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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3/08 11:54:35
Name love.of.Tears.
Subject [일반] [L.O.T.의 쉬어가기] 봄에 찾아오는 온기





0.

오랜만이구나 일상 이야기.


1.

난 본래 지나 간 것에 대해 잘 곱씹는 편이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것에 대해 일컫기를 '세심하다'라고 하지 않고 '소심하다'고 하더라.
어쨌든 그러다 보니 나를 스쳐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타인의 그 무엇보다 더 특별하고 또 특별하다.
조금만 잘해줘도 과하게 잘해준 것으로 인지 되어있으며 그 따뜻함은 목젖 밑으로 좌측 2m. 염통 중심부에 수북히 쌓여있다.


2.

무서울 것 없고 두려울 것 없는 국민학교 4학년 시절.
난 영원히 식지 않을 온기를 건네 준 친구 한 명을 만났다.
그의 첫 외모는 '잘 생겼다'라고 외쳐도 좋을 만큼 오늘 날의 훈남이었고 쑥스러운 낯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담임 선생님의 자기 소개하란 말씀에도 도통 입을 열지 못하는 사내였다.


3.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를 형이라고 부르던 그는 더 친해지고 싶다면서 말트기를 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한테 말을 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지막지하게. 그게 다 술수였음을 그땐 왜 몰랐지?! :)
어느정도 적응하고 우리학교가 전에 있던 일반학교보다 편함을 안 그는 쉴새없이 떠들어 대 딱다구리라고 별명이 붙어졌다.
그렇게 우리 우정은 이어졌다.


4.

시간이 지나 고 2 때 였던걸로 기억난다.
이제는 어쩌면 가족보다 더 편할지 모르는 그 시간들.
그러나 그는 서울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했고 일산에서 광주로 통학을 하다 너무 힘이 들어
다른 학교로 옮기자는 부모님의 제안이 있었고 그 말을 전해들은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정을 뗀답시고
외면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지속되자 그는 나도 가기 싫다며 눈물을 보였고 나도 울었다.
뼈밖에 없는 그를 내가 때렸거든. 그 모습을 본 그의 어머님은 서울로 다시 이사하고 그는 우리와 다시 함께였다.


5.

졸업식이 있던 날 그는 졸업자 대표로 사은사를 낭독하고
우리는 여느 친구들과는 다르게 만남이 잦지 못함을 알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1리터의 눈물을 주고 받았다. 우리 서로 함께한 날을 추억거리로 남긴 채.


6.

졸업 후에도 우리는 정을 나누었다.
서로가 힘들 때 아픔을 나눴고 기쁨을 두 배로 재창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집에 그가 와 침대에 누워 하는 그 말은 "네가 제일 편했다." 였다.
왜 하필 나일까? 잘해준 것 하나 없는 나를...

그 후 다른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한없이 초췌한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무도 그렇게 될지 몰랐고 상상도 못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상상하기 싫었다.
게임을 좋아해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길 바랬고 한없이 긍정적이었던 그.
저 하늘로 가기 전에 새로 산 컴퓨터에 뿌듯해 했으며 나한테 약올리던 그...


7.

그렇게 그는 2005년 2월
봄이 올 무렵 쓸쓸하게 떠났다.


8.

어제 밤 또 다른 친구와 그에 대한 추억을 곱씹었다.
꺼내고 꺼내어 반복 또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을 그런 이야기들을...
그리 얘기하면서 지난 3주년에 내 힘듦에 지쳐 그에 대한 기도를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9.

우리는 최고의 우정을 나누었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것이 우리에겐 자리잡아 있었다.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주었던 온기는 3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고 그대로다.


10.

내 친구 이명훈.
그는 22살. 난 23살 되던 그 해에 세상을 떠났고 어린 나이부터
진행성근위축증 Progressive Muscular Dystrophy : PMD)이란 십자가를 안고 살았지만 그것이 중요치 않을 만큼 우리는 행복했다.
그를 위한 주제곡은 '이소라의 봄'이다. 당시 소식을 접했을 때 듣던 노래다.
가끔 그가 떠오를 때면 이 노래를 듣곤 한다. 온 세상 울려퍼지도록 그 노래를 틀어주고 싶다.


잘 있어. 나중에 보자. ^^    


Written by Love.of.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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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08 12:10
수정 아이콘
좋은 음악, 좋은 글 감사합니다. L.O.T님. 좋은 주말 되시길^^
08/03/08 12:20
수정 아이콘
당사자분과 친구분이 꿋꿋하시니 굳이 위로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LoT 님이 그분 몫까지 좋은 인생 사시길 바랍니다.
darksniper
08/03/08 13:16
수정 아이콘
이소라 노래는 듣기만해도 뭔가 짠 하네요....
임개똥
08/03/08 15:47
수정 아이콘
흐음 노래 참 좋네요...
사연은 슬프지만 최고의 우정을 나누었다는 기억이 있다는게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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