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04/30 09:25:41
Name Vienna Calling
Subject [일반] 낯선 이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존 던의 이야기입니다.

---------------------------------------------------------------------------------------------------

존 던은 16세기의 사람입니다.

그는 가난하였고,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성공회의 사제로 일하며, 간간이 시를 쓰며 살았죠.


당시 영국에는 종종 장티푸스와 같은 열병(熱病)이 유행하곤 했습니다.

열병이 한번 휩쓸고 갈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존 던도 열병으로 사랑하는 친구들과 딸을 잃었습니다.

존 던 자신도 고열에 시달리며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했죠.

마을 교회에서는 죽은 이가 생길 때 마다 그를 위로하는 종을 울리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 병상에 누워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은 존 던은

병수발을 하던 아이에게 저 종은 누구를 위해 울리고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려다가, 곧 관두고 맙니다.

종은 곧 자신을 위해 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시를 한 편 씁니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써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니

만약에 한 줌의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게 될지면, 유럽땅은 그 만큼 작아질 것이며

만일에 모랫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땅이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킨다

나 역시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아보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


어젯밤 10년 가까이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0년을 연락없이 지내면 남과 다를 바가 없을 터인데...

이대로 연락없이 살았으면 살아생전 다시 한번 만나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의 죽음에도

마음은 괜시리 공허하고 막막해집니다.

왜 그런 것일까 생각하다, 출근길에 존 던의 이야기를 듣고 깨닳았습니다.

낯선 이의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나를 감소시키나 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2210 [일반] 문창극 역사 인식 그 이후의 반응들 [158] 어리버리13228 14/06/12 13228 11
52193 [일반] 무궁화호의 그녀 [29] 덱스터모건8250 14/06/11 8250 8
52163 [일반] (스포) 하이힐 보고 왔습니다. [14] 王天君5657 14/06/09 5657 1
52153 [일반] 이재수의 난 [23] 눈시BBv37720 14/06/09 7720 19
52143 [일반]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 : 찬송가가 울려퍼지던 제15회 퀴어문화축제 후기 [30] Tigris9104 14/06/08 9104 31
52136 [일반] 신촌 퀴어 문화축제와 반대 농성 [418] 모모홍차12766 14/06/08 12766 5
52108 [일반] 奇談 - 기이한 이야기 (단편 : 내가 보는 풍경) [8] 글곰4635 14/06/05 4635 4
52065 [일반] 씐나는 결혼 준비 이야기 [97] 제논9633 14/06/02 9633 0
52025 [일반] 나는 왜 창조과학을 싫어하는가? [76] TimeLord6600 14/05/31 6600 0
51977 [일반] [신앙에세이] 후회: 적그리스도 교황과 아버지 [31] 쌈등마잉4718 14/05/28 4718 4
51961 [일반] 여행가이드가 이야기하는 여행사이야기 [6] 코지군6260 14/05/27 6260 2
51841 [일반] 야밤에 생각나서 써보는 인턴경험. [22] 단신듀오9094 14/05/20 9094 5
51427 [일반] 낯선 이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 Vienna Calling2912 14/04/30 2912 6
51247 [일반] PGR간담회 '공감'의 뒷북 후기 [10] 더스번 칼파랑4904 14/04/22 4904 0
51163 [일반] [세월호 관련] "그만 슬퍼하십시오" 목회자 기도문 [펌] [19] 짤툴라7200 14/04/20 7200 4
51155 [일반] PGR21 간담회 '공감' 간단 후기 올립니다. [36] jjohny=쿠마6607 14/04/19 6607 2
50892 [일반] 어릴때 말입니다. [24] 김아무개4406 14/04/05 4406 5
50883 [일반] 주여 이 노답들을 구원하소서(우리동네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니!) [159] 워3팬..10940 14/04/04 10940 8
50829 [일반] 영화 '노아' 감상 (스포 無) [29] jjohny=쿠마6300 14/04/02 6300 3
50811 [일반] 영화 노아와 회사, 그리고 피곤한 개신교인 [54] 단신듀오6371 14/04/01 6371 0
50585 [일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 중2병 甲 [17] 표절작곡가4518 14/03/21 4518 4
50510 [일반] 같은 집에 아내 외의 여자사람과 같이 살게 되었다. [47] 파란무테10687 14/03/17 10687 0
50448 [일반]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 부터" - 교향곡이 뭐야? 먹는거야? [30] 표절작곡가4907 14/03/14 4907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