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공계가 뜨거운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5년전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만해도 평범한 인문계고에서 문과반, 이과반은 7:3 정도의 비율을 유지했다. 반면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내 동생의 학교는 사정이 역전되어 문과반, 이과반 비율이 3:7로 역전되었다고 한다. 얼마전 페북에 '대기업 인사담당 17년차의 조언'이라는 글이 크게 퍼졌었다. 요지인즉슨 문과를 가려면 서강대 이하의 학교를 갈바에야 지방국립대를 가고, 문과를 갈바에야 아예 이공계로 가라는것이다. 이공계는 지방대라도 그럭저럭 취업을 잘 하는 반면, 문과의 경우에는 취업이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문과를 택한 대학생들은, 이과를 선택하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한탄하며 진작에 알았다면 이공계를 갔을것이라고 후회한다. 반면에 공대생들은 그동안 문과에게 공돌이라고 무시받은 설움을 풀기라도 하는듯 '거봐라 문과 배우는것도 없이 놀기만 하니 그렇지 우리는 열심히 공부한다'라고 항변한다.


신문에서 특집기사로 취업이 어렵다. 이공계가 뜬다. 창조경제의 동력은 이공계.이런식의 기사가 나는 것을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한 2년전쯤 이명박정부에서는 높은 대학진학율이 사회적 낭비를 유발한다면서 기업들의 고졸채용을 장려했다. 여러 상고,공고르 졸업한 학생들이 4년제 대기업을 버젓이 졸업해도 가기힘든 은행,대기업에 척척들어갔다. 하지만 요즘 쏟아져나오는 기사는 고졸채용의 부작용이다. 고졸사원보다 늦게들어온 대졸사원의 임금이 높고 승진도 빨리한다던가, 주로 대학졸업장이 없는것에 대한 차별이다. 따지고보면 어쩔수없는 일이다. 기업입장에서는 똑같은 인력을 평가할때 기왕이면 비싼 자기돈들여서 등록금들여 대학졸업장 따온 직원이 더 나아보이는 것이다. 결국 고졸채용방안은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물론 한 가지 원인으로 모든걸 설명할 순 없겠지만, 이공계바람, 고졸채용바람은 모두 우리사회가 이제 성장정체국면에 들어갔기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이 크다. 더 이상 새로운 혁신적 기업이나 시장형성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규모 인력의 수요는 발생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의 산업구조는 수출에 의존하는 대기업 비중이 과도하게 높고 서비스업 비중은 낮다. 따라서 대기업입사를 위해서는 일부 문과 관리직을 제외하고서는 이공계가 유리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정체되다 보니 저비용,고효율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소수의 엘리트는 비용을 높게 지불하더라도 한두명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저비용 고효율의 노동력을 확보하는데, 수없이 양산된 불필요한 4년제 대학졸업생은 과하게 많다.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것이다. 기업은 싸게 필요한 고졸인재로 직종(대학졸업장이 있어도 별 도움이안되는)을 채운다. 정부는 앞으로 취학연령이 떨어져 유령학교가 될 대학교를 미리미리 정리할 명분이 생긴다.


이공계의 인기를 다시한번 살펴보자. 눈여겨볼점은 인기있는것은 이과대학 즉 자연대가 아니라, 공과대학이라는 점이다. 수학,물리학 같은 기초과학분야는 여전히 외면받는다. 반면에 사람들이 몰리고 관심을 두는곳은 컴퓨터 공학, 전자공학 같은 분야다. 실제로 기술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학문분야인 것이다. 어제자 토요판 조선일보에 앞에서 말한 페북 인사담당자의 글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 단지 취업만을 목표로 한다면 타당할수있지만, 공대생 대부분이 지방에서 근무한다는 점,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미래전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대를 목표로하고, 공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두 대기업 취업에만 혈안이된, 적성에 관심없고 시키는 일만 하는 일벌레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등으로 유명한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며칠전 뉴욕타임스에 "how to get a job at google"이라는 글을 실었다. 글은 프리드먼이 구글의 인사채용 최고담당자를 만나서 구글이 원하는 인재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담고있다. 글에서 구글의 인사담당자인 Laszlo Bock은, 구글은 영문학에서 받은 A+학점보다 전자공학에서 받은 B+학점을 훨씬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많은 미국학생들이 공대공부가 어렵다는 이유로 심리학,영문학같은 말랑말랑한 분야로 전공을 바꾸는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Bock,이 공대공부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이다. Bock은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논리적인 사고와 구조적인 사고를 할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점에서 GPA는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력을 할수있는가의 여부를 전혀 알려주지않는다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전공을 공부하는가가 아니라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가에 있다고 강조한다. 심리학, 영문학을 공부하면서도 심도깊은 논리력과 구조적 사고력을 기를수도 있겠지만 공대과목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논리적인 수학 등을 공부하며 이러한 능력의 기초를 자연스레 닦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 고등학교에서 이과반 비율이 크게 느는 이율이 과연 이러한 점을 사려깊게 숙고한 것일지 아니면 단지 대기업취업에 유리하다니까 우르르 몰려가는지 모를일이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현재 처한 상황이나 개개인의 적성을 무시하고 단지 취업에 유리하고 돈을 많이 받을 수있을것 같아서 이공계를 우르르 선택한다면 5년뒤에는 고졸채용자들이 흘리는 눈물을 그대로 흘릴 수도 있다. 가끔 TV에 나오는 중2, 중3학생들이 "저는 졸업해도 취업안되는 대학에 가는것보다 일찍 실용적인 직장을 갖는 걸 택하겠어요" 라며 어른스럽게 말하는게 걱정스럽다. 어른들은 이런아이들에게 박수를 친다. 하지만 과연 이 아이의 생각이 자기자신의 생각일까? 사회가 주입한 생각일까? 교육은 실용적인 도구를 떠나서 인간의 숭고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누구나 교육을 통해 많이 배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단지 대학교육의 비용-편익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고졸취업바람이 불고, 현장 기술인력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공대바람이 분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싶은지, 인생에서 추구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하지 않고 이러한 바람에 자유로이 몸을 맡기기만 한다면, 남는 것은 지나가버린 인생에 대한 후회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