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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11 17:19:55
Name yangjyess
Subject [일반] 또 하나의 약속 보고 왔습니다. (스포)
글쓰기 버튼 누르고 제목 쓴 현재시각 15시 59분

영화상영 11시 55분 이었습니다.

2시쯤에 끝나서 같이 본 친구랑 점심 먹고 전철타고 기숙사 오니 요시간이네요.

전철 타고 오면서 어떻게 감상을 적을까 궁리했습니다.

친구랑 밥먹으며 이야기한걸 그대로 옮겨도 좋을거 같고..

그냥 지금 떠오르는걸 그대로 배설해도 좋을거 같고..

술이 쪼오금 들어간 상태라 어느쪽이든 마음먹은대로 안될거 같습니다.

자,

우선 저는,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이 영화에 개인적으로 감정이입될만한 경험을 약간은 한 편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경험들이 이 영화를 공정하게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거 같습니다.

반도체는 아니지만 전자제품(컴퓨터 캠, 모뎀,메인보드 등)이나 김치냉장고 만드는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한 2년정도 일했었던거..

그리고 병원 원무과에서 한 5년여간 여러 산재환자를지켜볼 기회가 있었다는 거..

음.. 일단 이 영화에서 삼성은 악입니다.

아마 상당한 악감정을 품고 영화제작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최소한 이 백혈병 건에 대해서는 마땅히 그래야 했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삼성을 악으로 표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처음에 나오는 아.. 회사 이름 다른걸로 나오는데 귀찮으니까 그냥 삼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처음 나오는 면접관부터 돈 주면서 산재 포기하라고 계속 따라다니며 재수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삼성의 개...? 킄 그리고 주인공 떠밀어 넘어뜨리는 경비원? 비슷한 사람들? 위선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고위층 인물?

왜 이런 딱보기에도 악당같아보이는 사람들로 묘사한거죠? 삼성맨들을?

제생각엔 삼성이라는 악의 무시무시함은 그런 '순박한 나쁜놈들' 한테서 나오는게 아닙니다.

아마 여주인공이 처음 만난 면접관은 온화하고 자상한 미소로 주인공의 포부를 격려하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도록 해줄만한 그런 이미지였을지도 모릅니다.

동료직원들의 성의라며 돈을 건내며 사직서 작성을 부탁하는 삼성맨도 매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진심으로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찾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삼성은 아니지만 중간에 나오는 역시나 딱봐도 싸가지없어 보이는 원무과장, 그사람도 아마 의료기관에서 병과 근무환경의 관계를 증명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어 어쩔수 없었을 것입니다.

삼성이라는 악은 이게 무서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구성원 한명한명은 백혈병 희생자 한명한명과 마찬가지로 그저 자기 가족 먹여살리려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무력한 톱니바퀴의 이빨일 뿐인데,

그것들이 어떻게 얼키고 설켰는지 이런 끔찍한 지옥같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일단 이거 하나랑요.


일하는곳에서 다쳤을때 근로자가 산재처리하는거.. 제가 지켜본 바로는 이 영화에서처럼 처절한 투쟁을 해야하는가 의문입니다. 그냥 점심시간에 공장안에서 놀다가 어디에 부딪혀서 다쳤는데 사업주랑 얘기 잘 해서 일하다 다친걸로 서류 꾸며서 산재처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구요. (심지어 족구하다 다친걸 산재로 하는것도 봤습니다) 일당 받는 노가다 아저씨들도 산재 하는거 봤구요. 중국집 배달하다 교통사고난것도 자보로 안하고 산재로 하기도 하구요. 한국말도 더듬더듬하는, 한국에서의 노동자의 권리가 뭔지도 잘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본인들은 어버버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와서 얘네들 없으면 우리공장 안돌아간다고 산재로 할테니까 치료좀 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구요. 아무튼..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 일반 건강보험 환자보다 병원비 못받을 걱정 훨씬 덜되는게 작업복 입고 피 철철 흘리거나 어디 절뚝거리면서 응급실 오는 환자들입니다. 아 일하다 다쳤나보다 산재 하면 되겠네. 하고 자동으로 보증수표가 되어버리거든요.

근데 이건 딱 차이점이 있네요.

여태껏 적은건 누가봐도 일하다 다쳤다는게 직관적으로 보이는 케이스들이고...

백혈병이 근무환경때문임을 입증하는건... 영화에서 택시기사 아버지조차 다른사람들도 똑같이 병에 걸렸다는 정보를 알기 전까진 긴가민가 했으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더더욱 인정 안하려고 했겠죠.

아무튼 이 영화는 그런 차이점이 있는데 자칫 보통 사람들에겐 '으아 일하다 다치면 산재처리 존나 넘사벽으로 어렵네 저렇게 투쟁하지 않으면 못하는거구나' 이런걸로 보일까봐 얘기해 보았습니다.

음...

좀 눈물 짜낸다는 느낌이 나는 곳이 몇군데 있긴 했는데 그냥 넘어 가구요.

좋았던 장면은...

노무사님 유치장에서 나왔을때 택시아저씨가 두부 사가져 와서는 내가 미리먹을거라며 노무사님은 사드시라고... 킄... 그러고 둘이 팔짱끼고 가는 뒷모습..

남동생이 빨간목도리 두르고 집에 와서 망치 잡으면서 나 군대간다 하니까 아빠가 제대하지 말고 말뚝박으라 한거..

팀장님이 옛날 반도체 기술 처음 배워올때 인원들 여러비행기에 나눠타고 온 이야기 해주는거... 혹시 비행기 사고나서 한꺼번에 죽으면 안되니까.. 그때가 참좋
았지 회상하는거.

마지막 증인선 직원이, 나 우리회사 잘됐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그래서 증인으로 나왔다고 한거.

음.

아 킄

영화관에 딱 들어섰는데요, 빈 자리가 많은데 (약 180석) 한 30명 정도 사람들이 가운데 부분 좌석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는 겁니다.

처음에 표 살때 알바생이 추천하는 좌석을 샀거든요. 전 그게 적당히 보기 편하게 분산시켜 놓은줄 알았는데 속았던거죠.

아 씨 이게 뭐야 민망하게. 속으로 그랬습니다. 그런데요. 영화 보면서 가운데 딱 붙어앉은 사람들끼리 한때는 숨을 죽여가며, 한때는 탄식을 해가며, 한때는 울먹임을 참아가며(아무소리도 안나는데 신기하게 들리는듯이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두시간여가 지나고,

마지막 최종판결때... 세명인가... 먼저 상관 없다는 판결이 나왔을때, 영화속 방청객들과 영화밖 관객들이 똑같이 낙담하는 기분이 확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백혈병걸린 여주인공의 산재는 인정한다는 판결이 나왔을때 마찬가지로 영화 안팍에서 환호성이 같이 터지는 느낌을 받았구요. 거 참.. 이 영화 스토리 다 알고 봤을텐데 말입니다..판사가 정숙하라고 하는 말이 마치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 하는것처럼 들리더군요 킄.

저도 조금은 꼬인 마음씨로 영화를 봤습니다만 마지막 판결때 어찌 그렇게 가슴이 푸드덕거리는지 아주 애먹었습니다. 산재인정 안된 피해자 가족들이 택시기사아빠 축하한다고 잘됐다고 자기들 이긴것처럼 축하해주고(아.. 그것은 정말 그들 모두의 승리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어요...) 택시기사아빠는 미안하다고미
안하다고 막 그러는데 흐잉 네 눈물 콧물 막 나왔어요그


음..

가까운곳에 상영관이 없었는데 뒤늦게 이 영화를 걸어준 울동네cgv한테 고마웠고요 (하루 1회 상영에 상영시간도 그지같았지만)

음.. 마지막 증인의 말처럼..

전 삼성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정말 우리나라에 이런 일류기업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그런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지만... 만약 못 깨달을시 강제로, 일부라도 그걸 깨닫게 해주려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지금도 재판 다 끝난거 아니라더군요. 도울수 있는만큼 돕고 싶습니다. 검색하면 나오겠지요. 이런저런 정보들.

음.. 또 할말이 있나... 아..

이 영화는 말하자면 좀 불순한 영화죠.

좋든 나쁘든 영화만을 위한 영화는 확실히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게 감점요소도 되고 기대치도 낮고 그럴수도 있는데

의외로 순수 영화로 봐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즉 이걸 완전한 픽션이라고 해도, 삼성이나 백혈병 희생자들에 대해 아무런 감정 안갖고 봐도 꽤 조마조마하게 다음에 어떻게 될까 긴장감을 주는 그런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아직 안보신 분들께 적극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저분들에게 힘을 실어드리자 이런 의미랑은 전혀 상관없이요.

어휴 잡설 쏟아내는데 무슨 한시간이 넘게 걸렸는지

이만 줄이겠습니다. 글 서두에 너무 부정적으로 적은거 같은데 이 영화가 더 잘 만들어질수 있었는데 하는
마음에서 그런거에요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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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삼겹두루치기
14/03/11 17:28
수정 아이콘
변호인은 기회가 안 돼서 못 봤는데 이 영화는 꼭 한번 보고 싶네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거니 스포 당했다 해도 별로 큰 영향은 없을 것 같아요. 쓰신 글도 재밌게 잘 읽었고 작성자분의 바램대로 희생자분들께서도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단지날드
14/03/11 22:42
수정 아이콘
더 잘 만들수있었을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기는 하죠 얼마전에 팟캐스트 듣다보니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서 남이만든 영화같지가 않다던 그알싫의 진행자 UMC도 영화 내용에 아쉬움을 표하더라구요
잉크부스
14/03/11 22:46
수정 아이콘
지인중에 모회사 모라인에서 급성 백혈병 발병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다행이 완치하셨습니다만..
전해 들은 처리 방식은 예상하시는 만큼이었습니다.
수표한장과 치료비 그리고 완치시 고용보장을 선택하던지 법정싸움을 하던지 약자 택일 하라고..
후자를 선택하는것은 확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조언과 함께..
14/03/11 23:21
수정 아이콘
산재라는게 쉬우면서 또 쉽지 않은거 같더라구요.
노가다 쪽에서는 산재처리할 일 생기면 위쪽에 안좋다고 소장 사비털어서 처리하는 경우도 보고..
부분이 전체가 될수는 없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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