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03/24 16:56:21
Name 켈로그김
Subject [일반] 3무 인간.


오늘 저는 무책임하다는 말을 들었고,
스스로의 무지를 체감했고,
그 결과로 돈을 벎에 있어서 무능력한 인간일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

1. 무책임.

지난 토요일, 처방전을 맡겨두고 "오후에 찾으러 올께요" 하고 갔던 환자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온 것이었고,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네요.

토요일 병원 진료는 2시까지, 약국은 5시까지 엽니다.
저는 6시까지 기다리다가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보호자인 할머니가 오셔서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고 퍼부으셨습니다.
저도 욱해서 난 할만큼 했다. 꼬우면 신고하던가. 하고 서로 한바탕 고성이 난무했습니다.

제가 원인제공을 한 부분을 곰곰히 돌이켜 보면,
1. 애초에 몇 시에 찾으러 올지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처를 미리 받아놓지 않았다.
2. 문 닫고 간 이후에 약을 찾으러 올걸 대비해서 옆에 커피숍에라도 맡겨두어야 했다.
3. 하다못해 핸드폰번호라도 남겨두어야 했다.
4. 결정적으로 몇시에서 몇시까지 약국 연다는 표기를 안해놓았다.
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지 못한 저 행위들이 말입니다..
비난받는 순간의 저로서는 무책임이라고 비난받으니 순간 억울했지 말입니다..
인터넷에다 올려버린다는 말을 듣고서.. "어우, 그래요 올리시던지요" 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와버렸습니다.

그 순간에는 제가 억울함을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으니.. 제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따 저녁에 그 할머니가 아이 부모 데리고 2라운드 뛰러 올 수도 있는데,
뭐.. 어지간하면 사과를 하고 넘어가겠죠. 저한테 말 할 기회를 준다면 말이죠.
그런거 없이 막 퍼부으면 "니들 알아서 하세요" 하고 또 욱할지도 모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합니다.
설령 잘못이 5:5라고 하더라도, 저는 입 꾹 다물고, 점심시간의 추가적인 무례에 대해서도 사죄를 해야 합니다.

-------------------------------------------------------------------------------

2. 무지.

어쩌다가, 어떤 글을 써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_-;
전공과 유관한 분야에서 말이죠.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다른 약사들에 비하여 깊게 안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다만, 관련한 세세한 자료를 찾아서 하나의 글을 완성할 정도의 이해는 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건 자만이었습니다.

방향을 잡는 것 부터 이리저리 헤매고 헤매고 헤매다가..
간신히 초안을 잡아서 초고를 오늘에서야 (5일만에) 간신히 작성했습니다.
물론, 퀄리티는 기본적으로 폭망이고.. 적어도 방향? 의도? 컨셉만이라도 빠꾸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형국이지요.


이 일을 맡게 가장 큰 계기는 "이 일이 자기발전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는 생각을 해서였는데..
확실히 그럴거 같습니다.
자기발전을 하려면 먼저 자아발견부터 시작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예상보다도 좀 더 좌절감이 폭풍처럼 몰려오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이 글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좌절감에 몸을 맡기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한다고 약속했으니까요.

-------------------------------------------------------------------------------


3. 무능력.

그리하여..
스스로가 별볼일 없다는걸 굉장히 리얼하게, 디테일하게, 크리티컬하게 느끼는 하루입니다.
여태까지 대체 뭔 깡으로 살아왔나 싶습니다.
결혼해서 처자식까지 딸린게 용하다 싶습니다.

지금같은 상태로 살아온 시간동안 보여준 모습들이 모두 별거 없는 알맹이를 낱낱이 들킨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을 넘어서 마음이 괴로우면서 두려움도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새로이 사는 방법에 익숙해져왔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어떤 식으로든 익숙해지리라 생각합니다.

바라는게 있다면,
언젠가는 스스로를 좀 덜 별볼일 없다고 여길 수 있는 방향으로다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사티레브
14/03/24 16:59
수정 아이콘
다른 유가 많겟죠
켈로그김
14/03/24 19:22
수정 아이콘
유는 유한한데 무가 무한해서 슬퍼요..
14/03/24 16:59
수정 아이콘
누구나 그럴 때가 있죠. 저도 저의 부주의함으로 생겨난 문제들을 보며 저의 무능에 대해 좌절하고 무지에 대해 화가 날 때가 많았는데,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니까요 뭐. 그 반대의 감정들을 느끼실 때도 많으시리라 생각하니 굳이 응원 하기보단 토닥토닥 해드리고 가겠습니다. 토닥토닥.
켈로그김
14/03/24 19:24
수정 아이콘
오늘같은 날은 누군가 술잔으로 토닥토닥 해 줬으면 싶기도 합니다..
20대 초반의 통렬한 자아비판 시간을 재현하기 딱 좋은 날이기도 하고..;;
honnysun
14/03/24 16:59
수정 아이콘
모든 인간은 정보량에 비하면 대부분 무식한거죠.
죽을 때가 다가오면 다 부질없다란 생각이 들 것 같네요.

허무한 인생이여......
켈로그김
14/03/24 19:26
수정 아이콘
아마 저는 당장 집에가서 아이 얼굴만 봐도 오늘 하루종일 느낀 감정의 덧없음을 체험할지도 모르겠어요..
flowater
14/03/24 17:02
수정 아이콘
역시 좌절감이 사나이를 강하게 만드는거죠.
켈로그김
14/03/24 19:27
수정 아이콘
이건 삼국지의 최강격언이 아닙니까? 흐흐;;
크리슈나
14/03/24 17:04
수정 아이콘
저도 오늘 내내 프리젠테이션자료를 만들면서 저의 무지 및 무능력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만.
한가지 위안을 드리자면...다른 사람들도 생각보다 유지(?) 및 유능력하지 않습니다.
뭐 물론 특정분야에서 소수의 특정한 분들은 유지 및 유능력하십니다만 다수의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시길.
켈로그김
14/03/24 19:28
수정 아이콘
네.. 오늘은 무지하게 자위해야겠네요.. 음??
크리슈나
14/03/25 10:05
수정 아이콘
어제밤에 자위 잘 하셨어요? 음??
켈로그김
14/03/25 10:47
수정 아이콘
그건 비밀.. (-- )
닉부이치치
14/03/24 17:13
수정 아이콘
전 오늘 남의 소스코드를 수정하면서
이렇게 남이 수정하기 쉬운 코드를 짤수있다는데 탄복하면서 제 무능력을 다시금 실감중이네요
켈로그김
14/03/24 19:29
수정 아이콘
확실히.. 능력자를 가까이서 접하게 되면 자괴감이 배가되긴 합니다.
그런데 저는 능력자한테 치인 것도 아닌데 왜... ㅠㅠ
레지엔
14/03/24 17:21
수정 아이콘
컨소시움 관련해서 준비 중인데, 좌장께서 와서 죄다 갈아엎고 가신 후에 중간관리자의 무능을 실감 중입니다(..)
켈로그김
14/03/24 19:30
수정 아이콘
원래 중간관리자는 무능해야 제 맛 아닙니까(..)
신세계에서
14/03/24 17:27
수정 아이콘
켈로그김 님만 그러실 것 같죠?(이것도 관심법인가...) 아니에요.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중산층 내지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의 n수를 바탕으로 해서 심층 면담하면 다 켈로그김 님만큼 무력감과 불안, 공포감을 느낄 겁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덕분에 소속되어 있는 이 시스템에서 행여나 도태된다면? 그 뒤는 지옥이지요. 세계 무역 10대 강국의 현실입니다.
켈로그김
14/03/24 19:31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도태된다면? 그 뒤는 지옥이라는 말씀..
14/03/24 17:52
수정 아이콘
원인제공의 결정적인 이유는 대체재가 흔한 약국인점이겠죠. 구매자입장에서 '을'로 인식되니까 '갑'은 을의 사정따위는 알 것 없고 자기 기준에서만 따지겠지요. 게다가 을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사과는 커녕 맞불을 놓으니 더 열이 받는거겠죠. 관계가 파토난다 쳐도 다른 약국 가면 그만일테니까요
아무튼 무책임, 무능력하지는 않으십니다. 언급하신 네가지 사항은 어디까지 구매자에게 해주는 배려이지, 정해진 진료시간을 1시간이나 더 하고 마친이상 책임은 완수하셨으니까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하실 준비가 된 것을 보시면 무능력하지 않음이 느껴집니다.

하고싶은 말은 뭐냐면 스스로도 언급하셨듯이 새로이 사는 방법을 찾아 그에 익숙해지시는게 필요하실거 같습니다.
업계의 스페셜원이 되어 대체재가 없는 갑의 위치가 되어 구매자에게 상호간의 규칙을 준수하게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이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어찌됐든 구매자가 널리고 널린 약국중에 내 약국에 들려 약을 처방받던가 약을 사가야 돈이되는 '을'의 위치를 깨닫고 보다 구매자에 대한 서비스에 만전을 기한다던가요. 약국 역시 주변의 입소문이 중요한걸 감안할때 한사람을 적으로 만들면 그사람의 입을 통해 10명, 100명이상의 잠재된 고객을 잃는 현실적으로 매우 좋지않은 결과로 이어지니 말입니다. 물론 스스로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도 있으실테고 나름의 원칙도 있으시겠지만, 그런건 아침에 먹여살릴 가족들 얼굴 생각하면서 이부자리 접을때 같이 접어두시고 밤에 잠들기 전에 다시 꺼내 자존감을 지키는 정도가 좋지 않을까 그리 생각해봅니다.
켈로그김
14/03/24 19:36
수정 아이콘
가족 생각하고, 잠재고객 챙기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스페셜 원이 되는 것이 참.. 기약없는 고행이 되겠지만, 한 번 도전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현실은 을이고, 을로서 살아가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서 훌륭한 갑이 될 수는 없다는 일종의 자기최면이 걸린 상태라..
일단은 열심히 을로서 살아야지요. 흐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4/03/24 17:53
수정 아이콘
1번은 어쩔 수 없이 다 뒤집어 써야죠.
문닫는 시간을 알려드리지 않은 이상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네요.
켈로그김
14/03/24 19:38
수정 아이콘
네. 뒤집어 쓴다기보다, 그 분 입장이라면 충분히 성토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법적인 수준으로 입증될 피해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피해를 본 쪽은 그 분이니까요.
저도 한시간 더 근무했지만, 그건 피해라고 하기는 애매한 부분도 있고..

당장 약국 개문시간 안내 스티커를 큼지막하게 준비하는 것 부터 바꿔봐야지요.
王天君
14/03/24 19:19
수정 아이콘
1번은 참 화가 나지만, 그래도 언급하신 과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감내하셔야 할 듯....
켈로그김
14/03/24 19:42
수정 아이콘
네.. 신기하게도 그 순간 지나가고 나서는 화는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 안 생기게 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정도로 대비책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제가 화가 나지 않은 것과 별개로... 과한 요구를 한다면, 들어줄 수 없다고 선은 그어가면서
사과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하고싶습니다.

...실제로는 수습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사과하겠지만서도..;;
14/03/25 00:05
수정 아이콘
솔직히.. 5시 퇴근인데 6시까지 기다리셨다는게 놀랍습니다. 약속을 안지키는 환자는 치료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켈로그김
14/03/25 09:00
수정 아이콘
약속이었다면 그러겠는데.. 자기가 올 때까지 문을 닫지 않을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상황인 듯 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 분만의 과실이라기 보다,
그렇게 착각(?)하지 않도록 할 저의 소흘함이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뭐.. 잘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일단 이거부터 바꿔야겠죠;;
광개토태왕
14/03/25 18:48
수정 아이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약속을 안지킨건 켈로그김님이 아니라 환자분이기 때문에 6시까지 기다려준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죠..
PoeticWolf
14/03/25 05:26
수정 아이콘
에휴... 1번은 저같았어도 싸웠을 거 같은데... ㅜㅜ
무식은 절 위해 있는 말인 것처럼 삽니다 요즘 흐흐
켈로그김
14/03/25 09:01
수정 아이콘
아닙니다 제꺼에요.. 뺏아가지 마세요 흐흐;;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0936 [일반] 3주차 원고를 보내고 나서.. [9] 켈로그김4064 14/04/07 4064 2
50650 [일반] 3무 인간. [29] 켈로그김6116 14/03/24 6116 6
50576 [일반] 우유는 안전한가? [85] 켈로그김7306 14/03/20 7306 7
50130 [일반] 가스렌지 vs 전기렌지? [75] 켈로그김28480 14/02/28 28480 3
49457 [일반] 친구야 내가 잘못했어. [27] 켈로그김5708 14/01/24 5708 12
49223 [일반] 아메리칸 드림 [34] 켈로그김4695 14/01/11 4695 3
48649 [일반] 12월18일의 의약품 늬우스 + 잡담 [40] 켈로그김3700 13/12/18 3700 0
48471 [일반] 응답하라 2001 크리스마스. [40] 켈로그김3812 13/12/13 3812 5
47287 [일반]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완전한 증거.(수정 : 디테일보강) [64] 켈로그김8518 13/10/25 8518 8
47119 [일반] 능력이 없어 다행입니다. [39] 켈로그김9365 13/10/17 9365 5
46814 [일반] [야구] 칙칙폭폭 칙칙폭폭 [54] AuFeH₂O7362 13/10/03 7362 1
46778 [일반] 홀로 설 준비를 한다는 것.. [55] 켈로그김6911 13/10/01 6911 11
46568 [일반] 너랑 친하게 지낼 바에야 다른 얘들과 멀어지겠다!!!! [21] 해피아이6948 13/09/20 6948 2
46565 [일반] 2009년 10월 31일에 있었던 일 [12] 정용현6498 13/09/20 6498 6
46381 [일반] 고향 다녀왔습니다. [20] 켈로그김4169 13/09/09 4169 5
45937 [일반] 생활의 발견 -토사구팽- [30] 켈로그김5566 13/08/19 5566 1
45846 [일반] 소싯적 여자 좀 울렸던 이야기. [69] 켈로그김8215 13/08/14 8215 10
44339 [일반] 섹스리스 극복기. (아래 44332글 관련.) [83] 켈로그김24909 13/06/07 24909 83
43677 [일반]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10선. [27] 켈로그김5130 13/05/10 5130 2
43669 [일반] 반갑소. 동지. [192] 켈로그김8657 13/05/10 8657 6
43006 [일반] 환절기입니다. 건강관리 잘 하세요. [43] 켈로그김4861 13/04/03 4861 1
42864 [일반] 살인자가 말했다. [17] 켈로그김7702 13/03/26 7702 0
42684 [일반] 가사 해석은 돌고 돌아.. [10] 켈로그김6231 13/03/13 6231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