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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2/22 14:57:43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스포츠 스페셜 동영상의 정석
한국에서도 한창 앰엔캐스트 같은 것이 활성화 되었을 때 스포츠 스타들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편집한 영상들이 올라왔었죠. 특히 그 즈음에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하게 되면서 해외축구 붐이 일었고, 박지성의 한 경기 활약상 같은 것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올라오곤 했습니다. 또한, 지금에 비해 해축 팬덤이 규모도 작았고 헤비하지도 않았고 경기 중계도 활성화되지 않았으며 구글링 따위도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리그와 클럽의 선수들을 알기 위해서는 컴필레이션 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가끔 잘 만든 영상 하나 올라오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죠. 예컨대 콰레스마라든가, 캔유필잇 호돈이라든가...현재는 방금 언급한 문제들이 대부분 해소되었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컴필레이션 영상과 실제 해당 선수의 플레이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명확하게 인지되면서 붐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런저런 컴필레이션에 대한 수요는 높은 편입니다. 특히 유튜브란 물건이 나오면서부터는 너무나도 이런 류의 영상에 접근하기가 쉬워졌죠.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는 왕왕 있기 마련인지라, 만족스러운 스페셜 영상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지루하고, 어떤 것은 정신 사납고, 어떤 것은 눈에 거슬리죠. 이런 것들에 대해 평소에 불만을 갖고 있던 와중에, 한 번 좋은 컴필레이션 영상의 기준과 그 예에 대해 논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좋은 컴필레이션 영상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1. 일단 주제가 좋아야합니다. 메시나 호날두에 대한 영상은 아무리 발로 만들어도 어느 정도 관심을 끌 수 있게 마련이죠. 하지만 체코의 축구 전설 마소푸스트의 플레이...이런 건 매니아 아니면 관심이 없을 소재입니다. 물론 항상 모두가 알만한 주제로 영상을 만들 필요는 없으며, 남들이 잘 모르는 것을 깨우쳐주는 영상의 가치는 이루말할 것 없이 높겠습니다만, 이런 영상들의 경우 대개는 영상 이외에도 텍스트를 통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하게 됩니다. 영상만 갖고 뽕을 뽑기는 힘들어진다는 거죠.

2. 서사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어떤 대상을 접하든지 인과관계와 개연성이 있는 스토리의 형태로 즐기고 싶어하기 마련인지라, 서사가 없거나 빈약하면 매력이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죠. 이 점 때문에, 소설이든 영화든 만화든 간에 서사가 완전히 배제된 형태의 작품은 아무리 극미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대중 예술은 될 수 없습니다.

3. 현장음과 코멘터리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컴필레이션 영상 감상의 가장 큰 장벽 중에 하나는, 우리의 이성이 이것이 라이브 상황이 아니라 이미 과거의 사건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맥이 빠져버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성을 마비시키고 현혹시킬 필요가 있고, 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장감을 고조시키는 사운드들입니다. 당대 사람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현장음과 해설자나 캐스터의 코멘터리는 현장감을 증가시킴으로써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같은 심리적 착각을 주게 되죠.

4. BGM이야 말할 것이 없지요. 싱크로 후덜덜-과 같은 표현이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것부터가 BGM과 영상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5. 군더더기가 없어야 합니다. 많은 영상 제작자들이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에 이 장면 저 장면 가리지 않고 마구 삽입하는 경우가 많죠. 이러면 영상 길이도 길어지고 템포도 늘어지고 중요 장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누가 봐도 루즈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잘 가늠해야합니다.



이런 여러가지 조건에 비교적 부합하는 영상으로 일감으로 떠오른 건 아래의 영상이었습니다. PGR에도 예전에 올리긴 했습니다만..



<황금의 4중주>로 유명한, 1982년 월드컵에서의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활약상을 담은 컴필레이션 영상입니다. 1982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대한 설명은 예전에 올린 적도 있고 다시금 구구절절 적자면 글이 길어질 테니, 다음 링크로 대체합니다. http://safutbol.com/xe/index.php?mid=colomn&sort_index=readed_count&order_type=desc&document_srl=18332

도입부에서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브라질 팬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나레이션을 깔면서 무게감을 더하며, 첫 경기인 스코틀랜드 전에서는 선수들의 입장 장면과 국가연주 장면을 차례로 보여주고, 중간중간 브라질 국기 같은 것을 등장시키기도 하면서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감상자로 하여금 감지할 수 있게 해주죠.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여주는 와중에 신명 오른 브라질 응원단과 시무룩해하는 스코틀랜드 꼬마들을 대비시키는 컷도 깨알 같고...

특히 현장음과 중계음을 중간중간 삽입하면서 한층 현장감과 리얼함이 느껴질 수 있게 했다는 점을 주목할만합니다. 스페셜 제작자들이 자기 기량 과시한답시고 브금 시끄러운 거 틀고서 특수 효과와 효과음으로 떡칠하고 현장음과 중계음 죄다 도려내버리는 헛짓거리를 자주하면서 마치 장시간 물에 삶은 식재료를 조미료에 절인 것마냥 밋밋함과 동시에 부담스러움이 응축되어 있는 기괴한 영상을 만들어버리곤 하는데, 이 영상에서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죠.

이후 뉴질랜드전과 소련전을 거치면서 영상이 루즈해질 찰나, 록키4의 OST인 Burning heart를 브금으로 선택하면서 시퀀스를 역동적으로 전환시키고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앞둔 고조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꽹과리와 북을 두드리는 브라질 응원단의 모습을 삽입한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얘네는 진짜 축구 좋아하는 놈들이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들게 만들죠. 하이라이트 장면과 브라질 선수단의 트레이닝 장면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면서 영상의 볼륨감을 두텁게 해주기도 합니다.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표하며 성질 낸다거나 발길질하고 퇴장 당하는 마라도나를 강조한다든가, 첫 번째 득점 장면에서 아르헨티나 골키퍼 페레스를 조롱하는 듯한 브라질의 공격수 세르지뉴을 잡아주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리저리 변하는 카메라의 시점이 참 밸런스 좋다 싶죠.

이탈리아전도 참 잘 만든 것이, 양팀의 찬스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면서 팽팽한 승부였다는 것을 누가봐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2번째 파울로 로시의 득점 신 같은 경우 세레조가 백패스 미스하면서 주워먹기 골로 이어진 배꼽잡는 예능 장면인데, 이 영상에서는 편집을 절묘하게 하면서 그런 티를 안 나게 했죠. 크크. 중간중간 브라질 캐스터의 코멘터리를 들려주는 것도 적절하죠. 캐스터는 해당 시퀀스의 분위기를 지배하다시피 하는데, 브라질이 골을 넣을 때와 이탈리아가 골을 넣을 때의 상반된 반응이라든가, 브라질 선수들이 찬스를 날렸을 때 안타까워 하는 모습과 같이, 캐스터의 코멘터리가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내래이션의 역할을 합니다. 아울러 브라질 감독인 텔레 산타나와 이탈리아 감독인 엔초 베아르초트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며 양팀 사령탑들의 절박함을 암시해주기도 하고요. 브금인 From the heart와 영상이 호응하면서 묵직한 비장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탈리아가 결승골을 넣는 장면에서는 브금이 전환되고 그 이전까지 브라질 선수들의 인상적인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감상자로 하여금 애잔함을 불러일으키죠.



그동안 적잖은 스페셜 동영상을 봐왔지만 이 영상만큼 제작자가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껴진 적이 별로 없네요. 군더더기나 쓸데없는 장면이 없고, 브금이 탁월하고, 구성이 정교하고, 스토리가 분명하며, 템포가 늘어지지 않고, 1982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잘 아는 사람대로 잘 모르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대로 영상을 즐길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화질만 1080p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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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룩셀룩
14/02/22 15:06
수정 아이콘
4번을 보고 딱 떠오르는 영상이
호돈신 스페셜의 can you feel it 이네요 흐흐

그의 폭팔적인 드리블과 심장을 뛰게 만드는 비트가 적절하게 어우러져서
단지 배경음악과의 조화만으로 굉장히 인상에 남는 스페셜이 되었습니다
14/02/22 22:28
수정 아이콘
저도 딱 그생각했는데 말이죠.

http://youtu.be/qsmofoWVkgU

한번 봐줘야죠.
반니스텔루이
14/02/22 15:11
수정 아이콘
엠앤캐스트 시절 때 축구 동영상 하이라이트 좀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컴퓨터 바껴서 자료가 남아있지도 않고 엠앤캐스트도 망해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서 아쉽네요;

다행이 엠군 동영상은 한 두개 남아있긴 한데..
구밀복검
14/02/22 15:17
수정 아이콘
안타까우시겠네요. 이게 동영상도 그렇고 텍스트나 이미지도 그렇고, 온라인에 올리는 자료들이 보존성이 좋은 것 같지만 정작 수명 따져보면 오프라인의 물건들만 못한 것 같아요. 수년 전 인터넷에 올린 사진들은 이제 어디서 찾아야할지 알 수가 없는 반면 앨범은 아직까지 멀쩡하게 보관되어 있으니.
사랑한순간의Fire
14/02/22 19:54
수정 아이콘
저는 믹스 영상을 찾아보는 걸 좋아하진 않아서 아는 게 별로 없지만^^; 끼어들어보자면...

The Return of Kobe
http://tvpot.daum.net/v/koTJFmMc8ww%24

법정 싸움과 홀로 서기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코비 브라이언트의 05-06 시즌 믹스입니다.
LA 레이커스가 코비 하나만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시즌, 코비가 생애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시즌입니다.
LA Lakers의 공식 믹스 경연대회 우승작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본 모든 믹스 영상을 통틀어 역대 최고^^;
초반부 적절한 사진들의 나열과 고뇌하는 코비의 모습, 그리고 미러클 플레이의 연속들...마무리까지 완벽합니다.

Kobe and Shaq - Bring Me to Life
http://tvpot.daum.net/v/WIFtjk80sno%24

한때 명콤비로 불렸지만 숙적이 되어버린(지금은 도로 친해진?) 코비&샼 믹스입니다.
두 사람이 시너지를 이루며 절정기를 향해 달려가던 순간과 좌절, 다시 만난 그들(04-05 크리스마스 매치?)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코비와 샤크, 둘이 함께 할 때와 헤어진 뒤의 교차 편집이 절묘하며, 노래와도 기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존 스탁턴 다큐 믹스
http://tvpot.daum.net/v/cOT1v19M9iE%24

명포인트가드 존 스탁턴의 다큐를 적절한 노래와 함께 믹스한 것입니다.
불꽃 관계(?)인 칼 말론과의 콤비 플레이, 보기드문 존스탁턴의 절규와 환호를 볼 수 있습니다.
'백인 포인트가드'의 이미지와는 다른, 치열하고 끈질기고 불타오르면서도 테크니컬한 스탁턴의 모습들이 잘 캐치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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