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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21 17:06:03
Name 제리드
Subject [일반] 리버풀의 추억 (수정됨)
대략 고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때 막 해외축구를 보기 시작한 저는, 로만 인수와 함께 떠오르고 있던 신성이었던 첼시라는 팀을 좋아하게 됩니다.
폭풍간지(그리고 졸렬)을 보여주는 감독 무간지의 영입과 함께 보여준 04-05의 그 강력한 모습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무릎 슛 등으로 뽀록바로 불리다가 신으로 등극한 드록바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격수 였고,
에시앙-램파드-마켈레레 라인은 듬직하기 그지없었죠.
그런데 첼시 팬을 하면서 절대로 좋아할 수 없었던 팀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르셀로나와 리버풀이었죠.
세계 최강이라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대0으로 박살내며 리그의 왕좌를 차지했던 첼시였지만,
챔피언스 리그를 차지하는데는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흉(?)이 바로 저 두팀이었죠.
바르셀로나와 첼시는 서로 유럽을 양분하던 시기에 16강에서 두번 만났습니다.
한번은 첼시가, 한번은 바르셀로나가 이겼죠. 바르셀로나가 이겼을 때는 바르셀로나가 유럽을 제패했습니다.
그러나 첼시가 이겼을 때는 실패했죠. 바로 리버풀 때문이었습니다.
리버풀은 리그에서는 큰 위협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만은 유독 강했습니다.
만나는 족족 발목을 잡기 일쑤였죠. 그래서 저는 리버풀과 그 상징적인 선수인 제라드 선수를 지독히 싫어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호불호이니 큰 문제가 될 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라이벌이라서 싫어하는거지 딱히 악감정은 없었는데요,
리버풀 팬인 친구들도 많았고 영국 리그를 주로 봐서 친근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더한 비극은 그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나이가 찬 저는 어쩔 수 없이(?!)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충북 충주시에 있는 탄약창이라는 시골 부대로 배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지인 4중대로 전입을 가게 되었는데요,
한참 차를 타고 산속으로 들어가더니 무슨 판자집 같은 막사 앞에다 던져놓고 가버려서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산속 오지의 독립중대라 그런지 몰라도, 제식이나 이런건 빡세게 따지지 않았는데 각종 소소한 부조리들이 많았죠.

저는 소총수로 경계근무를 좀 나가다가 4년제 대학을 다닌다는 이유로 인사행정병이 되어 중대본부로 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만난 두번째 분대장이 하필 리버풀의 극성 팬이었습니다.
항상 You'll never walk alone을 외치면서 심심하면 저를 데리고 놀았는데요

"세계 최고의 팀이 어디지?" "리버풀입니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누구야?" "토레스입니다!"

라며 항상 앵무새처럼 외쳐야 했습니다. 또한 강제 개종(?)되어서 항상 리버풀을 응원하고 리버풀 경기만 봐야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항상 빅4안에 들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위엄을 떨쳤던 리버풀은
제가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갑자기 7버풀이 되어버렸는데요,
우리 분대장은 리버풀의 순위가 떨어질 때마다 저를 지독히도 괴롭혔습니다.
저는 첼시팬이지만 첼시팬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토레스와 제라드를 찬양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한번 큰 사건이 일어났죠. 이적시장 마지막 날, 중대에 갑자기 토레스가 첼시로 이적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전 '설마 그런일이 일어났겠어?' 라고 흘려버렸지만 그 분대장은 애가 탔는지 하루종일 안절부절하다가
일과가 끝나자 절 따로 부르더니 토레스가 진짜로 이적했는지 알아오라는 겁니다.
저희 중대는 말했듯이 산속 오지라 싸지방도 없었고 외부와 접촉할 방법이 따로 없었습니다. 당직사관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결국 어쩔 수 없이 사회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토레스가 진짜로 이적했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더군요.
분대장에게 가서 사실대로 말하자 대가리를 박으랍니다. 그래서 그낭 저녁 한참동안 노란 침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죠.
하지만 왠지 웃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꼬시다...
그러나 첼시에겐 그게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일 줄은 그때는 몰랐었지만요.

이번시즌 리버풀이 다시 탑버풀로 올라오며 맹위를 떨치니 갑자기 그 선임이 생각나는군요.
이제는 미운정이 들었는지 제라드가 은퇴하기 전에 한번쯤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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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Again
13/12/21 17:09
수정 아이콘
크크 제 분대장 시절 아무도 관심없던 걸스데이, 에이핑크 뜬다고 두고보라고 후임들에게 세뇌시켰는데...
난 틀리지 않았어!!
제리드
13/12/21 17:22
수정 아이콘
전 군시절에 시스타가 굉장히 예쁘다는 사실에 놀랐었죠
구밀복검
13/12/21 17:30
수정 아이콘
전역하기 2주전인 2011년 3월 9일 새벽에 자체 연등으로 분대원들과 다같이 아스날과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 2차전을 봤었죠.
헤비하게 보는 축은 저밖에 없고 다들 라이트하게 챔스 정도나 보는 아해들이라서 특별히 열기어린 분위기 속에서 보진 않았는데, 경기 끝날 때 쯤 되니 전원이 바르셀로나로 대동단결-0-; 눈정화 했다고 좋아합디다. 0슈팅...도 인상깊었고.
13/12/21 18:21
수정 아이콘
2003년 5월쯤, 카투사 한 신병이 너무나 챔피언스 리그가 보고 싶어서, 새벽 3시 반 쯤 일어나서 데이룸에서 티비를 봅니다. 유베-레알이었던가. 너무나 재미있던 경기에 그는 선임병장이 지나가다가 자신을 발견한 것도 모르고 골이 터질 때 감탄사를 지르다가 우연히 선임병장을 발견하는데...
13/12/21 19:08
수정 아이콘
또라이네요.
개인적으로 리버풀을 안 좋아하는지라 감정이 몰입되네요.
13/12/21 19:18
수정 아이콘
갑자기 든 생각인데 토레스 vs 앤디캐롤 누가 더 민폐일까요? 실력은 토레기가 낫지만 앤디캐롤은 과감하게 빨리 버렸는데 말이죠.
제리드
13/12/21 20:34
수정 아이콘
토레스는 바르샤전 백도어로 감동이라도 줬으니....
물론 그걸로 밥값한건 아니지만
13/12/21 20:18
수정 아이콘
허..... 전 군대있을때 선임 한명이 리버풀과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이었는데 두 팀이 패배하는순간 항상 억지 내리갈굼이 시작됐었습니다. 그게 너무 더럽고 치사해서 마음속으로 두 팀이 지기를 항상 바랬었고 갈굼 먹으면서도 속으로 엄청 좋아했었는데 그게 관성이 붙었는지 요즘도 저 두 팀 경기를 우연히 보면 상대팀을 열심히 응원합니다 크크
글쓴분과는 다르게 군대에서 먹은 수많은 욕들때문에 안티팬 입장을 못벗어나겠더라고요
랍상소우총
13/12/21 20:20
수정 아이콘
그 즈음에 휴학하고 딩가딩가 놀고 있었는데, 당시 챔스 중계를 빼놓지 않고 봤었죠.(아마도 챔스를 다 챙겨본 해는 처음이자 마지막해일거라고 생각을..)
그 해의 리버풀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생방으로 본 경기중 이스탄불 기적은 2002년 이탈리아전 빼고는 최고의 경기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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