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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17 04:22:52
Name 순두부
Subject [일반]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는??
1. 한문제

전한의 제 5대 황제. 묘호는 태종(太宗).

항우와 유방의 싸움으로 피폐해진 중국을 되살리고 나라 경제를 일으킴.
중국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중 하나인 문경지치의 시작을 알린 황제로서 각 관청에 명해 백성들이 농사지을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이르고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씨앗과 식량을 대여해주었으며, 조세를 반으로 줄였고 유방이 정한 15분의 1의 세를 30분의 1로 바꿈.

이때 백성들은 모두가 부유해져서 땅바닥에 돈이 떨어져도 줍지 않을 지경이었음. 모든 군주들이 꿈꾸는 태평성대를 실현한 인물




2. 후한광무제

후한의 1대 황제. 이름은 유수.

한나라 유씨가 나은 최고의 먼치킨
중국사의 만능군주로서 적은 수로 왕망의 대군을 무찌른 곤양대전을 통해 한을 재건하고 후한의 초대황제에 오른다.

훗날 제갈량은 조식과 논쟁하면서 쓴 글에서, "한나라 고조의 개국공신들은 흔히 광무제의 개국공신들보다 능력이 높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광무제가 너무나 위대한 군주였기 때문에 공신들의 능력은 부족하지 않지만 능력이 부각될 만한 위기상황이 적었던 것 뿐이다."라고 하기도..

토사구팽도 없었고 말년의 후계자문제도 없이 모든게 완벽했던 군주




3. 수문제

이름은 양견楊堅. 수의 1대 황제

황건적의 난 이후 여러나라로 갈라졌던 중국을 다시 재통일시킨 인물

서양에선 여러 나라로 갈라질뻔한 중국을 다시 통일시켜 하나의 나라로 만들었다는것때문에 서양에서 세계사 중요 인물을 뽑으면 100위 안, 그것도 제왕들 중에서는 10위 안에 꼽힐 정도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엄청난 정치력을 보여줘 각자의 토지를 지닌 소규모 자작농을 대규모로 늘리고 '삼장제'와 '균전제'를 확립시켜 수문제가 확립한 이런 토지정책은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 시기까지 이어진 통일왕조들의 토지정책의 뼈대로 작용했다.
이에 '한이 고조가 통일하고 문경치세를 거쳐 한무제시절에야 이룩한 번영을 양견은 그가 통일하고 그가 이루어냈다라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아들 수양제가 중국사의 역대급 막장이었고 그덕에 수나라가 망하면서 묻힌 비운의 군주.





4. 당태종

중국역사에서 가장 최고의 명군을 꼽으라면 반드시 꼽히는 군주

아버지를 도와 당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자신을 해하려는 형과 동생을 죽이고 고조의 뒤를 이어 당의 2대황제에 오름

그리고 정치에서도 명대신 위징, 방현령,두여회등의 도움을 받아 정관의 치라는 뛰어난 정치를 선보임
동돌궐과 고창국을 정벌하였으며  당 제국의 북부와 서부에 있던 세력들을 모두 당에 복속시켜 서쪽으로 실크로드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하지만 고구려를 정복하려다가 결국 실패하고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마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




5. 송태종

북송(北宋)의 제2대 황제 본명은 조광의

송태조의 뒤를 이어 2대황제에 올라 송의 태평성대의 기틀을 마련한다.
즉위시 태조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지만 그런 의심을 극복하고 오월의 항복을 받고, 다음해 북한(北漢)을 멸망시켜 오대십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그리고 문치주의의 기틀을 다져 훗날 진종, 인종 시대의 "함평-경력의 치"라는 송나라 내부의 태평성대의 기반이 되었으며 송조 전체의 뼈대를 잡고 기틀을 닦았다.




6. 명 영락제

명나라 제3대 황제. 이름은 주체(朱棣).

정난의 변을 통해 조카를 몰아내고 황제에 자리에 오름
명나라를 제국으로 성장시킨 황제로 영락대전을 대표로 하는 많은 학술 서적을 편찬, 수리시설을 보완, 대운하 개수, 자금성건축의 업적을 세움

대외적으로는 적극적인 팽창사업을 진행해 무려 5차례나 몽골에 친히 원정하여 승리를 거두어 몽골족이 명을 넘보지 못하게 했으며  티베트와 조선, 여진족에 대해서도 조공을 받았고 베트남에도 원정군을 파견하기도 함.

정화의 대함대 항해를 지원 동남아시아, 인도양, 심지어 동아프리카의 케냐 해안까지 명의 함대가 진출, 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치고 많은 나라의 조공을 받게한다.




7. 청 강희제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 제국의 4대 황제

중국이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넓혀봐도 명군 하면 꼭 빠지지않는 명군이자 먼치킨

중국역사상 가장 긴 61년을 통치하며 삼번의 난을 제압하고 대만을 정벌하며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와의 국경을 확정하고 준가르 정벌과 티베트 복속을 통해 중국역사상 가장 최고의 영토를 차지하였다. (원나라 제외)

중국 문화를 애호하여 <강희자전>과 <고금도서집성>을 편찬하였으며 지식욕구가 대단해 유교 경전을 비롯해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여 막대한 지식을 쌓아올렸다

당대의 유럽인들은 강희제의 풍부한 지식과 교양에 감탄해 가톨릭을 믿지 않는 점만 빼면 최고의 군주라고 칭송하였다.





8. 청 옹정제

청 제국의 5대 황제

제갈량과 더불어 중국 최고의 워커홀릭 군주

외정(外征)을 철저히 삼가고 내적 충실과 국가의 안정에 힘써, 강희제의 60년 치세 후 동요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력을 다져놓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정무를 보기 시작하여 늦은 밤까지 대신들조차 질릴 정도로 철저하게 집무에 임했으며 철저하게 지방관을 관리, 감독하고 이중삼중으로 감시망을 펼쳐 세밀하게 관리들을 통솔했으며 전국의 수많은 관리들이 보내는 보고서를 빠짐없이 읽었다.

'전제군주제와 독재체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극한의 선을 실천한 군주'로 평가받으며 청나라 관료들을 무시무시할정도로 휘어잡아 부정부패를 몰아내고 후에 건륭제때의 전성기를 마련한 독재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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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엔
13/03/17 04:24
수정 아이콘
황제가 되는 과정만 보면 주원장, 황제가 된 후를 보면 강희제, 종합해서는 가장 흠결이 없는 광무제 꼽고 갑니다.
키스도사
13/03/17 04:25
수정 아이콘
"최고의 왕"이라는 기준이 나라를 잘다스렸다, 혹은 백성을 편안하게 한 "명군"이 아니라면 진시황이죠. 진시황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없었을 테니까요.
잠수중
13/03/17 04:41
수정 아이콘
중국역사 잘 모르겠지만 저들 못지 않게 한무제도 나름 언급이 잘 되는편인데(인지도) 실제 평가는 저 위에 나와 명군 or 성군들에 비해 미치지 못하는가봐요?
순두부
13/03/17 04:50
수정 아이콘
한무제는 한문제 한경제의 문경지치로 인한 태평성대를 박살낸 인물로 평가되고 있지요

세종대왕은 “대체로 인간이란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도 나중에는 게을러진다. 아무리 강직한 사람이라도 마침내는 해이해지기 쉽다. 임금이란 부지런하고 검소해야 정치를 잘할 수 있다. 문제와 경제는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성공하였으나, 무제는 방종하고 지나친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라고 했습니다.
공상만화
13/03/17 04:53
수정 아이콘
간지는 최고인데 실속이 없는 황제가 한무제입니다.
13/03/17 06:52
수정 아이콘
건륭제도 마찬가지로 간지는 최곤데 실속이
할애비 애비가 쌓아올린 부를 맘껏 쓰다가 죽은 황제
세계 역사상 가장 행복한 군주 아니였는가 마 그래봅니다.
안산드레아스
13/03/17 05:32
수정 아이콘
공도 많지만 과도 많아서요
저 개인적으로는 한무제 시대에서 신하로 살 바엔 죽고 말렵니다
R.Oswalt
13/03/17 08:39
수정 아이콘
간지는 폭발하지만 그 간지를 뿜어내기 위해서 돈을 뜯어야되는데 제대로 못뜯어서 국고는 물론이거니와 경제까지 망가지죠 크크
나이트해머
13/03/17 18:35
수정 아이콘
진황한무가 딱 들어맞는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진시황처럼 한무제도 이룬건 많지만 과욕을 부려 잃은 것도 많죠.
한나라가 진나라보다 훨씬 견실한 국가였고 막판에 자기정책에 대한 반성 및 사후대비를 잘해놔서 한나라가 유지된 거죠. 실제로 후세에 '진시황은 결국 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왜 한무제는 비슷한 정책을 펴고도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분석글이 종종 눈에 띌 정도죠.
射殺巫女浅間
13/03/17 04:43
수정 아이콘
아무튼 최고의 황제보다는 최고의 황제가 있던 시대의 양민이 되고 싶군요. 업무강도 생각해 보면...
마스터충달
13/03/17 05:11
수정 아이콘
최고의 황제가 있던 시대의 양민이라고 해도 지금 시민보다야 훨 못할거 같은데요;;
뭐 기술발전이 똑같다고 쳐도 그 시대의 양민은.... 안습;;
13/03/17 07:06
수정 아이콘
요즘이 아무리 살기 팍팍하다, 빈부격차 심하다고 해도 저런 태평성대 시절보다도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니깐요... 다만 그때는 애초에 오르지도 못 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았으니 안분자족하고 살았던 거지만. 무지를 방패삼아 행복을 얻고 싶다면 지금도 히키코모리로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대통령 문재인
13/03/17 05:11
수정 아이콘
전 옹정제요. 전제군주제와 독재체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극한의 선을 실천한 군주 - 평가가 멋있네요.
그런데 실제 중국인들은 누구를 최고로 뽑을까요?
우리나라면 세종대왕이 뽑힐거 같은데.. 궁금하네요.
13/03/17 06:54
수정 아이콘
중국인들은 한고조 유방이 짱짱맨 아닌가요?
능력을 떠나서 가장 사랑받는 황제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13/03/17 07:00
수정 아이콘
그래도 폭정 말년 뻘짓 감안해도 역시나 진시황이
중국통일 그리고 2000년 이상 유지된 군현제
각종도량통일등등 진시황이 중국사에 끼친 영향은
비교대상이 없다고 봅니다.
중년의 럴커
13/03/17 09:15
수정 아이콘
저도 한표. 하나의 중국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진시황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이름도 황제의 시작인 시황제 아닙니까?
깃털티라노
13/03/17 12:13
수정 아이콘
시황제는 사실 중국사가에서도 일단 번외급으로 보더군요
그의 존재가 바로 중국의 탄생이라고
Claude Monet
13/03/17 07:30
수정 아이콘
훗날 제갈량은 조식과 논쟁하면서 쓴 글에서
이게 무슨말인가요?둘이 만나서 논쟁한적이 있는건가요?
키스도사
13/03/17 08:01
수정 아이콘
그런데 실제로 제갈량이 조식과 키배를 뜬 적이 있기는 하다. 조식이 광무제의 사적을 예로 들며 광무제의 운태28장은 한 고조 유방의 한신, 팽월, 영포, 소하, 장량 같은 인물에 미치지 못한다는 논설을 폈는데, 제갈량이 거기에 반박하여 주장하기를, "한고조는 재능에 부족함이 있어 신하들이 스스로 활약할 여지가 있었으나, 광무제는 너무 뛰어나서 운태 28장이 드러나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한 것이다.

라고 하네요.
13/03/17 07:50
수정 아이콘
광무제가 최고죠
R.Oswalt
13/03/17 08:36
수정 아이콘
강희-옹정제는 세트로 묶어서 보는 게 좋습니다. 강희-옹정-건륭제에 대해서 저희 교수님은 강희제가 닦아놓은 걸 옹정제가 빛내고 건륭제가 시원하게 말아먹었다고... 크크
옹정제는 즉위과정의 의문을 제외하면 정말 저게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완벽의 경지인지라... -_-;;; 워낙 워커홀릭이었던 점도 있고, 선제인 강희제가 워낙 오랫동안 살아있던 관계로 늦은 나이에 즉위해서 제위는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게 단점이랄까요. 강희-옹정시기가 내정, 외교, 경제, 학문 전 분야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가 아닐까 싶네요.

이 동네는 워낙에 스케일이 커서 명군으로 꼽히던 부견같은 사람도 한순간에 망하고... 미스테리합니다 크크
13/03/17 08:49
수정 아이콘
일반 중국 역사 개설서에 보면 강희 - 옹정 - 건륭의 120년을 같이 묶는데.. 건륭제가 여기에 묶이는 것은 앞의 두 황제에 대한 모욕이라고 보여집니다..크크
아무리 생각해도 건륭제는 한무제와 비교를 해서 누가 더 시원하게 말아 드셨나를 비교해 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권유리
13/03/17 09:11
수정 아이콘
광무제가 넘사벽이라 생각합니다.
애니가애니
13/03/17 09:58
수정 아이콘
전 당태종이요 크크
2초의그순간
13/03/17 11:13
수정 아이콘
진시황이요.
Dornfelder
13/03/17 11:21
수정 아이콘
수양제가 막장만 아니었어도 수나라가 당나라처럼 오래 갈 수 있었을까요?
깃털티라노
13/03/17 12:20
수정 아이콘
오래갈정도가 아니었죠
당나라가 생길수가 없었을겁니다.
수문제는 등극을 위해 북제 우문씨인가요 그들을 철저히 탄압 거의
씨를 말리다 시피한것 외에는 정말 훌륭한 군주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최고위업과 또한 존경할점은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청렴성과 절약이라고 합니다.
모든것은 백성에게서 나온것 백성이 나라를 이끌라고 내온 세를
어찌 낭비하리 검약해야하고 나의 후계라면 마땅히 이나를 본받아 검약해야 한다하고
라는 유명한 말까지 남겼다고 하죠
검약하지 않기에 장남이었던 태자를 갈아치우기 까지 한 사람입니다.
(이게 유일한 패착 근검절약을 자신처럼 하고있다고 본 아들 수양제야 말로
진짜 천하의 막장이었는데 아들의 연기에 완전히 속아넘어갔으니)
수가 양제시절 대운하라는 엄청난 대공사에 장성재건,황도이전,그리고 고구려와의
전쟁을 모두 일으킬수 있었던것은 바로 아버지 문제의 근검절약으로 비축된
국고덕분이었다고 할정도입니다.
나이트해머
13/03/17 18:37
수정 아이콘
수문제 시기의 대부흥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당나라는 수문제 수준의 경제력을 '비단과 금을 분토처럼 여긴' 당현종 천보 초엽 연간에나 겨우겨우 따라잡습니다.
깃털티라노
13/03/17 12:10
수정 아이콘
당태종이 과연 명군인가에서 현대 중국사가쪽은 여전히 미지수쪽이 있다고 하지요
너무 조작의 냄새가 심한 당태종 치세에 대한의문
예로 위의 문구중 자신을 죽이려고 한 형과 동생을 먼저쳤다고하는 것부터가
대표적 조작의 사례라고 하죠
이세민이 당건국에 최고의 공훈을 세웠기에 아버지 고조는 이세민을 이미 장남에게
내린 태자지위를 줄수도 없고 해서 천책상장이라는 애매모호한 지위를 주면서 이세민을
달랬다고 할정도로 이세민은 노골적으로 왕위를 넘봤고 결국 자기가 쿠데타를 일으켜
형,동생을 죽이고 아버지를 유폐시켰다는건 이젠 사실이라고 합니다.
이세민에 대해 아주 박한 점수를 준 어떤 중국사가는 당고조의 최대실수는 이세민을
죽이지 않은거다 아들한명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그는 결국 두명의 아들과 7명의 손자를
잃었다라고
한문제도 과연 칭송만 받을왕인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합니다.
한문제의 사실상 현실을 도피한 국방-흉노정책은 무려 백년간 중국 변방백성을
지옥으로 몰고간 원인이라는 평도 적지않다고 합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새외유목민족에 의한 변경지역의 약탈. 황폐화. 그로인해 발생한
대규모 난민 ...이문제에 있어서 한문제의 방관 한무제가 결국 이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이때의 상처가 경제때도 해결안되고 외형적으론 한나라는 굉장히 번성하고 태평한것으로
보였지만 오히력 이것이 더 융성할수있었던 한의 발목을 잡고 무제시절의 경제적 위기를
가지고오는 주범이었다로 굉장히 박하게 평가하는 학자도 있더군요
후한 광무제와 송태조 조광윤은 쌍벽이라고 하더군요
흔히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완벽하게 시전했던 한고조 유방이나 명 태조 홍무제와는 너무도
다른 이 두황제의 위업은 그냥 이렇게 밖에 설명이 안된다고 하더군요
"왕이 넘사벽이기에 신하들이 그냥 깨깽할수 밖에 없었다"
황제가 너무도 뛰어나 신하들 그누구도 감히 범접할수 없기에 그걸로 그냥 끝
하다못해 조광조가 이만하고 그냥들 쉬는게 어떻소 나이도 들었는데 하니
죄다 눈물만 흘리고 어이쿠 그러문요 했다는 일화는 넘유명하죠
13/03/17 12:28
수정 아이콘
제가 중 고등학교때 세계사를 배울때 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생각에 강희 옹정 이때가 중국의 레알 리즈시절이었던 식으로 들었던 기억에
이 두명의 치세가 짱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넘사벽인 사람들이 너무 많군요
아이군
13/03/17 12:46
수정 아이콘
한국에 워낙 독보적인 왕이있어서 아무래도 다른나라 왕랭킹은 매기기가 힘든면이 있죠

마 좋은 왕이면 백성도 잘살게 하고 땅도 좀 늘리고 과학기술도 발전시키고 책도 몇권 쓰면서 심심할때 종종 글자도 하나 개발해야되는거 아니겠습니까? 후덜덜
멀면 벙커링
13/03/17 12:52
수정 아이콘
옹정제 하면 생각나는 건 이거 하나밖에 없네요.

[옹정황제의 여인(후궁 견환전)]

저희 어머니께서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보신 중드입니다.;;;;
13/03/17 13:48
수정 아이콘
강희제와 옹정제가 최고죠..

강희제가 황제에 올랐을 무렵..왕권은 약했고. 지방에는 명나라 잔존세력들이 남아 있었죠. 이 모든것을 다 해결하고도

치세를 확립했으니깐요.

옹정제는 서양사에서보면..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비슷하죠. 철저한 인사검증과 내치 .
Fernando Torres
13/03/17 13:48
수정 아이콘
'이 한 몸을 위해서 천하를 희생시키지는 않으리라...'
옹정제의 황제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말이죠.
갓영호
13/03/17 14:18
수정 아이콘
사실 중국이랑 유럽이랑 땅 크기는 큰 차이 안나는걸로 알고 있는데 중국도 통일 왕조가 아니라 유럽처럼 여러 나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고 경쟁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나루호도 류이
13/03/17 14:46
수정 아이콘
세계사는 몰라도 최소한 우리나라는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력은 워낙에 넘사벽으로 차이나는지라 어떻게 뻗어나갈 여지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으니까요.
깃털티라노
13/03/17 14:56
수정 아이콘
그러기에 진시황에 대해선 넘사벽,번외급이라고 하는겁니다.
진시황이 진짜 악정을 행했냐 하는문제에서도 역사가는 고개를 갸웃합니다.
결국 통일진나라는 단명했고 흔이 중국왕계를 표할때 진-한,수-당이라는 말을 쓰는게
두개의 정권은 사실하나나 다름없기때문인데
이점에서 진시황의 진은 자리를 이은 한에 의해 필요이상으로 폄하되었고
조작적인 덮어쓰기로 더럽혀진 냄새가 강하다는 거죠
자기정권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임정권을 악으로 모는 일은 흔하기에(예로 고려가 궁예정권을
비난하고 궁예의 의문시되는 추한죽음) 결국 이모든걸 감안하고 평가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적어도 땅속에서 나온 유물은 과연 진시황이 포악하고 문란했냐 그리고 사치에 방탕했냐에서
모두 물음표를 넘어 아니다에 가깝다는 거죠
그리고 중국이 통일왕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중국의 문화,문명은 더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
유럽이 유럽으로 발전한것은 로마멸망후 고맘고만한 국가끼리 끝임없이 치고받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분발하게된 동기를 부여했다는 건데
중국이 유럽혹은 인도차이나 반도마냥 갈라졌다면 동북아시아는 더 발전됬을 가능성이 있었다는군요
나이트해머
13/03/17 21:58
수정 아이콘
현대 중국 사학계야말로 정치적 성향에 따른 주관적 시각을 개입하여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바라본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뭣보다도 통일 진나라의 붕괴는 농민봉기에 의해서였고 이는 진의 강압적이고 과시적인 정책 남발로 촉발된 것이며 이는 진시황에 의해 실시된 것입니다. 진시황이 문란하고 방탕했다 하는 기록은 애초에 찾아볼 수 없는데도 마치 그것 때문에 비판받은 것처럼 종종 이야기되는데, 이건 좀 아닙니다.

그리고 통일의 무의미성 같은 IF론은 솔직히 따질 가치도 없다 봅니다. 지리부터 해서 사회적 특성 밑 중심지의 이동까지, 서구와 중국은 완전히 다른데 그걸 통일성 유지 여부만으로 따지는 건 애초에 논리부터 성립되지 않지요.
절름발이이리
13/03/17 15:23
수정 아이콘
유럽은 러시아 빼면 6백만 킬로제곱 정도고, 중국은 9백만입니다. 뭐 옛날 기준 중국은 더 좁았지만, 유럽도 마찬가지라...
순두부
13/03/17 16:12
수정 아이콘
적어도 우랄산맥 까지의 러시아는 유럽으로 넣어줘야죠...
13/03/17 16:28
수정 아이콘
러시아는 표트르대제이전까지 유럽하고는 거의 단절된 사회입니다.
거의 유럽이라 볼수없고 오히려 몽골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시아적 요소가 짓었던 사회입니다.
표트르대제이후 빠르게 유럽화가 됬고
특히 독일 출신인 예카트리나 여제가 등극하면서 러시아는 문화, 사회적으로 완전히 유럽화 되었지만
강력한 전제군주 같은 제도적인면은 여전히 아시아적이엿죠
순두부
13/03/17 19:03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티베트 이쪽도 중국의 영토로 넣는건 곤란하겠죠. 티베트가 중국 역사에 편입된게 청 강희제때가 최초였으니까요

티베트를 포함한 지금의 중국대륙의 영토를 중국 영토로 본다면 그게 1700년이니 이때는 우랄산맥 이전의 러시아는 유럽의 영토로 봐줘야죠.

청나라 시대의 러시아는 분명 유럽역사의 한축을 담당하던 나라이니까요
절름발이이리
13/03/17 19:38
수정 아이콘
맞는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럽도 메인스트림은 지금 우리가 파악하는 구도보다는 꽤 좁았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북유럽이나 동유럽, 남유럽에서 좀 따로 놀거나, 다른 민족에게 침공당하거나 하는 식의 경우가 많았어서.. 생산능력 차원에서든, 중국문화가 영향을 미친 주변국까지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 중국의 규모는 분명히 유럽 이상이었다고 봐야 맞다고 봅니다.
순두부
13/03/17 20:13
수정 아이콘
그리고 영향을 미친 주변국을 감안한다고 하면
예전 유럽은 북아프리카도 하나의 유럽 영향권이라고 봐야하겠죠

그냥 지중해 자체가 옛 유럽의 활동영역이었으니까요..
서로마 멸망후에는 동로마제국이 소아시아와 발칸 반도 까지 영향력을 미쳤고...
절름발이이리
13/03/17 20:26
수정 아이콘
오히려 이베리아나 동유럽, 북아프리카는 이슬람 쪽 영향력이 더 강했습니다. 유럽에 편입된 건 근대 들어서죠. 유럽의 영향력이란 것도 그 시대엔 변변치 못했죠. 로마시절은 유럽이란 말도 무의미한 시대고..
.Fantasystar.
13/03/17 14:48
수정 아이콘
저는 주원장도 굉장히 좋은 황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백성의 입장에서만.......관료의 입장에선...-_-공포의 대마왕...

최고의 황제는 한문제라고 생각되고 그 뒤를 이어 광무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광무제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그가 토사구팽하지 않은 (정확히는 할필요가 없었죠 광무제는..) 호족들이 시간이 좀 더 흘러 외척이 되고 그 외척이 전횡을 일삼자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환관을 등용하고 그것이 당고의 금 -> 황건적의 난 -> 십상시의 난 -> 삼국시대 로 이어지게 된 1차적인 원인이라...(물론 이건 광무제도 생각할수가 없었고 그 당시엔 생각할수조차 없었긴합니다만...안타까워서 웬지 T_T)
.Fantasystar.
13/03/17 14:50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강희제와 옹정제도 정말 넘사벽이죠
강희제야 ; 한족중심의 중국에서조차 중국 최고의 황제라고 칭송할 정도고 (강희제 이전엔 당태종을 최고라 치다가 강희제 이후론 강희제로 친다 하더군요)
옹정제는 정말 내치에 있어서 최고의 황제였죠..
둘다 이야기거리도 많은게 특징이네요 흐흐
절름발이이리
13/03/17 15:24
수정 아이콘
중국 내에선 강희제를 최고로 보는 시각이 많다더군요.
함진영
13/03/17 15:25
수정 아이콘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상대적으로 원나라시기에는 정벌군주을 제외한 명군 또는 성군이라고 부를 만한 왕이 있었나요? 아니면 한족이 아니라 평가절하 하는건가요?
.Fantasystar.
13/03/17 15:28
수정 아이콘
명군은 있을지언정 성군은 없었다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르죠
칭기즈칸이나 쿠빌라이칸이나 군사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겨서 몽골의 영웅(특히 칭기즈칸)이라 할만합니다만....그닥 성군이라 불리울 수는 없는거 같아요
깃털티라노
13/03/17 16:04
수정 아이콘
테무르 황제는 명군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묘호는 성종인데 쿠빌라이이후 원제국시기 가장 훌륭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더군요
문제는 재위기간이 좀길어야 했는데 1294에서 1307년이란 13년이란 약간 짧은기간이라는게
아쉽다고 하지요
쿠빌라이의 손자인데 원제국은 이 능력있는 황제이후 모두 2류급 인물만 주구장창 황위에 올랐다는게
문제이죠
그리고 중국역사상 한족이 아니라 평가절하는 되는 가장 대표적인 군주가
5호 16국(중국은 이게 민족 차별적용어라해서 동진16국시대로 표시합니다.)의 서막을 알리고
서진멸망시키고 그당시 일자무식에 국가체계에 대한 인식,지식
사상도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흉노족을 이끌며 최초의 이민족국가를 세운 전조의 유연이란 군주가 있습니다.
어느정도냐면 중국역사가가 오직 조조에게만 붙여졌던 초세의 걸물이라는 평가어를 조조외에 붙여준
유일한 인물로 그당시 그런세상에서 어째서 이런 인물이 왜 한지가 아닌 흉노의 땅에서 태어났는가라며
한탄케한 인물입니다.
Cool Gray
13/03/17 15:27
수정 아이콘
저라면 한문제나 광무제 둘 중 하나를 꼽을 것 같네요. 둘 중 누구를 꼽을지는 좀더 고민해야 할 것 같고...
DogSound-_-*
13/03/17 16:07
수정 아이콘
세종과 강희제 옹정제 를 보면 대체로 선군은 신하를 마구 굴렸네요 크크크
공상만화
13/03/17 17:04
수정 아이콘
옹정제의 묘호가 세종 입니다. 크크크
둘 다 워커홀릭에 신하 고혈빨기에 능했죠.
13/03/17 16:14
수정 아이콘
강희제 이전에는 무조건 당태종이지만 강희제가 나타나면서 강희제로 끝났죠
소수민족이 다수의 한족을 효과적으로 다룰수 있는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난거죠

영락제를 최고의 황제 대열에 끼기에는 그의 행적이나 내치가 너무 초라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의 세조에 가까웠는데 조카찬탈과정에서부터 너무 피를 많이 흘렸고 10족을 멸한 유일무이한 황제입니다.
무엇보다도 영락제 최대 실책은 주원장이 죽여놓은 환관세력들을 다시 살려 놨죠
즉 과거를 통해 선발된 관료출신들을 믿지 못하여 자기의 최측근들하고 밀실 정치를 행하였습니다. 최측근중에 환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죠
(그 유명한 정화도 환관이고요)훗날 명나라가 저무는 이유가 되고요
다행이 아들하고 손자는 잘둬서 아들 손자대에는 태평성세를 이루었죠

강희제 같은 경우에도 흠집이 있는데 자신의 큰아들과 권력다툼 끝에 큰아들을 죽여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인조 영조와 비슷하죠
13/03/17 16:38
수정 아이콘
영락제, 한무제와 반대로 한문제하고 송태종은 내치에 강했지만 외치에 약했던 황제입니다
한문제 깃털티라노님이 말씀 해주신것 처럼 흉노족하고 관계에서 그렇고
송태종은 한문제보다 더 심하죠 거란, 서하, 대월(지금 베트남) 이민족 정벌 할때마다 대패하고 농락당합니다.
덕분에 송나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호구인 통일왕조가 되어버립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3/03/17 18:31
수정 아이콘
국궁진췌 사이후이(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그만둔다.)

제갈량이 후출사표에서 쓰고, 강희가 마음 속에 새긴 말인데,
전자는 신하고, 후자는 만인지상의 황제라는 점...
강희제가 갑 오브 갑이라고 봅니다.
13/03/17 19:56
수정 아이콘
옹정제 평가로는 그냥 군주제의 왕조에서 나올 수 있는
궁극의 군주라는 평가가 많죠.
군주제에서 가장 철인에 가까운 군주가 아닐까 봅니다.
중국사 통털어서 현대까지 포함 관리들 부정부패가 가장 없었던 시기였다고 하니
Tristana
13/03/17 21:53
수정 아이콘
찾아보니 강희제는 61년
옹정제는 13년
건륭제는 60년 재위에 있었네요.
참 오래도 살았음..;
특히 건륭제는 자신이 할아버지의 재위기간을 넘을 수는 없다고 해서 황제자리 물려주고
태상황제로 4년 더 실권을 잡고 있었다고 하네요.
Marionette
13/03/17 22:02
수정 아이콘
제왕삼부곡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13/03/17 22:13
수정 아이콘
존경하는 건 강희-옹정제, 하지만 제가 왕이라면 건륭제처럼 살고 싶네요 크크크크
루크레티아
13/03/18 13:09
수정 아이콘
지금도 한 해에 사형을 당하는 숫자를 정확히 추산 할 수 없는 중국인데, 전제군주 시기에 한 해에 1억명이 넘는 인구를 통치하면서도 17명이라는 경이적인 사형수 숫자를 기록한 강희제가 정말 대단한 황제인거죠. 흔히 말하는 '천고일제' 라는 표현이 정말 아깝지 않은 대단한 황제라고 생각합니다. 광무제도 대단한 황제이긴 하지만, 강희제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황실의 권력 암투와 반란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안산드레아스
13/03/18 13:57
수정 아이콘
정말 여기 저기서 검색해서 자료를 보니 강옹 라인이 최고의 황제라 불릴 만 합니다
세츠나
13/03/26 18:52
수정 아이콘
강희제가 녹정기에 나온 소년황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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