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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1/12 06:10:43
Name OrBef
Subject [일반] 응사를 보다가 되돌아보는 1994년..

** 응사 여태껏 본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장면임다? 제 마님이 대충 이런 이미지였슴미다? 는 네놈 생각일 뿐이지! **

저는 92학번입니다. 그러다 보니 응답하라 1994 가 노리는 주 타겟층이고 당연히 추억팔이를 당하고 있지요. 기왕 추억팔이를 당할 거라면 제대로 당하는 것이 올바로 인생을 즐기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그 시절을 잠시 되돌아보렵니다 니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닐 텐데?

1. 민주화 운동 양상의 변화 내지는 쇠퇴

물론 지금도 민주화가 100% 되었다고 할 수야 없지만, 80년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저만 해도 신촌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다 보니 수시로 최루탄 냄새를 맡으면서 살았고, 어린 마음에도 뭔가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7 년 대선에서 직선제가 이루어졌고 물론 결과는 안습이었지만,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되면서 (물론 3당 합당이라는 에러가 끼긴 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달성이 되었지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금이야 3당 합당과 IMF 관련해서 욕을 많이 먹긴 하지만, 정권 초기에는 자기가 장담한 대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는' 모습을 한동안 보였습니다. 93년 ~ 94년 사이에 이 사람이 이룬 일들만 해도 금융 실명제, 하나회 척결, 역사 교과서에서 5/16 을 쿠데타로 표기, 조선총독부 철거 등등 당시로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파격적인 개혁 작업들이 시작되었지요. 따라서 대학 캠퍼스에서 '우리가 학생 운동을 꼭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시기이며, 비운동권 학생회가 태동하게 됩니다. 이게 정치적으로 가지는 의미도 크긴 하지만 저 같은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이 있었는데요, 그야말로 '사회에 대한 고민 같은 거 안 해도 되니까 다른 거 고민해' 라는 시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캠퍼스에서 고민 좀 한다는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책이 더 이상 마르크스의 것들이 아니라 카뮈나 라캉의 책들로 바뀌게 됩니다.

2. 대학생들의 전성기

80년대의 대학생들은 학생 운동하느라 바빴습니다. 2000년대 넘어가게 되면 우리나라가 허덕이는 시점이니 취업 걱정이 많았지요. 이 두 시대 사이에서 유일하게 '장밋빛 미래' 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던 세대가 90년대 초중반 학번들입니다. 대학생 정원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대학생 되기는 쉬워졌고, 대학생 정원이 늘어났으니 앞으로 취업이 잘 안될 거라는 당연한 사실은 아직 깨닫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IMF 같은 걸 끼얹으면서 더욱 즐거운 취업시장을 겪게 됩니다. SKY 를 우수성적으로 졸업했어도 취업을 못 해서 대학원으로 피신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고로, 이 세대는 비록 30대 이후에는 꽤나 갑갑한 인생을 살게 되긴 했지만, 적어도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만큼은 그런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응사에 나오는 뭔지 모르게 태평한 분위기는 그런 의미에서 과장이 아니었지요.



** (94년작 청춘스케치네요) 긍까 이런 시덥잖은 농담이나 하면서 놀았다는 겁니다. 아이러니한 것이, 별로 이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런 농담을 하는... 요즘 세대가 보기에는 조금 얄미울 수도 있는 분위기였던 거지요. **


3. 인터넷이 없었다??

네. 인터넷도 없고 셀폰도 없었습니다. 물론 삐삐가 등장한 이후로 '언제나 온라인' 이라는 느낌을 사람들이 서서히 가지기 시작하던 시기였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 고독하게 보내는 시간이 결코 적지 않았던 시대였지요. 이게 뭐 문학청년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수업 시간 사이에 친구들하고 약속이라도 어긋나면 도대체 할 게 없었단 말이죠. 요즘 대학생들이 아이폰과 컴퓨터를 이용하는 시간 = 94년대의 대학생들이 뭔가 다른 일을 했던 시간이라는 얘기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도대체 뭘 하고 시간을 죽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네요. 저는 당구에도 취미가 없었던지라.... 저녁에는 일주일에 세 번은 술을 마셨던 것 같고 낮에는 항상 캠퍼스 잔디밭에서 담배 피면서 책을 보거나 아니면 큰 대자로 뻗어서 개똥철학질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천리안 같은 온라인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저는 키보드 워리어로서의 길을 발견하고 구원받았다는 건 함정.

4. 인터넷'만' 없었다.

인터넷이 없었다고 하면 뭔가 굉장한 옛날 같지만, 응사를 보면 느낄 수 있듯이 그 시절도 사실 그다지 다를 거 없었습니다. 대중문화 면에서 서구권과 격차가 좀 크긴 했지만 그거야 뭐 조금만 관심 좀 있는 사람이라면 그쪽 동향 따라가는 거야 별로 어렵지 않았죠. 물론 인터넷이 없었으니 전적으로 출판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지금보다는 좀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습니다. 요즘에 비해서 전문가의 권위도 비교적 높았지요. 제3자의 검증 같은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으니 말입니다. 컴퓨터를 제외한 다른 과학 기술 역시 지금과 별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동차 연비는 비슷하고 비행기도 비슷한 속도로 날아다녔단 말이죠.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불 정도였으니 (물론 IMF 맞고 1년 만에 30% 까인 건 안자랑) 당시와 지금의 물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때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풍족했던 시절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일본을 차근차근 따라잡고 있(다고 느꼈)었고 반면에 중국은 아직 허덕허덕할 때였으니 '우리나라도 쫌 하는데?' 라는 느낌이 나라 전체에 퍼져있었습니다. IMF 가 국민들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려서 온 거라는 말은 헛소리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느낌이 없진 않았었지요.

누구나 20대는 단 한 번뿐이고, 각자 20대를 다른 환경에서 보내게 됩니다. 제 20대를 돌이켜보면, 제가 스스로 고민을 찾아서 한 경우를 빼고 나면 꽤 행복했었던 시절이었다고 해야겠네요. 적어도 외적으로는 고민할 것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학부 졸업하던 97년에 한국이 IMF 맞고 제가 대학원 졸업해서 취직한 회사가 IMF 후폭풍으로 부도 처리된 것은 나중 얘기이고요.

다른 분들은 94년에 대해서 어떤 재미있는 추억 거리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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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nenbaum
13/11/1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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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에 입대를 했습니다.
훈련소 밖에서 들리는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이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요. 94년 하면 훈련소 담장 하나 사이로 시공간이 격리된 기분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내무반 옥상에서 몰래 술먹다 걸렸던 사건,
광주, 부산, 진주, 대구, 마산, 제주에서 온 동기들 따라 같이 외박 나가 각 도시에서 잘나간다는 나이트 섭렵하고 다녔던 일,
휴가 나갔더니 집이 이사를 해 졸지에 노숙할 뻔 했던 일...
뭐 이정도 기억납니다.
13/11/12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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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입대시면 저랑 동갑이거나 한 살 차이시겠네요. 저는 호빗인데다가 파워 너드였기 때문에 잘 나간다는 나이트는 감히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응사의 스페이스도 입구만 본 기억이 나네요!
tannenbaum
13/11/1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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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생입니다. 7살에 학교를 가서 93학번입니다.
저야 말로 호빗의 제왕이었지만 같이 간 사람들이 괜찮아서 꼽사리로.... 흑... ㅜㅜ
13/11/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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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스페이스 딱 한번 가봤는데 무려 삼층에 갔었습니다. -_-v 신촌갈때는 주로 홍대 발전소에서 캔맥주 빨고 주말을 보냈죠.
13/11/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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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가 지금으로 치면 어디쯤있던 곳인가요??
13/11/12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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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무지 더웠죠.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인생 가장 더웠던 여름은 94년 여름.
13/11/12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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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진짜 미칠 듯이 덥긴 했습니다. 에어콘이 없었으니 뭐 크크크크;;; 긍정적으로 보면 어차피 아무도 에어콘이 없었으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일은 없었네요. 그냥 원래 그런건가보다 하면서 대충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13/11/1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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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정말이지 죽는줄 알았죠. 다행히 선생님들이 융통성을 발휘해서 화장실에서 등목해도 된다고 허락하셔서 바글바글했던 기억이 나네요.
13/11/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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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너무 더워서 방학 때 시골로 피서가자고 했는데 하필 그 시골이 합천....
그런데 수온주가 맨날 기록을 경신하는데도 서울보다는 훨씬 살 거 같았던 기억이납니다. 확실히 도시의 체감온도가 좀 유별나긴 해요.
은수저
13/11/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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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였던거 같네요.
한칸방짜리 달동네에 살았는데 걍 재미지게 놀았던거 같습니다.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이 작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전국을 휩쓸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승부는 잘 모르겠고 M은 본 기억이 나는거 같아요.

그해 여름에 정말 더웠다고 하는데 너무 오래전일이라 잘 기억이 안나고 최근 십년간 가장 임펙트있게 더웠던건 작년이였던거 같아요.
정말 짧고 굵게 더웠죠.
어린시절이라면 공중파에서 해준 만화에 빠져 살았는데 93년도에 피구왕통키,축구왕 슛돌이에 미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 이후 전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피구붐이 일지않았나 생각해봐요.
13/11/1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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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키가 그 때 군요? 듣고 보니 대학생 때 그거 보고 다 큰 청년들이 불꽃슛 한답시고 추태부리다가 여자 사람들로부터 경멸어린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HOOK간다
13/11/1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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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생으로 94년도에는 중학생이었네요.
응사를 보며 삐삐는 96년에 썼던걸로 기억합니다.
어린시절 병원갔다가 최루탄 냄새를 맡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네요.

그시절 본 드라마도 기억이 나네요.
모래시계 M 마지막 승부 사랑이 뭐길래? 걸어서 저하늘까지..

제가 초딩 6학년때 피구붐이... 일어났던 것도 기억하고요.

미국월드컵도 기억나네요. 크크..
13/11/1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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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다음에 나온 시티폰이라는 희대의 망작도 있었지요. 나름대로 야심차게 나왔으나 1년뒤 출시된 셀폰에 밀려 사라진....
HOOK간다
13/11/1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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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 엄청 두꺼운 핸폰 말씀하시는거져?
13/11/1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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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 공중전화 근처에서만 터지는 이상한 핸드폰이요 흐흐흐
13/11/1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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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는 건 벽돌폰이라고 핸폰 초기 모델인 것 같고 시티폰은 한국통신에서 만든 받을 수는 없고 걸수만 있는 핸드폰입니다.
삐삐는 이미 구리고 핸폰은 아직 고위층의 전유물이던 시기에 그 중간을 포섭하려고 했는데 핸폰이 너무 빨리 대중화되어 버려서 망했죠.
13/11/12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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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레기하고 스펙이 거의 비슷한데 성격은 삼천포에 가까웠다는. 응사를 보면 재들은 맨날 술먹고 놀고 그러는데 사실 그랬습니다. 과외 두개만 뛰면 등록금 부터 하숙비, 용돈이 다 해결되었죠. 물론 응사의 학생들은 나름 집안이 지방 유지라 그것도 필요 없겠지만. 그때는 좋은 줄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참 좋던 시절였습니다.
13/11/1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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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대학생 과외는 진정한 고액 알바였지요. 여러모로 요즘 20대는 많이 힘들긴 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바뀐 건 없는데, 확실히 고속 성장 시기와 안정기의 사회는 뭔가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god]휘우
13/11/1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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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때네요.... 기억도 없습니다?
그래도 응사를 보면 나이차이 꽤나 나는 사촌누나나 사촌형 생각이 나서 추억도 없으면서 추억에 잠기게 되네요.
그래도 태어나있긴 했습니다만은... 언젠가 시간이 지났을 때 응답하라 시리즈같이 지금의 시간들도 드라마화가 되겠죠? 그때가 기대되네요.
13/11/1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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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년 되어서 그 시기의 대학생들에게 '님들은 기성세대임' 이라는 얘기도 듣고 몸도 예전같지 않고 아이 돌보느라 정신 없고 대충 그러면서 살다가 저런 추억팔이 드라마 하나 나오면 파워 본방 사수하시게 될 거라능. 사람 뭐 다 똑같더라고요.
저글링아빠
13/11/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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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개방 문제 덕에 학내 운동세력이 잠시나마 활기를 되찾고,
길어진 농활을 하면서 짝사랑을 키우던 시기로군요... 크크크

사실 94년에는 삐삐도 별로 없었던 걸로. 과방 메모 보고 당구장 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허무해하다가
동아리 아지트 역할 하는 선배 하숙방에 찾아들어가면 학점을 거의 D와 F로 채우던 선배가 반가이 맞아주던 그런 시절이네요.
13/11/1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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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그 때는 학점은 0.X 받으면서도 마초 카리스마가 넘치는 형들이 많았었지요. 그런 형들이 보통 술을 깔대기로 부어주곤 했기 때문에 저는 그런 형들 무서워했었습니다. 제가 선배 되고나니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는 건 함정.

그나저나..... 짝사랑을 키우던 -> 결국 훈훈하게 끝났다는 얘기군요!

이 댓글은 이로운 댓글이다.......
저글링아빠
13/11/12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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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그땐 피지알이 없었지만 피지알러의 자질만은 그 때도 충만했던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가라는 배낭여행은 안가고 농활 같은 거나 쫓아다니니 순진한 애가 위험한(?) 사상에 물드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셨지만
순진은 개뿔...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더랬지요.
13/11/1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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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대였기 때문에 남자들끼리 농활을 갔더니 농촌 어르신들이 매우 좋아하셨었습니다. 그러나 담배 농가에 농활을 간 것이었기 때문에 저도 불만은 없었습니다. 지금 싱싱한 담배잎에 노필터로 마구 피워제끼는데 그까짓 연애 따위!
저글링아빠
13/11/1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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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담배밭 일은 사실 무지 힘들다는 건 함정이지요.
반나절 밭에서 기어다니다 나와 마시던 꿀맛 막걸리 맛은 아직도 기억나네요.. 흐흐...

그러면서 당시 떠오르기 시작하던 영변 원자로 이슈와 비교하며 북한의 대미 외교는 당당한데 우리의 농산물주권에 관한 외교는 굴욕이라며 열변을 토하던 선배의 얼굴도 떠오르고... ^^;;
13/11/1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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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 관련해서 원자로 건설비 떠맡은 게 94년 말인가 95년 초인가 그렇지요? 북한의 대미 외교가 당당한 건 아니지만 그 당시 우리 대미 외교는 진짜 안습.....

저는 농활 가서 선배 형이 뭔가 열변을 막 토하길래 '저는 그냥 제 개인 경험 쌓으려고 온건데요...??' 라고 순박한 미소와 함께 한 말씀 올렸다가 즐거운 밤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흐흐
sprezzatura
13/11/1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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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국딩이었죠.

국딩 남자애들 사이에선 통키와 미니카가 선풍적인 인기였고,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나왔지만 여자애들은 김원준과 구본승을 더 좋아했습니다.
로베르토 바지오가 결승까지 그렇게 잘 하고도 승부차기 실축 하나로 역적이 되고, 황선홍은 요단강을 건넜죠.
전국을 뒤집어놓은 지존파의 아지트(영광군 불갑면)가 저희 외갓집에서 10분 거리였던 헐헐..
하늘빛
13/11/1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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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84년 생인데요 마지막 승부와 동시간대 방영되던 KBS 한명회를 잊을 수가 없네요 흐흐..
당시 집에 티비가 한 대 밖에 없었는데 아버지가 한명회 열혈 시청자가 되셔서 어머니와 제발 아버지 주무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
그 때 한명회 역을 맡으셨던 이덕화씨가 괜히 엄청 싫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덕화씨에게 용서를 구합니다~(응?! 크크 ^^)
市民 OUTIS
13/11/1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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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여름이 무지 더웠다만 기억하시지만 3월부터 사랑을 시작한 놈들에겐 4월의 하얀 켐퍼스가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4월 서울에 함박눈이 내렸었죠.

학생운동은 92때 글쓴분 학교 학생회장이자 전대협 마지막 의장이 일찍 잡혀가신 후, 비주류 NL,즉 비주사계열이라 주사형들이 보위를 제대로 안 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93년 한총련 고대 출정식때 소문만 듣던 녹두,오월대의 위용과 머리깨진 학생을 병원으로 후송하려 시위대를 도망간 후 동료친구가 다음날 동아일보 사회면에 뒷통수가 찍혀 버린(단성사쪽 극장 밀집지역에서 전경 1소대를 턴 장면이 기사화된 것) 일이 있었지만 김영삼 지지율이 4월말 90프로가 넘었고 전경은 최루탄을 쏘지 않았고(NL집회 말고 PD집회는 전기협파업때만 빼고) 학생은 화염병을 준비하지 않았고 쇠파이프는 도망갈 때 무겁다고 버린 후 평화행진이 주가 됐죠. 94학번은 더이상 5월 광주에 즉각적으로 울지 않았고 80년 유산은 93에서 막을 내렸죠. 94는 바로 앞 학번들에게조차 신기한 세대 X세대로 불렸죠.
그리고 비운동권 학생회 얘기를 하자면 서울 이외 지역 중 요즘 시끄러운 쪽 학생운동권이 센 곳의 비운동권 학생회는 거의가 안기부와 연계가 있었죠(이건 믿을만한 분의 목격담이 있어 확실하고 그리고 소문으로 비권 학생회는 안기부와 연계는 다 믿고 있었죠. 총학 선거비용이 장난이 아니게 들어 조직이 없으면 승리하기 힘들어요).
13/11/1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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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몰랐던 얘기가 많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비권 학생이었던지라, 단과나 단대 활동을 거의 안했거든요. 죽어라고 써클하고 동문회만 나갔었는데, 돌이켜보면 92 학번들까지는 그래도 데모 좀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미안한 감정이 있습니다. 비권 학생회가 배경이 좀 수상하다는 루머는 저도 들었었는데 왠지 님 말씀은 믿을만한 지피셜로 들립니다.
be manner player
13/11/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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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학생회만 좌익 측에서 자금 밀어준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 비권 학생회도 똑같죠 뭐 크크;
13/11/1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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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약간 1994년도의 생각나는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1. 응사에서 제일 비현실적인 존재는 나정이의 외모도 아니고, 맨날 축구하고 만화봐도 의대 수석을 놓치지 않는 쓰레기도 아니고, 바로 신촌하숙집 아줌마 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하숙 시작 첫해라는 설정이긴 하지만.. 저렇게 퍼주는 아줌마는..듣도 보도 못했다는. 심지어 옷도 다려준대죠.. 1년 반을 세군데에서 하숙해본 저로서는 꿈의 하숙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점심때 안나가고 뒹굴다가 라면 얻어먹는것도 눈치보였었습니다.. 하숙집 딸이 나정이란것 하나만으로도 op인데..

2. 94년 농활모집이라는 포스터를 보고 '가지마'를 외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해 여름 충청도로 열흘간 의료봉사 갔다가 열대야와 태풍과 유행성결막염을 동시에 만나고, 인솔해야 할 부장이란 놈이 전날 빵꾸내 60명을 열흘간 이끌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 놈은 지금 잘나가는 성형외과의 대표원장으로 있어 두고 두고 술얻어 먹고 있습니다만.. 평생 빨아먹을겁니다..

3. 저는 강북에 살고 있었고, 강남 지역에 있는 모 병원에 내과 실습을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9시가 넘어도 조원의 일부가 안오길래 이상하다고 했더니. 성수대교가 무너졌다고 하더군요.. 30분 전에 그 길을 지나갔는데..

4. 2013년도의 이승엽도, 2012년의 이동국도 전 그리 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있다면 94년의 황선홍에게 욕을 너무 많이 했었고, 2002년에 반성했기 때문입니다..
市民 OUTIS
13/11/1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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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농활 하니 더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함께 모여 잔 곳이 컨테이너박스 보다 더 더운 곳이었고 바닷가와 멀지 않아 모기가 엄청 많았네요. 모기장은 좁았고, 저는 선배라 후배가 기절하고 남은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91선배에게 양보하다 결국 모기밥이 되어 잠도 못 잤죠. 근데 좋았던게 그 농활이 동아리연합회에 꼽사리 낀 거라 당시 천문학회 짱이 회장이라 그 형과 그 형 애인과 셋이서 여름철 별자리 구경을 실컷 했네요. 랜턴 불빛이 닿은 별자리를 보고 다음날 바로 서울로 갔네요. 여친 보러.
13/11/12 08:48
수정 아이콘
저희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모여서 잤는데. 저도 그때 본 은하수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그 이후 본적도 없다는..
13/11/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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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하숙집 아주머니는 판타지 소설 맞습니다. 제 생각에는 연대생들의 높은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 그냥 자원봉사하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13/11/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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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94년도에 하숙집에서 에어컨을 사서 밤에 돌린다.. 이거 백프로 구라입니다 크.
amoelsol
13/11/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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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지는 않더라도 저희 하숙집 아주머니도 정말 좋으셨습니다. 30대 중반 정도셨던 것 같은데 빨래도 깨끗하게 다려서 각 방 앞에 놓아주셨어요. 난생 처음 여자에게 꽃을 사서 선물해본 게 하숙집 형들이 시켜서 하숙집 아주머니 생신에 꽃 사서 드린 거였습니다(그리고 그 후로도 십수 년 그럴 일 없었지요.). 어디 나들이 다녀 오시면 지역 먹거리도 사다 주시고, 제 과외도 구해주셨고요. 하숙집을 나가게 되었을 때는 짐도 많은데 택시 타고 이동하라고 택시비까지 쥐어 주셨네요.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요즘 드라마보다보니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좀더 감사하다 표현을 할 걸 그랬다 싶습니다.
13/11/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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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 그런 하숙집 아주머니가 실존하는군요. 전 응사에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과일 깎아서 돌릴때 마다 위화감이 스믈스믈 기어 올라서.. 하숙할때 과일 못 먹은게 제일 아쉬웠거든요. 사들고 오면 옆방사람들 다 줘야 하니 학생 형편에 살 엄두는 안나고.. 하숙집에선 절대 과일 같은거 안주니.. 그냥 술자리의 과일안주가 다였다는..
amoelsol
13/11/12 10:17
수정 아이콘
저도 어느 날 전기구이 통닭이 너무 먹고싶긴 한데,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 먹어야 하니, 낮 시간 아무도 사람 없는 거 확인하고 잽싸게 사와서 혼자서 먹어치우고는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 스무 살 다 큰 것 같아도 혼자 사는 게 처음이다 보니 철없는 짓도 여러 번 저질렀던 것 같고요. 실수를 했을 때는 숨기거나 변명하지 말고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다는 것은 확실히 하숙집에서 배운 인생 교훈이었습니다. 귤이나 과자 정도는 함께 사서 먹는 경우도 왕왕 있었는데, 전 1학년이라 면제일 때가 많았고, 주로 형들이나 누나들이 많이 내셨던 것 같아요.
맷데이먼
13/11/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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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던 신촌 모 하숙집 아주머니께서는 같이 살던 형님께 밥 두 그릇씩 먹는다고 오만원 더 내라고 하시더군요
그 모습 보고 한달 뒤에 바로 나왔습니다 ㅜㅜ
WhySoSeriuS
13/11/1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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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삼풍백화점 얘기가 드라마에 잠깐 언급됐었는데..
백화점 얘기도 자주 나오고..
2013 현재시점에 안나온 사람을 잠깐 생각해 봤는데 나정이 아버님 나온적 있으신가요..
응답하라1994
13/11/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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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생으로 중학교 1학년때네요.. 늦둥이 동생이 태어난해였고, 엄청더웠습니다. 아버지가 열심히 버셔서 처음으로 산 집으로 이사도 갔었네요..
엄청 더웠던날 학교마치고 아버지 공장으로 퇴근했더니, 기사아저씨들이 동생태어났다고 하셨고, 저녁에 아버지와같이 벼원갔더니 9달만에 태어난
동생이 인큐베이터 안에서 꼬물거리고 있었죠..
13/11/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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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님은 아이디가 응사네요? 위대하십니다!

아버님/동생 관련한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짠하네요. 그런 기억은 평생 가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3/11/1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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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이면 군대에서 한창 구르고 있었을 때네요. GOP도 들어가고...
입대전에는 학교는 아직 학생운동 분위기에 빠져 있었을 때지만 전 YS가 대통령 되었으니 이제 이딴것 필요없다고
열심히 놀러다니며 선배들에게 방탕한 놈으로 찍히던 때였네요. 난 술도 못 먹는데..
STARSEEKER
13/11/1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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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제 고향은 대구..40도찍던날 평소처럼 동네 이름모를 친구들이랑 놀기 위해 나갔는데 한명밖에 안나왔다는거..3시정도까지 축구하는데 아스팔트 열기에 친구허리가 s자로 보이는거에 깜짝 놀라서 중단. 등목은 시골 고모집이나 계곡 놀러가서만 하는 건줄 알았는데(어째서?) 너무 더우니까 어무니가 시켜주던게 기억나네요.

마지막 승부, M 누나와 본방 사수하던게 기억나고, 듀스가 가요톱텐에서 7위인걸 보고 노래도 못하는것들이 톱텐진입했다며 혀를 끌끌..그래놓고 맨날 흥얼거림 크크..
황선홍 똥볼도 기억나고. 암튼 그때도 줄기차게 노는것만 열심히 했네요-.-;
13/11/1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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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95학번이라 고3시절 이었네요
나오는 음악들.... 가사 모르는 노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태까지는....
고3시절이라 기억이 안나는건지 무더위는 하나도 기억 안나네요 저는
삐삐는 94년도에 저렇게까지 활성 했었나 싶고 ..... 물론 저도 학교 들어가자마자 삐삐를 샀지만...

진짜 몇 없는 수능 200점 세대기도 하죠. 저희가 수능 2번째 본 세대 였으니
패닉상태
13/11/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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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반갑네요..
94 여름 무더위 대단했죠. 에어컨은 교무실도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라 등교 시작부터 땀이 주르륵~~
삐삐같은 경우 그때 막 관심을 끌던 걸로 기억합니다.
수능은 참.. 천당에서 지옥을 왔다갔다 한 경험이..크크..
수능 끝나고 바로 당구장에서 채점했는데 언어, 수리1, 외국어 합쳐서 하나 틀리는 기적이!!!!!!!
아~~ 나에게도 봄날이 오는구나 싶었지만...

수리2에서 하나 맞았습니다???
13/11/12 09:44
수정 아이콘
아 그런게 가능 하시군요? 크크
눈시BBv3
13/11/1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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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2학년이었네요. 삐약삐약~ 엄마 받아쓰기 백점 맞았어요~
13/11/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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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거짓말하면 안됩니다.
눈시BBv3
13/11/1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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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짜예요!
jjohny=쿠마
13/11/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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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100점! 역시 국문학도의 자질이 충만하셨군요.

... 그 나이에 벌써부터 창작을...
13/11/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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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은 시대의 한 막이 내리고 새 막이 오르는 듯한 시기였죠.
모던에서 포스트 모던으로 넘어가는 시기라고나 할까.
존재 자체가 역사였던 분들이 하나 둘 씩 세상을 떠나고
94년 1월에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7월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80년대로 지칭되는 최루탄 냄새가 밴 역사는 완전히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던 때로 기억이 됩니다.
Fred Couples
13/11/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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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듀스, 장동건, 유재석, 고소영, 심은하 등등이 죄다 동갑내기.

친구들 과외수입 총액이 당대 톱스타들의 수입에 비해 꿀리지 않던 시절,

어울리던 친구들끼리 호텔 나이트에 가서 각 분야 유명인들과 마주쳐도 대학생이라는 신분과 경제적 여유때문에 주눅들지 않았어요.
13/11/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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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월드컵을 학교에 모두 모여서 봤는데 서정원 슛 들어갈 때 학교의 함성 소리가 5-600m 바깥에 있는 집까지 들렸다더군요.
어머니는 축구에 관심이 없으셔서 뭔 일인가 깜짝 놀라셨다고. 흐흐.

응사 처음엔 농구얘기 많이 해준다고 해서 봤는데 아니나다를까 1-2화만 해주고 바로 야구로 돌아가더군요. 니들이 그렇지 뭐-_-;
아무튼 그 시절 선수들이 이제는 다 코치 감독을 하고 있네요. 문경은-전희철 두 선수가 코칭스탭으로 서로 귓속말 주고받는 거 보면 싱숭생숭합니다.
AraTa_Higgs
13/11/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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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선배님들 다 나오시네요 하핫
81입니다!
응답하라에 제대로 응답중이죠..
챈들러
13/11/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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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학번이고, 92년 9월 입대해서 94년 11월에 전역했습니다.
네, 저의 1994년은 대부분 부대내에서의 기억(상병-병장-말년)과 함께 하네요.
Twins가 (지금껏)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인데,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흙흙

푹푹 찌던 한여름의 어느 토요일, 오전일과 마치고 제초작업하다가 김일성 사망 소식 듣고 '아... 정기휴가 잘리겠구나' 생각했던 일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때의 무더위, 그날 먹고 마셨던 짜장면, 막걸리 한잔, 작업하다가 벌렁 드러누워 올려봤던 푸르던 하늘... 등등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제 오감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11월, 전역해 보니, 세상이 좀 바뀐 부분도 있더라구요.
LP의 시대는 가고 CD가 주류를 이뤘던 것...
(공일오비 4집(신인류의 사랑 등)은 LP로 집에 남아있는데, 전역해서 처음으로 산 공일오비 5집(슬픈 인연 등)은 CD로 구입했었던...)
친구나 선후배들 두셋 중 하나는 삐삐라는 요물을 차고 있었던 것...
'피자'라는 듣도보도 못한 음식을 사람들이 즐겨 먹더라는 것...
후식으로 '베스킨라빈스'라는 비싼 아이스크림도 즐겨 먹더라는 것...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 예비역들보다 아직 군에 다녀오지 않은 현역(?) 후배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더라는 것...
그래서 시험 때 뿐 아니라, 평소에도 도서관에 자리잡기가 쉽지 않게 됐다는 것...
분명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엔, 대학 공부는 군대 갔다와서(4학년 2학기부터) 시작하는 거였는데 말이죠.
설탕가루인형형
13/11/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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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김일성이 죽었답니다.
농담인줄 알았죠.
영원히 살 것 같은 악마였는데...
Darwin4078
13/11/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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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94학번입니다. 전무했고 후무할 수능 2번 본 매혹 94학번이요.

기억나는 것이라면, 1학기 끝나고 보길도로 과MT를 갔는데 태풍이 불어서 보길도는 못가고 완도에서만 놀았는데,
딱 드라마에서 MT때 놀던 그대로, 벙어리007같은거 하고 놀았습니다. 드라마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놀던거 언제 찍어간겨. -0-;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과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일반화학에서 F가 3명.
듣자마자, 나구나!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주기율표는 수헤리베붕탄질산 까지만 외울 정도로 화학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
입학하자마 유급이라니! 유급이라니! 싶었는데 학교 가서 보니 다행히 D..ㅠㅠ

제가 이 드라마에 많이 감사해 하고 있는 것이,
작중 인물인 윤진이나 해태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거부감 안들게 전라도 사투리를 써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윤진이같은 경우, 찰지게 보성벌교 스타일 욕을 해주는데도 싼티안나게 매력적으로 정말 잘하고 있죠.
해태는 뭐, 그냥 광주쪽 남자들 그자체. 얼굴도 남자답게 잘생긴 것이 사투리도 귀에 착착 감기게 합니다. 흐흐..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모래시계의 종도 이후로 전라도 사투리 쓰는 인물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열한 조폭 또는 개그 캐릭터가 대부분이었죠.
경상도 사투리는 듬직하고 의리있는 싸나이들이 쓰는 사투리였구요.
이 드라마 이후로 전라도 사투리 쓰는 멋쟁이 머시마, 가시나들이 많이 조명되었으면 합니다. 흐..
13/11/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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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전라도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나와서 좋습니다.
보통 이정도 인원이 출연하면 잉여가 나오게 마련인데 잉여가 없네요 이 드라마는.... 다들 나름 매력이 있고.....
게임도 마지막 게임인가 그거 빼고는 죄다 즐겨 하던 게임이더군요.
처음 게임이 이중모션이라고도 하는 서라운드 게임인지 모르겠는데 정말 서라운드에 열중 했었습니다 크크
13/11/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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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 아니죠. 저 당시만 해도 아직 전라도에 대한 은근한 따돌림이 있던 시절인지라... 저만 해도 속으로 그런 생각 조금 하면서 학교 다녔었습니다. 도대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편견이란 게 참 무섭죠.
amoelsol
13/11/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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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94학번인데, 삼천포 바로 옆동네에서 상경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학교를 다니며 농구부 숙소에서 하숙을 했던지라 추억이 남다릅니다. 지하철 이용할 줄 몰라 쩔쩔맸던 일이며, 금강 휴게소에서 '국내 유통안되는 최고의 물건인데' 사기를 당해 용돈을 전부 날렸던 일이며 전부 겪었던 일이기도 하고요. 밤기차를 타고 처음 서울에 도착했던 새벽, 매캐하고 술냄새 나는 싸늘한 서울 거리에 서서 막막해하던 20년 전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드라마 인물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21세기가 될 때까지도 연애는 순전히 남의 일이 되었다는 것. T.T
13/11/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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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훈훈하긴 한데 기간이 좀 심하게 기네요 ㅠ.ㅠ
꽃보다할배
13/11/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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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석 군 사망으로 촉발된 전대협 한총련 사태도 기억이 나네요 멋도 모르고 선배들이 한다고 학교앞에서 각목들고 싸우던 시절였죠
13/11/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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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에 노수석 군이 맞을겁니다. 법대 95학번. 사고 났던건 96년이었고...그해 여름이 참 장난 아니었죠. 학교가 전경에 포위되서 불타지를 않나..
꽃보다할배
13/11/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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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석 군이 맞네요. 저보다 어려서 군이라고 했지만 벌써 30대 중후반이겠네요.
13/11/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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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에 뭐했지? 도대체 이넘의 기억력은 남아있는건지...
하긴 04년에도 뭐했는지도 기억에 없으니... T.T
여러분
13/11/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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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난다 그랬죠. 선생님이 전쟁대비하는 집 있냐니까 애들 막 손들면서 라면 몇 박스를 사놨니 짐을 다 싸놨니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땐 우리집은 왜 태평한가 불안에 떨었더랬죠. 크크
토마토7개
13/11/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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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94학번, 같은학교, 비슷한 전공이었습니다. (음 지금생각해보니 그때는 컴공이 없었군요).
드라마에 나오는 MT나 거기서 하던 게임들, 그리고 스페이스, 미팅..모든 디테일이 마치 예전을 경험하듯이 잘 표현되어있어서, 요즘 완전히 몰입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후 저도 Orbef님처럼 미국에 나와서 공부도 하고 일하고 있다보니. 마치 그때 일들이 엊그제같은 느낌이에요. 글 잘읽었고 완전공감합니다 (선배님이시지만 ;) ). 본고사 끝나자마자, 바로 과외시작해서 첫 월급으로 모토로라 브라보플러스를 샀던 기억이 나네요.
13/11/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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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에는...
TV유치원 하나둘셋 봤습니다
13/11/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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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에 94년엔 천리안에서 쥬라기공원 머드게임을 하다가 전화비 20만원 크리로 컴퓨터를 뺏겼던...
13/11/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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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천리안에서 머드삼국지를 하다가 전화비 10만원 크리.... 크크크 인생 다 거기서 거기군요.
13/11/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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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나오는 그 학교 다니면서 신촌 성공세대, 자유인, 행랑채에서 술퍼마시느라 정신없던때군요.
집에 갈때 오늘의 책 옆에 메모판 항상 확인하고, 친구중에 누구 한명 과외비 탔다고하면 형제갈비 끌고가던 시절...크크크
그리고 응사에 나오는 스페이스는 연대생들한테는 인기가 별로였습니다. 그냥 한번쯤 구경가보는 곳 정도?
강남역 딮하우스랑...또 하나 있는데 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흐흐. 여하튼 다른데 갔었죠.
여름엔 진짜 엄청나게 더웠고, 통학로중 하나였던 성수대교 무너졌을때는 정말 시껍했었던...한남대교는 그리고 몇년간 지옥...-_-a
그때 당산철교도 정밀조사 받고 위험하다며 지하철이 그 위에 엄청 서행으로 다녀서 가끔 그쪽 지나갈일 있을때 왠지 불안했던 기억도...
마지막으로, 지금 미국에서 애 둘 엄마 되어 있다는 참 괜찮았던 친구랑 연애하던 시절이네요 크크. 잘 살고 있으려나..

+)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단체문자 기능을 확실히 수행했던 그때 메모판 장면은 당연히 나오겠지 했는데,
당시 디테일이 꽤 살아있는 드라마임에 불구하고 아직까지 안나오는걸 보니....
아마 PD나 작가들이 타학교 출신이라 이건 모르는게 아닌가하고 추측합니다 흐흐.
13/11/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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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유인에서 술 먹은 횟수가 대충 100 번은 확실히 넘는데, 서로 만난 적이 있겠군요 흐흐흐;;;; 자유인이 비어 펌프였을때부터 거기서 마셨습니다.
13/11/12 12:10
수정 아이콘
저도 100번까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마신 횟수가 대략 그에 상당히 근접할것으로........^^;;;;
확실히 Orbef 님하고 같은 시간대에 술마시던 날이 하루쯤은 있을것 같습니다 크크크크크.
저글링아빠
13/11/12 12:08
수정 아이콘
오디죠. 오딧세이.
13/11/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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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니 생각나는군요. 오딧세이.
여름방학때 친하던 동기 여자애가 여자들끼리 생일파티 하러 갔다가 지갑 잃어버렸다고, 집 가까운거 너밖에 없다며 살려달라고 전화왔던...-_-;;
....그리고 방학이 끝날때쯤 그 친구는 위에 언급한 제 여친이 되었었습니다.
13/11/12 11:00
수정 아이콘
초등학교 4학년.... 이었군요..

당시 토요일에 청소하다가 담임선생님이 김일성이 죽었대... 이래서
집에 후다닥 뛰어가 엄마 김일성이 죽었대.. 이랬었죠..
그리고 라면을 3박스나 사다놨던...크크크
레지엔
13/11/1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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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일본에 가 있었는데, 거긴 방마다 에어콘이 이미 있었죠. 그래서 쾌적한 여름을 보내고 돌아왔더니 사람이 죽어있고 뭐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94년일텐데, 같은 학년의 여자애 하나가 일사병으로 쓰러져서 요절했고 기사도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13/11/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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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선배님들이 많으시네요.
저는 중딩 시절이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와 듀스의 "아우우~"하면 시작되는 "우리는", 김원준의 치마패션으로 유명한 "너없는 동안', 그리고 TV드라마 종합병원이 생각이 나네요.(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머라이어 캐리의 "Without you"를 정말 좋아했었죠.. 크크크)
에위니아
13/11/12 13:42
수정 아이콘
달려라 부메랑을 보면서 미니카 가지고 열심히 놀던 시기네요. 하키채가 없어서 빗자루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지만 내 부메랑은 만화처럼 빠르지 않았지 ㅠㅠ
13/11/12 14:21
수정 아이콘
케이블채널이 안나와서 응사를 본적이 없는데
문득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1994년은 3학년때로 미팅으로 만난 낭자에게 콩깍지가 씌워져 4년간 쫒아다니다 기어이 결혼하고 말았네요.....
되돌아 보면 그때가 제인생의 연애황금기 였던거 같네요...
류세라
13/11/12 14:25
수정 아이콘
초등학교 2학년때였는데

드래곤볼에 빠졌었던 시기였죠 셀게임 이후 마인부우랑 싸울때 드래곤볼이 기억나고

수학익힘책을 풀다가 안풀려서 저 스스로 육각연필로 머리를 때리니까

깡통소리가 나길래 내 머리는 깡통이구나 라는걸

저는 초딩 2학년때 깨달았고

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걸 아직도 무수히 느낍니다.
네오크로우
13/11/12 14:40
수정 아이콘
저도 75 94학번, 대학 가기 전에는 우리들의 천국이나 내일은 사랑 보면서 대학생들은 이것 저것 청춘을 즐기며 인생설계를 하는지 알았는데,
개뿔, 막상 가보니 과제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캠퍼스 낭만이고 뭐고 죽어라 집, 도서관에서 숙제한 기억만 있습니다.
거기다 대학생활 첫 여름방학이라고 방학 시작하자마자 외갓집 대구를 가서 개강 전까지 있었는데... 네,, 94년 바로 그해 여름이었죠. ㅠ.ㅠ;
1분지각
13/11/12 14:48
수정 아이콘
전 77, 96학번입니다. 94년 여름은.. 삼국지와 함께 여름방학을 보내고 성적이 폭망했던 기억 뿐이네요.. 그래서인지 더웠다는 것도 마나님의 기억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요..
개인적으로는 응칠보다는 응사가 저에겐 추억팔이가 더 강하게 되는 것 같구요.. 이건 서태지 vs. HOT로 대변되는게 아닌가 마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신촌은 잘 안다녀서 모르겠고.. 전 대학로 주변에서 학창생활을 보냈죠..
마나님은 95학번이시라, 응사를 굉장히 즐겁게, 같이 보고 있지요..
네.. 전 CC.. 그것도 동아리 CC이고.. 마나님이 한 학번 위입니다..
누나가 학생때도 과외해서 부자(!)로 지내더니, 요새도 돈 잘 벌어와요.. 캬캬
13/11/12 15:12
수정 아이콘
헉 96은 어디 명함도 못내밀겠네요..^^
PGR에 이렇게 누님(여초싸이트니...^^)들이 많은지 짐작은 했었지만, 오늘 많이 놀랍니다.
94년도는 고2였는데 첫짝사랑을 했던 무지 더웠던 해로 기억이 되네요...
다른 형님 동생 분들처럼 제게도 참 아름답고 의미있었던 해였더 같습니다. ^^
포춘쿠키
13/11/12 19:16
수정 아이콘
당시 학보사에 있었는데, 무슨 특집호인가를 만들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전망에 대해 통면 원고 청탁해서 대지에 앉혔는데, 김일성이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뉴스가 뙇! 바로 인쇄 들어가야 하는데, 말 그대로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위기관리능력 뛰어난 베테랑 선배님들이 계셔, 김일성 사후 남북관계의 전망, 식으로 발빠르게 아이템을 전환한 후 본래 원고에 결말을 살짝 보충해서 끼워 넣는 식으로 신문은 무사히 발행됐습니다. 안 잊혀질 것 같아요. 더웠던 그 여름 편집실이요. 그 외에는 암묵적으로 사내연애 금지된 신문사에서 후배 녀석과 몰래 알콩달콩 연애하던 시절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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