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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1/06 23:29:13
Name 이젠다지나버린일
Subject [일반] 변호인 감상후기. 스포일러 조금 있습니다.
1.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

첫번째로, 
변호인은 송우석이라는 한 인물의 성장 영화입니다.

고시를 포기하고 막노동을 하고, 평소 다니던 국밥집 식대도 떼먹고 도망가던 고시생이 변호사가 됩니다.
고졸이라고 무시받고 등기나 뗀다고 무시받아도 기어코 부산에서 나름 성공한 삶을 이루어냈습니다.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바뀌는 세상이 아니라며 자신의 수입을 좇던 변호사는
국밥집 아들을 위해서 국보법 위반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고

결국 민주화 운동의 가장 앞에 자리하는 인물로 거듭나게 되죠.
이 영화는 송우석이라는 인물의 성장을 담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변호인은 폭압적 권력에 기생했던 '사법과 언론 체계'에 대한 영화입니다.

문민정부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군사 독재 정권의 중심부에 대해서
그것이 불완전하든 완전하든,
어떤 형태로든 진상규명과 단죄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렇지만 군사 독재 정권에 기생하며, 그들의 정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했던
교육, 문화, 언론, 사법 체계에 대해서는 어떤 청산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 나름의 반성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변호인은 그 모습을, 특히 사법 체계에 대해 콕 찝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중반부, 재판장과 송변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재판장 뒤로 어렴풋이 29만원 각하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당시의 사법부가 정권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죠.

송우석은 어쩌면 기존의 사법 체제에서 볼 때 '모난 돌'이었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종속을 거부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합하자면 변호인은 한 인물의 성장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어두운 우리나라의 과거를 재조명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2.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장면 셋

첫번째 장면은
국밥집에서 송변과 기자가 된 동창생(이성민씨)이 싸우는 장면입니다.
뭐랄까 음료수를 마시는데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고 목에 걸리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국밥집 들어올 때부터 '이미' 이성민씨 표정이 뭔가 뚱하고,
다들 하는 건배도 하지 않고 혼자 떨어져 나와 티비를 트는 모습이 좀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우연히' 거리에서 송변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서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다. 는 말을 했다가 싸움이 났다는 식으로 전개했다면 어땠을까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걸 말하기까지 조금 매끄럽지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두번째 장면은
해동건설 차기 CEO 류수영씨가
미국식 민주주의, 부르주아 시민혁명에 대해 말하는 느낌입니다.
법정씬에서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이 장면에서 감정이 뚝 끊어졌습니다.
맥이 뚝 끊기더라구요.

세번째 장면은
결말, 1987년 박종철 군 추도식 장면입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느낌이 들긴 했는데,
이 부분은 이 영화가 송우석의 성장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구요.

 
3. 평가

우리 나라는 아픈 기억을 너무나도 많이 겪어왔습니다.
군사 독재 정권의 기억도 그 중 하나구요.
아픈 기억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고 기억해야 할까요.
역사를 좋아하고 또 공부하는 입장에서,
남영동 1985, 혹은 변호인 같은 영화가 꾸준히 제작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씁쓸함과 훈훈함이 교차했습니다.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있는 언론과 사법의 부조리는 지금도 여전하죠. 20년이 지났는데도요.
그래도 1981년의 부림 사건이 20년이 지나서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20년 뒤에는 조금은 더 나아지겠죠?

변호인은 분석하고 따지면서 보기보단, 
느끼고 생각하면서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아직도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정말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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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카토
14/01/06 23:37
수정 아이콘
저는 영화시작하고 30분동안 "이거 뭐야...별로 재미가....."이렇게 인상을 받고있을때쯔음...
재판이 시작되고 영화가 완전 바뀌더군요....
그 어떤 재판영화보다 몰입되더군요. 참 인상적이었고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마지막에 이름 한명한명 부를때...이건 좀 너무 작위적이네....그래도 감동적이다....라며 눈물 훌쩍였는데...
그 장면이 실제 있었던 사실이라는것을 알고 너무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 정말 추천합니다.
14/01/06 23:39
수정 아이콘
영화보는 내내 남영동 1985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영원한초보
14/01/06 23:39
수정 아이콘
우리 나라는 정말 아픈 일들을 많이 겪어 왔습니다.
80년대 민주화 항쟁도 정말 아프지만
해방이후 정세는 이보다 몇배는 아픈 것 같습니다.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웹툰을 보면 변호인보다 수십배는 아픈 것 같습니다.
아프면 원인을 제거하고 치료해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픔을 분노로 표출하고 기득권이 반응을 안하면 시위로 대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것 같은데
이것이 잘 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네요
이젠다지나버린일
14/01/06 23:46
수정 아이콘
과거 청산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부족해서 그런듯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과거사 청산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보통
일제 강점기/한국전쟁/군사독재정권 시기 있었던 일들인데

일제 강점기 과거청산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진상규명이 부족하구요

한국전쟁시기(양민학살)의 일들은 이제 규명 단계를 겨우 벗어났을 뿐이고,
규명된 진상이 전사회적으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피해자 배상 소송의 증거로 활용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죠.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은...
아시다시피 "군사독재정권이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다"라는 명제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공론이 형성된다 하더라도 진상 규명 - 가해자 처벌 - 피해자 보상 - 올바른 교육의 단계가 남아 있어서 첩첩산중인데
공론형성조차 되고 있지 않으니 갈 길이 멉니다.
영원한초보
14/01/07 00:07
수정 아이콘
5.16이후 잘못에 대한 처벌이 미지근 한 것은
그 시절 정권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이 한국사회 기득권을 잡았기 때문이겠지요
정의롭지 못한 것에대해서는 처벌을 올바르게 내려야하는데
당시 정세상 현실적으로 넘어갔다고 현재에도 똑같이 넘어가자는 문화가 자리잡으면
영원토록 올바른 것에 대한 국가적 바로잡음은 힘들어 질 겁니다.
민주화 투사들은 자신들이 민주화를 완성한 것처럼 기쁨을 누리지만
거짓된 승리였을까요?군사독재보다 더한 자본독재는 더 강력한 정당성을 얻고
자유의 선행조건인 평등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심이 미흡한 상황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역사적 중간 단계라면 크게 신경안 쓸 수도 있지만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만개헸다거 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일본 밖에 없습니다.
그런 현실에서도 한국보다 자본주의를 70년 빨리 받아들인 일본도
정치적으로는 전제왕조라고 여겨도 될 정도의 국가이고
오히려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정치적으로 민주의식이 발달했다고 생각되는 상황이지만
그러한 대한민국도 세계적으로는 언론의 자유조차 점점 자본에 잠식되어가는
비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너무나 슬프네요
미네기시 미나미
14/01/06 23:47
수정 아이콘
저도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를 봤다 라고 느낀 영화였죠.
저도 류수영이 나왔을때 영화에 꼭 필요한 역할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원한초보
14/01/07 00:11
수정 아이콘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개혁적인 자본가의 의식을 나타내는데 필요한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누구나 다 좋아하지만 송우석과 류수영(해동 건설 후계자)는 정치적 체재 수렴에서는 의견이 갈린거죠
개미먹이
14/01/07 00:07
수정 아이콘
해동건설은 우리 사회의 한 목소리를 담당하죠. 브루주아를 대변하던 송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젠다지나버린일
14/01/07 00:1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제가 생각하는 변호인의 단점이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가 결론을 내려놓고 관객에게 주입시키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어느 정도 납득이 가더군요.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잘 아는 사실이고 공감이 가는데,
그 해당 장면으로 가는 과정, 해당 장면의 전개가 좀 억지스럽고 뜬금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단점은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가치로
덮어지지만요.
영원한초보
14/01/07 00:49
수정 아이콘
억지스러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것이 뭘까요?
ChojjAReacH
14/01/07 00:22
수정 아이콘
이창준이라는 캐릭터나 해동건설은 송우석이 부동네사건을 맡으면서 마음가짐의 변화를 표현해주는 매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식 민주주의나 이런것들을 스윽 던지기만 하는 것일뿐 큰 의미없는 메시지와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국내에서 손에꼽는 건설회사 차기 CEO인데 개인의 경영이념같은것도 없이 넘어가기엔 뭣하니 넣은걸로 보이구요.
오카링
14/01/07 00:44
수정 아이콘
2에서 둘째장면이야 윗분들이 많이 말씀하셨고.. 첫째장면은 처음부터 언짢은 상태였던 건 이미 그 친구가 평소에 자괴감이 쌓여있었다는 설정이라 납득 못할 정돈 아닌거 같아요.
멀면 벙커링
14/01/07 00:51
수정 아이콘
누적관객 800만명 돌파했네요. 천만관객 돌파도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베인티모마이
14/01/07 01:18
수정 아이콘
해동건설을 보면서.. 저는 당장 저 시대에는 큰 관련이 없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난 뒤에 한국 현대사는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절과도 관련되는 자본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정치는 시장에 포섭되었다는 퇴임 후 노무현 대통령의 쓴웃음과 삼성과의 관계 등이 생각나더군요.
朋友君
14/01/07 02:00
수정 아이콘
돌 전의 아기가 있어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천만관객에 일조하고 싶네요. 어떻게든 조만간 꼭 보러가야겠습니다.
14/01/07 02:10
수정 아이콘
저도 적절한 타이밍에 살짝쿵 등장하는 전두환 사진이 주는 효과가 좋더라구요
단약선인
14/01/07 13:52
수정 아이콘
2013년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저땐 그랬지 후후훗... 하며 나와야 하는데...
문제는 그때와 별반 다를것이 없는 현실에 맘이 무겁더군요.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운 분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나오고, (제 집사람...)
시대가 속상한 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오게 됩니다. (저....)
집에 와서 즐겁게 노는 애들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퍼서...

한민족 역사에 개혁, 혁명 이런거 하던 사람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폭싹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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