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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1/23 20:09:48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리뷰] 사이비(2013) - 실사영화를 압도하는 애니메이션의 힘 (스포있음)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리뷰] 사이비(2013) - 실사영화를 압도하는 애니메이션의 힘



상영관이 많지 않아 검색 끝에 찾아낸 구로 CGV 무비꼴라쥬관에서 만난 영화 [사이비]. 영화의 시작은 다소 거슬렸다. 부자연스러운 캐릭터들의 움직임, 배우들의 대사와 따로 노는 듯한 캐릭터들의 입모양. 미국이나 일본 등지의 대자본 기술력에 의해 만들어진 대작 애니들만 보다가 기술적으로 부족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작화나 캐릭터 모션을 보다보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무언가 불만족스러웠다. 그렇게 극 초반, 다소간의 실망을 안고 관람한 영화 [사이비]. 하지만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이내 흡입력 있는 영화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더불어 영화를 보는 도중, 그리고 보는 내내 생각했다.

'이 영화, 나중에 꼭 다시 봐야지.'

마귀의 계략인 것입니다!


"이제 곧 이 마을은 수만 톤 물속에 잠길 것입니다. 마귀의 계략인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댐 건설로 인해 수몰예정지역이 되어버린 한 시골 마을.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지급받고 정든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마을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여있던 즈음 외지로부터 두 명의 인물, 성철우 목사(오정세 분)와 최경석 장로(권해효 분)가 나타난다. 반석 기도원 설립을 통한 새로운 삶의 터전과 천국에의 구원을 설파하는 이들을 마을 사람들은 마치 메시아처럼 떠받들게 된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이들을 믿지 않는 유일한 사람인 민철(양익준 분). 그는 집 밖으로 나돌며 툭하면 아내와 딸에게 폭행을 일삼고 딸이 모아둔 대학등록금까지 술과 노름으로 탕진하는 이른바 술주정뱅이 폭군이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에 몰아치는 광기에 휩싸인 종교적 맹신을 유일하게 반대하고 거부하는 오직 한 사람이 바로 그이기도 하다.

이렇듯 진실을 말하는 악인(惡人)과, 거짓을 말하는 선인(善人),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는 이러한 화두를 던져주며 시작된다.

맹목적 믿음이 가져온 폭력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우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이비]는 (감독의 전작 [돼지의 왕]과 더불어)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해도 무방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다른 것 다 떠나서, 기본적으로 나는 영화가 가져야할 최우선의 덕목을 '재미와 흡입력'이라고 본다. 아무리 의미있고 철학적인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일단 영화가 재미없고 이야기에 흡입력이 없으면 '후진 영화'라는 생각이다. 그런 차원에서 연상호 감독의 사회고발 애니메이션 [사이비]는 무엇보다 내용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이야기의 흐름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들며, 그 전개 과정이 공감이 가고 제법 그럴듯하다는 얘기다. 내러티브는 탄탄하며 캐릭터들은 입체적이고, 이러한 캐릭터에 영혼을 부여한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훌륭하다. 그리고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너무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조소와 쓴웃음까지. 나는 여지껏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아오면서 이처럼 날이 서있고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과 묵직함을 동시에 지닌 작품을 보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 이 영화를 단순히 '안티 기독교 영화'라고 평한다면, 그것은 무척이나 단편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물론 '사이비 종교'가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인 것은 사실이나, 영화는 단순히 우리 시대 종교에 대한 맹신과 광기에 대한 고발의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스스로의 맹목적 믿음이 가져온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이 영화의 칼날이 겨누고 있는 정확한 지점은 사이비 종교가 아닌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진실이 행복에 우선하는가


수몰 위기의 반석 마을을 구원해 줄 메시아로 떠오른 성목사를 구세주처럼 떠받들고 자신의 보상금을 바치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믿고 앞장서서 매달리던 마을 구멍가게 칠성의 아내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죽음'이다. 반대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이 상황을 비난하며 교회 세력들과 거칠게 대립하던 난봉꾼 민철의 맹목적 믿음이 가져온 것 결과도 역시나 '죽음'이다.이 두가지 죽음 사이에서 영화는 '선인과 악인의 대립' 혹은 '진실과 거짓의 대결'이 아닌, '우리 사회의 맹목적인 믿음이 불러온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적 차원'을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더 큰 맥락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영화는 이러한 사회 고발적 메시지뿐만 아니라 '진실과 행복'에 대한 철학적 화두까지도 던져준다. 아내가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며, 아내의 이런 행복한 얼굴을 처음 본다며 흐뭇해하던 칠성에게는, 민철이 그토록 집요하게 까발리려 노력하던 종교적 '진실'은 무의미하다. 반대로 "그게 니 팔자여." 라는 민철의 한마디에 정신적 사망 선고를 받은 딸 영선에게 현실적 직시, 그러니까 이른바 '진실'은 감당할 수 없는 폭력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결말의 반전은 러닝타임 내내 '진실을 파헤치려는' 민철의 시각과 입장에서 그의 감정선을 따라 영화를 감상하던 관객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과 울림으로 다가온다.

발군의 목소리 연기, 그리고 배우 권해효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물론 전문 성우가 아니다보니 대사 전달력이나 발음의 정확성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배우들의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연기는 이러한 아쉬움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주인공인 민철 역의 양익준 감독은 입에 짝짤 달라붙은 걸쭉한 욕설과 거친 캐릭터의 호흡과 감정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러닝타임 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쉬지 않고 욕설을 내뱉는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조금 벅차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양익준 감독의 캐릭터 연기는 무척 준수했다. 또한 배우 오정세의 경우, 종교적 믿음과 파괴된 현실 앞에 고통받고 갈등하며 점점 괴물로 변모해가는 성목사의 모습을 절제된 톤의 목소리 연기로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해효. 어쩌면 [사이비]는 배우 권해효의 클래스를 입증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영화에서 전형적인 위선과 가식으로 점철된 사기꾼 최장로 역을 맡은 그는, 섬세하면서도 현실적인 악역 연기로 이 평면적인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작품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킨다. 특히나 영화 초반 최장로가 성목사와 작은 언쟁을 벌이던씬에서 "목사님, 자꾸 그러면 나 섭섭해~"라고 내뱉는 장면에서는 그의 사실적인 연기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내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고싶은 욕구의 90프로가 배우 권해효의 연기를 다시 보고 싶어서일 만큼 그의 목소리 연기는 이른바 압권이었다.

실사 영화를 압도하는 애니메이션의 힘


결론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 [사이비]는 단순히 사이비 종교에 관한 사회고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정치적으로 맹신과 불신의 시대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우리들 개개인에 대한 감독의 일갈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날이 갈수록 정치사회적 편가르기와 갈등 속에 맹목적인 믿음과 불신이 불러온 묻지마식의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 난무하는 이 시대. 수몰예정지역이 된 채로 마을 공동체가 파탄나버린 영화 속 반석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결국 2013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맨얼굴이기도 한 것이다.

"당신이 믿는 것은 진짜입니까?"

영화의 포스터에 적혀있는 이 문구는 결국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감독의 물음인 동시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날카로운 뚝심과 묵직한 결기에서 실사 영화를 압도하는 애니메이션 [사이비]만의 힘과 매력이 진하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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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링
13/11/23 20:32
수정 아이콘
돼지의 왕은 호평을 많이 받길래 봤는데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지 의외로 좀 실망했었는데... 비교하면 이건 어떤가요..
Eternity
13/11/25 09:10
수정 아이콘
[돼지의 왕]에 비해 한층 세련되어지고 발전된 느낌입니다. 영상이나 콘텐츠나 둘다 어느 정도 진일보한 느낌이 드네요. 추천드립니다.
13/11/25 14:29
수정 아이콘
저도 돼지의 왕보다는 사이비가 더 좋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돼지의 왕은 좀.. 저에겐 어렵게 다가왔었는데. 사이비는 보여지는대로 따라감에 있어 무리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좋았어요~
lupin188
13/11/23 20:39
수정 아이콘
스포있음 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렸네요ㅠ
13/11/23 20:50
수정 아이콘
어디서봐야할까요 ㅜ ㅜ보고싶네요..대전인데 대전에선상영안할거같고..
13/11/24 14:07
수정 아이콘
일요일 20:25
월요일 10:30, 14:45, 21:15
이렇게 대전 cgv에서 상영합니다
王天君
13/11/23 23:38
수정 아이콘
영원님은 꾸준히 리뷰를 쓰시네요. 전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리뷰도 못쓰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ㅠㅠ
http://www.extmovie.com/xe/bestpost/3075613 제가 익무에 쓴 리뷰인데, 여기서도 저랑 리뷰의 관점이 확연히 차이나는 게 재미있네요.
전 구성미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영원님은 인물미학(연기)의 관점에서 접근하시고..흐흐 연기면에서는 권해효씨가 확실히 인상깊더라구요.
Eternity
13/11/25 09:15
수정 아이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상당히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디테일하게 파고든, 심도 깊은 리뷰네요.
사실 저는 영화의 구성미학을 깊게 논할만한 깜냥이 부족할 뿐더러,
영화를 볼때 감독의 메시지와 배우들의 연기에 관심을 가지고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王天君님 같은 분들의 리뷰가 저에겐 배울 점도 많고 흥미롭게 느껴지곤 해요.
제가 짚어내지 못하는 부분들을 짚어주시니까요.

암튼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은 앞으로 무조건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좋더라구요.
13/11/24 00:47
수정 아이콘
보고 왔습니다. 간단하겐 GTA시골~
지독하게 한국적이면서도 일반적인 개념을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입니다.
KOOKOOMIMI
13/11/24 01:58
수정 아이콘
이 영화 강추입니다!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 이 영화를 통해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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