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기운도, 그 날의 기억도 조금씩 사라져 가는 늦은 시간입니다. 벌써 간담회 이후 사흘째가 된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시간은 빨리 갑니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아직 남아 있는 조각들을 손 끝으로 옮겨 봅니다.
그림을 붙였으니 그림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저 그림은, 주제토론장에서 운영진에게 건네 받은 메모장에 제가 손으로 쓴 메모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기 있는 내용의 절반도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지요. 사람은 많았고, 시간은 왜 그렇게 부족한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메모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조금 후에.
몇 달 만에 일을 잡지 않은 토요일에 회사 동료 외에 사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이젠 저만이 혼자라는 것을 확인한 결혼식을 보고 난 이후, 시간이 예상 외로 많이 남아 간담회 장소에 빠르게 도착했습니다. 운영진들 중 몇몇 분은 이미 도착해 정리와 준비를 하고 있었고, 모임을 기다리는 다른 분들도 있었습니다. 얼마 안 가 이름표(스티커)가 배부되고, 다과가 도착합니다. 저를 – 혹은 저의 닉네임을 – 알아보시는 분들의 인사를 받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죄송스럽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이렇게 대우해 줘도 되는지도 항상 의문이긴 하지만, 몇 번 뵌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제가 대체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지라 실례가 되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 동안 사회 생활 하면서 이것 때문에 결례도 몇 번 저질렀는데 그 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에휴.-_-
조금 기다리자 운영진 분들이 간식거리를 좀 가져 왔습니다. 도너츠, 음료수, 그리고 맥주도 있었습니다. 심포지움이란 단어의 뜻을 술과 연결 짓는 말을 들으니 맥주가 있어도 어색할 것은 없겠다 싶더군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먹는 것처럼 저를 포함해 간담회에 먼저 오신 분들은 다른 분들보다 간식거리를 좀 많이 먹었습니다. 제가 만일 결혼식장에서 배 터지도록 밥을 먹고 왔다면 큰일 났을 겁니다. 아마도요. 그리고 그렇게 간식거리를 먹던 도중 절름발이이리님을 비롯한 몇몇 분의 등장에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뭐 다른 분들의 후기에도 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더 지니어스-등골 브레이커’는 좀 번잡스러웠습니다. 아마 팀 대 팀 대항이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고, 저도 룰 파악이 좀 늦었습니다. 제가 소속된 팀은 고득점 카드를 모으는 작전을 쓰기로 했는데, 중간에 이건 아니다 싶어 카드를 샀다가 되파는 식으로 작전을 바꾼 게 패착이 되었고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며 묻혔습니다. 저 때문에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몇몇 분들의 후기를 보면 ‘게임 시간에 차라리 토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주제토론의 시간입니다. 토론을 시작하자 마자 주제에 대해 무엇인가를 적으라고 하시면서 만일 이야기가 막히면 나눠 준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주제가 글이다 보니 최근의 사건부터 이전의 사건까지 PGR에서 글로 인해 벌어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고,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와 e스포츠의 몇몇 사건들로 인해 벌어진 문제들, 그리고 글과 관련된 규정 이야기 등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위에 메모를 보면 짐작하시겠습니다만. 저는 ‘글을 올릴 자유 vs 양질의 글 장려’라는 식으로 두 명제를 대립 관계에 놓는 것이 과연 맞는지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두 명제는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 혹은 둘 다 만족시키는 교집합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물론 굉장히 이상적인 관점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나 메모를 끄집어낼 새도 없이 시간은 빨리도 가더군요. 추천 버튼을 ‘좋아요’처럼 쓰는 문제, 펌글 문제, 과거 글로 인해 빚어진 논란들, 시간은 참 빨리도 흘렀습니다.
뭐, 못다한 이야기는 메모에 적힌 것과 비슷합니다. 자기 글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자기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펌글이나 초성체, 통신어체에 대한 제 생각은 PGR의 정체성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아마도 글을 잘 쓰지 않게 되기 때문에 펌글이건 뭐건 쉽게 쓰는 글이 이전보다 더 많이 용인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들도 있지만 이건 반신반의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종종 PGR에서 글쓰기의 무거움을 말합니다만, 저는 그런 권위는 알아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누군가가 일부러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누군가가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글을 썼을 때 PGR에서는 그에 대한 글쓴이의 책임을 다른 커뮤니티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요구하니 글쓰기의 무거움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PGR에서 그런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단지 PGR의 글쓰기는 무겁다고만 말하는 광경이 종종 보이는 것은. 좀 초점을 비껴 나간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전체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 중에는 유게의 선정성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고, 과거 PGR을 혼란에 빠뜨렸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역시 기억에 남았습니다. 사실 전자는 현재진행형인 문제고, 후자의 문제들 역시 문제 자체는 그 당시에 약간의 시일이 지난 뒤 일단락되었지만 그 후폭풍은 아직도 남아 있지요. 아마도, 전자든 후자든, 현재의 문제든 과거의 문제든 PGR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은 머리에 떠도는 칼처럼 PGR을 위협하게 되겠지만, 짊어지고 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끝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토론이 끝나고 치킨을 비롯한 각종 먹거리와 시원한 맥주가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이미 빵과 과자 등으로 배가 찬 상태인데. 또 들어갑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치느님을 영접합니다. 4인 자리에 앉아서 스타2 출시 당시 모두가 혀를 찼고 저까지도 결국 혀를 차게 만들었던 그 당시의 어이 없는 판매전략에 대한 비판을 필두로 여러 가지 안주거리와 함께 맥주를 비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전용준 캐스터님이 오셨습니다. PGR 첫 정모 때에도 제 앞에 앉으셨었는데 이번에도 신기하게도 제 앞자리에 앉게 되더군요.;; 아무래도 오신 분이 오신 분이라 제가 있는 테이블의 포커스는 전용준 캐스터님이 독차지하게 되었지만, 뭐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사견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들이라 아무래도 여기에 다 쓰지는 못하지만, 과거 처음 전용준 캐스터님이 게임 방송을 시작했던 일부터, 제가 담당한 게임의 행사장에 행사를 진행하러 오셨던 8년 전의 일까지. 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강민, 이현우 해설위원의 방문 역시 즐거웠습니다. 밤 10시 정도에 부득이하게 먼저 자리를 뜨기 전까지, 요 근래 그 날같이 술을 많이 먹은 적도 없었고, 그 날같이 즐거운 날도 없었습니다. 즐거운 추억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몇 분들께서 제 블로그나 글이 뜸하다고 아쉬워하신 것, 참 죄송합니다. 요즘 하루 열두시간 이상 일하는 상황이고 그렇게 일하고도 집에 돌아와 또 일을 해야 하는 처지라곤 하지만, 최근엔 블로그도 거의 정전 상태고 PGR에 쓰던 글도 현저하게 줄었지요. 참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다못해…… 디아블로 3 확장팩 사 놓고 배틀넷에 등록해 놓은 다음 아직까지 말티엘은 커녕 액트5도 못 들어가는 처량한 신세이긴 한데, 아무리 주위 환경이 어떻다 한들 글로 살아가고 글로 소통하는 인간이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건 참 가혹한 일이고 죄송스러운 일이지요. 그리고 후기가 늦은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일요일에 완전히 드러누웠습니다.-_-;;; 사실 일주일 전만 해도 주말 내내 감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피로가 누적되어 있으니 그게 일주일 만에 회복될 리 없는 게 당연했는데. 좀 무리했었나 싶습니다. 빨리 일이 잘 풀려야 하는데. 아직은 끝이 안 보이는군요.
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닉네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저의 불찰에도 불구하고 그 날 저를 만나 좋은 이야기 해 주시고 반가워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도움을 청하신 분께 - 제 기억에 ‘인생’님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연락처를 드린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연락 주시면 최대한 시간 맞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그 날 있었던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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