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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1/05 21:45:45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홍안의 블랙 팬더가 역사 속에 잠들기까지.
이미 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몇 시간 전 포르투갈의 축구 레전드 에우제비우가 심장마비로 인하여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향년 71세이며, 이달 25일 그의 생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4/01/05/1003000000AKR20140105057500007.HTML

개인적으로 고리짝 축구 영상에서 본 선수 중 가장 인상깊었던,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가 안 떠오르는 선수였고, 플레이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던 터라 마음이 많이 쓰이네요. 고인을 추모하며 그의 축구 인생을 간략하게 정리해봅니다.



1.


1961-62 시즌 유러피언 컵(현재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결승전에서의 에우제비우의 활약입니다. 모잠비크 태생인 에우제비우가 포르투갈의 벤피카에 들어온 첫 시즌에 있던 일이었죠. 신예 에우제비우는 20살의 약관의 나이로 이 경기에서 2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끕니다.

....61-62시즌,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벤피카가 2-0에서 푸스카스에게 3골을 내줘 2-3으로 뒤지다가, 에우제비오의 연속골에 힘입어 결국 5-3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꺾으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레알의 푸스카스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역전을 일궈냈고, 자신의 경력에서 3번째 유러피언 컵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마지막 호각이 울리자, 그는 에우제비오를 찾아가 자신의 유니폼을 건네주었다. 이것은 왕이 후계자에게 망토를 물려주는, 즉 최고의 선수 자리를 물려주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렇게 벤피카는 유러피언컵을 2연패함으로써 레알 마드리드를 대신해 유럽 최고 클럽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약관의 나이인 에우제비오가 있었기 때문에 50년대의 레알처럼 벤피카도 60년대를 호령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감독이었던 구트만이 그대로 머무르기만 했다면 말이다...

- 조나단 윌슨의 『축구 철학의 역사』

이후 에우제비우는 60년대 내내 다른 선수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유럽에서 왕노릇을 했고, 벤피카는 3번 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라가지만 번번히 준우승에 그치게 됩니다.



2.
비록 벤피카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만, 사실 성적만큼 스쿼드가 강력한 팀은 아니었습니다. 레프트윙이었던 시모이스나 중원의 콜루냐는 분명 좋은 선수였지만, 그 외에는 대단하다고 할만한 선수는 없었죠. 벤피카 이전의 레알 마드리드나 벤피카 이후의 아약스 같은 팀에 비하면 확실히 격이 떨어집니다. 때문에 에우제비우는 경력 내내 스스로의 역량으로 팀을 캐리해야했죠. 득점 뿐만 아니라 볼을 운반하고 회전시키며 경기 흐름을 만들어가는 역할까지 해내야하는 등, 팀내에서 에우제비우의 의존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이는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의 에우제비우의 팀내 득점 비율에서도 드러납니다.

61-62시즌
벤피카 6전 21골/에우제비우 5골 (23.8%)

62-63시즌
벤피카 7전 12골/에우제비우 6골 (50%)

63-64시즌
벤피카 4전 10골/에우제비우 4골 (40%)

64-65시즌
벤피카 9전 27골/에우제비우 9골 (33%)

65-66시즌
벤피카 5전 18골/에우제비우 7골 (38.9%)

66-67시즌
벤피카 4전 6골/에우제비우 3골 (50%)

67-68시즌
벤피카 9전 10골/에우제비우 6골 (60%)

68-69
벤피카 5전 12골/에우제비우 1골 (8.3%)

69-70시즌
벤피카 4전 10골/에우제비우 4골 (40%)

70-71
벤피카 4전 11골/에우제비우 7골 (63.6%)

저 중 팀도 잘하고 에우제비우도 잘한 61-62 시즌만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했습니다. 벤피카의 득점에서 에우제비우의 득점을 제외하면 경기당 득점률 처참해지죠. 저 시기 유럽 클럽 대항전은 8-0 같은 스코어 나오는 경기도 종종 있어서 경기당 득점률이 꽤나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67-68 시즌은 에우제비우 득점 빼면 벤피카의 나머지 선수들이 9경기에서 3골 밖에 못 넣었습니다.;

에우제비우 曰
"너희가 더 열심히 뛰어줘야 해. 스타일스(잉글랜드, 맨유의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를 따돌리기가 힘들어..."



3.
에우제비우를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966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입니다. 그는 6경기에서 9골 2도움을 기록하며 당시 약체에 불과했던 포르투갈을 3위로 이끌었죠. 지금의 포르투갈은 아무리 허섭하네 어쩌네 비판을 받더라도 월드컵을 못 나가면 욕 먹는 팀이고, 보통 탑시드 레벨, 그러니까 8강 정도 레벨의 팀으로 평가되곤 합니다. 실제로 성적도 꾸준히 내고 있지요. 그에 반해 에우제비우 시절의 포르투갈은 1966년에 월드컵을 처음 나갔습니다. 에우제비우 이후에도 한참 다시 못 나타나다가, 1986년이 되어서야 다시 월드컵에 나가게 되죠. 이때까지의 월드컵 진출 횟수는 정확하게 남한하고 똑같았습니다.(각각 2회) 따라서 당시의 포르투갈은 지금의 포르투갈과 같은 국가라고 할 수 없고, 차라리 슬로베니아나 마케도니아 같은 팀들에 빗대어 생각하는 게 더 실재에 부합할 것입니다. 즉, 에우제비우를 제외하면 포르투갈은 월드컵 역사 자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거죠. 에우제비우가 역대 월드컵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우승을 못한 선수 중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다는 데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겁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북한전. 조갑제가 환호할만큼이나 시원하게 북괴를 발라버립니다.



4번째 골 장면입니다.



컬러 버전



월드컵을 2연패했던 우승후보 0순위 펠레의 브라질을 격침시킨 경기입니다. 이 경기에서 에우제비우는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3골에 모두 관여하지요.



우승후보 중 하나였던 헝가리 역시 에우제비우에게 크게 혼쭐이 납니다.



4.
간단히 그의 경력을 요약하며 글을 마칩니다.
포르투갈 리그 우승 11회 (1960–61, 1962–63, 1963–64, 1964–65, 1966–67, 1967–68, 1968–69, 1970–71, 1971–72, 1972–73, 1974–75)
포르투갈 리그컵 우승 5회 (1961–62, 1963–64, 1968–69, 1969–70, 1971–72)
1961-62 유러피언 컵 우승, 1962–63/1964–65/1967–68 유러피언 컵 준우승
포르투갈 리그 득점왕 7회 (1964, 1965, 1966, 1967, 1968, 1970, 1973)
유러피언 컵 득점왕 3회(1964-65, 1965-66, 1967-68)
1968년 유러피언 골든부트 초대 수상 및 1973년 수상
1970년 올해의 포르투갈 선수 초대 수상 및 1973년 수상
1966년 월드컵 3위, 득점왕.
유러피언 컵 통산 65경기 46골(역대 2위 기록)





전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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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현
14/01/05 21:54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의 기록이나 영상도 이렇게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은 차범근씨의 국가대표 경기 영상도 흔한 기록도 찾기 힘드니... 그보다 더 예전의 레전드는 그냥 잊혀져버렸죠.

에우제비오라는 전설은 갔지만 그 기록이나 영상은 이리 남았으니... 앞으로도 기억되겠죠. 안녕히 가시길... 당신은 축구사에 영원히 남을겁니다
사티레브
14/01/05 22:06
수정 아이콘
구밀복검님 책을 봐도 잉글랜드전 전까지 진짜 다해먹은걸 알수가 있었죠
r.i.p.
알킬칼켈콜
14/01/05 22:21
수정 아이콘
핑크색 눈을 가진 검은색 팬더곰을 상상했으나 ..
14/01/05 22:37
수정 아이콘
R.I.P

there is one Eusebio , 먼나라의 축구팬이 레전드의 가시는길에 경의를 담은 박수와 짧은 묵념을 보냅니다
낭만토스
14/01/05 22:58
수정 아이콘
축구끈 짧은 저도 아는 레전드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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