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의 세력 판도를 통해 대한민국의 상황을 압축된 현실로 묘사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소설이 가지고 있는 사회의 거울로서의 가치와 이야기의 본질적인 즐거움이 더해져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해석되었고 이문열 자신이 의도한 것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었죠.
그런데 이 소설은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정보 없이도,
럭키짱류의 학원물을 보는 시각으로 읽어봐도 꽤나 흥미롭습니다.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이 차례차례 라이벌을 무너뜨리고 학교를 정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불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전통적인 학원물의 클리셰를 비틀어 놓았습니다.
주인공이 굴복했던 강한 상대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외부세력(선생님)에 의해 쓰러져 버립니다.
전통적 학원물이 갖추고 있어야 할 소재를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배열과 전개가 전혀 다르죠.
학원물의 컨셉을 차용해 어른들의 이야기, 우리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면서도
그 공간은 철저하게 한정된 곳에 압축시켜 놓았습니다.
소설의 주제을 분석하고 사유를 끌어내기 이전에 독자의 학창시절을 회상시키며 보다 쉽고 즐겁게 다가오는 이야기 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이라 수없이 많이 읽어서 이제는 외우다시피 하는 스토리인데 새삼 그때그때 다른
각도로 보게 만드는건 제 심리 상태나 최근에 읽은 책에 영향받는듯 합니다.
최근에 읽은 책이란 '폭력이란 무엇인가' 인데요,
이 책에서 지젝이 말하는 '구조적 폭력'을
바로 이 소설에서 아무리 몇살 더 많다고는 하지만 초등학생이 구사하고 있다니 참 후덜덜한 것입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를 혼내 줄 힘도 이쪽 저쪽으로 넉넉했다.
급장으로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위임받은 합법적인 권한과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센 주먹이 그것이었다.
그러난 그는 성급하게 주먹을 휘두르기는커녕 직접적으로 적의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숙제 검사나 청소 검사같이 담임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권한을 행사할 때도
그걸 내세워 나를 불리하게 만드는 법도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봐도 으스스할 만큼 아이답지 않는 침착성과 치밀함이었다.'
여기에 나중에 엄석대가 몰락했을 때조차 한병태의 입에서 '난 엄색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몰랐다'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철저하게 주관적 폭력을 배제한 엄석대의 대범함이란...
사실 한병태가 얼른 떠올리기 쉬운 이미지인 얌전한 서울 샌님 범생이만은 아닙니다.
소설 내에서 반 전체 인원 61명(모두 남자)중 엄석대의 영향을 제외하고 순수 주먹싸움만으로도
한병태는 서열 12~14위라고 나오는데요, 학창 시절을 회상하면 아시겠지만
이정도만 해도 거의 준일진급 혹은 조금 아래로 보더라도 누구한테 눌려서 학교생활 할 아이는 절대 아니라는 거죠.
전학 오자마자 딱봐도 전교 캡짱이라는게 확 티나는 엄석대가 부르는데
'물어 볼게 있으면 니가 여기로 와'라고 받아치는 깡다구를 보십시오..
이건 뭐 영화 친구 장동건의 '내가 니 씨다바리가' 대사가 절로 연상됩니다.
한병태vs엄석대의 대결에서 엄석대가 승리를 가져가고 한병태의 패배 시인 장면이 너무나 비참하게 묘사된 데다가
그 이후 엄석대의 오른팔이 되는 과정 때문에
얼핏 엄석대의 압승으로 기억하고 있기 쉬운데요,
사실 그 둘의 싸움은 생각보다 훨씬 막상막하였고 까딱 잘못하면 엄석대가 무너질 수 있었던 고비까지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학원물의 캡짱들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엄석대의 무서움도 무서움이지만,
패배하긴 했어도, 외면하는 반 아이들, 선생님은 물론 부모조차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가운데
오기로 버티며 시도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모두 강구하며 매번 실패로 돌아가면서도 저항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한병태도 정말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압자인 엄석대보다 비겁한 반 아이들을 더 미워하는 입장이라 지금은 오히려 엄석대의 철권통치를 지지하지만,
한병태가 끝내 좌절하면서 창가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몇 번을 다시봐도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게 됩니다...
그리고 엄석대의 몰락을 강제시키는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오기 직전,
한병태가 결정적인 대역전의 실마리를 잡아 새로운 반격을 시도할까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심장이 마구 뛰며
우와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까 하는 기대가 차올랐었죠..
하지만 결국 혁명은 반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더 강한 권위자의 힘을 빌려서야 가능했고,
아이들을 분기시키려 앞장섰던 한병태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도 일이 뜻같지 않자 다시
어딘가의 엄석대를 그리워하고, 예전 굴종의 단 열매를 다시 되찾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문열은 원작과 다른 결말의 원고도 준비해 두었었습니다.
그는 이제 이 세상의 뒤에서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을 휘두루는 일그러진 영웅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 걸까요..
만약에 아직 있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았을지 부정적으로 보았을지..
'미하엘 콜하스'의 주인공 미하엘 콜하스는 말장수였습니다.
어느날 말 한 떼를 말시장에 내다 팔려고 끌고 나가는데
엘베 강(제후국 사이의 경계)에 있는 어떤 성(트롱카 성)을 지나가다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차단목과 마주쳤습니다.
이곳에서는 작센 선제후의 여행허가증을 요구했는데,
콜하스는 여태껏 열 일곱번이나 국경을 넘나들었지만 여행허가증이란게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트롱카 성에 들어가 항의도 하고 사정도 하면서 작센의 수도 드레스덴에 가면 여행허가증을 끊어 올테니
이번 한번만 좀 보내달라고 부탁한 결과,
콜하스가 가지고 있는 말중에 두 마리를 성에 담보로 맡기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말을 맡기고 작센에 가서 여행증 얘기를 했더니 그곳의 서기들은 무슨 헛소리냐며 핀잔을 주네요.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여행증 규정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증명서를 받아 트롱카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그런데 맡겨놓은 말들이 제대로 돌보지 않아 비쩍 말라빠져 있는것이 아닙니까!
거기다가 말을 돌보라고 성에 남겨두었던 콜하스의 충성스러운 머슴 헤르제는 어떤 죄를 지어 쫓겨났다고요?!
융커(트롱카 성주)한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자 나몰라라 합니다.
화가 치솟은 콜하스는 이 부당함을 바로잡겠다고 작센의 수도 드레스덴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
혹시라도 정말 자신의 머슴이 잘못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집에 가서 얘기를 들어 보기로 합니다.
말을 타고 들렀던 마을 사람들, 아내, 머슴 헤르제의 이야기를 종합해 본 결론은,
이 트롱카 성의 융커는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 상습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나쁜 놈이었던 것입니다.
콜하스는 트롱카 성에서 말들을 부려먹는 것에 저항하다가 죽도록 맞고 쫓겨난 헤르제에게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위로했습니다.
콜하스는 그때까지 말 장사를 크게 벌이며 지역 유지들과 폭넓게 사귀어 왔었거든요.
잘 아는 법률가의 도움을 받아 고소장을 작성했죠.
그러나 한 해가 다 가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융커 벤첼 폰 트롱카는 작센 선제후를 가까이서 모시는 힌츠 폰 트롱카와 쿤츠 폰 트롱카의 친척이었던 이유로
법원에서 아예 고소가 기각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에 콜하스는 자신이 사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에게 청원서를 냈으나
이곳에도 역시 융커 폰 트롱카와 사돈간인 백작이 있었습니다.
귀찮게 굴지 말고 얌전히 말이나 되찾아 가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콜하스는 분노했습니다.
말 두 마리가 아까워서 그지랄을 하고 있는게 아니었거든요.
콜하스는 자기 땅을 몽땅 헐값에 팔아버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먼 친척에게 보낸 후 극단적인 행동(반란)에 착수할 계획을 세웁니다.
아내는 깜짝 놀라서 이를 말리며 선제후 궁성의 집사가 예전에 나에게 청혼한 적이 있으니
그 인연을 이용해 자신이 직접 청원서를 선제후께 전달해 보겠다며 궁성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경호병에게 창자루로 가슴팍을 맞아 마차에 실려 돌아와서는 며칠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제 콜하스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콜하스는 자신이 스스로 [판결문]을 작성했습니다.
[융커 벤첼 폰 트롱카에게 명령한다. 사흘 안에 내 말 데려와. 니가 직접 마굿간에서 여물 먹여서 원상복구 시켜놔]
당연히 반응이 없었고,
콜하스는 충성스러운 머슴들 일곱명에게 병기와 말을 지급하여 트롱카 성을 습격,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어 '콜하스 격문'을 작성하여 도망친 벤첼 폰 트롱카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작센 정부에게 융커를 지원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융커를 보고도 자신에게 넘기지 않으면 누구든지 사형에 처하고 재산을 남김없이 불살라 버리겠다고,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콜하스는 점점 군세를 불리면서 온 도시들을 짓밟으며 융커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이런 난리통에 마틴 루터가(종교개혁의 그 루터입니다) 나서서 눈먼 분노에 사로잡힌 콜하스의 부당함을 꾸짖습니다.
평소 우러르며 존경하던 루터가 중재에 나서자 콜하스는 루터의 방에 몰래 찾아갑니다.
나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 스스로 칼을 들도록 만든 것은 바로 국가였다고 주장하죠.
이때 루터와 콜하스의 논쟁이 꽤 볼만하게 벌어집니다.
아무튼 루터는 작센 정부에 콜하스가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억울한 사연을 잘 전달했고
작센 선제후는 콜하스에게 소송 재심리를 신청할 권리와 함께 그동안 일으켰던 반란에 대해 사면령을 내립니다.
콜하스도 이를 받아들여 자신의 무리를 모두 해산시키고 혼자서 드레스덴으로 떠나는데...
아직도 콜하스의 앞길에는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습니다.
콜하스는 과연 일개 시민으로서 거대한 불의와 싸워 이길 수 있었을까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권력자들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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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며 이문열의 '시인과 도둑' '칼레타 파 칼라'가 생각났습니다.
두 소설 다 불의에 항거하여 일어난 세력이 어떠한 한계를 가지고 있고
또 어떠한 이유로 실패하게 되는지를 그린 소설입니다. (칼레타 파 칼라는 실패라고 단정짓기만은 어렵지만요..)
미하엘 콜하스도 귀족들의 횡포에 맞선 그의 외로운 싸움이(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실패였냐 성공이였냐를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소설에서 보여진 것만으로 판단할 때,
특정 상류계층의 월권을 바로잡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 계층의 완강함도 있지만
때로는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의 지나친 과격성과 강직함, 비타협적인 태도도 그 원인이 됩니다.
주인공 미하엘 콜하스는 처음에 억을한 일을 당했고 아무 힘도 없어 참고 있어야만 할 처지처럼 보였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읽다 보면 생각보다 억울함을 풀 방법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단 애초에 주인공이 평범한 시민이라 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수완을 가지고 교우관계도 넓은 상인(말장수)이고,
그 교우관계라는 것이 동네 백수 형들 사귄게 아니라 법조계에서부터 각 지역의 귀족들과도 상당한 교분이 있습니다.
이 책 뒷표지에 나온 선전문구처럼 불의에 저항하는 소시민의 힘겨운 싸움이라는 식의 이해는 모두 들어맞는다고 볼수가 없습니다.
일단 드레스덴으로 가서 고소장을 넣고 그게 안되니까 브란덴부르크에서 청원서를 넣는데까지는 아주 정석적인 대응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집하고 땅 다 팔아가지고 비장한 각오로 혼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직접 찾아가겠다는 결심까지도 괜찮았습니다.
(사실 이때 이미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먹은듯 하지만요)
문제는 아내가 콜하스 대신 청원서를 가지고 갔다고 창자루에 맞아서 목숨을 잃게 되자
드디어 두 눈이 뒤집혀 온전한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말죠.
하인들을 데려가서 트롱카 성을 박살낸데까지는 본 사건의 억울함에다가 아내를 잃을 슬픔까지 생각해서 정상참작이 가능하다고 해도,
끝까지 도망친 융커를 찾아 복수를 하겠다는 집착에 다른 도시들까지 불을 지르고 공격하며
온 나라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도저히 정의로운 칼이라고 보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또 설사 그게 정의라고 쳐도, 그때 세력을 불리는데 급급하여 끌어들인 어중이 떠중이들의 삽질은
나중에 결국 일이 잘 처리될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다시 콜하스의 발목을 잡아버리게 됩니다.
소설 중반쯤에 콜하스가 배상받을수 있었던 결정적인 세 번의 기회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민중들과
너무 강직한 정의감을 내세운 정부 관리의 조처로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첫째로 처음에 콜하스가 융커를 처벌하기 위해 제출했던 고소장을 친척이라는 이유로 기각해버렸던 쿤츠가
콜하스의 말을 백정에게 사서 다시 살찌워주려고 했을 때 광장의 성난 군중들이 쿤츠를 폭행해 버리면서
콜하스에게 유리해지고 있었던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로 콜하스의 말들이 너무 병약해져서 현실적으로 원상회복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트롱카 가문에서 배상금으로 합의을 요청하고 콜하스 자신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을 때
콜하스를 두둔하던 법원장이 너무 꼿꼿하게 트롱카측 협상단에게 무안을 주어 화해가 물건너가 버린 것입니다.
리스베트는 목사의 손에서 성경을 낚아채어 책장을 뒤적이며 어떤 말인가를 찾았다.
이윽고 침대맡에 앉아 있는 콜하스에게 손가락으로 한 대목을 가리켰다.
'원수를 용서하라, 너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풀라'
그러면서 리스베트는 콜하스의 손을 꼭 잡고 숨을 거뒀다.
콜하스는 생각했다. '내가 융커를 용서하면 하느님이 나를 용서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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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