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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6/23 17:26:09
Name 이명박
Subject [일반] 지나치게 평범한 토요일
방학이 시작되고 첫 주말을 맞이했다.
토요일인데 약속도없고 시간은 남아 새벽일찍 일어나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잡다한 일은 많이 해봤지만 인력사무소에 나가는 것은 처음이기에 조금의 긴장과, 주민등록증과, 소개비를 챙겼다.
짜바리는 지속적인 출근으로 눈도장을 찍거나,
아주 이른시간에 가야한다고 미리 들었기 때문에 5시 20분에 사무소에 도착했다.

'개미인력' 이라는 곳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건 "붕몽의생" 이라는 사자성어.  
꿈은 붕새처럼 클지라도, 생활은 개미처럼 하자는 뜻이다. 한 마리의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리모델링을해서 2대의 당구대와 42인치쯤 돼보이는 TV와, 다수의 편한 의자가 나열되어있었다.



소장님께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고, 낯설음과 뻘쭘함을 이기기 위해
'아무것도 안와있는 핸드폰 들여다보며 열심히 뭔가 하는 척 하기'를 했다.
늘 그렇듯 새벽은 오프라인도 온라인도 조용했다.

처음에 왔을 땐 두명이던 인력사무소의 인원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6시가 다 되어갔을 때는 3~40명에 가까운 인원이 채워졌다.
쪼달리기 시작했다. 이 일을 업으로 삼으실 것 같은 아저씨,어르신분들이 엄청 많았다.
한 두명씩 출력 되어가기 시작했다. 6시 30분이 되고 7시가 되고 7시 30분이 되었다. 4명정도 남아있었고, 그 중 한명은 나였다.

2시간 10분을 사무소에 앉아있다가, 더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거리로 나왔다.
그때야 비로소 더웠다. 여름노가다를 위해 청바지와 전투용워커와 긴팔, 수건, 모자까지 다 챙겨왔는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며 지역카페에서 구인광고를 찾았다.

"캠핑장 보조. 13~23시. 출퇴근지원, 식사제공, 일급 5만원"

해본적 없는 일이었고,
일당이 마음에 들지않았지만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라는 심정으로 문자를 남겼다. 사실 일찍일어난게 아까웠다.


곧 전화가 왔다. 편한복장으로 12시 30분까지 공지천으로 오라는 내용이었고, 택시비는 지원해준다고 하였다.
조금 자다가 일어나 준비를 하고 다이소에 들러 밀짚모자를 사서 공지천으로 출발했다. 놀러가는 느낌이 났다. 느낌만

3700원 정도 거리 떨어져있는 공지천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 수교 50주년 평화 대행진" 때문에 사람이 매우 많았다.
무료로 전쟁음식을 나눠주고있었다. 밀전병인지 개떡인지랑, 찐감자랑, 현미주먹밥을 하얀비닐봉다리에 따로 담아 엮었다.
받아들어 감자를 한입 베어물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감자 너무 잘먹는다고 또 주려고했는데 극구 사양했다.

12시 30분쯤 다른번호로 전화가 왔다.중년여성의 목소리였다.  금방 간다고....검은색 엑센트라고..
전화를 끊고 '차는 왜 가르쳐 주지?' 의문이 들었다.

잠시 후 전화가 다시 걸려와서 받았는데, 바로 옆에서 검은차가 빵빵 거렸다.
아주머니가 타라고해서 탔다. 그리고 강촌에 도착했다.
거기서 10분을 더들어가 캠핑장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니 공지천에서 캠핑장을 본적이 없는 것같다.

춘천에서 강촌까지 일하러 와보긴 처음이었지만
기왕온거 열심히 일하기로 다짐하고 캠핑장의 여러 텐트들을 손님맞을 수 있게 세팅한 후 한숨 돌렸다.
겁나더웠다. 바깥보다 텐트안이 더 뜨거웠다. 군대를 떠올려봤을때 텐트 안의 온도는 적어도 45도 이상은 됐다.
다행히도 큰 나무 밑에 있는 텐트들은 시원했고 예약된 손님 5팀정도가 차근차근 들어와 자리를 폈다.

오후 세시쯤 KBS에서 PD가 한명 왔다. 캠핑장 촬영을 한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난 어느새 삽을들고 TV에 잠깐 보여줄,
비가 한동안 안와서 다 말라비틀어진 계곡의 물웅덩이를 아이들의 재미난 쉼터인냥 바꾸는 작업을 하고있었다.
정신없이 삽질을 하고 돌을 옮기고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아주머니 노트북에 최고다 이순신 받아드리기' 퀘스트를 완료하고
손님들이 고기구워먹을 수있게 '참숯을 뜨끈하게 달궈 손님텐트앞까지 배달해드리기' 퀘스트를 해야했는데
진짜 겁나 뜨거웠다. 속티 겉티 바지 할것없이 다 젖었다. 그래도 한 두번 달궈서 배달하다보니 어느새 너무도 쉬운 작업이 되어
전문가처럼 해냈다.

일을 마치고 비비탄총 물감총을 쏘고, 컴퓨터도 조금 만지며 쉬고있는데 사람들이 부탄가스를 사러왔다. 천원에 한개씩 꺼내주는데 비닐이 너무 안뜯기고 더워서 짜증나, 확 잡아뜯다가 부탄가스 쇠날에 내 손가락 피부도 확 잡아뜯겼다.
아프다기보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부탄가스를뜯다가....이런 모지리같은놈...

줄줄 흐르는 피를 멍하니 보다가 정신차리고 지혈을 하고 응급처리를 했다.

밤이 되고 캠핑장 사장님께서 오셨다.
이거저거 무대를 세팅하시더니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셨고 손님들도 한팀한팀 모여들었다. 옛 인기가요 들을 몇 개 하시고
분위기는 무르익고, 레크레이션도 취미라고 하시며 손님들과 여러가지 게임을 했다. 그나저나 사장님은 박사학위를 수료하신 박사였다..

사은품도 있고 분위기도 좋고
지켜보는 나도 어느새 피로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퇴근 한시간 전쯤 마지막 휴식을 취하는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싸우나보다~하고 있었는데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아주머니가 나를 집에 보내려고 하셨다.

알고보니 우리 주인아저씨랑 저 입구쪽 캠핑장 주인이자 그쪽 땅주인인 아저씨가 싸웠다.
우리아저씨가 한 두대 맞은 듯 했다. ㅜㅜ..

경찰이 왔고 이래저래 사건을 파악하는 듯 하더니, 별 성과없이 멀뚱멀뚱 서있었다.

사장님은 일단 나를 집에데려다 주려고 차를 몰고 나갔는데,
입구가 막혀있었다. 입구땅 주인이 막아놨다. 자기땅 자기가 사용하는건데 무슨잘못이 있냐며 경찰에게 따졌다.
법대로 하라고 소리를 막 질러서
피지알에 급하게 질문글을 작성했다. 역시 믿을 곳은 이곳 뿐이다.

그리고 질게를 무한터치하며 계속 기다리다가  30분이 넘어서 갑자기 입구가 뚫렸다. 나를 위한 배려같았다.
강촌에서 춘천까지 데려다주시며 우리는 말이없었다.
차에서 내리니 12시가 다되어갔다.
고생했다며 6만원을 주셨다. 만원 더받아서 기쁘긴 한데
뭔가 일을 하고 온 기분이 아니라 전투를 하고 온 기분 같았다.

집에와 에너지볼트와 불닭볶음면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세상살이 쉬운거 하나없다. 하지만 경험은 좋은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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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terran
13/06/23 17:32
수정 아이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허허 저도 방학인데 이런저런 일좀 많이 해봐야겠습니다...
이명박
13/06/23 17:34
수정 아이콘
젊어고생은 사서도 하지만
기왕이면 돈많이 받는걸로...
13/06/23 19:35
수정 아이콘
진짜 전쟁한 기분이겠네요
13/06/23 22:40
수정 아이콘
아... 마지막이 좀 좋지 못하였군요. 그나저나 붉닭면봉지가 '미니미'처럼보여요..! >.<
2막2장
13/06/23 22:47
수정 아이콘
크크 다이나믹했던 하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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