/05/22 14:03
수정 아이콘
가치있는 건 결국 돈이죠. 그런 의미에서 책 살 돈으로 로또에 투자하는 게 현명할 수 있습니다..
비록 마음의 양식을 얻지는 못할지라도 치킨을 먹을 수 있다면야..
라라 안티포바
14/05/2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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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숙독>다독은 동의하지않습니다.
보통 자발적으로 고전을 다독하는 사람들이 숙독이 되지않을리가 없습니다.
고전의 다독의 동기는,
한권, 또는 몇권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다른사람의 생각이 궁금하고, 다른 내용이 궁금해서 생기는 '지혜의 갈망'에서 오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흔히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 는 말도 나오죠. 적은 양의 독서는 오히려 주화입마의 가능성을 낳습니다.
14/05/22 14:18
수정 아이콘
독서하는 방법은 제 닉네임으로 검색하면 나옵니다^^ ~이 참에 홍보를..
王天君
14/05/22 15:12
수정 아이콘
저는 감상문이 없는 감상은 진짜 감상으로 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되었건 감상을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덩어리들이 사고에서 부유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본문에서 강조하는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데에는 감상문 만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14/05/22 16:27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독서는 자신의 삶과 같이 가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내용이 심오하고 좋은 책이라고 해도 그것이 내 삶과 연관이 없으면 읽어도 별로 유익이 없고, 뒤에 가면 남는 것도 없죠. 다양한 지식을 쌓거나, 비판, 설명 그리고 해석으로서의 독서로 국한한다면, 다독이나 숙독은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것인지는 다른 문제죠.
14/05/22 19:18
수정 아이콘
쇼펜하우어도 사색하지 않으면 독서가 무슨 소용이냐고 했죠. 어쩌다보니 주변에 다독자가 많았는데, 제가 보기에 다독은 사고의 재료가 되긴 하지만. 재료가 많은 것과 그걸 고차원적으로 조립하는 건 별개의 능력이더군요.

다만 여기서 까다로운 게, 다독은 양의 문제지만 숙독은 질의 문제다보니 개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거죠. 가령 '특정한 책을 두 번 읽었을 때 더 이상 아무 것도 깨달을 수 없던 사람'과 '같은 책을 다섯 번 읽었는데도 새로운 것을 깨달은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높은 수준의 숙독을 한 걸까요? 이건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문제일 겁니다. 따라서 일반론에서라면 결국 개인차에 맞게 읽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저는 봅니다. 방법만으로 따진다면 전자는 다독, 후자는 숙독을 하는게 낫겠지만요.

자신에게 어떤 방식이 맞는지 모르겠다면 물론 독서량 부족을 의심해야겠죠.
14/05/2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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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등학교 교과서는 '닭가슴살'이 아니라 내용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았죠. 대학 교과서가 고전 연구를 짤막하게 다루는 경우라면, 사실 그런 연구의 의미가 그 분량에 들어갈 수가 절대 없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독자를 그릇된 길로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에게 중요한 건, 무슨 성기기, 항문기, 구강기 같은 구분을 절대화 하는 게 아니라, 아이도 섹슈얼리티(아직 정상 성욕으로 분화하지 않은)를 타고 나며 성장 과정에서 분화되어 나간다는 것, 그 분화 단계를 정식화 해나가는 방법론 등이 핵심인 것 같은데, 교과서는 그 발달 단계에 대한 짤막한 설명만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저는 교과서가 주는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당연히 더 많은 책(원전과 2차 저작들)을 읽어야 하고, 교과서는 사람을 뻔하게 하지만 독서는 새롭게 한다고 느끼거든요.

다독과 숙독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질의 책을 어떤 자세로 읽을지, 그리고 그렇게 독서해서 무엇을 얻을지에 대한 고민인 것으로 제겐 보였는데, 그렇다면 본문 내용에 대체로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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