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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15 14:03:51
Name 물고기
Subject [일반] 노아, 신의 실패담

1. 영화 노아가 관객수 이백만을 돌파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듣기로는 흥행할 영화가 아닌데 의외로 조용히 흥행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자들이 보고 논란이 되니까 와서 보는 사람도 있고 기독교까인 사람들도 영화 내용을 듣고서 보러 오는 것 같은데...

아무튼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영화 보지도 않았고요. 언제부터인가 영화관에 가지 않게 되었고 영화도 안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영화가 화제가 되는 김에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져서요. 기독교 신자분들이 보기엔 화가 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특정종교를 까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부터 노아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상하게 느껴왔던 이야기를 가볍게 쓰고 싶어진 것 뿐이에요.

2. 노아의 이야기는 참 이상하지요. 대홍수가 일어났다든가 방주를 만들었다든가 그런 식으로 초현실적이어서 이상한 것이 아니에요. 초현실적인 이야기가 세상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결말이에요.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는 결말.  

성경이 말하기를 인류가 타락하여 하느님은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선한 사람인 노아에게만 그 사실을 알려줘요.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서 살아남고요. 자, 여기까지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야기에요. 악한 사람들은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은 상을 받는 그런 이야기죠.

그런데 그 선한 사람인 노아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포도주를 만들어서 퍼마셔요. 그리고 옷을 다 벗어던지고 취해서 땅바닥에 나뒹굴죠. 전형적인 '술마시고 개 되는' 모습이지요. 선한 노아,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하지 않은 단 한사람인 노아가 바로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아들들이 봅니다. 어떤 아들은 그 모습을 비웃고 어떤 아들은 옷을 덮어서 추한 아비의 수치를 가려주지요. 노아는 깨어나자 상황을 깨닫고 자신을 비웃은 아들애개 저주를 내립니다. 너와 너의 자손들이 모두다 노예가 되길 원한다고요.

이게 신이 선택한 선한 사람이 할법한 행동인가요?

3. 노아의 이야기가 이상한 것은 그것이 신의 실패담이기 때문이에요. 신은 자신이 만든 인간이 추악하게 타락한 것을 보고 후회해요. 신은 인간의 창조에 실패한 거죠. 그래서 실패작들을 지워버리고 선한 사람인 노아만을 선택해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이 선택한 노아란 인간도 심판이 지나가자마자 추악하게 타락합니다. 신은 또다시 실패한 거에요.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 또 있어요. 노아의 자손들은 다시 번성합니다. 지상은 다시 인간들로 뒤덮여요.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가 만들어지죠.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신은 또다시 악하고 타락한 사람들 중에서 타락하지 않은 단 하나의 인간을 선택합니다. 롯이죠.

롯은 신의 심판을 피해서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롯에게도 노아와 비슷한 일이 버어집니다. 롯의 딸들이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만든후 같이 동침합니다. 근친상간이 일어나는 거죠. 그것도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아버지를 덮친, 그러니까 딸이 아버지를 강간한 거에요.

신은 성적인 죄를 이유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런데 신의 심판이 지나가자마자 문자 그대로  인간들은 똑같은 짓을 벌이죠. 또다시 신은 실패합니다.

4 . 계속 신의 실패담이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신은 유대인을 선택합니다. 그 유대인도 타락합니다. 사실 창세기 이야기는 신의 실패담이에요. 아담과 이브의 창조의 실패, 카인과 아벨의 실패, 노아의 실패, 롯의 실패, 유대인들의 실패. 실패의 연속이에요.

사실 기독교인들이 말하듯 성경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신의 실패를 말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요? 타락한 인간들의 세상이지요. 신은 몇번이나 인류를 멸하고 새로 시작했지만 신이 만든 인류는 늘 똑같은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집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실려있는지 늘 궁금해 했어요. 기독교인들은 왜 이 이야기의...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러니? 아니러니라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이런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하고 있느지도 궁금했고. 뭐 아무리 궁금해해도 알수가 없는 일이죠. 이 이야기를 지은 사람들은 이미 무덤속으로 들어갔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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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ater
14/04/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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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성경이 소설이니뭐 그냥 그런가보다 해야죠
구밀복검
14/04/15 14:24
수정 아이콘
뭐 심즈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세이브 파일 지우고 다시 하지 않나요. 별로 다를 건 없죠. 저는 무신론자입니다만, 여하간 인격신이 있다고 치면 그가 뭔 헛짓거리를 하든 인간이 개길 군번은 아닐 겁니다. 절대적 존재란 건 그런 거죠. 신의 절대성, 그리고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라는 것이 섭리고, 이에 수긍하는 것이 신앙이죠.
王天君
14/04/15 14:27
수정 아이콘
영화 노아를 보셨으면 확실히 이해가 되셨겠네요. 의문을 갖는 부분에 다 감독이 나름의 맥락을 추가해놨습니다. 그리고 롯의 이야기는 인류의 대를 잇기 위해서 딸들이 부득이하게 그리 하는 게 아니던가요?
그리고 확실히 구약은 단죄의 면이 강하게 드러나긴 합니다.
베네딕트컴버배치
14/04/15 14:29
수정 아이콘
실패를 논하려면 신이 만들고자 원했던 사람이라는게 신의 의지와 요구대로만 움직이는 존재일 것라는 전제가 필요하겠네요.
물고기
14/04/15 14:32
수정 아이콘
王天君 / 성경에 쓰여있기로는 '남편감이 없으니까 아버지랑 같이 자자' 였던 것 같은데 소돔과 고모라만 멸망시킨 것이니 다른 곳에 가면 얼마든지 남자들이 있었겠죠.

베네딕트컴버배치 / 성경에는 신이 '후회하고 슬퍼했다고' 나오니까요. 신이 타락하는 것도 인간 자유니까 라고 생각했다면 왜 타락한 인간들을 멸망시켰을까요?
휀 라디엔트
14/04/15 14:51
수정 아이콘
구약의 내용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위주로 서술되어 있으며, 특히 창세기 시점에서의 민족성은 배타성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선택받은 민족'이기에 이방인과의 혼인은 허용될수가 없죠.
그러한 상황에서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딸들은 혼인하지 못하였기에 대가 끊길뻔한 상황에서 어쩔수없이 동침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창세기에서의 서술은 국가개념이 아닌 민족, 부족의 단위로 생각하신다면, 그리고 그 부족이 타 부족들에 대하여 엄격한 배타성을 가진 유일신신앙을 가진 자들이라고 전제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내용은...생각하는 바가 달라서 뭐라 말씀드리기가 애매하네요. 베네딕트컴버배치 님의 말이 참 좋은 답변이라 생각하는데요.
14/04/15 15:43
수정 아이콘
롯은 유대인의 조상이 아닐텐데요.
몽키.D.루피
14/04/15 14:38
수정 아이콘
기독교에 대한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일단 위에 flowater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누군가에게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슬람국가 가서 코란이 소설이라고 하면 돌맞아 죽듯이 상대방의 종교적 신념은 함부로 폄훼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개신교처럼 종교를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일부 종교혐오론자들처럼 종교적 신념을 비웃는 것도 문제죠.

그리고 본문에 대해서 말씀드리지만 기독교의 기독은 그리스도입니다. 즉,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죠. 말씀하신대로 구약은 신의 실패의 역사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는 결국에는 예수로 인해 성취될 신약의 구원에 대한 예표일 뿐이지 진정한 실패는 아니라는게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오히려 인간은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인간의 세상은 절대로 스스로 좋아지지 않는다라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서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통한 영혼의 구원이 중요하고 종말에 있을 새하늘과 새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거죠. 기독교의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기독교의 역사관은 선형적이고 창조가 있고 종말이 있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종말의 종교라고 하기도 하죠. 그리고 언제 있을지 모르는 종말 이후의 진짜 새로운 삶을 위해서 지금의 삶을 견디면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구요. 이게 흔히 말하는 성화의 과정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실 기독교는 현실의 삶에 대해 어떠한 구제책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민초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하고 불의한 사람이 흥하고 의로운 사람이 망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선지자들의 원망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메시아라는 예수조차 무기력하게 사형당하고 말죠. 하지만 기독교의 진짜 역사는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한국개신교가 워낙 물질주의에 매몰되어서 성전건축과 돈과 성공과 복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렇지 사실 기독교는 상당히 형이상학적인 종교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창조과학같은 사이비 과학은 기독교 내부에서는 반대로 자연신학이라 까임을 당하는 거죠. 신이 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느냐고 항변할 수 있지만 기독교의 신 예수는 인간보다 더 큰 고통을 당했기에(기독교 교리상으로 따지자면) 인간 입장에서는 할말이 없는거죠. 그래서 기독교를 십자가의 종교, 죽음의 종교라고 그러는 겁니다. 여느 종교보다 순교를 최고의 가치로 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성경에 적혀있듯이 예수를 따라서 죽으면 사는 거고 반대로 살면 죽는 거라고 가르치는 종교거든요. 그런데 이게 원리주의로 흐르면 상당히 무서운 말이 되기도 합니다..
Acecracker
14/04/15 15:05
수정 아이콘
신약 포함하면 말씀하신대로인데
구약까지만 해서 끊어도 유태교로서 하나의 완성된 종교잖아요.
본문은 유태교리에 대한 의문이 될 것 같네요.
'대체 유태교는 왜 이렇게 (자기들 말로는 전능한) 신의 (별로 전능치 못한) 실패담을 적어놓았는가?'
몽키.D.루피
14/04/15 15:09
수정 아이콘
유대교는 더 극단적인 종말론입니다. 유대교는 메시아가 와서 지상최고의 유대왕국을 건설한 뒤 유대인들'만' 다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종교거든요. 그때까지 참고 견뎌야 되요. 하지만 시온주의자들은 이 땅에 유대왕국을 건설해야된다는 입장이고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생겨난거죠. 제가 위에 댓글에 좀 헷갈리게 적어놓았는데 정확히 말하면 구약은 철저하게 신에게 순종하지 않은 인간의 실패담입니다. 신은 실패하지 않아요. 결국 다 심판하고 구원할 거거든요. 이 모든건 과정에 불과하죠.
Acecracker
14/04/15 15:18
수정 아이콘
서사가 이렇게 되나요?

행복한 에덴동산
-> 뱀이 꼬심
-> 자유의지 겟
-> 이 자유의지 때문에 신의 의지에 순종하는 행동에 노이즈가 섞임. 마치 예쁜 세살이 미운 일곱살 된 것처럼...
-> 추방&형벌(노동과 임신)
-> 순종 안함 홍수 싹 -> 하나 건져서 다시 키움.(그런데 얘도 좀 별로임)
-> 순종 안함 소돔 고모라 싹싹 -> 하나 건져서 다시 키움.(그런데 얘도 역시 좀 별로임) -> (반복)
-> 마침내 고르고 고른 끝에 남은 자들을 구원할 것이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22
수정 아이콘
'자유의지'가 있어서 꼬심에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cecracker
14/04/15 15:32
수정 아이콘
아참 그렇죠. 첫 범죄 이전에 자유의지가 있어야 하니까... 이렇게 되네요.
행복한 에덴동산+ 자유의지 득한 인간
-> 이 자유의지 때문에 신의 의지에 순종하는 행동에 노이즈가 섞임. 마치 예쁜 세살이 미운 일곱살 된 것처럼.
-> 뱀이 꼬심, 넘어감 = 순종 안함 추방&형벌(노동과 임신의 책임지움)
-> 또 순종 안함 홍수 싹 -> 하나 건져서 다시 키움.(그런데 얘도 좀 별로임)
-> 또 순종 안함 소돔 고모라 싹싹 -> 하나 건져서 다시 키움.(그런데 얘도 역시 좀 별로임) -> (반복)
-> 마침내 고르고 고른 끝에 남은 자들을 구원할 것이다.
솎아내기의 서사네요.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37
수정 아이콘
사실 구약 서사의 상당부분은 종교공동체로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경전 자체가 후대에 유대공동체로 간주되는 '부족' 혹은 부족들이 경험한 일들에 대한 이해와 해당 공동체의 유지/강화 과정에서 구성된 것이라서요.
전반적인 내러티브라면
창조
-> 불순종 -> 정죄(최초의 인간부부)
-> 질투 -> 정죄(카인-아벨 형제; 이 부분에선 농경-유목 생활유형간 갈등이 반영)
-> 불순종 및 타락의 심화
-> (신의)공의에 기초한 심판과 선택/약속을 통한 구원(노아)
->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선택과 축복(아브라함)
이후로는 축복의 실현, 타락, 정죄, 용서의 반복(역사적인 경험에 대한 해석)에 더 가깝죠
기쁨아붕
14/04/15 14:47
수정 아이콘
전형적인 기독교에 대한 공격의 글이군요.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그냥 그 종교 자체에 대한 공격이 규정상 허용이 되는지가 궁금하네요.
솔로9년차
14/04/15 14:56
수정 아이콘
본문은 공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고민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기쁨아붕
14/04/15 14:57
수정 아이콘
어쨌거나 규정에 어긋나고, 원하시는 대답을 듣기 원하시면 반기련 가시면 됩니다.
솔로9년차
14/04/15 14:59
수정 아이콘
본문의 내용정도라면, 기독교내에서도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이야기가 금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본문을 공격적으로 보느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첫댓글에 비교한다면 본문은 매우 양호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쁨아붕
14/04/15 15:03
수정 아이콘
규정이 종교에 대한 공격적인 글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 종교에 대한 글인 이유는 어떤 성격의 종교 관련 글이라 하더라도 댓글의 흐름상 결국에는 분쟁과 공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내부적으로 고민할 주제라 할지라도 그건 기독교 내부 커뮤니티에서 하면 될 일이고, 그것을 공격하는 입장이라 할지라도 반기독교 커뮤니티에서 논하면 될 일이지요.

합의점을 찾을 일도 아니고 정답을 도출할 주제도 아닌,

다른 커뮤티니에서도 수없이 다뤄지는 이 문제를 또 논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솔로9년차
14/04/15 15:05
수정 아이콘
그거야 공감하지만, 현재 피지알은 종교글 금지가 아니니까요. 유게에선 금지지만.
14/04/15 15:02
수정 아이콘
이정도의 글이면 고민의 범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고기
14/04/15 15:05
수정 아이콘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님은 믿지 않으실테니 뭐라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규정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는 운영진이 판단하겠지요.
기쁨아붕
14/04/15 15:11
수정 아이콘
마찬가지죠. 여러 사람들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고 있지만 님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죠.

하다못해 네이버 지식인에 검색해보시면, 님이 원하시는 답변들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03
수정 아이콘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해당 전승이 구성되던 당대에 중근동에 존재하던 신화적인 '경향'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수메르신화의 방주사례가 있지요.
다만 유대교가 일신교가 되고, 그 신의 능력이 지속적으로 상향조정(산신 혹은 하늘/천둥신 계열의 민족신에서 최종적으로 전지전능에 이르는) 되다보니,
'홍수이야기'의 내러티브 측면에서 후대에 보았을때 문제점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생기게 됩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전승이자 설화, 신화이며 해당 내용을 구성한 공동체가 가지는 다양한 한계에 종속되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이 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도덕/윤리적 판단이나, 신의 심판의 기준, '선'의 기준 과 같은것은 당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추구하던 것들입니다.
심지어 신약의 경우에도 해당 전승을 구성한 공동체에 따라 상이한 특성이 나타나고요(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 등이 그 사례가 됩니다.)
전승되던 시기 까지는 큰 문제 없이 활용될 수 있었고, 이후 전승조류에 따라 다양한 차원에서 수정/조정 됩니다.
예를들어 유대교 전승의 경우 탈무드나 랍비에 의한 '해석'이 이루어져왔고 이는 현재도 진행중이며,
기독교 전승의 경우 신약의 구성 및 결정, 공의회를 통한 전승에 대한 해석의 결정,
공의회에서 긍정한 해석을 지지하기 위한 경전의 선택 및 수정(요한의 콤마 등), 이후 다양한 전례들을 통한 조정이 이루어져왔지요.
가장 나중에 구성되기 시작한 이슬람 전승 같은 경우 그 조정을 방해하는 교리적인 도구가 있음에도 다양한 차원의 조정이 이루어져왔습니다.

따라서 이른바 근본주의의 조류에서도 축자영감을 기초로한 문자주의 범주에 포함되는 해석의 경우, 시대와 사회적인 변화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문제나 모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속사적인 해석'이나 다른종류의 해석들은 이러한 문제를 상대적으로 덜 야기합니다.

종교는 '진리'를 다루는 인간의 활동이며, 흔히 진리란 가변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하지만 '진리'가 가변적이지 않다고 해도 실제 활동을 수행하는 인간과 그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그에 따라 종교의 양식과 내용도 변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은 다양한 '문제점'은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현대인이 가지는 의문이며,
관찰가능한 종교의 경우 지속적인 재구성을 통해 이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물고기
14/04/15 15:04
수정 아이콘
휀 라디언트 / 다른 부족이랑 결혼하면 안되니까 아버지와 동침했다...그것 참 암담해지는 이유로군요. 그렇다면 구약에 모순이 하나 더 추가되는 거겠고요.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유대인의 선조라는 아브라함과 롯은 동시대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롯과 아브라함이 동족이란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몽키.D.루피 / 모순이군요. 인간은 실패할수밖에 없다. 그럼 신은 실패할수 밖에 없는 존재를 만든후 실패할수 밖에 없는 존재가 실패했다고 심판을 내린 것입니다. 모순에 모순을 더하는 설명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됩니다.
Jealousy
14/04/15 15:09
수정 아이콘
아브라함 조칸데요;;
솔로9년차
14/04/15 15:09
수정 아이콘
어떤 설명을 원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본문까지야 고민의 여지로 볼 수 있지만, 같이 고민해보자라는 글이 아니라면 자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모순이건 자기 위로를 위한 논리이건간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러한 것에 대해서조차 수용하지 않는다면 커뮤니케이션은 되지 않죠. 신학은 상당히 오래된 학문이고, 이 학문은 단순히 성경만 파고든 학문이 아닙니다. 공부한 사람들도 수없이 많은 박사들이고요.
휀 라디엔트
14/04/15 15:27
수정 아이콘
동족맞습니다. 정확히는 삼촌과 조카사이죠.

본인이 이해가 안되면 이해가 안가는 것으로 마치면 됩니다. 신학적인 지식이 부족하면 부족한거구요. 신학지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 세상 살아가는게 불편한것도 아니구요.
나는 이해가 안되는데 니들은 왜그래? 라는 어조로 말을 이어가신다면 더이상 할말 없습니다.

본인께서 생각하신 내용들은 이미 몇천년간 수없이 반복되어 왔음을 아셨으면 하네요. 여기서 좀더 나아기신다면 종교개혁이 또 한번 올수도 있겠죠. 응원합니다.
베네딕트컴버배치
14/04/15 15:38
수정 아이콘
구약의 인간은 실패했는가? Yes
구약의 인간은 실패할 운명이었는가? No
14/04/15 15:40
수정 아이콘
음? 실패한 경우가 많았을 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건 아닌데요?
대홍수 이전에는 에녹이 있었고 그 후에는 엘리야가 있었죠. 이 둘은 죽음까지도 이겨내는 존재들입니다. 인간을 너무 무시하셔서는 곤란하죠. 흐흐.
Judas Pain
14/04/15 15:10
수정 아이콘
기독교의 입장에선 성경의 역사는 신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가 담긴 역사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전제 때문인데, 신의 형상을 모사한 인간에게 선택권 즉 자유의지를 신이 주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인간에게 (단지 복잡한 기계일 뿐인) 동물 등으로 표상되는 지상을 초월할 수 있는 초월적 부분이 있기 때문이고 이때 선악은 선택권을 가진 인간의 책임이 되겠지요.
자유의지는 당연히 원본인 신에게도 있으며 기독교가 인격신을 믿는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신에게 의인법적인 캐릭터가 있다는 게 아니라
인격을 가지고 인격과 서로 교류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친구, 자식 등등의 밀접한 타인의 타락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듯이 신도 괴로워 합니다.

물론 이 자유의지 교리는 더 까탈스러운 신학적 논쟁을 낳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이런 전제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구약성경은 인간이 계속 타락하고 여호와가 괴로워하면서 벌하고 또 다시 용서하는 역사의 과정으로 읽힙니다.

그외 본문 등의 의문은 자게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시끄러운 이웃에 대해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책임있는 사람은 답변해야 하는 유형의 문제라 봅니다.
저글링아빠
14/04/1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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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며 아래 댓글 달 문장 구성하고 있었는데
여기 제가 쓰려던 말이 제가 적으려던 글보다 더 잘 쓰여 있네요.

신의 전지전능이 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완전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그것이 신약으로 이어지며 그리스도교로 탄생하는 과정은 바로 아래 eLeejah님 글과 같이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4/04/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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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도로써 기독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신에 대한 이야기. 정확히는 인간에 대한 계획이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절대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신에 대한 이야기. 완벽한 외사랑이죠. 결국 신 자신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인간의 몸으로 죽습니다. 죽음으로써 살게하는 궁극의 사랑. 제가 모태 신앙이라 다른 종교들은 겉핥기 수준으로 밖에 접하지 못했는데 인간의 손에 죽는 신이 또 있나요?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20
수정 아이콘
신의 성격이 문화전승마다 달라서, 힌두교 계통의 경우 '신' 이상의 힘을 가진 인간들이 다수 있었고(신화 자체에 현자에 의해 신이 징계당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장 현해탄 건너만 가도 '신'과의 전쟁 혹은 살해에 얽힌 전승이 상당 수 있습니다.
전승마다 신-인간 사이의 경계는 다르게 설정되어 있고, 애매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애니미즘, 토테미즘 계열의 종교에선 신이 빈번하게 살해당했다 부활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원죄'로 지칭되는 인간의 죄(불순종) 자체가 특정종교의 '견해'라서요.
당장 '불교'만 해도 각자가 신들에게도 설법을 하며, 신과 인간이 같은 '체계'안에 묶여 있습니다.
14/04/15 16:13
수정 아이콘
제가 소독용 에탄올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여, 관심법을 행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여러 리플들을 쭉 읽다가 든 생각인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훌륭한 태도를 견지하시는 것은 좋으나, 공동의 지반을 확인하는 것은 같은 땅을 밟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지속하기 위함이지 서로 동의하는 부분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그만두기 위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메타 수준으로 확대하는 건 다시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기 위함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논리적이고 타당한 종교학적 관점에 서로 합의하고 논의를 종결한다면 그건 목적지가 잘못 설정된 경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층위를 구분하고 확대하고 축소하는 것은 대화가 서로의 이해에 기반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어야지 단지 서로 인정할 수 있는 공리를 찾기 위함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공격하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리플의 흐름들이 뭔가 많이 아쉽네요.
소독용 에탄올
14/04/1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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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제가 다른사람과 대화하는일에 취약해서 미진한 부분을 남기게 되는 듯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위치에서 '종료'하는 문제도 있고요,
종교에 관련된 주제에서 '무신론자'인 제가 더욱 조심하게 되는 것도 한 이유 같습니다.
로하스
14/04/1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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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렵네요. 인간들을 멸종직전까지 몰아가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다라는게 참
아이러니한 얘기에요. 결국 개개의 인간을 사랑하진 않지만 인간이라는 종족은 사랑한다는 건가요?
14/04/1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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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의 인간을 사랑합니다. 위에 유다의 고통님이 써주신 내용인데 인격적으로 관계맺는 신이시죠. 문제는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법이 없다는 건데, 엄청나게 창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셨죠.
로하스
14/04/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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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인간을 학살하지만 인간을 사랑한다'는게 저에겐 참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이걸 이해할 수 있으니 기독교를 믿을 수 있는거고 이해못하니 기독교를 안믿는거겠죠.
14/04/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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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움과 사랑이라는 두가지 신적 속성이 '죽일 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인간'의 전제 조건입니다^^;
14/04/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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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신은 유대인만 사랑하지 않나요?
비토히데요시
14/04/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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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해석이자 멋진 표현이네요.
멋진인기
14/04/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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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니요.. 결국은 다시 부활했잖아요. 그냥 하나의 퍼포먼스죠.
너를 위해 죽을만큼 사랑한다는.. 인간은 말로 하는거고, 신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거고.
14/04/1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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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사건이 기독교 종교의 핵심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살아나는 '쇼'를 위해 죽는 건 아닙니다. 제가 장황하게 설명할 짬은 안되지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부활만큼이나 신앙 내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애초 죽지 않았다면 다시 살아날 이유가 없죠. 그리고 심판해야 하지만 버릴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십자가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단지 죽었다 살아나기 위해 아무 의미없이 십자가 위에서 죽은 건 아니었습니다.
멋진인기
14/04/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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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던 이유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원죄를 사해주기 위함이란 이야기인데,
기독교에서 인간의 육신보다 영혼을 더 중하게 여긴다면
신의 영혼을 가지고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가 잠시 죽었다 살아난게 그렇게 큰 희생인가요?
신의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거 잖아요.

그냥 너희들 죄를 사해줄게~~ 라고 하면 임팩트가 없으니까
아들(혹은 자신)을 보내 죽게하고 다시 부활시킨다...

퍼포먼스 같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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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는 기본적으로 '퍼포먼스'적인 속성을 갖습니다.
하지만 퍼포먼스라고 해서 의례에 해당 의례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부여하는 '성스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멋진인기
14/04/1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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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의례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부여하는 성스러움 입니다.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는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거구요.
조상님께 드리는 '제사' 같은 거죠. 부모님 세대는 굉장히 성스러운 행동이었으니까요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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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하지만 해당 공동체 소속인 사람에게 그것은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일 수 있습니다.
멋진인기
14/04/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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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14/04/1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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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니지만, 어려서 교회에 다녔을 때 전도사님께 질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지 않으면 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 글쓴분과 비슷한 맥락의 질문이었어요. 그 때 전도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인상깊었습니다. '믿는다면 의심하지 말라'라고. 한낱 피조물일 뿐인 인간의 기준으로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는 말씀도 함께요. 듣고보니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성경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이야기들일 뿐입니다. 굳이 말씀하신 부분이 아니어도 수도 없이 많죠. 납득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그렇지만 종교 경전이란 건 이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닙니다. 글쓴분께서는 기독교인들이 왜 이런 비이성적인 이야기들을 믿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애초에 그런 잣대를 들이미는 게 잘못된 거죠. 도대체 어떤 기독교 신자가 성경을 하나하나 뜯어서 분석하고 납득한 뒤에 예수를 믿습니까. 그냥 교회를 나가서 그게 마음의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면, 계속 교회를 다니게 되는 거죠.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을 굳이 이해하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신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으면, 이렇게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구요. 글쓴분께서는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글을 쓰신 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만, '기독교인들은 왜 이런 아이러니들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라는 식의 말은, 기독교인들에게는 꽤나 폭력적인 언사로 보입니다.
Judas Pain
14/04/1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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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한낱 인간인 목사와 전도사 등의 목회자 계급은 성경을 이해하려 하고 또 이해했다는 듯이 신자들에게 자기 식대로 설교하는지요?
14/04/1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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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계급이 성경을 이해하려고 공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한낱 인간이 신을 깨닫고자 공부하고 그 신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메시지 중에 하나인 성경을 이해하려고 공부하는 것은 인간의 고차원적 욕망이라 생각하구요.
또 이해한 것을 나누는 것은 목회자처럼 성경을 많은 시간들 들여 공부하지 못한 하지만 성경을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설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어짜피 들을 사람 없는 설교가 무슨 설교이겠습니까?
그리고 어느 목회자라 할지라도 모두 이해했다는 듯이 신자에게 설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이 공부하고 깨달은 부분까지 나누는 것이지요. 물론 다 안다는 듯이 설교하는 많은 목사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저는 그들의 그러한 자세가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Judas Pain
14/04/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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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목회자 역시 처음에는 성경을 잘 모르는 평신도 내지 비신자 였을 것이며 첫번째 의문대로 평신도나 비신자가 성경을 알려하고 의문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한발 나아가 권장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4/04/1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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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합니다. 그래서 저는 본문을 굉장히 환영하는 바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한달에 한번씩은 교회에 오래 다닌 리더십들 중에서 한명씩 돌아가며 설교도 합니다.
성경에도 가르침에 은사가 있는 자들이 설교를 하고 모임을 지도했다는 내용이 나오구요.
그리고 성경 교재를 이용한 공부가 아닌 성경배경주석 및 주석을 활용한 성경 연구도 전교인이 같이 하구요.
(이상하게 보실까봐 첨언하자면 저희 교회는 대학 선교 단체 출신 간사님이 개척하신 교회라 이런 진보적 성격이 강한 곳입니다.)
14/04/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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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글쎄요. 제가 달았던 댓글에서는 지엽적인 부분이고, 그다지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문제라 답변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일단 목사나 전도사는 일반 교인들보다 성서에 대해서 훨씬 공부를 많이 했고 고민도 많이 한 사람들이죠. 이를테면 '스승'의 위치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목사나 전도사는, 믿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제쳐두고, 어쨌든 신과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이죠. 그 과정에서 자기가 받아들이고 이해한 대로 설교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물론 일부 목사, 전도사들의 설교에 고압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건 사실입니다만, 모든 목사나 전도사들이 '성경을 다 이해했고, 신자인 당신들도 내가 이해한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지는 않죠.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또 다르게 고민해볼 것이냐는 개개인이 선택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구요.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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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개신교로 범주화 되는 기독교의 하위종파에는 '성직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신과 상호작용은 개별 신도들도 하는 일이며 목사나 전도사가 그 지점에서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목사나 전도사 들은 '교리'와 '의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신도로서,
공동체 내에서 예배 등을 수행할 때 다른 신자들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14/04/1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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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가 '스승'이라고 칭한 것 때문에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학문적인 영역과 종교적인 영역에 대한 비유라서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교리'와 '의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가졌기 때문에 일반 신자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서 '스승'에 비유했습니다.
목사나 전도사에 대한 기독교 내부적인 개념은 잘 몰랐던 부분인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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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말씀하시는 바와 같은 의미에서는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Judas Pain
14/04/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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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민은 목회자가 성경을 더 공부했거나 신과 교감해서 성경에 대한 인간의 해석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의 일을 할 수 있고 관점에 따라선 권장할 일로 보인다는 이야기이지요.

더구나 개신교 계열은 제사장 계급이나 족속이 아닌 누구라도 신과 교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니 더 그렇겠지요.
14/04/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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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제 표현이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었네요.
윗 댓글에서 전도사님께서 '믿는다면 의심하지 말라'라고 했던 것은, 이게 자칫 교회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아무 것도 의심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라 라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는 못 견디고 나와버리기도 했구요;
윗분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일반 교인들 사이에서도 성경에 대해 고민하고 더 많이 생각을 나누는 건 확실히 더 권장되는 행위였습니다.
Judas Pain
14/04/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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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종종 사람들은 귀농귀농하듯이 어느 종교를 택하기만 하면 쉽게 믿음을 갖고 평안해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신앙을 갖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14/04/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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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집에서 나가면 불과 10분 거리에 교회니 성당이니 있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신적인 존재에 자신을 의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떤 종교를 믿는 척 코스프레 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요. 생각해보니 코스프레 하는 것도 실패한 주제에, 감히 쉽다고 말하지도 못하겠군요.. 크크;;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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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죄', '신의사랑' 같은 교리적 부분에도 유사한 폭력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상대방의 '신념' 혹은 '취향'에 대한 존중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4/04/1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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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대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 그 자체가 악마의 소행이다 이런 말을 교회분들께 많이 들어서
과연 내가 의심하는 나의 이성이 악마의 꼬임인가 하고 어린 마음에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했구요.
저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교회에 나가서 마음의 위안이 되면 그게 교회를 다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저글링아빠
14/04/1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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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그마에 대한 몰입이 종교의 요소이자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정답은 될 수 없고 비신자들에게는 더더욱 의미없는 말이 될 뿐입니다.
적어도 21세기의 한국사회에서는 기독교를 위해서라도 이런 몰입에 대한 과장(저는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을거예요.

더군다나 본문 글 정도의 의문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회의들도 종교적으로 충분히 유의미하구요. 위에 덧글들에서 보이듯이요.
Cazellnu
14/04/1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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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존중해주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지
서로간 감나라 배나라 하는 오지랖까지는 무리수라고 봅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라고 불리우며 지고지상의 글이겠지만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흥미로운? 재미없는? 가공 신화일 뿐이니까요
서로의 영역만 존중해주면 될 일입니다.
14/04/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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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의구심이네요. 기독교인이 아닌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새삼스레 알게되고..

기독교 내에서도 합리성은 존중합니다. 동시에 그 한계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다못해 저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어머니가 저를 왜 그렇게 사랑해주시는지 모릅니다.

의구심에 대한 나름의 설명도 어느정도 있고 그에 대한 비판도 어느정도있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심적인 수긍을 담보하는 건 아닐겁니다.
14/04/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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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의 롯에 대한 분석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해보자면 롯이 신의 사자를 위해 그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만류하고 그들을 보호할 정도의
인격을 갖춘 자이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롯이 노아처럼 죄가 없다거나 흔히 말하는 '성인 수준'이라 선택된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여서 선택된거죠.

그리고 근친상간의 문제라면 애당초 성경에서 나오는 인류의 시작부터가 그것이었을텐데요. 대를 잇기 위한 근친상간이 타락이라 규정되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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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바와 같이 선택박은 집단 내의 근친상간은 다양한 공동체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온 일입지요.
당장 부근에 위치한 이집트에서도 왕가에서는 근친혼이 지속된 시기가 있으니까요.

현대사회의 윤리나 지식을 기준으로 고대전승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 '당대의 특성-한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Love&Hate
14/04/1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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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경에서 아비와 딸의 근친상간은 타락, 죄로 보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롯과 딸의 타락으로 생겨나는 민족들이 유대민족과 달리 선택받지 못한 백성, 모압과 암몬 들이죠.
이방신을 섬기며 유대인을 매우 괴롭히기도 하고요.
중서한교초천
14/04/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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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십니다.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궁금해야 하는게 순리이지 부정하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우리가 쉽게 성경을 부정하고 그것을 소설 따위로 치부해버리는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도 성경에 대한 공부는 부족한 편이지만 참고로 글쓴이 님의 질문에 답해드리자면

2. 기독교는 사람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는 종교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요?
생명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저 역시도 생명이, 개인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번에 대한 해답은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자연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노아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고 노아를 비웃는 아들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신은 가끔 인간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인간에게 그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의 형상을 본따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은 외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아마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식까지도 죽였을 그런 사람일겁니다.
그걸 악이라 한다면 그건 일반 사람의 상식수준에서이지 신의 생각 속에서가 아닙니다.

3. 3번에 대한 해답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전해져오는 선악과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사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역사서나 그렇다고 가상의 이야기를 써놓은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라고 보셔야 합니다. 온갖 비유와 숨겨진 비밀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쉽게 말해 신은 형체도, 실체도 없는데 우리는 신의 무엇을 본따 만들었다는 거죠?
신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실패라는 단어가 용납되는 존재가 아닙니다.(이에 대해서는 글쓴 분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실패란 인간에 한정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 전의 인간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이에 대해 생각하셔야 하는 것은 선악과는 세상이 만들어질때 같이 만들어졌다는 것.
신 그 자체가 존재할때는 있을 수도 없었던 것이란것(신과 관계 없는 것이라는 것)
세상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그런것(애초에 인간으로서의 실패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
결국 우리가 알아야 하는건 신과 감각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차이점과 공통점입니다.

4 . 저는 진심으로 말할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악이 과거보다 훨씬 많이 퍼진 상태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하고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도둑질이나 몸을 파는 행위, 사람을 죽이는 행위라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벌하는 신이나 몸을 파는 창녀를 감싸주신 예수님은 악을 행하신걸까요?
이게 모두 성경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해서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신과 인간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의미를 탐구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글로 알려드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그 글이 성경에 적혀있었을 겁니다.
성경이 비유와 상징으로 적혀있는데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상 저의 짧은 종교에 대한 상식으로 적은 글이었으며 성경이 소설이라든가, 취향이라든가 하는 악의 유혹에 넘어가시지 마시고
끝까지 고민하셔서 깨달음을 얻게 되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적혀있는 성경을 부정하는 수많은 사람들 보다 성경을 적은 그 한사람이 훨씬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멋진인기
14/04/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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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서한교초천
14/04/1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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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르는 것을 아는 순간이 깨달음이 오는 순간입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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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대한 '특정한 견해'는 해당 종파 내에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성경과 같은 전승이 한사람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은 심지어 보수신학에서도 하지 않는 주장입니다.
중서한교초천
14/04/15 15:48
수정 아이콘
제가 저기서 굳이 '한사람'이라고 지칭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굳이 각 장마다 저자를 적어놓진 않습니다. 그냥 누가 적었다고 전해질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적은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향하는 곳이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적은 사람이 중요했다면 필히 그것이 적혀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놓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것이야말로 성경을 만든 사람의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각각이라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성경에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모든 마음이 단 하나의 마음입니다.
결국 한사람이 적은 겁니다.
저는 이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쓴 책이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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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전승에서 기록자가 누락되거나 유명한 전승내의 인물이 기록자로 지목되는 것은 흔한일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특정한 해석을 시도할 수야 있으시지만요.
중서한교초천
14/04/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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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보기에는 성경의 전승자나 기록자는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도 뚜렷합니다.
그런데요 그것이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이 적은 글이 아닌겁니다.
일반 사람의 마음으로는 적을 수가 없는 글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마음으로만 적을 수 있는 글입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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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보기에는 편집과 가필의 흔적도 다수 나타납지요.

고대전승과 이를 기록한 문헌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수용하고, 이를 신념으로 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종교현상에서는 이러한 일이 자주 나타나고, 아주 중요합니다.
또한 개인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이고요.

다만 '그렇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중서한교초천
14/04/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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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누가 적었다는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성경은 한사람 아니 하나님이 적으셨다는 것 그것을 느끼는게 중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하나님이 쓰셨다는 이 사실을 굳게 믿기 때문에 저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실제입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4/1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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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적으로 실재함을 믿는'것이야 개인의 종교적 자유의 영역인지라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지 않거나(다른 종파의 유신론자), 해당 가치에 관심이 없는(무신론자) 사람에게 생각을 표현 하실때 좀더 '믿음' 부분의 구별을 잘 해 주셨으면 합니다.
겨울나기
14/04/15 16:06
수정 아이콘
신학성경은 저자가 제목이나 글 서두에 다 나와있는데 이건 뭔 소린가요.

본격_신학성경이_성경이_아닌 이유.txt 라는 소설이라도 쓰고 싶었나요.
중서한교초천
14/04/15 16:09
수정 아이콘
신약은 그렇게 제목이 쓰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같은 내용의 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신약은 간증형식의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들 역시 저자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저는 신약을 읽을때 저자를 중요시하며
그 글을 읽는 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14/04/15 16:11
수정 아이콘
저자를 중요시하며 그 글을 읽는 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 개신교 쪽만 바라보시는 말씀이신가요? 가톨릭 미사에서 복음을 전할때 항상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하고 말하는데
어떻게 저자를 중요시하지 않고 복음을 읽는다는 말씀이신지...
중서한교초천
14/04/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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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불교신자입니다만
가톨릭 미사에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간증의 형식을 띄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가톨릭이야말로 개신교보다 훨씬 더 성경이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생각해야 될거 같은데요.
그 행위가 저자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하는 행위라는데에 그다지 공감이 가질 않는군요.
14/04/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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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의 형식을 띄는데 저자를 부각시키지 않는 행위라니...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급의 논리네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4복음서는 각각 저자에 따라 내용도 무척 다르고 이 복음에 있는 내용이 저 복음에 없는 경우도 많은데(사실 그래서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복음에서 저자를 부각시키지 않는다는 말은 저야말로 공감이 전혀 가질 않는데요.
다윗이 지었다는 시편이나 솔로몬이 지었다는 아가 역시 저자가 의미가 없는 것인가요?
바울의 편지로 이루어진 신약 뒤쪽이나 요한 일서나 이서 계시록 등등에서 저자가 논란이 되는건 괜히 되는게 아닙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시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중서한교초천
14/04/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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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자가 논란이 되는게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자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 있고 저자를 중요시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봅시다.
앞의 사람은 성경은 인간이 썼다고 생각하는 거고 후자의 사람은 성경이 하나님이 썼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기독교신자로서 누가 더 의미가 있습니까?
어느 정도 성경을 읽어야 제대로 읽은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서의 저의 생각이 틀렸다고 도저히 생각할수가 없네요.
성경은 사람의 손으로는 적었다고 말할수가 없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썼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책이 아닙니까?
카톨릭이라면 저자를 강조해야 합니까? 아니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걸 강조해야 합니까?
저는 제가 카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게 됩니다.
14/04/1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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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한교초천 님// 누가 성경을 하나님이 썼다고 말했죠?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감'이나 '계시'를 받아서 썼다고 말했다면 이해는 갑니다만, 최소한 성경에는 '하나님이 쓰셨음' 또는 '하나님이 쓰라고 해서 썼음' 이런말이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인용하여서 반박 부탁드립니다.
저자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중서한교초천님의 독자적인 생각이실 뿐입니다. 누가 이 글을 썼고 어떤 판본에서 이 글이 나왔고 이걸 연구하는 역사신학이 왜 발달했겠습니까?
전 일단 가톨릭 신자는 아니구요. 모태신앙이지만 무교입니다.
그런데 중서한교초천님의 말씀은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단순히 하나님이 쓰라고 해서 썼으니 저자는 의미가 없다? 글쎄요.
중서한교초천
14/04/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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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님// 역사신학이 왜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논쟁에 시달리는지 본인이 아래에 써놓은 리플이나 바로 밑의 소독용 에탄올 님의 리플 그 밑의 저의 리플을 보시면 왜 그게 아무 의미가 없는지 그렇게 성경을 파악하면 안되는지 아실 수 있을거 같은데요.

성경에는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오직 쓰여져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유고 상징입니다.
대체 무엇이 쓰여져 있습니까? 그 비유와 상징을 통해 말하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람 마음대로 해석해야 하는 내용입니까? 그렇다면 성경을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일겁니다. 근데 왜 어렵습니까?
저의 말은 이것은 역사적인 문제가 아니란겁니다. 제가 '한사람'이라는 말을 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성경이 누구의 말씀이라 생각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인간의 말이 적혀있습니까? 그것을 어찌 성경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적은 사람이 "내가 성경을 적었다. 나는 위대한 사람이다." 말하겠습니까
"이것은 내 손으로 적었지만 내가 적은 것이 아니오 하나님이 적으신 것이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성경의 모든 내용을 머릿속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제 무식함의 문제지만
제 기억으로는 필히 저렇게 말했던 성경의 내용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14/04/1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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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한교초천 님// 위에도 썼듯이 전 가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모태신앙이지만 무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비유와 상징이지 거기서 무슨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말한다면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100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인간이 되려고 했다는 사실에서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이 싸웠는데 곰 부족이 이겼네 이 정도 사실을 이끌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인간의 모순과 아이러니와 어떤 것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그것을 끊임없이 어기는(그리고 끊임없이 벌을 받는) 인간에 대해서 적어놓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찬 소설에 가깝다고 봐야겠죠. 이러이러한 죄를 지어서 이렇게 벌을 받았어 그러니 이런 짓 하면 안돼 뭐 이정도 일까요.
일관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저는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위 댓글에도 적었지만 그냥 교회 나가서 본인 마음이 편해지고 삶의 위안을 얻는다면 그걸로 종교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추가) 저도 이 댓글을 쓰고 이건 제가 쓴 게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이 댓글을 쓰라고 해서 썼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겠죠.
저자의 의도가 들어가지 않은 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를 탐구하는 이유이기도 할 테구요.
중서한교초천
14/04/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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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님// 저도 julia님과 같은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며 사실 이건 저의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julia님에게 무조건적인 동의를 바라기는 어렵다는걸 알고 있지만 제 스스로 이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의 부정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추가로 얘기하자면 저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쓴글에 하나님이란 이름을 붙히진 못할 겁니다.
하나님에게 죄송한 일입니다.
14/04/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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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한교초천 님// 믿음이 있으면 그냥 있는 그대로 믿으시면 됩니다. 제가 감히 중서한교초천님의 믿음에 이러쿵 저러쿵 할 권리도 없구요.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그 믿음에 대해서 물을 때 비종교인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대응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겨울나기
14/04/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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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이후의 경전은 성경 취급 안 한다는 글 잘 읽었습니다.
중서한교초천
14/04/1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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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비약적으로 논리가 전개될 수 있는건지 참담한 심정입니다.
Cazellnu
14/04/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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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종교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를 마치 보편적 진리인양 이야기하는것은 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서한교초천
14/04/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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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교인의 보편적 진리는 모든 종교에서도 보편적 진리입니다.
Cazellnu
14/04/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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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네요 이만 합니다.
중서한교초천
14/04/1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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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종교 이야기를 하는데 상식 이야기가 나오는건 거의 불가능하죠.
멋진인기
14/04/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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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굳이 그 종교를 믿을 필요는 없겠군요
중서한교초천
14/04/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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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진리를 깨닫게 되는 사람은 종교를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깨달은 진리가 있는 곳이 현재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크리스트교만의 독특한 특징이 들어납니다.
불교는 굳이 절을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나 성당은 그게 필요합니다.
왜 필요할까요? 교회나 성당은 신이 명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4/04/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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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신비주의 종교에 관한 이야긴가요?

다른 건 몰라도 개신교는 아닌 거 같은데
14/04/1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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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사실 불교신자시랍니다.
매력적인 반전이네요.
14/04/1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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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중용의맛
14/04/1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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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웠는지 지워졌는지 알바는 아닌데 그일이 바로 어젠제 자제좀 하시지 그러세요.
기쁨아붕
14/04/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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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가 지어진 기간은 120년으로 보는 것이 신학계의 정설입니다.

누구나 볼수 있는 산 꼭대기에서 120년동안 방주를 짓는 것 자체가 그당시 인류의 잘못에 대한 경고로 볼수 있겠죠?

그리고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은 그 경고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120년의 경고가 끝난 뒤 재앙이 임합니다.

방주에 오르는 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는 내용은 성경에 없습니다.
(노아가 막았다는 둥 이런건 다 철저한 영화만의 각색)

방주에 오르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었죠.

지금의 인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속되는 환경오염으로 환경파괴의 위험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지요.
온실가스, 원자력 발전, 유독물질 매립 등등이요.

하지만 그당시 인류와는 다르게 지금의 인류는 그러한 위험에 대해 부족하게나마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고를 무시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도 120년동안 지속되었다면 말이죠?

간단하게 예를 들어 앞으로 120년동안 화석연료나 원자력 연료를 무제한적으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이 자신들의 편의와 욕망을 위해 무분별한 행위들을 자행할 때, 그것에 대한 결과로써 어떠한 재앙이 임한다면,

그것은 신의 잘못일까요 인류의 잘못일까요?

또한 상당히 긴 시간동안 지속적인 경고를 보냈음에도 그것을 인류가 무시했다면 그것은 신의 책임인가요 인류의 책임인가요?

그리고, 인류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죄악으로 가득차서 서로에게 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에게 까지 악을 행했을 때에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아니면 그냥 방치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소독용 에탄올
14/04/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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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생태계 내의 한 종이며, 자신이 생존할 수 없을 만큼 환경에 영향을 준다면 멸종할 뿐입니다.
거기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수야 있지만요.

노아의 방주는 '타락'과 그에대한 심판,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순종/구원을 드러내는 전승입니다.
다른 전승과 같이 세부적인 내용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다만 그 전승이 믿어지는 것 만으로도 해당 전승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중서한교초천
14/04/1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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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용 에탄올 님의 말씀에 동의하며
몇몇 신학계에서 연구하는 과합적 합리적 성경의 분석, 역사적 분석은
실로 성경을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쓰여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4/04/1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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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성경을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단군 신화에서 호랑이와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 먹고100일동안 살았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죠.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와 상징이죠.
노아의 방주나, 그가 술 퍼먹고 자서 둘째 아들이(함...인가요? 기억이 가물가물)비웃었다는 거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고 롯이 그의 두 딸과 동침했다는 거나...다 인간의 도덕과 죄와 그러면서도 어찌어찌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여겨서 했네 안했네 따지는 거 자체가 무의미하죠.
Acecracker
14/04/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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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안에서 본다면 불합리는 신앙으로 넘어서라고 가르치니 답이 정해졌고
기독교 밖에서 본다면 의문의 핀트가 틀린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중요해진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스타의 인기를 분석할 때에도 그의 매력 포인트를 분석하지 그의 불완전한 부분을 분석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마치 이런 대화 같아요.
A:"걔 코 낮은데 왜 좋아해?"
B:"그 분 눈빛이 얼마나 그윽한데"
A:"눈 말고 코 말이야"
C:"목소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
A:"코 말이라니까?"

수천년간 고민한 결과가 '인간의 합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신앙으로 이해하라'고 하잖아요.
그럼 기독교의 매료 포인트는 님이 의문시한 합리성이 아닌거죠. 코 낮아도 멋지단 걸 이해하라잖아요.
한데 그렇다고 '불합리하니까 기독교에서 빠져 나와라'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스타의 낮은 코를 인지하고 그가 안 멋지다는 것을 깨달아서 좋아하기를 그만둬라'만큼이나 안 맞습니다.
이미 반한 B,C 에게는 '납작코'가 눈에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매력을 평가할 때에는 얼굴 한복판의 코가 정말 중요한 요소일지 몰라도
그 스타는 코가 낮건 말건, 심지어 코가 낮기 때문에 더 멋진게 되니까요. (심지어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코를 높였더니 매력이 사라진다든지... 합리적으로 바꿨더니 가슴을 때리던 부분이 무뎌진다든지...)
중요하지도 않은 단점을 지적하는 것에 불과해집니다. 한낱 팬덤에게도 그러할진데 종교라면 더하겠죠.

결국 이건 모태 기독으로 태어나서 기독교 안에 있기는 있으되 매료된 것은 아니어서 불합리가 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는 질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대답은 둘로 갈립니다.
기독교 안으로 들어갈 것이냐, 밖으로 나갈 것이냐.
스테비아
14/04/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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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에서 '나는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정신억압했다!'라는 대사를 보고 든 생각이, 그게 인간의 자유의지인 것 같습니다.
선하게 만들었다고 선하게 살아버리면 그냥 로봇을 만든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게 인간의 매력이죠. 흐흐
14/04/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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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관점에서 조금 벗어나서, 저는 신화 자체의 특성에 주목해보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신화에서 몇 가지 주로 등장하는 공통적인 레퍼토리가 있어요.
기회를 제공받지만 금기를 위반하는 인간(선악과를 먹은 아담, 저승에서 등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 소돔과 고모라에서의 롯의 아내... 등등).
인류의 타락과 신의 처벌에 의한 정화(노아의 방주, 소돔과 고모라. 그리스 신화에서도 홍수에서 살아남은 데우칼리온과 피라가 등 뒤로 돌을 던져 인간이 되는 장면).
이건 그저 우연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들이 의외로 비슷비슷했다는 점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신 타락-신의 처벌-인류의 재생-타락-처벌...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무한반복은, 신화적 세계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한 가지 특징적인 관점입니다. (특히 신을 전지/전능/지선의 존재로 규정하는 유일신 전통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계는 신에 의해 완전하게 만들어졌는데, 왜 오늘날의 세상은 이렇게 혼탁해 보일까? 그 간극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타락이라는 매개로 메워집니다. 그리고 이는 신의 처벌을 필요로 하고(신화적 세계에서 특징적인 것은 자연재해를 비롯한 모든 사건이 초자연적 존재의 의지에 의해 행해진다고 해석되는 점입니다) 인류는 이를 통해 정화되거나 혹은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다시 혼탁해 보이죠. 그럼 다시 처벌이 필요해집니다. 반복.

신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반복입니다. 모든 사건이 신의 의지 안에서 설명되고, 이를 인간사와 연관지으려면 몇 가지 한정된 해석만이 가능합니다. 인간의 도덕적인 잘못과 반성, 처벌, 뭐 이런 것들이죠. 신화적 세계관은 이 해석항들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걸 넘어서면 너무 복잡해져서 도저히 인간들이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거든요.

재미있는 점을 덧붙이면, 구약에서의 특징은 이처럼 잘못-처벌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잘못과 처벌이라는 항목들이 대구적으로 등장해요. 신들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고 가차없어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차없어 보이는 신적 정의에, 결핍되어 있던 것을 보충해준 것이 신약성서입니다. 예수는 적을 응징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가르치거든요. 용서, 이 개념은 신화에서 정말 드물고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는 고대적 신화의 단계에서 조금 더 나아가게 됩니다. 안셀무스의 텍스트(모놀로기온이었나 프로슬로기온이었나... 잘 기억이 안 나네요)에서도 이 점을 잘 짚어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신은 잘못에 대해 처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비롭게 용서를 내리기도 합니다. 언제 무엇이 해당되는지는 알 수가 없고, 그것이 신의 신비한 섭리이며, 나아가 이처럼 두 가지가 공존한다는 것이 신의 사랑을 완전하게 한다고요.

그래서 종교적인 관점을 벗어나면, 구약은 고대적 신화의 특성을 조금 더 강하게 갖는다는 점이, 본문에 글쓴님의 생각에 조금 맞닿는 것 같아 길게 써 보았습니다.
14/04/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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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가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일인가요? 실제 기원전후 어느 시점에 어느 나라에서 큰 배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라도 있었는지요?
거기에 사람이나 무슨 동물을 태웠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나요? 아니면 그저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신화의 영역입니까?

공학적으로 보자면 좋게 봐서 초기 철문명 정도의 기술력으로 현재의 항모나 크루즈급의 배를 만들 수 있었을리 만무하고,
대략 현재의 훼리 정도의 배를 만들었다면 정말 대단한 업적인거 같은데..
당췌 당시 기술력으로 엄청나게 큰 배를 만들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신학이나 역사에 문외한의 입장에서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G드라군
14/04/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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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un.jjang0u.com/articles/view?db=160&no=180591
관련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네요.
14/04/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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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재밌게 봤습니다.
설마했는데 진짜 나무만으로 만들겠다고 했군요...나무로 유조선 정도의 배를 만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공학적으로 보자면...요즘 모든 배의 조각들은 리벳이음을 한 후에 용접으로 접합부를 때웁니다.
(진짜 말도 안되지만 만약) 훼리만한 크기를 나무로 만들었다고 해도, 바다에 띄우는 순간 바로 가라앉습니다.
가장 최근에 청산도 들어가는길에 배를 탔었는데 나무로 그 정도의 배를 만들었다 치더라도 과연 몇이나 태울수 있을지...

그냥 역사적으로 아무런 증빙도 없는 허구의 이야기라는 거군요...
믿음의 영역이라 조심스럽지만...제가 보기에는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거 같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창조과학회의 글이 있는데 보다 실소가 나는군요..허허..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1&orderby_1=editdate%20desc&keyword=%EB%B0%A9%EC%A3%BC&type=A&isSearch=1
Younhapia
14/04/15 21:16
수정 아이콘
동식물이 다합해봐야 몇종 안되리라 생각했던 고대에 지을법한 이야기죠. 말이 안되는게 당연할 수 밖에 없는데 그걸 과학의 영역으로 끌고오고자 하는 창조과학회 글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마루가람
14/04/1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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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기 보다는 야훼가 의도적으로 한짓들 아닌가요
바빌론에서 노예생활하던 암울한 현실이 반영이 되었을 것이고
14/04/1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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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나 롯의 이야기를 보고 신의 실패담으로 규정짓는건 물고기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창세기의 노아 에피소드 도입부분에서는 노아가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못박고 진행하며, 신약에서도 노아더러 선한 인물로 묘사하거든요.

롯 이야기에서도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일 뿐 정도지 야훼가 롯에게 뭘 기대하거나 한건 전혀 없습니다.
'멸망시키려던 도시에 선한애 한명 있는데 불쌍하니 살려주자' 정도? 의 곁다리 에피소드일뿐, 롯은 구약의 중심 인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근친혼 금지시킨건 한참 뒤의 이야기고 당시에 롯이 명백한 죄를 지었다거나 한건 없죠.

성서 큰 줄기로 보면 개막장을 달리던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기어코 계획했던 메시아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무사히 예수가 태어난 것 자체가
성공 스토리입니다. 원죄 이후로 인간들 자체가 불완전하고 악한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거든요. 노아, 아브라함, 다윗 같은 인물이 예외 케이스일뿐..
14/04/15 19:05
수정 아이콘
어차피 성경은 위인전도 초인기도 아니거든요. 실패담인 것이 당연합니다.
문제는 왜 그렇게 실패하시냐는거죠.
14/04/1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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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을 보면 그렇게나 인간을 사랑한다는 야훼가 유대인이 아닌 민족은 무슨 개나 파리 잡듯이 죽이고 학살하지요.
구약의 야훼에게 인간은 유대인 뿐입니다. 여리고의 학살 부분 같은걸 보면 이건 뭐 인종청소 수준이죠.
Younhapia
14/04/15 21:12
수정 아이콘
요즘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보면 앞뒤 안맞고 이상해 보일수밖에 없습니다. 저 이야기들이 지어질 당시는 청동기 시대 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저 이야기들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들만 모아놓은 거에요.. 워낙 말도 안되는거 같아서 빼놓은 외경들을 보면 더 앞뒤 안맞는 이야기 많습니다. 말 안되는 이야기 말되게 만드려고 중세이전부터 신학자들이 온갖 노력을 다 해왔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인거죠...
14/04/15 23:13
수정 아이콘
역시 블리자드는 틀리지 않았군요.

끊임없는 타락....
뭘해야지
14/04/15 23:23
수정 아이콘
갑자기 이상한게 궁금해졌는데 몇백년후에 지구가 망해서 흔적조차 안남는다는걸 현재 사람들이 다 알수 있을경우에..
종교를 믿는사람이 늘어날까요 줄어들까요...
소독용 에탄올
14/04/16 00:37
수정 아이콘
몇백년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긴 시간입니다.
그러한 조건을 진지하게 '고려'한 행동을 하기엔 인간의 수명이 너무 짧고, 해당 사항을 진지하게 고려하도록 인간의 사고도구가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큰 변화는 없을 듯 합니다.
(지구온난화 같은 거시적이고, 수십년~세기 단위의 개인 기준으로 중장기적인 이슈에 대한 반응과 같은 사례를 통해 볼때요......)
pnqkxlzks
14/04/1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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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저한테는 꽤나 재밌는 글이네요. 노아의 방주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성경 안읽어본 사람도 대부분 아는 얘기는 종교분란 떠나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법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구원을 못받고 언젠가는 완전 멸종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크
대한민국질럿
14/04/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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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은 유태교라는 굉장히 배타적인 종교의 성서이다. 또한 현재의 가톨릭과 유태교는 완전히 다른 종교이지만 유태교가 없었다면 지져스 크라이스트, 즉 신약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어찌되었든 유태교는 가톨릭의 뿌리이며 구약은 신약을 믿는 우리들이 떠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비록 냉담자이지만.. 예전에 성당 다녔을때 신부님께서 구약성서와 유태교에 대해서 하셨던 말입니다.

구약성서 시대에 지구의 대기권에는 물층이란것이 존재해서 자외선을 완전히 차단해주었기 때문에 인간이 몇백살씩 살수있었으나 나중에 그 물층에 이상이 생겨서 그 물이 모두 지표면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전지구적인 홍수가 나고 어쩌고.. 자외선을 막아주는 물층이 사라진 이후에야 인간이 현재의 수명을 갖게 되었다라던가.. 이런식의 말도안되는 억지스러운 구약성서 쉴드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말이었죠. 물론 그 신부님 개인의 주장일 뿐 전체 가톨릭의 입장은 아닙니다만..(개신교는 아예 논외로 하고요)
SuiteMan
14/04/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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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이 말이 딱히 인간에 대한 얘기만은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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