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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3/09 03:48:13
Name 진리탐구자
Subject [일반] [펌] 한 시간강사의 죽음
출처는 박노자의 글방입니다. ->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
박노자씨의 일기장에 올라오는 글들은 출판물들에 비해 그다지 짜임새가 있지 않아서 아주 볼만하지는 않습니다만, '가볍게' 읽을 만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글쓴이의 논지와 관점에 동감하지 않더라도 사안 자체가 주목할만하다고 생각하여 올려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틈틈히 관심 분야에 대한 공부를 진행하여 - 물론 본업에 소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 학위를 따는 것이 목표(김칫국이긴 합니다만. -0-)이기 때문인지 좀 더 관심이 갑니다.

가끔 하는 생각인데, 사회에서 가장 자유롭고 비판적이어야할 소위 '지식인 사회'라고 하는 곳이 오히려 매우 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위계화 된 교수 사회, 천국과 지옥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교수와 시간강사 간의 간극, 카르텔화 된 학벌 권력과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학벌 권력은, 일종의 독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회의 불평등을 가져오고 자유 경쟁을 가로막기 때문에 막대한 비효율을 낳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인 견제 장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바일 것입니다.


===========================================
한국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번에는 대학의 하급 비정규직 노동자, 즉 시간강사 분이셨고, 미국, 텍사스주의 어스틴시에 가서 자살하신 것입니다. 관련된 보도는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스틴을 방문한 4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St. David Medical Center(32번가 + I-35)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영미 간호사는 1일 오후 어스틴 한인회(회장 전수길)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월 27일 새벽 어스틴 32번가 인근 모 모텔에서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한인 환자가 발생, 병원으로 긴급 호송 했으나 2월 27일 오전 11시쯤 사망했다"고 밝혔다.

최영미 간호사는 또 "유서로 볼 수 있는 종이가 발견됐고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자살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사인은 현재 관계 기관이 조사 중이다"고 설명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삶을 마감하면서 이글을 쓰는 이유는 더 이상 이와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죽음을 암시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망한 40대 여성은 1964년생의 한경선씨로 지난해까지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에서 '실용영어' 강의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경선씨는 서울 교대를 졸업한 후 서울 미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으며 1998년(추정)부터 2003년까지 어스틴 UT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경선씨는 1998년 어스틴 한인장로교회에 교인으로 등록한 적도 있었다.

한경선씨는 딸 이(16세, 고등학교 1학년)양과 함께 지난 2월 25일 어스틴에 도착했다. 한경선씨가 정확하게 언제 한국에서 출국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LA, 뉴욕을 거쳐 2월 25일 어스틴에 도착, 32번가 근처 모텔에 투숙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발생한 27일 새벽에는 함께 있던 딸이 경련을 일으키는 한경선씨를 처음 발견했으며 모텔관계자의 도움으로 911을 통해 St. David Medical Center로 옮겨졌다. 한경선씨는 곧바로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 등 치료를 받았지만 오전 11시경 사망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이양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28일 오전 11시 15분 달라스발 대한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경선씨의 정확한 사인은 관계당국의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으나,  딸과 함께 어스틴에서 마지막 시간(여행)을 보냈고, 준비된 유서가 있는 점 등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사전 계획에 의한 자살로 추정된다."



그리고 밑에 첨부된 그 유서의 주된 부분을 보시면, 왜 하필이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받으실 때, 저는 이곳 오스틴에서 그토록 바라던 평온한 휴식을 비로소 얻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4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 후 정신 없이 일하며 보냈던 처음 1년을 제외하고는,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 발버둥 거리며 만 4년을 보낸 후 이곳 오스틴에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귀국 초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듯,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러한 연구업적과 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뜻 맞는(이해가 맞는) 몇몇 학교들끼리 연합해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한 특정인의 학교 임용을 가로막아, 그의 학문적 업적이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되어 결국엔 그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양가족을 지닌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기는 불가능하고, 강의교수로 지내면서 임용에 필요한 정도의 논문을 쓰기는 사실상 거의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규모가 비교적 적은 이곳에서 기업체의 불공정 단합처럼 몇몇 학교들의 이해단합이 더욱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며, 이는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 상생발전의 원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개인과 학교 그리고 나아가 국가와 학문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음이 분명할 것입니다. (....)
    
현 체제에서 최고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 행하는 모순과 불공정한 처사는 같이 일하던 동료교수의 파면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의 파면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학교측의 주장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이의 행정적, 법적절차를 위해 그들이 제시한 서류들과 주장들을 보고 전해 들으면서, 이 기관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했습니다. 그 동안 겪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기원을 위해 두서없이 이 글을 써서 전해 드립니다.

                                                                               2008년 2월 25일
                                                                               텍사스 오스틴에서 한경선 드림
                                                                               (자필 사인) "



돌아가신 분이 한 대학의 비정규직 지식 노동자로서 각종의 문제에 부딪치면서 "도대체 이 기관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어떤 본원적인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실은, 대답은 아주 간단하지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대학이란 (특히 사립 대학은) 꽤나 비싼 (그리고 갈수록 물가 인상 지수 이상으로 계속 비싸지는) 돈에 사무직 노동자 이상의 신분 이동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신분 증서를 만들어 파는 일종의 공장입니다. 이 "신분 증서 공장"들이 철저하게 서열화돼 있어 그 중에서는 일부는 말 그래도 미래의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지식과 신분 증서를 안겨줄 뿐이고 일부는 사회 귀족들의 문화 자본의 대물림을 보장해주지만, 신자유주의적 체제 하의 공장인 이상 시간 강사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매우 가혹한 착취를 그 특기로 삼습니다. 미끼는 - 악덕 기업주들이 늘 던지는 미끼들이 다 그렇듯이 - 언젠간 "정규직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즉 언젠가 교수로서의 임용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대다수의 경우에는 이 "언젠가"는 올 리는 없습니다. 비정규직의 착취로 빨아낸 잉여가치로 정규직들을 적당히 대우 (?)해 분리 통치의 효과를 내지 않는다면 어찌 이 체제 전체가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약탈적인 가격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대학에 아예 안갈 수는 없잖아요?) 신분 증서를 팔아주는 착취 공장에서는 심오한 이론 개발이나 순수 학문에 대한 열정을 기대할 것은 없는 게 물론이거니와 일반적인 상식마저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용주 앞에서 그 전횡이 두려워 무조건 겁이 떨지 않는다면 착취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그러니까 전횡, 횡포 등이 필수적입니다. 노동자를 짓밟아 길들이는 최적의 방법이지요. 지금 비정규직 교수들의 조합화 비율이 2% 정도인데, 그 비율이 적어도 30-40% 정도로 올라가 비정규직 교수들이 한 번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을 강행하여 대학 자본에 본격적으로 "대드는" 일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이 지옥에 그 어떤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을 준비하자면 비정규직 교수 조합 활동가들의 피땀나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좋은 일이 아닙니다만, 제가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시는 아는 분들에게 귀국하는 것보다 기회만 있으면 외국에서 자리를 얻어 버텨보는 것을 늘 권유합니다. 물론 미국적 대학 체제가 한국적 체제보다 본격적으로 우월하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 생활보다 미국 생활이 더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국내 대학가의 착취 공장들의 경우에는, 그 봉건적인 사적 예속과 거의 조폭 수준의 "막가파"적 대우,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저임금 노동력 순치 및 착취 원리의 독특한 결합은 정상적인 연구 생활을 사실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니 문제입니다. 이제 비명에 돌아가신 한경선 선생님께서도 차라리 가능하기만 했다면 애당초 귀국하지 않으시는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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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
08/03/09 03:54
수정 아이콘
그다지 공감못할 논지는 없어보이네요.
표현상의 몇가지 단어들이 거슬린다면 거슬일뿐 따지고 들면 틀린표현도 아니고..
대학이 돈벌이 수단이고
교수집단 역시 기득권화 되어버린데 대한
부작용이 이런식으로 나타나는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결국 우리사회 전체의 손해로 나타날테니까요.
indego Life
08/03/09 06:20
수정 아이콘
마음이 아프군요. 미국에 살자니 부모형제가 있는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살자니 현실적 상황이 정말 딱하네염
예전에 아는 형이 그런 말 하더라고요... 미국에서 박사 마치고 직장경력3년 그럼 거의 40살 가까이 되겠죠.. 그리고 한국 돌아갈려니 가깝하다고 친구들은 적당한 보금자리라도 마련했는데 자기는 이제 가서 시작이라고..
성야무인
08/03/09 09:50
수정 아이콘
어차피 착취야 모 대학원생때부터 한국에선 시작인데요. 돈도 안주면서 부려먹으니까요. 그리고, indego Life님 군대 갔다오고 포닥하면 빨라야 30대후반이나 40대 초반에 거의 임용됩니다.강사말고, 조교수는 군대갔다온 사람이 40대 중반에 하면 선방한겁니다. 문제는 자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죠. 그래도, 잘 팔리는 학문을 하면 자리는 있습니다. 연구도 계속할수 있구요. 공대쪽이야 북미에서 자리 넘치고 돈도 많이 벌고, 자연계쪽에서도 의학계열한사람은 밥빌먹을 정도는 됩니다. 그러나, 그외 순수자연혹은 그리고, 인문계쪽은 북미쪽에서도 장학금도 적고, TA도 엄청해야 돈벌정도가 되긴 하는데, 어차피 돈으로 쳐발라야 되는 곳입니다. 졸업한 사람들 절대수에 비해 세계어느곳이나 자리가 없습니다. 위에 자살하신 시간강사분도 이해가 가긴합니다만, 교수임용까지 가기엔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저도 몰랐었는데 심심해서 교수임용 자리 사이트 갈때마다 보지만, 서울 주요대 문과계열의 교수진들보면 보기힘든 하버드 예일 스텐포드가 넘치더라구요. -_-!! 그에 비해 문과보다 객관적으로 연구실적으로 판단되는 이공계는 대학이름보다는 어차피 논문수로 찍어누르면 되니까,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북미대학도 꽤 있지만요..) 물론, 시간강사의 자리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공감합니다. 이건 시스템적인 문제인데. 강사라는 자리를 제대로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해서 생기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의 예를 들죠. 저희학교는 강의전문 강사가 따로 존재합니다. (이건 굳이 박사까지 안해도 석사까지만 해도 인정하더라구요. 아마도 이번의 총리지명자가 이걸한거 같은데, 이거 가지고 교수했다고하면 저도 교수입니다.) 그 강의전문강사들이 1,2학년을 가르칩니다. 학생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3,4학년은 조교수이상이 가르치구요. 이 강의전문강사들은 교수가 될생각도 없고, 강의만을 주로합니다. 교수에 비해 정식직원으로 인정되구요. 오히려 교수들이 북미에선 60살가까이도 교수해도 정년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에 가깝죠 . 차라리 이런식으로 시스템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석박사 몇년만 하다보면 옆에 실험실이 바뀌는 광경을 자주볼수 있습니다~~) 대학강의만을 하는 강의전문강사들을 정식직원으로 채용하고, 교수자리를 불안하게 해야 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 정반대니까요. 허나 제가 다니는 학교처럼 교수자리 불안하게 하면 완전또 난리나겠죠~~
낭만토스
08/03/09 21:06
수정 아이콘
이 글에 많은 댓글이 달렸으면 했는데 아직은 많이 안달리네요. 똑똑하신 많은 피지알러 분들의 댓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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