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끼는 것들을 그냥 일기 형식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일기 형태니 반말이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결혼한지 2년이 지났지만 처가집은 묘하게 불편한 곳이다. 석달 전 처가집 근처로 이사오면서 오히려 방문 횟수는 더 줄어들었지만 거리가 가까워서 방문 시간대는 다양해지면서 처가집 식구들과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하게 마주치게 된다.
- 오늘도 현관문을 지나서 들어가면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쇼파에 앉아 계신다. 장인어른은 집에서 주무실 때와 식사시간을 빼면 거의 대부분 쇼파에서 티비를 보고 계신 것 같다. 인사를 하면서 거실로 들어서니 오늘도 티비에서는 '티비 조선'의 뉴스를 가장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 집에서는 절대 틀지도 않는 채널인데 여기서는 참 자주 보는 것 같다. 지나가는 말로 종편에 대한 얘기를 해본다. 다른 채널를 보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살짝 얘기해본다. 장인어른은 나에게 진정한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은 '티비조선'과 '채널 A' 밖에 없다고 하신다. 공중파는 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진정한 언론이 아니라고 하신다. 속으로 " KBS와 MBC도 맘에 안차신다고?" 하는 놀라움을 느끼며 답답함은 내 속으로 그냥 묻어버린다.
문득 장인어른에게 첫 인사 왔을때 생각난다. 술이 몇 잔 오간 후 당연한 질문 "부모님은 고향이 어디신가?" 이에 "할아버지는 이북이시고, 아버지는 서울, 어머님은 경기도 토박이 싶니다"라고 대답한다. 옆에서 장모님이 한 말씀 거두신다." 다행이네. 전라도 였으면 큰일 났을 거야" 하신다. 속으로 "이건 우리 부모님과 똑같네" 생각한다. 그래도 약간 이상한 느낌은 사실이다. 경북 의성 출신인 장인어른은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술을 따라주신다. 이때 받은 느낌은 무엇인가 큰 산을 넘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혼 1년후 아버님은 뉴스를 보시다가 나에게 물었다. " 이명박이 대체 뭘 잘못한거야? 김서방 대통령은 대체 뭘 잘못한건가?" 그때만 해도 열의를 가지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버님은 여전히 전임 대통령을 정말 좋아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젠 그런 열의있는 대답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대답을 들으시던 장인어른의 표정이 나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 자식은 뭐지?라는 그런 표정 말이다.
- 처남이 군대를 가고 메이커 사단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철책경계를 담당하고 있는 최전방 사단이다. 장모님은 북한과 충돌이 있을까봐 걱정하신다. 나에게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말씀하신다. "나도 이제 야당 찍을거야" 그리고 지난 대선때 처남의 전화가 왔을 때 이런저런 얘기끝에 장모님이 "대통령 누구 찍을거야?"라고 물으셨고, 처남의 대답은 "문재인"이었다. 그러자 장모님의 말씀은 "이제 여자가 한 번 할때도 되었자나. 박근혜 찍어" 였고 우리 처남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 처남은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들이 되었다.
- 결혼하기 직전 친척들이 처가집에 모였다. 당연히 난 이리저리 불러다니며 따라주는 술을 받고 있었다. 질문은 대부분 첫 인사때 아버님이 물어보신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 처제가 데려온 남자친구가 내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어른들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로 향한다. 변함없는 질문이 향했지만 대답이 나와 달랐다. "부모님은 전라도 분이십니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3초간 정적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대답과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후 시나리오. 이 정적은 나 마음속에 크게 각인되어 자주 생각난다. 그리고 몇 달후 작은 할어버지께서 그 녀석을 싫어하고 있다는 얘기를 처가집에서 듣게 되었다.
- 정치에 별 관심없다고 말하는 와이프는 항상 나와 정치적 의견이 부딪힌다. 장하나 의원을 둘러싼 논쟁으로 뉴스가 장식되던 당시 어느날 퇴근을 하니 와이프가 나에게 말한다. "그래도 저건 너무하는거 아니야? 어떻게 대통령에게 저럴 수 있어?"라고 한다. 난 마침 보고있던 야구관련 사이트의 불펜 게시판의 최다 추천 글을 보여준다. 노통때 당시 한나라당이 플랜카드를 들고 국회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던 사진이었다. 그러자 와이프가 말한다. "옛날 일은 지난 일이지. 그렇다고 똑같이 그럼 안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어?" 나는 "이게 다 나라가 발전하자고 하는 일이야" 라고 가볍게 응수한다. 그러나 속으로 역시 조기교육은 소중하구나 생각했다.
- 어제 치킨을 시키면서 처남을 불렀는데, 처가집 식구들이 모두 집으로 왔고 모두 모여서 가볍게 반주와 치킨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처남이 말을 하다가 나온 단어는 충격이었다. "전라**"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그 단어.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부류가 사용하던 단어. 술김에 내가 말한다. "쓰지마. 좋은 말이 아니야. 내가 너에게 "경상디언" 하면 좋겠어? 그러자 장인어른이 "너가 전라도 출신이냐?" 하면서 못마땅해 하신다. 그러면서 역사 교과서 이야기로 얘기가 흐른다. 장인어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0%는 무엇인가 외압을 통해 공정하게 이뤄진 것이 아닌 증거다"하신다. 그때 티비조선에서 어떤 논조를 말하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물론 반박은 했지만 이제 기대하지 않는다.

결혼이후 처가집은 점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점점 줄어드는 말수 무엇인가 모를 불편함이 존재하는 곳인것 같습니다. 하긴 부모님에게도 "종북"이라고 들었는데, 여기도 비슷한 포지션이겠지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조직이었다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서 좀 풀릴 것 같은데, 처가집은 너무 어려운 곳입니다. 사위라는 지위는 참 약자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꾹 참고 살아갈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는 곳. 이 이야기를 여기라도 쓰지 않으면 정말 답답할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쓰고 나니 약간 시원해 집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느낌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