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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7/24 23:03:52
Name 팟저
Subject [일반] 비극적 영웅의 조건




“관객에게 귀띔을 하는 것이 비극작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를 보거나 읽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이러한 귀띔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오이디푸스가 자기 행동의 결과를, 즉 자기 행동의 근본적인 부도덕성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그걸 알고 있었다면, 그 비극은 더욱 더 비극적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결코 믿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닥칠 경우에 정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예측했던 일이 닥칠 경우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가령 이러이러한 일은 겁낼 필요가 없다, 그건 일어날 리가 없다,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그건 너무도 비인간적인 게 될 테니까, 라고 말해왔다 치자.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에는 모든 인간적인 것이 엄청나게, 엄청난 놀라움으로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오이디푸스에게 끔찍한 신탁이 닥쳤다면, 오늘날의 상식으로선 그의 절망이 그럴듯한 근거를 갖지 못하게 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신판 희랍 신화 중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를 읽어봤다면 브레히트의 해당 인용문에서 어떤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오카스테만이 아니라 오이디푸스 자신 역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을 할 것이라는 신탁을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코린토스를 떠나 테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도리어 오이디푸스야말로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비인간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히트가 저리 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려면 오이디푸스의 ‘행동‘이 지칭하는 바를 달리 해석해야한다. 그러니까, 브레히트의 의견대로라면 오이디푸스는 모든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이미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이오카스테를 취수한 자신의 행동이 내포하는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비도덕성을 알고 있었어야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비도덕성이 너무도 두려워 ‘미리 겁낼 이유가 없다,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야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브레히트의 논리는 첫 문장의 ‘관객’과 조응하면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그 비도덕성을 느끼는 것이 ‘귀띔을 하는 것’이라면, 인용문에서 ‘관객’은 오이디푸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럼, 브레히트가 느낄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정말 그러했다고 상정해보면 어떨까?




(이하는 천병희 역, 문예출판사 본, 소포클레스/아이스퀼로스의 희곡집 '오이디푸스'에서 발췌했습니다.)
[오이디푸스]
"그의 말인즉 내가 라이오스의 살해자라는 것이오."
[이오카스테]
"그 자신이 알고서 한 말인가요 아니면 남에게서 듣고 한 말인가요?
[오이디푸스]
"그게 아니라 그는 사악한 예언자를 부추겼던 것이오. 그 자신은 비난받을 말을 전혀 입 밖에 내지 않았으니까"
[이오카스테]
"그렇다면 그대가 말씀하시는 일들로부터 그대 자신을 해방하셔요. 그리고 내 말을 들으시고 잘 알아두도록 하셔요. 일찍이 라이오스에게 어떤 신탁이 내린 적이 있었지요. 아폴론 자신이 아니라 그분의 사제들로부터 말이에요. 그 신탁이란, 운명이 그를 따라잡아 그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손에 그가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라이오스는 적어도 소문대로라면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느 날 다른 나라의 도적들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거여요. 그리고 아들은 태어난 지 사흘도 안 되어서 라이오스가 두 발목을 같이 묶은 뒤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려 인적 없는 산에 갖다 버렸어요. 그리하여 아폴론께서는 애가 아버지의 살해자가 되고 라이오스는 아들의 손에 죽는다는, 그가 두려워하던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셨던 거여요. 이렇게 되도록 예언의 말씀들이 미리 정해놓았던 거지요. 그러니 예언의 말씀들에 관해서는 걱정 마셔요. 신께서 필요해서 구하시는 것이라면 그분 자신이 쉽게 밝혀주실 테니까요."
[오이디푸스]
"부인이여, 방금 그대의 말을 듣고 나니 내 영혼은 갈피를 못 잡고 내 마음은 뒤흔들리는구려.
[이오카스테]
"어떤 불안이 그대를 깜짝 놀라게 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오이디푸스]
"나는 그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것 같구려. 라이오스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살해되었다고 말이오."
[이오카스테]
"그래요. 그런 말이 떠돌았고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어요."
[오이디푸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 곳은 대체 어디란 말이오?"
[이오카스테]
"그 나라는 포키스라고 불리며 갈라진 두 길이 델포이와 다울리아로부터 바로 그곳으로 통하고 있지요.
[오이디푸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뒤로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갔소?
[이오카스테]
"그대가 이 땅의 통치권을 장악하기 직전에 그런 소식이 도시에 알려졌어요.
[오이디푸스]
"오오 제우스 신이여, 그대는 내게 무엇을 행하기로 결정하셨나이까?"
[이오카스테]
"어째서 이 일이, 오이디푸스여, 그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거죠?"
[오이디푸스]
"아직은 내게 묻지 말아요. 라이오스가 어떤 체격을 갖고 있었으며 남자로서 얼마만큼 성숙했었는지 말해봐요."
[이오카스테]
"키가 컸고 흰머리가 갓 나기 시작했으며 외모는 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오이디푸스]
"아아 나야말로 불행하도다! 방금 내 자신을 무저운 저주 속으로 내던져놓고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니 말이오."
[이오카스테]
"무슨 말씀이셔요? 왕이여, 그대를 보고 있자니 떨려요."
[오이디푸스]
"그 예언자가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무섭도록 불안해지는구려. 하나 한 가지만 더 말해준다면 그대는 더 잘 보여주게 될 것이오."
[이오카스테]
"정말 떨려요. 하지만 그대가 묻는 말에 아는 대로 대답하겠어요."
[오이디푸스]
"그가 길을 떠날 때 소수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갔소, 아니면 왕자답게 무장한 호위병들을 많이 거느리고 갔소?"
[이오카스테]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전령이었어요. 그리고 마차는 라이오스를 태운 그것 한 대뿐이었어요."
[오이디푸스]
"아아 이젠 너무나 분명하구나!" (중략)
[이오카스테]
"하지만 왕이여, 그대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이디푸스]
"내 불길한 예감이 그만큼 앞으로 나아갔으니 내 그대에게 어찌 거절할 수 있겠소? 사실 이와 같은 운명을 통과함에 있어 내가 말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그대 말고 또 누가 있겠소? 나의 아버지는 코린토스의 폴뤼보스였고 나의 어머니는 도리스 사람 메로페였소. 그리고 나는 그곳 시민들 중에서 제일인자로 통했소. 그런데 하루는 내게 우연히 이런 일이 일어났소. 그것은 정말 이상스런 일이긴 했으나 내가 열성을 보일 만한 그런 일은 못 되었소. 연회석상에서 잔뜩 취한 어떤 사내가 술잔을 들며 내가 나의 아버지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오. 그래서 나는 화가 났지만 그날은 될 수 있는대로 꾹 참았소. 그러나 다음날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로 다가가서 물어보았소. 그러자 그분들은 그런 조롱의 말을 내뱉은 자에게 크게 노하셨소. 그리하여 나는 그 두 분에 관한 한 마음이 놓였으나 그것은 줄곧 내 마음을 괴롭혔소. 그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기 때문이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 몰래 퓌토로 갔었소. 그랬더니 포이보스께서는 내가 찾아간 용건에 관해서는 대답조차 않고 나를 내보내시며 그 대신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찬 다른 일들을 알려주셨소. 즉, 나는 나의 어머니와 몸을 섞을 운명이고 사람들에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자식들을 보여주게 될 것이며 나를 낳아준 아버지의 살해자가 되리라는 것이었소. 이 말을 듣고 나는 그때부터 코린토스 땅을 피하여 오직 별들에 의해 멀리서 그곳의 위치를 재면서 나의 사악한 신탁이 예언한 수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않게 될 곳으로 줄곧 떠돌아다녔소. 그리고 이렇게 다니다가 나는 이 왕이 살해되었다고 그대가 말한 바로 그곳에 이르렀던 것이오. 그러니 내 이제 그대에게 사실대로 말하겠소, 부인이여! 내가 길을 가다가 그 삼거리로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한 사람의 전령과 그대가 말한 대로 망아지가 끄는 마차 위에 탄 한 사내가 나에게 다가ㅏ왔소. 그리고 그 길잡이와 노인 자신이 나를 억지로 길에서 몰아내려고 했소. 그래서 나는 나를 옆으로 밀어낸 마부를 화가 나서 때렸소. 그러자 노인이 이것을 보고 내가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마차에서 소몰이용 막대기로 내 머리를 정통으로 내리쳤소. 그러나 그는 똑같은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 손 안에 들린 지팡이에 잽싸게 얻어 맞고는 즉시 마차 한 가운데로부터 벌렁 나동그라졌소. 그러고 나서 나는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소. 하나 만일 이 낯선 사람이 라이오스와 어떤 관계가 있다면 이제 나보다 더 불행한 자가 어디 있을 것이며 나보다 더 신의 미움을 받는 자가 또 어디 있겠소?......"

  ...(중략)...

[오이디푸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이며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게요?
[이오카스테]
"코린토스에서 왔어요, 그대의 아버지 폴뤼보스께서 더 이상 살아 계시지 않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오이디푸스]
"무슨 말을 하는 게요, 이방인이여? 그대의 입으로 직접 들려주오."
[사자]
"먼저 이 소식부터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면 잘 알아두십시오, 그분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중략)
[오이디푸스]
"아아, 이래서야 어찌 퓌토의 예언자의 화로나 머리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을 거들떠볼 사람이 있겠소, 부인이여? 새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고 하더니 그분께서는 고인이 되시어 이미 땅속에 누워 계시고 나는 여기 있어서 창에 손을 댄 적도 없으니 말이오. 혹시 그분께서 나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돌아가셨다면 또 몰라도, 그렇다면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고도 할 수 있겠지. 하나 그 신탁은 지금 그대로 폴뤼보스께서 자신과 함께 갖고 가 하데스에 누워 계시니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오."
[이오카스테]
"내 오래 전부터 그렇다고 그대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이디푸스]
"그랬지요. 하나 나는 두려움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이오."
[이오카스테]
"이제 이런 일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마셔요.
[오이디푸스]
"하나 내 어찌 어머니의 침대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오카스테]
"인간은 우연의 지배를 받으며 아무것도 분명하게 내다 볼 수 없거늘 그러한 인간이 두려워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되는 대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어머니와의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셔요. 꿈속에서라면 이미 여러 사람들이 어머니와 동침했으니까요. 하나 이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자라야 인생을 가장 편안하게 살아가는 법이여요."
[오이디푸스]
"나의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지 않다면 그대가 한 말은 모두 옳은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하나 그분께서 살아계시니 비록 그대의 말이 옳기는 해도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오카스테]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역시 큰 위안이여요."
[오이디푸스]
"큰 위안이지요, 나도 알고 있소. 하나 살아 있는 그 여인이 두렵구려."
[사자]
"그대가 두려워하는 그 여인이 대체 누구입니까?"
[오이디푸스]
"폴뤼보스의 아내 메로페 말이오, 노인이여!"
[사자]
"그 여인의 무엇이 그대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준단 말입니까?"
[오이디푸스]
"신이 보내주신 무서운 예언 때문이오, 이방인이여!"
[사자]
"말씀하셔도 괜찮은 것입니까, 아니면 남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일입니까?"
[오이디푸스]
"괜찮다마다. 록시아스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내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내 자신의 손으로 내 아버지의 피를 흘릴 운명이라고 했소. 그래서 나는 코린토스에 있는 나의 집을 오랫동안 멀리했던 것이오. 그동안 나는 행복하게 지냈지만 그래도 역시 부모님들의 얼굴을 보는 건 가장 즐거운 일이오."
[사자]
"그렇다면 그것이 두려워서 그 도시를 멀리 떠나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오이디푸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살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오, 노인이여!" (중략)
[사자]
"오 내 아들이여, 그대는 분명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구려."
[오이디푸스]
"어째서 그렇다는 게요, 노인이여? 제발 부탁이니 가르쳐주구려"
[사자]
"만일 그대가 이 일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꺼리신다면...... 부모님들로 인해 죄악으로 더럽혀질까봐 두려우시단 말씀입니까?"
[오이디푸스]
"바로 그것이오, 노인이여. 그것을 나는 늘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오."
[사자]
"그렇다면 그대의 두려움이 전혀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오이디푸스]
"어째서 부당하다는 게요, 내 그분들을 부모님들로 하고 태어났는데도?"
[사자]
"폴뤼보스는 결코 그대의 핏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략)
[오이디푸스]
"그렇다면 어째서 그분께서 나를 아들이라고 불렀소?
[사자]
"알아두십시오, 그분께서는 일찍이 그대를 내 손에서 선물로 받으셨습니다." (중략)
[오이디푸스]
"그렇다면 나를 남에게서 받았고 그대 자신이 주운 것이 아니란 말이오?
[사자]
"그렇습니다. 다른 목자가 그대를 나에게 주었습니다."
[오이디푸스]
"그자가 누구란 말이오? 내게 분명히 말해줄 수 있겠소?"
[사자]
"라이오스의 가신들 중 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략)
[오이디푸스]        
"부인이여, 그대는 방금 우리가 부르러 보낸 그 자를 알고 있소? 이 사람이 말하는 자가 바로 그 자요?
[이오카스테]
"이 사람이 말하는 자가 누구면 어때요? 조금 더 심려하실 것 없어요. 그 따위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어요. 다 부질없는 짓이여요."
[오이디푸스]        
"이러한 실마리를 잡고서도 내 자신의 출생을 밝히지 못하다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오!"
[이오카스테]
"제발 부탁이니 그대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신다면 이 일을 추궁하지 마셔요. 괴로워 못 견디겠어요."
[오이디푸스]
"염려 말아요. 내가 노예 어머니의 아들, 아니 삼대째 노예로 드러나더라도 그대는 결코 나쁜 가문에서 태어난 것으로 밝혀지지는 않을 테니까"
[이오카스테]
"하지만 내 말을 들어요, 부탁이여요. 그렇게 하지 마셔요."
[오이디푸스]
"이 일을 분명하게 밝혀내지 말라는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어요."
[이오카스테]
"나는 호의에서 그대에게 가장 좋은 것을 말씀드리는 거여요"
[오이디푸스]
"그런데 그 가장 좋다는 것이 아까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소."
[이오카스테]
"오오 불행하신 분이여, 그대가 누구신지 결코 알게 되지 않기를!"




브레히트가 바라는 대로, “오이디푸스가 ‘미리 귀띔을 받았다면’ - 라이오스를 죽이고 이오카스테를 취수하는 그 행위에서, 최소한의 이물감을 느꼈더라면”이라고 생각해보자. 위 장면들은 아주 색다르게 읽힐 것이다. 그리고, 이게 정말로 재미난 부분인데, 그렇게 해석할 때 오이디푸스의 행동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오카스테의 몇 마디에서 자신이 선왕을 죽였으리라 확신하는 오이디푸스의 예리한 직감은, 그러나 사자와 이오카스테의 마디마디에서 드러나는, 선왕이 자신의 아버지일 거란 추측으론 다다르지 못한다. 단순히 극의 전개를 위한 설정이라기엔 이오카스테가 먼저 눈치를 챘다는 사실이 미심쩍다. 오이디푸스의 무지에 대비되는 이오카스테의 통찰은 어떤 이유일까?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깨닫는 그 순간에 이오카스테가 없어야하기 때문에? 이오카스테가 있고 없고가 그리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만약 그게 그리 중요하다면 저리 일찍 물러서는 게 아니라 목자로부터 진실을 듣는 그 직전에 떠났어도 되지 않았을까? 이같은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답은 하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의 신탁에 대한 이오카스테의 통찰은, 자신이 선왕을 죽였으리란 오이디푸스의 직관과 같은 성질의 것이며, 이 둘은 모두 신탁에 대한 오이디푸스의 무지를 철저히 드러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로 하여금 가장 두려운 진실과 마주하게 하는 외길로 그를 이끌, 오이디푸스의 무지를 말이다. 그리고 극 내의 오이디푸스에게 감정을 이입해보면 - 오이디푸스의 관점에서 왜 저리도 답답한 행동을 하는지 설명해보자면, 우리는 자연히 오이디푸스에 대한 브레히트의 바람과 마주하게 된다. 너무도 비인간적이고, 너무도 부조리하여 일어날 리 없는 일이고 겁낼 필요가 없기에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행동을 [믿지 않았던]("그가 그걸 알고 있었다면, 그 비극은 더욱 더 비극적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결코 믿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닥칠 경우에 정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예측했던 일이 닥칠 경우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것이다.

“하나 나는 이제 그분이 전에 갖고 있던 권력을 차지하고 그분의 침대와 그분을 위해 씨를 잉태하던 아내를 이어받게 되었으니, 그리고 그분에게 후손의 소망이 꺾이지 않았더라면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 그분과 나 사이에 인연을 매어주었을 것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나는 마치 내 친아버지의 일인 양 이 일을 위해 싸울 것이며 살인범을 찾아내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시도할 작정이다”라는,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저주하던 오이디푸스의 발화에서 그 불안을 엿보이는 건 단지 내 착각일 뿐일까? 즉, 오이디푸스란 [관객]에겐 비극적 미래에 대한 귀띔이 분명 있었다. 때문에 자신을 말리는 이오카스테를 가문이나 따져대는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은 처량을 넘어 차라리 눈물겹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 도리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그것이 너무도 비극적이라 진실을 명백히 드러내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당 관점에 입각할 경우, 앞서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의 살해자에게 가혹한 저주를 내릴 때, 그 저주가 자신에게 되돌아오리라 결코 생각지 않는 것이 오이디푸스의 인식 하에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로소 ‘그(오이디푸스)의 절망이 그럴듯한 근거’를 갖게 되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스스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의 행동은 양가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 양가적인 성격이란, 자신이 바라지 않았기에 직시할 수밖에 없는 진실과, 바라지 않았기에 받을 수밖에 없는 형벌이라는 점을 지시한다. 오로지 진실을 마주함으로써 완성되는 고리 - 오이디푸스가 바란 완성된 진실은 그와 같은 원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손을 뿌리치고 부인이 없을 시인을 향해 달려간다. 과연 그가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걸음을 멈췄을까? 그건 비극적 영웅이 보일 모습이 아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방점을 원치 않는 원형이 아니라 완성된 진실에 찍었고, 무수히 널린 복선과 전조에도 불구하고 비극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이야말로 비극적 영웅이 갖춰야할 미덕이며, 카뮈에게 비치는 시지프와 완벽히 일치하는 태도인 것이다(“바로 저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걸음, 잠시 동안의 휴식 때문에 특히 시지프는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내쉬는 숨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곧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하여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

콜로누스의 숲 속 오이디푸스가 테세우스의 앞에서 그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건 자신에게 걸린 축복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브레히트의 바람이 바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그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령과 나의 영혼의 위대함에 의하여 판단하노니 만사가 다 잘되었도다”란 오이디푸스의 말을, 비로소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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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24 23:14
수정 아이콘
엌 미천한 이과에게 이것은 거의 암호문이군요. 하지만 뭔지 모르게 느껴지는 고퀄의 냄새!
13/07/24 23:23
수정 아이콘
^^; 제가 워낙 글을 불친절하게 쓰는 거 같아요. 게다가 위 글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아는 이가 아니라 희곡 오이디푸스를 읽어본 이를 독자로 상정해서 쓴 글이니 더욱 그러려나요. 여담이지만 의외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읽는 경우가 좀 드물죠. 본문에서 언급된 문헌 중 피지알러에게 가장 많이 읽혔을 법한 문헌은 오이디푸스라기보단 되려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13/07/24 23:37
수정 아이콘
예 저도 시지프 관련 문구는 잘 와닿았습니다 :)
Liberalist
13/07/24 23:27
수정 아이콘
으음, 재미있네요. 브레히트의 바램을 대입해 오이디푸스에서 시지프스의 모습을 찾아내는 글이라니.

게다가 본문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비극적인 영웅으로서의 오이디푸스의 면모가 더욱 부각되는 효과까지.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입장에서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비극적인 영웅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미있는 법이지요. 흐흐;;

PS. 사실 저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철학과생인데도요 ㅠㅠ
눈시BBbr
13/07/24 23:28
수정 아이콘
아우 이런 글 좋습니다 >_<) 더더 써주세요!
市民 OUTIS
13/07/24 23:33
수정 아이콘
그리스 비극에서 주인공에게는 도덕적 결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요건이었죠. 그게 그리스어 하마르티아(도덕적 결함)의 문제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보통 '화살이 과녁에 벗어남'의 의미이고, 신학에서는 '죄'로 번역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게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도덕적 법적 죄로 쓰이지 않았다는 견해가 유력합니다(시학에 나온 용어라서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의미가 중요함).
브레히트의 의문은 아마도 시학에 나온 '하마르티아'의 문제와 연결될 것도 같습니다. 과연 당시 비극을 봤던 그리스인들이 오이디푸스에게 도덕적 결함이 없다고 봤을지 궁금합니다. 지금 제 시각에서 오이디푸스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아버지를 죽이게 된 상황은 지금 시각에선 단지 격정범일 뿐이죠. 영웅의 분노와 그에 따른 행동이 당연시 되던 시기도 있었겠지만, 분명 그리스 비극이 상연되던 시기는 복수자유주의에서 법에 따른 통제로 이행되던 시기이기도 하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영웅의 조건은, 저로서는, 신화시대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고전기 그리스 시대에는 잘못 짚은게 아닌가 싶어요.
13/07/2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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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콜로노스의 숲의 오이디푸스는 어떤 맥락에서 읽어내야할까요? 단지 주어진 건 텍스트밖에 없기에 말하기 난감한 부분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만.
市民 OUTIS
13/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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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제대로 읽지 않아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한때 테베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를 알기 위해 애쓴 거 빼고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아서요;;
윗 댓글은 단지 서두에 제기된 베르히트의 발제문에 국한된 겁니다.
(뻘쭘하지만 우리나라 말로 써진 그리스비극에 대한 가장 좋은 글은 그리스사 전공자이신 작고하신 김진경 교수의 논문이라 생각합니다. <서양고대사 강의>에도 있고 하니 쉽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위의 하마르티아는 영문학자 이경식 교수의 시학강의라는 책에 나온 얘기입니다. 독창적이지 않지만 망라적이어서 참고로 보시길)
13/07/2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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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감사합니다^^)
13/07/2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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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너무 불쌍해요. 애초에 신에 의해 저주받은 삶을 살도록 설계되었는데도 신은 왜 그를 태어나게 하였나...
13/07/2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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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심심해서?

와우의 수많은 몹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태어났으니...
작은마음
13/07/2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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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배신과 타락을 하기 위해서?? 흐흐흐
13/07/2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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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정해놓은 운명과 개인의 자유의지간에 갈등, 하지만 어차피 신들은 짱짱신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란 한낱 사소한 것일뿐이지만
운명이 정해놓은 파국일지라도 그걸 수용하고 짊어지는 데서 영웅적 면모를 볼 수 있다라고 수업시간에 배웠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이디푸스는 전 잘 모르겠어요. 시지푸스에게서 보이는 영웅적 면모는 오히려 아가멤논이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13/07/2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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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다면, 본문은 어떻게 오이디푸스에게서 영웅적 면모를 찾을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음, 읽어도 납득이 안 된다는 말씀이시라면 제 부덕의 소산이로군요.
13/07/2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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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푸스에게서 원래의 오이디푸스를 찾는건 힘들겁니다. 오이디푸스는 모르고 하며, 스스로에게 장님이되고 떠돌이가되는 형벌을 내림으로써 영웅이 되지만 시지푸스는 알면서도 행하며, 생으로써 형벌을 감내하는 모양새니까요. 다만 오이디푸스가 알면서도 행했다는가정의 희곡이니까 오이디푸스에게서 시지푸스를 볼수 있겠죠.

다만 까뮈가 바라본 시지푸스와 희곡에서의 오이디푸스의 면모가 완벽히 일치한다 말하려면 오이디푸스가 스스로에게 형벌을 가하되 어머니와 계속 삶을 이어가는 결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13/07/25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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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까뮈가 바라본 시지푸스와 희곡에서의 오이디푸스의 면모가 완벽히 일치한다 말하려면 오이디푸스가 스스로에게 형벌을 가하되 어머니와 계속 삶을 이어가는 결말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의문에 대한 답이라면 이미 카뮈 자신이 시지프 신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겁니다.

[거역할 길 없는 진리들도 인식됨으로써 사멸한다. 이렇듯 오이디푸스도 처음에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그의 운명에 복종한다. 그가 알게 되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바로 그 순간에 눈멀고 절망한 오이디푸스지만 자기를 이 세상에 비끄러 매어놓는 유일한 끈은 한 처녀의 싱싱한 손이라는 것을 안다. 이 때 기가 막힌 한 마디 말소리가 울린다. “그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령과 나의 영혼의 위대함에 의하여 판단하노니 만사가 다 잘되었도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도 도스토예프스키의 키릴로프와 마찬가지로 부조리의 승리를 표현한다. 고대의 예지가 현대의 영웅주의와 만난다.

부조리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행복의 안내서를 쓰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뭐라구! 이처럼 좁은 길들을 통해서...?” 그러나 존재하는 세계는 오직 하나뿐이다.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땅이 낳은 두 아들이다. 이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행복은 반드시 부조리의 발견에서 태어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이다. 부조리의 감정이 오히려 행복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내가 판단하노니 만사가 다 잘되었다”,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신성하다. 이 말은 인간의 사납고 한정된 세계 안에서 울린다. 또 모든 것이 밑바닥까지 다 소진되는 것은 아니며 또 소진되지도 않았음을 가르쳐준다. 그리하여 그것은 불만과 무용한 고통에 대한 취미를 가지고 들어온 신을 이 세계로부터 추방한다. 그 한 마디는 운명을 인간의 문제로, 인간들끼리 처리해야 할 문제로 만드는 것이다.

시지프의 말 없는 기쁨은 송두리째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들은 침묵한다. 문득 본연의 침묵으로 되돌아간 우주 안에서 경이에 찬 작은 목소리들이 대지로부터 무수히 솟아오른다.]
13/07/2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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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의 싱싱한 손. 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평론가 신형철의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 프레임에 갇혀있던것 같습니다. 많이 배우네요.

카뮈의 시지프신화를 전부 읽어본적이 없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혹시 올려주신글이 어느출판사의 번역인지 알 수 있을까요 ?
13/07/25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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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번역, 책세상 출판입니다. 최근에 새로 출판된 카뮈 전집 시리즈구요. 제가 주워 듣기로 카뮈는 책세상이 독점권을 갖고 있어 다른 판본은 없다고 압니다만, 그래도 역자인 김화영 교수의 번역관이 달라진 만큼(한자어 사용을 지양하고 한글 구어체 활용을 적극 받아들이는 등, 일반이 접근하기에도 비교적 수월하게) 최근 판본을 추천합니다. 여담입니다만, 그 덕분인지 저 역시 근래 인터넷 돌아다니면서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카뮈를 인용하는 네티즌들을 비교적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3/07/2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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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나니 만약 브레히트의 아쉬움을 박찬욱이 해결했다면 올드보이가 더 좋았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미도와 오대수의 관계가 그들의 대화나 정보수집과정에서 오대수에게 제시되고 오대수의 직관과 부정이 묘사되었다면 결말이 좀 더 설득력있었겠네요.
13/07/25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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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의 다른 비극적 영웅들과 비극적 영웅이 되기를 거절한 맥베스를 비교한 가라타니 고진의 글이 떠오르네요. 오이디푸스에 가장 비슷한 영웅은 오셀로일까요?
"...... 맥베스는 마녀와 싸우는 것을 그만 두지만, 동시에 그는 그것으로부터 되돌아가라는 맥더프의 유혹을 거절한다. 그가 거부한 것은 자기존재가 무의미다 라는 생각이며, 그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그가 최후에 벗어난 것은 이른바 '비극'이라는, 자기와 세계 사이에 그럴싸한 거리를 설정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화해에 이르게 하는 기계 장치다. 그는 '비극'을 거절한다. 하지만, 우린 '비극'을 거절하는 것마저 '비극'이라고 불러야 할까? 어쩜 그럴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비극'을 없앨 방법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13/07/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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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의 맥베스론을 님의 말을 듣고 찾아봤습니다. 아주 흥미롭네요.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논지와 접점은,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바라보는 방향이 같지 않은 만큼(도리어 고진이 지적한 바, 정반대인 만큼) 좀 의구심이 듭니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데)고진 자신의 글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의도와도 무관할 거 같구요. 그보다 저는 고진의 맥베스론을 읽으며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이 떠올랐습니다. 그 해석의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가장 위대한 영화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었던 지옥의 묵시록을 그저 시대의 단면을 드러낸 준작 수준으로 격하시킨 소설의 후반부가 말이지요.
몽키.D.루피
13/07/25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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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네요;; 여기서 오이디푸스의 심리는 직관은 진실을 꿰뚫었지만, 이성은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억지로 고개를 돌리고, 감정은 억누를 수가 없는, 요런 상태라는 건가요..? 마치 관객들이 뒷 내용 스포(귓뜸)를 아는 상태에서(물론 오이디푸스는 극중에서 스포를 때리지만..) 설마 진짜 이렇게 전개될라고.. 하면서 조마조마하게 보는 상태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운명을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부조리한 심리상태가 비극적 영웅의 조건이라는 거..군요...
13/07/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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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조리한 심리 상태에서도,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이를 향해 걸어가는 의지를 말함입니다.
몽키.D.루피
13/07/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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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키에르케고르가 떠오르네요.
市民 OUTIS
13/07/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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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삼아...

글이 어려워 재미없어요. 저같음 반성으로 테베 왕가의 저주를 소개하는 이야기를 독립적인 글로 쓰겠네요. 뭐 전에 눈시님이 그리스신화 쓴다고 뻥 쳤으니 대신 쓰던가, 뭐;;

그럼 저주받은 오이디푸스 출생이 다소 해명될 겁니다. 아트레우스(아가멤논) 가문의 저주와 비교하거나, 교만--응보(복수?/ 휘브리스--미메시스)와 이와 같은 길을 가면서 극복한 그리스도교 영웅 예수를 비교하면 재밌을 겁니다. 는 농담이고, 오이디푸스같은 고전은 읽는 시기의 잣대에 따라 달리 읽힙니다. 하지만 당대의 심상에 따른 주인공 성격분석이 일차적인 게 사실입니다.
13/07/2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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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표현을 변용해 마지막 문장에 답하자면 "그 외에 다른 것은 (내게) 중요치 않다"는 겁니다. 저는 여기서 그리스 희곡의 캐릭터 분석을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며 이는 제 주요 논거가 브레히트의 꽁트라는 것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글은 분명 특정 소재를 특정한 방식으로 독해할때 우리가 얻을 인식에 대해 다루고 있지, 그 소재에 포괄될 모든 것들을 말미암진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제될 독자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전 이 글이 그 모두에게 향유되어야한다거나 그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에 대한, 그러한 식의 접근(예수에 대해서라면 뭔들 많지 않겠습니까마는)은 이미 너무 많아 제가 일획 더해야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다만 오이디푸스의 경우 부조리한 인간으로서 자주 인용되나 정작 그의 부조리와 이 사이에서 비치는 영웅적 면모를 논술한 글은 찾기 어려우니까요(하기는 시지프에 대한 카뮈의 접근이 차라리 드물텐데요).

선비님께서 말씀하신 고진의 맥베스론처럼 그리 독해되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접근을 논파한는 식으로 써내려갔다면 물론 더 좋겠습니다만, 상술한 바, 이 글은 그러한 식의 엄밀성을 의도치 않았고 그러함에도 굳이 부연하기엔 너무도 지난한 과정이라 시도조차 않았습니다.
市民 OUTIS
13/07/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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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었네요. 각자의 추구가 있는거죠. 저는 이야기의 원형, 근원성에 관심있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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