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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1/24 13:33:22
Name 켈로그김
Subject [일반] 친구야 내가 잘못했어.

술친구인 여자사람이 있었습니다.
고양이상의 미인이었지만, 저는 그녀에 대한 작업의지가 없었지요.

지 남친에게 여우짓을 하는걸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제가 여자문제로 삽질하는 모습을 죄다 들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께가 저보다 넓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제 외모가 반인륜적이라는걸 저 스스로 알고있기도 했고..

그 친구를 만날 때는 항상 술복(열심히 술마실 때 입는 츄리닝)을 입고 나갔습니다.
마치 '나 이여자랑 아무 사이도 아니다.' , '나 너한테 잘보이고픈 마음 1g도 없다' 는걸 광고하듯 말이죠.

사실은, 나는 준비되어있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아예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죠.
마주하고 있으면, 제가 가진 모든 종류의 컴플렉스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느낌..



한번은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쓸데없이 이쁘다고.. 니가 외모가 내 수준정도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고.
너를 대하고 있으면, 현실을 강제로 느끼게 되어 스트레스 받는다고..
외모를 꾸며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면, 무심한 척 했던 것들이 모두 가식이었다는걸 들키는 것 같아서 심장을 죈다고..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이게 자칫 잘못 들으면 무슨 절교선언같이 들릴 수도 있으니 말이지요.


켈로그김 : 그냥.. 니가 부럽기도 하고,  니가 차라리 남자면.. 싶기도 하다.
나도 남자라.. 나중에 외로워서 미칠 지경이 되면, 니 외모에 혹해가지고 연애감정이 생겨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친구 : 오.. 참아라.. 내 과거를 다 아는 사람이랑 사귀는건 싫거든?

뭐.. 이런 식으로 오해하지 않을 정도로 늬앙스를 전달하고 이야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


시간이 쬐끔 흘러서, 그 친구는 사귀던 남친과 헤어지고 저는 콜라텍;;에서 만난 연하녀와 연애를 하고 있었지요.
그 친구와 같이 보는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깔끔하게 두번 튕기고 세번째 나간 자리.
귀가시간이 걸리는 순서대로 하나둘씩 탈락하고, 늘 그렇듯 저와 그 친구가 남았습니다.


친구 : 연애한다고 바쁜 척은.. 꼭 초짜들이 티를 그렇게 내요.
켈로그김 : 근데 진짜로 바쁜척 한다고 튕긴건 맞어..
친구 : 이거 미친놈 아냐? 니때문에 스케줄 뭉게졌구만.. 왜 그랬는데?
켈로그김 : 내 마음 나도 몰라.. 사나이라면 이유없이 튕길 때가 있는거란다.

..정말로 내 마음 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늘상 그렇듯.. 시덥잖은 연애상담을 하고 술집을 나섰습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상황이 역전되었다는거? .. 묘한 뿌듯함과 술기운에 기분이 좀 업됐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다른 친구에게 연락해보고 술먹자고 불러내야지.. 하는 차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친구 : 너 내일 바쁜일 없으면 한잔만 더 하고 들어가자.
켈로그김 : 옹.

-----------------------------------------------------------------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전에 뜬금없는 고백(넌 쓸데없이 이쁘다는;;)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놈이 나를 라이벌로 여기는 느낌을 받았다고..

확실히.. 꿀리기 싫은 무언가가 있긴 있었습니다.
그 것이 되도않는 라이벌의식인지, 아니면 반대로 이성으로 진지하게 여기기에 그런건지..


저는 술기운을 애써 추스리고 생각을 끌어모아 말했습니다.


"니가 헤어졌다는 소식에 난 솔직히 내심 기뻤다. 그런데, 그걸로 기뻐하는 내가 왠지 싫어졌다..
그래서 살짝 무리수를 둬 가면서 서둘러서 여자친구를 만든거다..
그리고.. 너를 향한 내 맘의 정체만큼은 정말 모르겠다고..
지나가는 남자 꼬추라도 떼서 너한테 갖다붙여보면, 내 마음을 아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너를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든, 아니든.. 그 마음에 너무 휘둘리지는 않을거라고.
어쩌면 우리는 끝내 사귀지 않고 이대로 지내다 멀어질 수도 있지만,
나한테 중요한건 내가 마음이 편안하고 당당한거라고..
상황에 휩쓸려서 헷갈리는 마음으로 사귀게 된다면, 나중에는 더 후회할거 같다고.."



친구는 '이게 뭔 개소리여?' 라는 표정으로, 간단히 요약해보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살면서 정말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오글거리는 말을 하는 와중에 제정신이 돌아와 급히 수습한 상황에서
그 말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그렇고.. 내가 바로 그 상황..;;


"그냥.. 니가 여러모로 의식되긴 되더라.." 라고 패기없는 한마디를 했습니다.
..술은 다 깨고.. 쪽팔리고.. 민망하고..


-------------------------------------------------------------------

그 친구와는 이후로도 잘 지내다가.. 각자 시집가고 장가가고.. 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연락은 딱 두절되었지만서도..

그 날 그 친구가 했던 한마디가 기억에 아직도 남아있네요.


"니 마음 대충 알겠다. 사귀자는 말만 안하면 도와줄께"


넵.. 저는 그런 말을 해서는 절대 안되지요 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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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14/01/24 13:38
수정 아이콘
훈훈한 글이군요.
YORDLE ONE
14/01/24 13:40
수정 아이콘
말없이 추천만..
Darwin4078
14/01/24 13:47
수정 아이콘
고양이상의 미인 친구분 인증이 시급합니다.
켈로그김
14/01/24 13:58
수정 아이콘
그 집도 애 둘 낳았으니 많이 망가졌을거에요. 추억은 아름답게 간직만 하려고요 흐흐;;
눈시BBv3
14/01/24 14:02
수정 아이콘
세상에는 인... 아 아닙니다
Darwin4078
14/01/24 15:46
수정 아이콘
우리 마눌님 애둘 낳았는데 48kg에 처녀때 허리사이즈 유지하고 있습니다.
허리라인만 보면 아직도 가슴설렌다능..

마눌님 보고 있죠? 저 이렇게 인터넷생활 하고 있어요.
산적왕루피
14/01/24 22:30
수정 아이콘
네??? 날두님께서는 벌써 결혼하셨단 말입니까??????
오카링
14/01/24 13:54
수정 아이콘
[사귀자는 말만 안하면]
14/01/24 13:55
수정 아이콘
근데 와이프님도 이 게시판이 오시나요?
켈로그김
14/01/24 13:57
수정 아이콘
오진 않는데, 제가 어떤 게시판을 자주 본다는 것 정도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거라 마눌님이 알고 있거나, 알아도 될법한 일만 적고 다니죠..;;
14/01/24 14:16
수정 아이콘
아내분께서 알면 안되는 일을 알고 싶네요. 흐흐흐
콩먹는군락
14/01/24 15:32
수정 아이콘
책상안에 큰것을..
서쪽으로가자
14/01/24 13:57
수정 아이콘
애매한 관계의 호감은 있으나 (대쉬했다가 실패하였지만 여전히 친한) 사귈가능성은 없는 여자사람 친구 좀 있는것도 나쁘지 않은거 같습니다. 정말 친구처럼 지낼수 있는 것 같아요.
눈시BBv3
14/01/24 14:02
수정 아이콘
사귀자는 말만 안하면... 네 뭐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죠 크크
14/01/24 14:18
수정 아이콘
딴 이야기이긴한데 저는 이상하게 눈시님하고 쿠마님이 가끔 헷갈립니다.
왠지 제겐 두분 이미지가 비슷해서 그런거 같습니다;;;
아프나이델
14/01/24 15:02
수정 아이콘
한분은 남자를 좋아하고, 다른 분은 모쏠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로 구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음? 여기가 유게가 아니었던가?...
눈시BBv3
14/01/24 19:23
수정 아이콘
어헣 위너에 음악하시고 교회오빠이신 쿠마님과 헷갈리신다니 저로선 영광입니다
4월이야기
14/01/24 14:03
수정 아이콘
수많은 변화구만 날리다.. 미모의 고양이상 친구분의 마지막 돌직구에 승부가 엇갈린 케이스;;;
하지만 켈로그님, 친구분 모두 패자는 아닌 ND 경기..

근데 그 경기가 마지막 경기였네요;;
은수저
14/01/24 14:19
수정 아이콘
풋내나던 시절에 풋풋한 이야기인데 웬지 맵고 알싸한 풋고추의 맛이 느껴지니 이 아이러니함은 뭘까요 크크 재밌게 읽고 갑니다.
켈로그김
14/01/24 14:32
수정 아이콘
그건 지나가던 남자의 고추맛입니다..;;
14/01/24 14:32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 훈훈하네요
STARSEEKER
14/01/24 14:42
수정 아이콘
고양이상이 어깨가 넓으면 호랭이아닙니까..?
아니다 유이!!?
14/01/24 15:21
수정 아이콘
예쁜_여자와_친구가_될_수_없는_이유.txt
14/01/24 17:42
수정 아이콘
...저렇게 막 대해도 될 사람은 되는군요...ㅠ_ㅠ
낭만토스
14/01/24 19:34
수정 아이콘
전 또 그 책상 주인이었딘 친구에게

몇십년만에 사과하는 글인줄...
카레맛동산
14/01/25 03:50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런 줄 알고 설레면서 클릭했습...
PoeticWolf
14/01/25 02:33
수정 아이콘
훈훈하다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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