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반대칭고양이님의 글을 읽고 나서 댓글로 '솔직히 지난 몇 년 사이에 피지알이 특유의 색깔을 많이 잃었습니다. 저는 이게 가벼운 커뮤니티의 문화가 전파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썼습니다. 세세한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하여튼 속으로 하던 생각은 저거였습니다. 그리고 나니 '과연 그런가?' 라는 자체 검열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해서 대략 5년전 오늘인 2008 년 3월 5일 전후의 50개 게시물을 대충 훑어보고 최근 50개 게시물과 비교해보았습니다. 샘플 숫자가 조금 적어서 좀 기분이 나쁘지만 저는 3시간 뒤에는 워킹데드를 보면서 술을 마셔야 하고 그 전에 끝낼 일이 많으므로 도저히 더 이상의 샘플 조사는 불가능합니다?

** 노파심에서 미리 말씀드리지만, 반대칭고양이님의 글에 제가 단 댓글을 혼자 피드백하는 것일 뿐, 해당 원문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분류 항목을 미리 정해놓고 조사를 막상 시작해보니 제 분류 항목에 맞지 않는 글이 꽤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임기응변을 좀 발휘하긴 했지만, 2008년과 2013 년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였으니 결과 도출에 큰 무리는 없지 싶습니다.

1. 글의 주제
** 이 항목을 조사해 본 이유는, '내가 피지알이 가벼워지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점점 하드코어한 교양에 관한 글이 줄어들고 대신 아이돌에 대한 글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야' 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이돌 vs 클래식 논쟁은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 뿐이니까요)

2008년: 교양 (5), 일상 (17), 시사 (11), 예능 (08), 스포츠 (9)
2013년: 교양 (6), 일상 (09), 시사 (16), 예능 (10), 스포츠 (9)

..... 어?? 예능/스포츠 관련 글이 늘어나지 않았군요? 제 첫 가정은 여기에서 일단 틀렸습니다. 피지알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돌과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즐기는 사이트였습니다. 다만 일상에 관한 글이 반토막났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만큼 시사에 대한 글이 늘어났습니다. 여기서 잠정적인 결론이라면, '훈훈한 개인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덜 하고, 대신 정치/사회 이슈에 대해 민감한 사이트로 변했다' 입니다. 하지만 이 통계수치의 변화에는 보다 큰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2번에서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2. 글의 소스
**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가벼워지는 또 하나의 이유라면, '자기가 공들여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글을 쉽게 퍼오는 분위기' 가 이유가 될 것입니다. 물론 좋은 글을 퍼오시는 분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들어가는 노력이 직접 작성만큼 클 수는 없겠지요. 더구나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추가하지 않고 다섯줄 공지사항 (지금은 250 ACSII 이자 대충 100 글자) "만" 지키는 글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 편집 등에 상당한 노력이 들어갔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자작으로 분류했습니다.

2008년: 자작 (42), 펌+의견 추가 (06), 닭펌 (2)
2013년: 자작 (27), 펌+의견 추가 (17), 닭펌 (6)

확실히 피지알은 조금 변했습니다. 5년 전의 피지알은 자신이 작성한 글이 전체의 84% 를 차지했었고, 규정만 간신히 지킨 펌글은 4%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13년의 피지알은 직접 작성한 글은 54% 로 떨어졌고 거의 절반 가까운 글이 펌글 혹은 뉴스 링크입니다. Ctrl C Ctrl V 에 가까운 좀 심한 펌글도 12% 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군요. 1번 항목에서 이야기한 '일상 글이 줄고 정치글이 많아진'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 '내가 글 쓰지 않고 다른 데서 퍼오는 문화' 가 피지알에 퍼지기 시작해서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3. 글의 길이
** 길다고 좋은 글은 아니지만, 긴 글은 그만큼 본인의 노력이 들어가긴 합니다. 고로 어느정도 진지한 자세로 글을 썼느냐에 대한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장/단문의 판단 기준은, 펌 부분을 제외하고 본인이 작성한 부분이 '제 눈대중으로' 한 페이지가 되느냐 아니냐입니다.

2008년: 장문 (36), 단문 (14)
2013년: 장문 (24), 단문 (26)

여기서도 피지알의 변화가 수치적으로 나타납니다. 5년 전에는 72% 정도의 글이 '최소한 30분 이상 투자해서' 작성하는 글이었던 데 반해, 지금은 그런 글은 5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다섯 줄'만' 지킨 수준의 글은 대신 전체의 30% 정도로 늘어났지요.

4. 결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직은 게시판이 죽네 마네 같은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 실제로 피지알 자게의 평균 조회수는 2008년의 3250 에서 2013년의 3500 으로 오히려 조금 올라갔습니다. 다만 게시판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그냥 주관적인 느낌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이고,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조금 듭니다.

** 사족 - 평소에는 맞춤법 검사기를 한번 돌려서 오탈자를 수정하지만,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2시간 57분 내로 잡일을 끝내고 맥주를 마셔야 하는 지라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